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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의 구원 체험
서론 : 구원의 요청 - 고통의 현실
인생이 고통이 아니라면, 마치 낙원과 같은 충만함뿐이라면, 구원은 개념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청될 수도 없다. 그러나 인간 조건은 그렇지 않아서, 고통은 인간의 삶의 현실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있다. 인간에게 고통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부조리)이며, Levinas에 따르면 '가장 현실적인 현실1)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도 없고, 쓸모없는 것이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무죄한 자의 고통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통의 문제에 대한 서구 그리스도교의 답변은 변신론(신정론,Theodicy)이었다. 그것은 신적 섭리로 고통을 이해하여 신의 전능과 공의를 증명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근,현대 인간 사회의 유래없는 재난을 통해 변신론은 몰락했다고 주장한다.(양차 세계전쟁, 히틀러주의와 스탈린주의, 히로시마, 아우슈비츠와 캄보디아의 종족 살상 등) 그에게 변신론의 종말은 '문제'가 아니라 '사실'인 것이다.2)
그렇다면 고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고통의 현상 자체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고통이라는 현실에 대한 인정에서 우리의 사유와 실천이 멈춰버린다면, 인간의 세계는 그 자체로서 이미 지옥일뿐이며, 우리는 어떠한 초월-그것이 역사적이건 종교적이건-에 대한 기대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통해 이미 알고 있듯이 고통은 무저갱과 같은 절망이 아니라, '그 무엇'(et-was)을 위한 전제로서 작용한다. 우리는 그것을 '구원의 요청'을 위한 조건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나아가 고통으로부터의 탈출(구원)이 잉태하고 있는 '자기와 타인'의 구원으로 향하는 '사랑'임을 직감한다. 여기에 종교의 자리가 있다. 우리는 본 연구에서 무교에 나타난 구원이 어떻게 한 개인을 고통속에서 구원하며, 그 구원이 자기를 넘어서 타인에게로 향하는지를 무당의 삶과, 무교의 원리, 그리고 현실을 통해서 확인하고자 한다.
본론 - 무당의 구원 체험
1. 구원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역사 안에서 경험하고 있는 모든 종교는 고통에서 '구원'에 이르는 '길(道)'이다. 때로는 그것이 고통에 대한 운명적 수용이거나, 반대로 쾌락의 추구거나, 혹은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는 차이를 보인다 해도,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은 '고통'이라는 현실에 대한 '답변'의 체계로서의 종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곧 구원이 모든 문화, 모든 종교에서 하나의 '교리'로 합의될 수 없다는 제약과, 이로 인한 갈등의 표출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구원은 "고통, 악, 유한성, 죽음과 같이 근본적으로 부정적이거나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류를 구출하는 것"3)이다. 이것은 구원을 보편적인 종교개념이게 하고, 이 구원이 인간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준다. 후자는 특히 중요한데, 만약 병이나 자연적, 사회적 재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다면 종교적 의미에서 구원은 언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이 요청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구원의 '교리'를 가장 분명하게 나타낸 것은 그리스도교였다. 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이란 "하느님이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해내는 행위"4)를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인격적 존재의 의미와 역할이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구원은 불가능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는 모든 종교에는 구원은 없다고 보았다. 이 관점은 결국 그리스도교의 졍복주의적 배타성을 초래했고, 결국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근대 '선교의 역사'를 '피의 정복사'로 변질시켰다.
그러나 종교다원사회에서 이러한 배타적 구원관은 설 자리가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 내부 안에 이미 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하느님의 '절대적이고 유일한' 구원 사건인지, 아니면 단지 '하나의' 구원 사건이었을뿐인지를 규명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 구원 '교리'의 출발은 역사적으로 '고백적 성격'이었음에 주목한다. 고백적 성격이라는 것은 자기 신앙 체계 안에서는 절대적일 수 있으나, 타종교에는 상대적인 것임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같은 종교 안에서도 구원의 '교리'는 같을 수 있으나 그 생생한 '체험'은 획일적 도그마를 형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시하고 있다.
