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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호/ 정의<3653>/ “차명호님이 요청한 사항에 대하여”의 답
차명호님, 일련정종 신도 정의입니다.
제 글에 대한 답변을 이곳 카페에서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불교회 카페에서 강퇴되어 글을 올릴 수 없습니다.
원할한 토론 진행을 위해서 한국SGI*일련정종 카페에 오셔서 대화 나눴으면 합니다.
님들만이 참여하는 공간에서 상대방의 입을 막고 언론전에서 승리했다고 하시니 보기 민망합니다.
그동안 제가 거론한 증문과 사실이 엄연함에도 인정치 않는 모습은 안쓰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제 입장은 어디까지나 학회를 탈회한 지 1년 남짓한 일련정종 신도입니다.
저는 종문의 지도를 받아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개인 입장에서 부족한 자료와
사실 확인을 위한 정보를 직접 검색하여 인용하고 있습니다. 판결문의 경우는 일본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서 원문을 받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럼 다시 한번 하나씩 정리해 보죠.
답- 한국SGI*일련정종 카페에 초청을 받았지만 지금 상태가 좋습니다.
정의님이 백운락 카페에서 강퇴 당하셨다면 우여곡절이 많은 분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귀하의 글을 읽고, 회원님들이 분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을 했습니다.
학회를 지키고 회원을 지키려는 백운락님의 고심고충을 알 것만 같습니다.
귀하가 올린 아래 내용은 거의가 다른 분들과 법론으로 이미 파절된 내용입니다. 한번 파절된 내용을 반복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하는 일련정종의 신도가 된지 1년 남짓 되셨다고 말씀하셨고, 귀하의 글이 종문의 지도를 받아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셨는데, 아래 내용을 보면 평생을 학회에서 신심한 저도 모르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종문은 귀하를 현혹시켜, 학회의 순수한 회원들을 교란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귀하의 문증과 사실을 증명할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은 글들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 지는 이글을 보시는 회원님들의 생각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 댓글을 보면 토라님이 가장 객관성을 갖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혈맥과 승보에 대하여
혈맥에 대해서는 어서 본인묘초와 백육개초, 어본존칠개지상승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 이케다의 지도까지 언급하였으니 더 이상의 논란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승보와 승을 공경함에 대한 어문은 너무도 많기에 직접 찾아보시기 용이할 것입니다.
" 대저 방법이란 방불, 방승(謗僧)이니라. 삼보 일체이기 때문이니라" (어서142페이지)
" 상수 이하 및 말제 등은 이론없이 진미래제에 이르기까지 나의 생존시와 같이,
적적부법(嫡嫡付法)의 상인을 가지고 총관수로 모셔야 하느니라" (어서869페이지)
니치칸 상인님의 발서잡잡집
" 불법을 상속해서 당대의 법주의 곳에 본존의 체 있어야만 함이니라"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강연집
" 어법주상인예하에 대해서는 어법주상인예하야말로 경문에 설해져 있는 삼가 견사환고의 입장,
즉 대성인님으로 배례하며 섬겨드리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의 학회정신입니다"
답- 스승의 목을 자른 자가, 제자들 앞에서 법주 행세를 하려고 한다면, 제자들이 그를 법주로 인정하겠습니까? 어서에는 “적적부법의 상인을 가지고 총관수로 모셔야 하느니라”(어서 869페이지)라는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닛켄은 법주가 아니라 닛켄종이라는 사종의 교주입니다.
정의님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세요, 귀하의 스승을 죽인 자가 자신을 섬기라고 한다면 귀하는 그를 법주로 인정하겠습니까? 만약 그에게 굴종한다면 축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운락, 무식이님 등의 정법정의의 사람들은 종문의 이러한 인권을 유린하는 권위적인 압박에 ‘닛켄은 천마’라는 무기로 온 몸을 내던져 막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야말로 지용의 용자이라고 생각합니다.
