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제국의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부터 시작됩니다. 오랜 분열기 동안 로마제국은 쇠약해져 갔고, 콘스탄티노플 황제는 더이상 로마에서 찾을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후, 동방무역의 중심지인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겨서 새로운 제국을 열었습니다. 옛 수도 로마는 동로마 황제의 꼭두각시가 왕위를 담당했지만, 테오도시우스 대제 때는 서로마와 동로마가 서로 갈라지게 되고, 서로마는 곧 게르만에게 멸망당하게 됩니다. 여러 역사학자들 중에서는 비잔틴 제국을 라틴 민족의 제국 보다는 그리스 민족의 제국으로 보는 역사학자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주요 활동 무대가 발칸반도,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였기 때문이지만, 아직도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그들을 옛 고대 로마 제국의 후손으로 기억하고 있었죠. 제국은 바다건너 소아시아 반도, 즉 지금의 아나톨리아 고원을 정복, 그 안의 투르크 유목민족들을 속국으로 삼고, 국경수비대인 아크라타이로 삼게 됩니다, 가끔씩 반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군대를 파견해 줄 만 한 유용한 민족이었지요. 그리고 결국 아무 주인 없이 방치되어 있던 그리스를 장악하고 지중해 동쪽의 해상권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더욱더 요새화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군사력이 강하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엣 로마의 영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고, 10세기에야 게르만의 여러 군대를 다 진압하고 갈리아와 영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로마제국의 영토를 수복하게 됩니다. 이 때의 비잔틴 제국 황제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로 법전까지 만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그러나 경제력 여건 때문에 비단전쟁(비잔틴제국 vs 사산조 페르시아)을 계기로 점점 쇠퇴해 가기 시작합니다. 노르만의 침입을 이탈리아 반도의 손실로 막고, 이슬람 세력을 막느라 지대한 돈과 군대를 투입한 결과 십자군 전쟁 때는 그리스와 발칸, 그리고 소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 이후, 점점 더 강해지는 이슬람세력에 대해서 기독교의 진정한 보호자로써 독보적인 자리를 지켜오던 비잔틴 제국은 14세기, 그리스의 상실과 15세기 초, 소아시아 상실로 비잔틴 제국은 더이상 제국이 아닌 일개 도시국가에 불과, 거의 제국의 운명은 끝났다고 할 수 있었죠, 여러 기독교 국가는 이 사실에 매우 애통해 하고 서러워 했지만, 이슬람 세력에 막혀 그들도 어쩔 수 없었고, 교회통합에 동의한 이후 좀 친해진 로마 교황과 베네치아, 제노바에서 몇몇 물자와 군대, 식량을 얻은 이후, 1453년 1월부터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국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답니다. '이 제국의 운명은 이 도시의 창립자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의 황제와 함께 할 것이며, 우리를 멸망시키는 자들은 초승달 모양의 칼을 든 자이리라' 비잔틴 인들은 모든 사람이 다 성벽을 지키는데 동원되었지만, 8만명의 사라센 대군 앞에 7천명의 방어군으로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강력한 해군과 대포 덕에 약 6개월을 끌어오던 이 공성전은 마지막 총 공격에 의해 함락되고 맙니다. 제국의 시민들은 처음에 항복 요구를 거절(지금 와서 황제를 버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했기 때문에 약탈을 자행당했지만, 다행히도 술탄은 아름다운 이 도시의 문화가 침해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약탈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이어서 그리스의 여러 속국들도 점령당하고 결국, 기원전 부터 시작된 로마제국의 역사는 1453년 이렇게 허망하게 끝이나고 맙니다. 사실상 국력의 쇠퇴는 11세기 부터 찾아왔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때부터 멸망 직전까지는 비잔틴 문화의 전성기로써 최고의 성당벽화가 제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주요 도시로는 콘스탄티노플, 아드리아노플, 테살로니키, 아테네 등이 있었습니다, 모두다 이슬람 손에서 그리스 정교+이슬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어 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