따라서 한 종교의 구원관을 절대화하고 강요할 수 없는 종교다원상황의 양심적 종교인은 구원을 '문화상대론(cultural relativism)'5)의 관점, 곧 모든 종교에 구원은 궁극적 관심이지만 그것이 문화적 배경에 따라 여러 양상으로 표현되어왔다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적인 고통으로부터의 탈출, 분열된 상태에서 조화된 상태로 의 회복을 추구하는 모든 종교현상에서 '구원사건'을 목격할 수 있다고 보며, 이 점에서 무교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
2. 한국인의 구원관
우리 나라의 전통 신앙은 현세의 삶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 하고 있다. 무당과 굿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신앙은 가난을 물리치고 풍요를 얻기를 바라며 질병을 고치고 재난을 예방하는 등 인간의 여러 가지 현세적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는 것을 구원으로 여기고 있다.6)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은 '현세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비단 전통 사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산업사회인 현대 한국인 역시 이 심성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1997년도 종교문제 통계조사 자료의 다음 내용은 주목해볼만하다. 우선 "극락,천국은 이 세상에 있다"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중 55.4%가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를 믿는 이유는 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66.8%), ② 복을 받기 위해서(12.0%), ③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2.3%)이며, ④ 죽은 다음의 영원한 삶을 위해서(12.0%)라고 답하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88% 정도가 현세의 심리적, 물질적 문제 해결을 신앙의 동기로 답하고 있는 것이다. 7) 따라서 한국인의 구원관도 결국 '현세적'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현세성'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하고자 한다. 현세성이 기복주의와 물질주의로 강하게 나타나는 측면에 대한 비판보다는, 한국인은 '지금, 여기에서' 삶의 문제와 위기가 구체적으로 해결되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갖고자 한다. 이것은 버려져야 하기 이전에 의미있게 발전시켜야 할 심성이다. 구원의 개인적 내면화, 피안성으로의 경도를 보완할 의미있는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무당의 구원 체험
1) 바리데기 신화에 나타난 무당의 정체성
진오기굿에서 구송되는 바리데기 신화는 두 가지 의미에서 구원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산자 와 죽은자 모두에게 체험되는 '화해'의 의미이고, 둘째는, 바리데기의 삶을 통해 무당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다는 측면이다. 바리데기 신화는 신도를 향하는 동시에 무당 자신을 향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 점에 착목하고자 한다. 바리데기 신화를 간단히 명제화 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아들을 바라는 부모에 의해 낳자 마자 버려진다.
② 석가세존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남자 같으면 데려다 제자나 삼으련만, 여자이니까 부질없다.")
③ 걸식 노인 부부가 양육을 자청한다.
④ 훗날 자기를 버린 부모를 위해 저승에 있는 약수를 구하러 간다.
⑤ 수많은 역경을 거쳐 저승에 도착하나, 수문장(무장신선)과 같이 살면서 7년동안 일곱 아들을 낳아주고 온갖 시중을 들어준다.
⑥ 결국 약수를 구해 부모에게 돌아와 이미 죽은 부모를 살려낸다.
⑦ 나라의 반을 준다는 것을 거절하고 자신은 무당이 된다.
바리데기는 고통의 '덩어리'다. 그 이름이 "버려졌다"는 의미이듯이, 그녀는 세상에 나오자 마자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심지어 大慈大悲한 신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자신을 버린 부모를 위해 갖은 고초를 겪어야했고, 무장신선을 위해 일곱 아들을 낳아주며 7년을 수종든 것도 고통이다. 이 모든 고통은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겪는 고통의 극한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고통에 절망하여 부모와 현실을 원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리데기는 용서와 화해와 베풂으로 한을 종교적 경지로 승화시키며, 죽음에 임한 또 다른 사람을 위한 巫의 길에 자신을 투신한다.8) 곧 개인적 한의 승화를 통한 사제자로의 변신인 것이다. 이것은 무당의 삶과 일치하며, 적어도 일치를 기대하는 무당의 모습을 원형적으로 담고 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논의에서 우리는 무당이 겪는 구원 과정이 바리데기 신화 틀과 유형적으로 일치함을 밝히고자 한다.