닛켄이 학회를 파문시킬 때 저도 그에게 파문당한 사람중에 한 사람입니다. 파문이라는 상황에서 보면, 귀하는 당시 입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니 제3자가 될 것입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종문에 지나친 편애는 상대의 오해를 사게 할 수 있습니다.
- 닛켄 상인과 관련한 사건(선조묘, 시애틀사건, 학회위조사진사건)에 대하여
먼저 차명호님을 비롯하여 아큐님 등은 이 문제에 대해 학회원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학회가 악의적으로 사건을 조작하여 닛켄 상인의 명예를 훼손한 불법행위입니다.
자신들(창가학회)의 불법행위에 눈을 감고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또 다른 불법(不法, 방조)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사실 증거는 이미 제시해 드렸습니다. 사실 확인을 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어문을 들라는 말씀은 안하시겠죠. 도대체 학회의 거짓은 어디까지일까요?
답- 귀하는 이미 파절된 내용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닛켄은 자신들이 파문시킨 학회회원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도 C작전을 학회에서 모의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습니다. 참으로 잔인무도한 야차입니다.
닛켄은 신도 1년차인 귀하를 선전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닛켄종 파절에 대해서는 미국학회의 교학시험에도 매번 출제되는 내용입니다. 이번 10월에 실시되는 임용시험 기출문제에도 닛켄종 파절에 대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지면 관계상 한 문제만 말씀드리면 “법주에게 어떠한 잘못이 있더라도 법주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문의 법주 우월주의 또는 법주 절대주의는 닛코상인의 유계치문 중 어떤 조항에 위배되는 것입니까?”라는 내용입니다.
귀하가 주장하는 선종묘, 시애틀사건, 학회 위조사진사건이 정말 옳다면, 학회 교학시험에도 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며, 세계 192개국의 회원들이 갖고 있는 닛켄종 파절 책자를 모두 회수하여 소각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그런 조치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 정본당 해체와 파문에 대하여
이 문제에 대하여 지난 글을 통해 성실히 답변해드렸습니다.
이케다의 만심과 교의 일탈에 의하여 더럽혀진 정본당에서 계단의 대어본존을 천좌해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계단과 말사의 구별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종문 7백여년의 역사 속에서, 총본산이나 말사의 당우를 재건한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선사의 사적파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답- 정본당 문제도 이미 파절된 내용입니다.
닛켄과 닛켄종에서는 정본당을 해체한 것이 학회가 방법의 단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① 그들은 1998년 “정본당은 바다모래로 부실 건설을 했기 때문에 철근이 부식된 곳이 발견되어 지진이 있으면 무너질 것을 우려해 파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기둥을 부수고 내부를 점검했으나 철근은 전혀 녹슬지 않았으며 콘크리트도 튼튼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② 그러자 이번에는 “정본당은 방법 덩어리니까 파괴했다”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이것은 정본당에 대해 ‘본문사의 대강당’이라 했던 제66세 닛다쓰상인의 지남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③ 더욱이 정본당에 대해 세계의 많은 식자들이 건물 자체만으로도 문화적 가치가 높아 해체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그러한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시 55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파괴했습니다.
④ 이에 대해 닛켄종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본당을 해체하게 된 진상’이라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학회측에서 ‘대성인조차 현현하지 못했던 본문의 계단을 이케다 회장이 건립했기 때문에 대성인보다 뛰어난 부처다’라며 이케다 회장을 본불이라고 부르고, 정본당이 거립된 후 이케다 회장이 정본당 건립으로 광포는 명확하게 끝났다. 정본당은 본문의 계단이다’라고 말하므로 1991년 파문했다
닛켄종에서는 정본당 건립으로 인해 일련정종의 광포는 멀어졌기 때문에 정본당 존재의 의의를 잃었으며, 이케다 회장이 학회에서 파문당한 후에도 ‘정본당=본문의 계단’이라고 이케다 본불론의 의처로 이용되고 있어 재방법의 건물을 청정한 총본산에 남겨놓을 수 없기에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⑤ 위의 글을 읽어 보면 닛켄은 시기와 질투에 완전히 미친 모습입니다. 자신은 능력이 안되고 자기보다 잘난 꼴은 못보겠다는 권력자의 오만입니다. 힘으로 짖밟아 버리겠다는 논리입니다.
