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면 청담동 밀월 까페에서 남아있는 그 달을 꺼내보자고 하였다 검정날과 빨간날의 배치가 궁금한 나에게 13월의 달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흉몽 속에 출렁출렁 달라붙어 있다 아무의 손에도 잡히지 않는 불안정한 나는 꿈인듯 생시인듯 살고 있었고 숫자로 표기되어 확실한 것들이 좋았다 그녀는 달력처럼 숫자화되어 있었다
싱싱한 달력 나는 13월의 달력을 보고 싶어 카페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날도 그래서 눈이 내렸다 육교에 부는 바람은 다음장으로 넘어가지 못해 기운 숫자들이 바닥으로 찢겨졌다
회를 치는 빌딩의 날개 사이로 울리는 캐롤송 커튼콜이 없어도 찾아오는 눈보라 그녀는 끝내 오지 않았고 도로엔 폭설이 쌓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땅도 저땅도 아닌 이시간도 저시간도 아닌 13월이 그 곳에 생겨났다 어떤 시간에도 속해있지 않아도 확실한 시간들이 광속으로 달린다
한곳 만을 바라보는 겨울달력 숫자들로 가득하다
도로엔 바퀴 자국이 검은 궤적을 만들고 불안정한 날들은 표지처럼 하얗게 덮이고 눈이 내리는 오늘 나는 붉은색 숫자로 처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