2) 무당의 구원 과정
무당이 되고 싶어서 무당이 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요즘에는 돈벌이를 목적으로 무당이 되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특별히 신기가 없어도, 혹시 나중에 써먹을데가 있을지 몰라 5개월 과정의 '무당학교'를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9)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으로 천시받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무당의 길에 자원해서 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당은 말 그대로 '신이 선택한' 존재이고, 그 선택이 외부에서 온다는 사실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극심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무당의 인생사에서 우리는 하나의 통과제의(구원 과정)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첫째, 남과 '다르다는' 까닭에서 생겨나는 '격리'의 고독이고, 둘째, 원인을 알 수 없는 무병의 아픔과 가족과 주위의 저항과 핍박에 시달리는 '고통'이고, 셋째, 마침내 내림굿을 통한 사회적 공인에 이르는 '구원'이다. 그것을 하나씩 사례와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1) 격리
"나는 사람 대신 나무와 돌, 바람과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음을 터놓고 친구가 되었다. (중략) 세상에는 사람만 있는게 아니니까, 풀도 꽃도 나무도 물도 모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김금화)10) "지금 생각해도 속상했던 것은 어린 나이에 놀고 싶을 때 놀지 못했고, 친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정순덕)11) 자연이 좋아, 쏘다니기를 좋아서 그렇게 지냈던 낭만적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기로 인해 따돌림당하고, 구박받고, 눈총받던 소녀 '넘새'의 가슴아픈 유년 이야기다.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내성적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래 아이들과 이미 다른 인생에 너무 빨리 던져진 소녀 정순덕의 외로움이다.
소위 '아는 소리'를 하고, 환상과 환청, 자기도 알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예비무당들의 공통점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사람들은 그를 경계하고, 피하고, 따돌리게 된다. 아직 신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미 인간의 세계에서도 정착할 수 없게 된, 경계선상의 존재는 소외, 고독으로 표상되는 '격리'에 직면한다. 더 심각한 위기는 무당이 될 사람의 인생은 이 격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격리가 그 자체로서도 고통일 순 있으나, 장차 당하게 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격리는 고통의 전조일뿐이다. 본격적인 고통이 비로소 시작한다.
(2) 고통
대다수의 무당들이 우선 접하게 되는 것은 참기 어려운 무병의 고통이다. 박정옥이라는 여성은 무당이 되기 전, 까닭없이 목에서 핏덩어리가 나오는데도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 하고, 온갖 환상에 시달리며 불면에 고통받아 2년동안이나 신경안정제와 수면제에 의존해야 했다.12) 늦은 나이인 35세가 되어서야 '아는 소리'를 하기 시작한 김화자라는 여성도 까닭없이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13) 몽유병처럼 자기도 모르게 들과 산을 헤메기도 하고, 환청과 환상에 고통받기도 한다. 이처럼 유난히 많은 병치레와, 원인 모를 질병등이 예비무당들을 극심하게 괴롭힌다.