“정본당이 건립되었기 때문에 광선유포는 끝났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⑥ 만약 학회가 방법의 단체라면 닛코상인 유계치문에 “방법의 공양을 받지 말아야 할 것”(어서 1618쪽)이라는 말처럼 종문은 정본당뿐만 아니라 본산 내 학회가 기증한 모든 건물과 전국에 기증한 말사를 다 해체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학회가 있기 전까지 종문은 볼품없는 규모로 사회적인 인지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종문을 오늘날 세계종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학회가 진심어린 공양과 함께 외호해 왔습니다. 그것이 방법이었다면 공양금은 모두 반환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요?
앞으로는 앞뒤가 맞는 성의있는 대화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SGI 니치칸 상인 어본존에 대하여
창가학회가 정원사(淨圓寺)에서 소장중이던 니치칸 상인 서사의 어본존을 제멋대로 복제 인쇄함
에 있어서, 그들은 삼가 어본존에 쓰여 있던 "下野國(시모츠케노쿠니) 小藥邑(오구스리무라)
本如山(혼뇨산) 淨圓寺(죠엔지) 大行(다이교) 阿闍梨(아자리) 本證坊(혼쇼보) 日證(닛쇼) 수여지"
라고 하는 수여서를 말소하였습니다.
제59세 니치코 상인의 유사화의초주해
" 당류에 있어서는 대경의 본존을 수여하시는 시서(示書) 중의 사람(어본존을 수여받는 자)
으로 되지 않으면, 신심결정 즉신성불이라고 하는 것은 할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셔서, 어
본존에 쓰시는 수여서의 중요한 의의를 밝히셨습니다.
답- 이 내용도 몇번을 말씀드렸습니다.
닛켄은 자신이 가짜 법주이고, 자신이 서사한 본존님이 가짜이기 때문에, 이를 감추기 위해 학회의 본존님을 가짜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닛켄이 학회에 파문권고서를 보낸 것이 1991년이고, 금년이 2013년이니 22년 전의 일입니다.
귀하가 자동차를 구입하여, 22년의 오래 세월을 잘 타고 공덕도 받고 있는데, 어느날 갑짜기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 ‘이 자동차는 가짜다, 왜냐하면 타이아의 글자 몇 개가 없기 때문이다. 이 차를 타면 무간지옥이오’라고 공갈을 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친 소리 하지말고 냉수먹고 속차리세요’라고 말해 줄 것입니다. C작전까지 학회에 올가미 씌우는 닛켄종입니다. 야차 같은 그들이 무슨 짓은 못하겠습니까?
- 창가학회의 C작전 덮어씌우기 사건에 대하여
이에 대해 차명호님은 기가 막힌다고 하셨습니다. 가까이서 직접 목도했다고도 하셨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보셨나요? 학회의 뜰 안에서 보고 들은 것은 아무런 신빙성이 없습니다.
위의 학회가 조작한 사건을 보시고도 학회의 선의를 믿고 계시다는 것이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파문을 전후한 학회의 수뇌부 조직은 말 그대로 불법행위를 자행한 범죄조직입니다.
창가학회의 C작전 덮어씌우기에 대한 명백한 직접 증거는 저에게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추론할 만한 정황증거뿐입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고 각자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학회가 언제부터 종문을 지배하거나 분리 독립을 꾀했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답- 귀하는 저에게 “어디서 무엇을 보셨나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일련정종의 신도가 된지 1년정도 된 분이 닛켄에게 목이 잘린 저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0년은 대석사 개창 7백년을 기념해 9월에 이를 경축하는 문화제를 현지 시주오카 청년부가 중심이 되어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청년들의 진심을 다한 준비와 존귀한 땀을 흘리고 있는 와중에 닛켄의 무리는 분쿄구 니시카타에 있는 대석사 도쿄 출장소 (7월 16일)와 본산의 대서원(7월 18일)에서 이른바 ‘C작전’이라고 불리는 학회파괴 모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진한 비계를 꾸며서 니치렌을 적시” (어서 1120쪽), “법화경 행자의 흔적을 없애고 모안(募案)을 꾸며서 종종(種種)의 부실을 고해바치는” (어서 853쪽) 등의 성훈 그대로 광선유포를 방해하는 음모이고 모략이었습니다.
닛켄이 아키야(秋谷) 회장에게 “교만 방법이다!”라고 화를 내며 소리친 일은 본산에서 모의한지 3일 후인 7월 21일의 일입니다. 그야말로 한 종파의 관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보기 흉한 광태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도 임박한 12월, 종문은 갑자기 학회에 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자유를 찬양하는 노래인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합창’(환희의 노래)을 부르는 것이 ‘외도예찬’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하는 등 모든 것이 부당하기 그지없는 트집이었습니다. 더군다나 7일 이내로 회답하라는 강압적인 통고였습니다.
학회 간부가 그 진의를 물으려고 몇 번에 걸쳐 대화의 장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종문은 그 모든 것을 거부했습니다. 더욱이 12월 27일 임시 종회에서 일부러 종규(宗規)를 변경해 이케다 선생님의 법화강총강두, 아키야 회장의 대강두직을 파면했습니다.
전국의 학회원이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릅니다.
닛켄은 1991년 ‘신년사’에서 학회 발전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닛켄은 이렇게 적고 있다. “특히 이케다 선생님의 지휘를 대서특필해야 하는 것은 전쟁 후 세계적인 이동과 교류 속에서 각국으로 넓혀진 신도 여러분을 조직화한, 세계광포를 향한 대전진을 도모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지구적 규모로 광포가 착착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선시초>에 있는 성훈처럼 실로 광포사상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법에서 엄하게 훈계하고 있는 ‘양설(兩舌)’ (일구이언)이고 ‘자어상위(自語相違)’ 그 자체였습니다.
1991년. 닛켄은 예년 실시하는, 회장과 이사장과 나누는 새해 인사도 그리고 또 그 후의 어떠한 대화도 “자신을 ‘배알’할 자격이 없는 몸”이라는 등으로 딱 잘라 말하고 피해 다녔습니다.
대성인은 바로 그 료칸(良觀)이 겁을 먹은 채 ‘대화’를 계속 거부한 모습을 “니치렌이 (사도에서) 가마쿠라로 올라올 때는 문호를 닫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며 출입을 금하거나 또는 감기에 걸렸다는 등으로 꾀병을 부려 피했다” (어서 1283쪽, 통해)라고 써 두셨는데 ‘현대의 료칸’도 완전히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이 어서에는 이 ‘참성증상만(僭聖增上慢)’의 정체를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갈파하셨습니다.
“경문을 거울(규범)로 삼아 료카보(료칸보)의 몸에 비추어 보라. 조금도 흐림 없이 부합하지 않는가. 첫째, 이름은 지계(持戒)의 승이라고 세상에 알려져 있어도 실제는 방일(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방탕함)함인가. 둘째, 간탐(몹시 탐욕스러움)함인가. 셋째, 질투함인가. 넷째, 사견(邪見)임인가. 다섯째, 음란함인가. 이 다섯 가지 사항에 다 부합하지 않는가.” (어서 350쪽, 통해)
이것이 료칸의 본성이라고 대성인은 엄연히 기술하셨습니다. 닛켄도 또한 참성증상만 그 자체였습니다.
료칸은 대성인 일문(一門)에게 온갖 압박을 가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닛켄은 학회를 탄압하고 학회를 잘라내려 했습니다. ‘질의서’를 둘러싸고 종문이 끝까지 대화를 거부했기에 학회는 ‘회답’을 보냈습니다.