이 고통은 육체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당이 되는 것을 좋아할 가족은 없다. 김금화의 외할머니 이야기에서 보듯이, 무당 집안에서도 자신들의 피붙이가 무당이 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집안의 수치라 여겨 내쫓기도 하고, 정신병원에 보내기도 하고, 갖은 구타와 학대를 자행하기도 한다. 실제 지봉득이라는 무당은 무병을 앓는 동안 시부모와 남편으로부터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받았고, 너무 너무 괴로워 여덟 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수시로 기절하고 온몸이 마비되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14)
이러한 고통은 자기 육체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가족중의 누군가가 죽기도 하고, 또는 죽게 된다는 위협을 당하게 되기도 한다. 김지현이라는 무당은, 어린 시절 신기가 있었고, 만약 무당이 되지 않으면 남편이 죽게 될 것이라는 점괘를 받고도 그 길을 피하다 결국 결혼한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본인도 중상을 입게 되었다.15) 무당이 될 사람들은 다른 고통은 다 참을 수 있어도, 이 '인다리'라고 부르는 현상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자기로 인해 다른 이가, 그것도 사랑하는 이가 대신 고통을 당하거나 죽게 되는 운명 앞에 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예비무당의 인간 조건은 고통과 한의 점철이다. 끔찍하고 비참한 이 과정에 처한 인간은 말 그대로 정신질환자 취급을 당하는 '버림받은 존재'(바리데기)가 되며, 이는 평범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시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신이 사제자로 그 사람을 부르는 신호인 것이다. 이 신호 앞에 구원은 '신들림' 외에는 없다. 만약 이 신의 신호에 불응한다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아마 정신이상자로 비참한 일생을 살게 되거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여기에 구원의 열쇠가 있다. 신이 선택한 이들은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 자신의 외부로부터 오는 '은총'에 의해 들려지는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3) 구원, 그리고 구원 '이후'
ecstasy의 어원인 ex-stasis는 "...에서 떠나 일어선다(stand out from)."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6) 무당의 자기 구원은 이 '엑스타시'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이전의 모든 한과 고통과 좌절에서 '떠나' 새로운 존재로 '일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림굿을 통해 삶의 위기에 빠져있던 한 개인이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건강한 개성(healthy idiosyncracy)'17) 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자기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김성례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신에 의한 '은총'이라는 면에서 '구원'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 신령님. 이렇게 무당이 되게 해주셔서, 이렇게 외할머니의 신딸이 되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 아, 이런 거구나 .......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맺혔던 마음을 풀어 서로를 감싸안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 환영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설움이, 배고픔이, 아픔이, 원망이, 내 뜨거운 눈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나가고 있었다." 18)
고통의 과정을 거쳐 신령과의 합일(엑스타시)로 비로소 새로워진 사제자들은 이전의 모든 한에서 자유로워졌다. 씻은 듯이 무병이 낫고 마음의 그늘이 사라진다. 구원받은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박정옥은, 내림굿을 받으며 굿 도중에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행복해요,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어요,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봐요."19)
그러나 무당의 구원이 진정 의미있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은 내적, 개인적 차원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한 인간이 고통에서 회복하는 것은 기쁜일이겠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라면, 그 고통은 다시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이었다는 사실만을 남기고 만다. 고통이 의미 있으려면, 타자와의 관계성, 곧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신이 그를 부른 목적이다.
내림굿이라는 개인적 구원 체험을 통해, '정신질환자'나 마찬가지였던 한 사람이 이제 고통받는 이들의 한을 풀어가는 사제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신의 제자가 되었음에도 기성종교의 성직자처럼 명예와 존경을 받지도 못하는 인생, 여전히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은 무당의 구원을 더욱 의미있게 한다. 개인적 한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 변화해가는 인격적 성숙은 자연스럽게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와 오버랩된다. 고독과 냉대에도 무업을 계속해가는 것은 신에 사로잡힌 자들의 운명이고, 이는 자기구원에 따른 사회적 책임성으로의 성숙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외롭지만(solitary), 그 역할로 인해 사람들이 연대의(solidary) 대동세상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무당의 구원과, 구원 '이후'인 것이다.