그 속에서 종문의 부당한 주장에 항의하고 출처불명의 녹음테이프를 근거로 받아 적은 스피치 문장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종문은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그것을 바탕으로 한 질문항목을 전면적으로 취하했습니다.
이로써 본래 종문이 부린 생트집은 근본부터 무너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문은 사죄하기는 커녕 그 후 해외조직 교란, 학회원에게 본존님 하부 정지 등, 학회원을 괴롭히고 동요시키려 했습니다.
이상은 전국 최고 협의회에 있었던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학회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아래 글의 답이기도 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파문을 전후한 창가학회 역사
-1951년
5월 3일, 도다 죠세이- 창가학회 제2대 회장에 취임
12월 18일, 도다 회장은 종무원의 명에 의해 대석사에 등산하여 창가학회 종교법인 설립의
조건으로 아래 3개조항의 준수를 약속합니다.
1. 절복시킨 사람은 일련정종 신도로서 각 사원에 소속시킬 것
2. 당산(일련정종)의 교의를 지킬 것
3. 삼보(불 법 승)를 지킬 것
-1952년
8월 27일
창가학회가 도쿄 도지사로부터 종교법인의 인가를 받음
-1956년
1월 29일, 도다 죠세이 회장은 닛쇼상인의 은퇴 표명에 즈음하여 " 신자의 대정신에 서서"
라는 담화를 발표합니다. 이 담화에서 " 선대 마키구치 선생 당시부터 학회는 예좌의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대정신으로 관철해왔고, 금후에도 이 정신으로 일관한다.
이것을 깨는사람은 예를 들어 대간부라고 할지라도 즉석에서 제명한다" 라고 발표하였습니다.
파문 전후의 이케다는 도다 회장의 대정신에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월 10일, 도다 회장은 니치준 상인에게 " 장래, 만약 학회가 크게 되어 종문에 압력을 가하거나,
혹은 내정간섭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해산을 명하여 주십시오" 라고 오카야마
묘점사 낙경입불식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다 회장의 말씀에 따르면 이케다와 학회의 파문은 당연한 것입니다.
-1958년
4월 2일, 도다 죠세이 회장 서거(향년58세, 大宣院法護日城大居士 라는 계명을 받음)
-1960년
5월 3일,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제3대 회장에 취임
-1964년
4월 1일, 이케다 다이사쿠- 법화강 총강두에 임명
11월 17일, 공명당 결성
-1967년
10월 12일, 정본당 건립 발원식 거행
-1969년
11월, 창가학회의 언론 출판 방해 문제가 표면화
-1970년
5월 3일, 창가학회 제33회 본부총회에서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은 언론 출판 방해사건에 대해
공식 사죄를 표하고 학회와 공명당의 정교 분리 방침 등을 발언
-1973년
10월 14일,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 닛다쓰 상인을 많은 사람 앞에서 매도
-1974년
3월, 창가학회가 대석사의 회계를 조사
4월 12일, 창가학회의 종문 지배를 획책하는 문서 발각(야마자키 야시로 보고서- 본산의 건)
5월 10일, 창가학회- 종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획책하는 문서 발각(호죠 보고서-본산의 건)
6월 18일, 창가학회- 종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획책하는 문서 발각(호죠 보고서- 종문의 건)
이상의 문서를 통해 창가학회가 종문을 지배하거나 분리 독립을 꾀하려 한 사실이 파문 전
이미 오래 전부터 학회 수뇌부에서 논의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
맨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12월 28일, 창가학회는 일본 공산당과 10년 협정 체결
-1977년
1월 15일,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 제9회 교학부 대회에서 “불교사관을 말한다” 발표
(세이쿄 신문, 이것에서부터 창가학회의 노선 일탈이 표면화, 이하 77년 교의 일탈 사건)
“불교사관을 말한다” 주요 내용
1월 20일, 창가학회 학회원이 일련정종의 승려를 거꾸로 매다는 사건 발생
봄, 창가학회- 회관에서 독자적인 피안회를 행함
7월 27일, 닛다쓰 상인의 창가학회의 승보론 파절(법화강 연합회 제14회 총회에서 설법)
8월 18일, 닛다쓰 상인께서 창가학회의 사원 경시를 질책(제24회 행학강습회에서)
8월 30일, 닛다쓰 상인께서 사원 건립의 의의에 대해 어지남(제26회 교사강습회에서)
11월 27일, 닛다쓰 상인의 창가학회의 사제관 파절(제3회 전국 법화강 청년부대회에서)
12월 4일,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이 종문 승려에게 용서를 구함(日向定善寺 신축 낙경입불식에서)
-1978년
2월 9일, 닛다쓰 상인께서 창가학회의 역사적 경과 상에서 교의 일탈 노선의 근원을 지적
2월 22일, 이케다 회장의 닛다쓰 상인 알현시 지도 내용 발표
6월 29일, 종문 교사 지도회에서 창가학회의 교의 일탈 시정문서를 공표
6월 30일, 창가학회 “교학상의 기본 문제에 대해서”(교의 일탈 내용을 시정) 발표
9월 28일, 창가학회가 모각한 본존 7체를 총본산에 납입(이른바 본존 모각 사건)
11월 7일,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은 교의 일탈 노선에 대해서 사죄
-1979년
4월 24일, 이케다 회장은 창가학회 문제의 책임을 지고 회장을 용퇴, 명예회장에 추대
호죠 오사무- 창가학회 제4대 회장에 취임
4월 26일,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문제의 책임을 지고 법화강 총강두 사임
5월 2일, 닛다쓰 상인은 창가학회 제40회 본부 총회에서 이케다 명예회장 외 수뇌부가 그때까지의
잘못을 정직하게 반성할 것을 대전제로 일탈 노선 문제를 수습
5월 14일, 제1회 최고 교도 회의 개최하여 삼보를 존경할 것을 재확인
7월 22일, 닛다쓰 상인 어천화, 닛켄 상인- 일련정종 제67세 어법주에 어등좌
11월 29일, 호죠 4대 회장- 호죠 보고서의 건에 대해 사죄 등산
12월 1일, 호죠 4대 회장- 호죠 보고서의 건에 대해 세이쿄 신문에서 사죄문 발표
-1980년
4월 2일, 이케다 명예회장은 “은사의 23주기에 생각한다”라는 발표에서 77년 일탈 노선은
모두 자신의 지도에 원인이 있다고 반성, 참회(세이쿄 신문에 게재)
"은사의 23주기에 생각한다" 라는 발표에서 이케다 명예회장은 " 영원히 어법주는 불법의 스승"
이라고 하며 일련정종 어법주를 스승으로 하는 신심을 강조하고, 또한 77년 노선과 일련정종의
교의 위반 및 어본존 모각 등에 대해 일체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8월 26일, 공산당 미야모토 위원장 집 도청사건으로 호죠 회장이 피고가 되어 민사소송 발생
11월 26일, 닛켄상인 77년 일탈 노선의 잘못을 재차 지적(창가학회 창립 50주년 기념 간부 등산회)
-1981년
7월 18일, 호죠 제4대 회장 서거(향년 58세, 宣正院浩日基大居士 라는 계명을 받음)
아키야 에이노스케- 창가학회 제5대 회장에 취임
-1984년
1월 2일, 이케다 다이사쿠 명예회장이 법화강 총강두로 재임명(제67세 닛켄 법주는, 학회가