결론 : 구원의 현실 - 사랑
이상의 논의에서 우리는 '문화상대론적' 관점에서 구원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 결과 무교에도 구원이 강한 현실로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현세성, 물질성, 문제 해결의 구체성과 직접성을 특징으로 하는 무교의 구원 경험은 고통에 시달리는 일반적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고, 신념과 용기를 갖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론에 이르러 이 모든 일이 유한적 인간의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잊지 않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의 논의가 자칫 무교에 대한 이상주의적 기대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는 무당과 굿에서 나타난 구원의 성격은 종교적 윤리성을 전제로 해서 논의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현실의 '모든' 무교 경험이 구원의 긍정적 표식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히려 현실의 무교는 개인구복적이고 세계도피적이며, 소극적, 개인적, 중독적 한풀이에 머물러 있다.33) 이와 같은 현실의 사이비 무당들과 이기적 신도들의 현존은 구원 논의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무교만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양심적이지 못하다.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긴장이 있고, 불교 안에서도 엘리뜨적 개인수행과 이타행 사이의 긴장이 있고, 사이비 종교인들에 의한 사회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모든 종교에 공통된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논의를 여전히 의미있게 만든다. 무교의 현실적 모순과 질곡은 공동체적 전통의 복원과 개인주의적 기복주의의 개혁이라는 과제를 가져오는 것이지, 구원 경험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교가 이런 맥락에서 공동체적, 사회적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이 모색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첫째, 무당이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역사에 참여하는 것을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사회적 맥락에서 민중의 아픔과 한을 함께하기 위한 노력들이 일부 무당에 의해서 시작하고 있는 것은, 사회구원에 복무하는 '한의 사제'의 맹아로써 이해될만 하다.
둘째, 무교의 신도들도 이웃 사랑의 실천에 나서야 한다.
이 문제는 현대 (도시)무교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마을 단위로 당골이 형성될 수 없는 현대의 신도들은 공동체적 나눔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고, 또 조직화되어 있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우 드물게, 신도회가 조직되어 이웃을 위한 봉사를 하는 사례20)를 발견할 수도 있는데, 이는 자발적 조직화이기 때문에 유의미한 방도로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원에는 '증명서'가 없다. 그 구원이 윤리적이고, 의미있기 위해서는 구원받은 이들의 삶이 변화해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타인의 고통을 초래하거나 방관한다면 참 인간됨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구원은 아닐 것이다. 고통에서의 구원이 타자를 향한 사랑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구원은 아직 성취된 것이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한 몸과 같이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만약 우리 이웃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한 이가 남아 있다면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구원은 '기대'에서 '현실'로 변화한다.
[각주]
1) 강영안, "고통과 윤리", [서강인문논총] 8집, 서강대학교출판부, 1998, p.4.
2) 앞의 책, pp.14-18.
3) 브리태니커·동아일보 공동 출판,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 2, 1992, p.369.
4) 앞의 책, p.369.
5) 조흥윤, "巫의 구원관", [한국 巫의 세계], 민족사, 1997, p.109.
6) 한국종교사회연구서 편저, [한국종교문화사전],집문당, 1991, p.102.
7) 한국갤럽,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제3차 비교조사(1997년), 1998, p.67.
8) 김기대, "바리공주 무가에 나타난 한의 승화", [구원이란 무엇인가], 종교문화연구원 편, 도서출판 창, 1993, p.387.
9) 매일신문, 97. 1. 4, 조성윤, "산업사회와 무당", [전통과 현대], 98 가을호에서 재인용, p.103.
10) 김금화,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 도서출판 푸른숲, 1995, p.82.
11) 김승혜, 김성례, [그리스도교와 무교], 바오로딸, 1998, p.90.
12) 인물타임스 민속취재팀, [한국의 무속인], 피플뱅크, 1997, p.192.
13) 앞의 책, p.162.
14) 앞의 책, p.370.
15) 앞의 책, p.147.
16) Rollo May, 안병무 역, [창조와 용기], 범우사, 1991, p.70.
17) 김성례, "신들림 체험과 은총에의 추구",[한국문화인류학] 16집, 1984.12, p.85.
18) 김금화, 앞의 책, pp.100-101.
19) 인물타임스 민속 취재팀, 앞의 책, p.194.
20) 일례로 약수암 무당 김정미의 신도들은 96년 10월에 신도회를 만들고 회비를 걷어 정기적으로 불우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 을 전개하고 있다. 인물타임스 민속취재팀, 앞의 책, p. .
한국무교연구(1998.12.4), 지도교수: 김성례, 발표: 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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