다시는 일련정종의 교의를 어기지 않고 승속화합으로 전진할 것을 전제로 재임명한 것임)
1985년 4월 22일, 도쿄지방법원 제1심판결에서 공산당 미야모토 위원장 집 도청사건에 대해
창가학회의 조직적인 범행을 인정
-1988년
4월 26일, 도쿄 고등법원 항소심 판결에서 미야모토 위원장 도청 사건에 대해 창가학회의 조직적 범행 재차 인정
12월 27일, 창가학회는 미야모토 위원장댁 도청사건 상고 취하(도쿄 고등법원 판결 확정)
-1989년
6월 30일, 요코하마시 아사히 산업 폐기물 처리장소에서 1억7천5백만엔이 들어 있는 금고 발견
(7월 3일, 금고의 소유자는 창가학회 전 총무라고 발표)
-1990년
7월 17일, 창가학회가 종문과의 연락회의 석상에서 법주상인 및 종문을 일방적으로 비판
7월 21일, 이케다 명예회장, 아키야 회장은 닛켄 상인 알현시에 “법주의 발언을 막는 것은 교만
방법이라는 어지남을 받음)
11월 16일, 이케다 다이사쿠 명예회장의 예하, 종문, 승려의 멸시, 경시 발언
(제35회 본부간부회에서, 77년 교의 일탈 노선 무반성을 드러냄)
이후 종문은 수차례에 걸친 질문을 학회에 발송, 교도를 하려 노력함
12월 27일, 제130회 임시 종회에서 종규 일부 개정 의결하고 법화강 총강두, 대강두 자격 상실
12월 28일, 종문은 총강두, 대강두 14명에게 자격상실 통지 발송
-1991년
1월 2일, 이케다 명예회장은 관례인 신년초 등산을 하지 않음
1월 4일, 창가학회는 세이쿄 신문을 통해 종문비판 캠페인 개시
1월 6일, 종문은 전국 교사 지도회를 개최(경과 설명과 당면의 방침 발표 및 창가학회의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닛켄 상인 어지남)
2월 9일, 종문은 창가학회에 반성 참회의 기회를 주는 문서 발송하였으나 학회 묵살
2월 26일, 창가학회가 종문의 화의를 무시하고 학회 동지장 시작
3월, 종문 승려 측에서 이케다 명예회장에게 사죄요구서를 교구마다 발송
3월 5일, 종문은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에게 해외신도 지도 일임과, SGI 이외의 신도 조직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종래 방침을 폐지하는 취지의 통지
3월 16일, 총본산은 창가학회에 등산방식을 본래의 형태(말사 첨서 등산)로 돌리는 것을 통지
(말사 첨서 등산에 대해서는 제9세 니치우 상인의 화의초에 있음)
4월 2일, 총본산 개정 등산 방식에 대해서 창가학회와 처음 협의(아키야 회장- 기본적 합의 표명)
SGI 산하의 홍콩불교 일련정종 법인명칭을 일련정종의 기재를 삭제하고, 홍콩 국제창가학회라고 개칭,
이후 차례차례 각국 SGI 조직도 법인명칭에서 일련정종 삭제
4월 13일, 창가학회 청년부 300명, 개신사의 법요 중에 집단 폭행사건을 일으킴
4월 25일, 종문은 전국 말사에 긴급 통지(창가학회원에 의한 포교방해, 폭행에 대한 대응 방법
지시)
4월 28일, 종문은 창가학회에 르느와르 회화 의혹에 관하여 통지서 발송하고 설명 요구
5월 7일, 창가학회 묘원 사업으로 23억 8천만엔 신고 누락이 발각(추징금 7억엔, 마이니치 신문)
6월 5일, 종문은 일반 신문 지상에 “창가학회의 여러분에게 대석사 등산에 대해 알림”을 게재
6월 17일, 창가학회 산하 재단법인 평화묘원- 묘원사업과 관련하여 5억 7천만엔 신고 누락 발각(추징금 1억 5천만엔)
6월 27일, 미쯔비시 상사 사장- 주주총회에서 창가학회 야히로 부회장이 르느와르 회화 거래에 관여한 사실 공표
과거 우리나라에서 학회는 명품회화전을 열었고, 당시 이케다 회장은 내한하여 삼성 이건희 회장과도 면담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고가의 명화들을 왜 구입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7월 2일, 총본산에서 개정한 등산 방식에 의한 등산회 개시
7월 21일, 종문은 전국 교사 지도회를 개최하여 학회원에게 탈회 권유 금지를 해제, 적극적으로 학회원을 교도할 것 지시
7월 31일, 창가학회의 국제증권으로부터 손실 보충을 받았던 일 발각
8월 13일- 15일, 창가학회는 우란분회법요를 각지의 회관에서 행함
8월 29일, 종문- 전국교사지도회 개최 (닛켄상인은 전국 교사에 대해 창가학회가 잘못한 지도를 엄하게 파절하도록 지도)
9월 12일, 창가학회- 미네타니 죠도 승려에 대해 불법으로 사원 퇴거를 요구
(이후 다른 일련정종 승려에게도 사원에서 퇴거할 것 요구)
9월 17일, 아키야 제5대 회장은 “종문은 천마로 바뀌어, 신자 도둑으로 광분하고”라고 발언
9월 23일, 창가학회는 피안회 법요를 각지의 회관에서 행함
10월 20일, 창가학회- 닛켄상인 퇴좌 요구 서명운동 개시
10월 21일, 종문- 창가학회에 학회장 등의 화의 파괴 행위를 고치도록 하는 통고
11월 초, 창가학회- 비디오 “천마는 간다”를 제작, 배포(이른바 선조묘 사건)
11월 7일, 종문- 창가학회에 해산 권고서 발송
창가학회- 세이쿄 신문에서 “종문은 정종교의 파괴의 닛켄종”이라고 게재
11월 28일, 종문- 창가학회에 파문 통고서 발송
이후 창가학회는 시애틀 사건, 위조사진 사건 등을 통해 닛켄 법주에 대한 비방에 열을 올린다.
- 창가학회의 C작전 효시라 할 야마자키 야시로 보고서, 호죠 보고서
야마자키 야시로 보고서(1974년 4월 12일자로 이케다 회장에게 보고)의 내용
" 앞으로 우리들의 작업 진행 방식과 관련하여, 본산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략 내용을 파악했으나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본산과는 언젠가는 관계를 청산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창가학회에 불꽃이 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즉 앞으로 3년간의 안전 확보를 도모하고, 그간 창가학회와 종문과의 관계는 언제라도 청산할 수 있도록 해두는 방법.
또 하나는, 장기간에 걸친 본산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배후를 굳히는 방법.
다만 본산관리에 개입하는 것은 화중(火中)의 밤을 줍는 결과가 되는 위험이 다분히 있습니다"
"이를 위한 포석으로
1. 본산 사무기구(법인사무와 경리사무)의 실질적 지배
2. 재정면의 지배(학회 의존도를 높인다)
3. 섭외면의 지배
4. 신자에 대한 통솔권 지배
5. 묘지 전례의 집행권을 학회로 이양
6. 총대에 의한 말사의 지배가 필요합니다
이들 일은 기회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번에 1,2,3을 확립하고
다시 4까지 확립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여간 선생(이케다 다이사쿠)의 고도한 판단으로 결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재판을 바랍니다"
호죠 보고서(1974년 6월 18일 이케다 회장에게 보고) 내용
" 장기적으로 보면 적당히 결별할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와의 차이입니다.
전술적으로는 지금 당장 결렬 상태가 되는 일은 피하고, 하야세 이사와의 파이프를 굵게 한다든가,
당면 G(닛다쓰 법주를 지칭)의 이상심리를 가라앉히고 새로운 길을 열고 싶습니다.
그러나 할 때가 오면 철저히 싸우고 싶습니다. 이상 매우 두서 없는 보고로서 죄송하나
구두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그때 더 상세히 보고드리겠습니다"
답- 번역이 잘못된 건지는 몰라도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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