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디난트 황태자 : 1914년 6월 28일, 긴장이 고조되는 발칸의 일각,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육군 대연습의 통감(統監)으로 이 곳을 방문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인과 함께 방문하였다가, 세르비아의 참모본부 정보부장이 밀파한 7명의 자객 가운데 G.프린치프의 흉탄에 맞아 피살되었다. 이 사건은 세계대전을 불길을 당기는 역할을 한다.
- 힌덴부르크 [Hindenburg, Paul von, 1847.10.2~1934.8.2] :폴란드 포즈난 출생으로 후에 독일 대통령이 됨. 융커(Junker) 집안에서 태어나 군인이 되었다. 제4군단장에 취임하였다가 1911년에 퇴관하였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제8군사령관(참모장은 E.루덴도르프)으로 임명되어 8월 말의 타넨베르크전투에서 크게 이겼고, 이어서 대(對)러시아 전선에서 공을 세워 군신(軍神)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1916년 여름에는 참모총장이 되어, 참모차장 루덴도르프의 도움을 받아 동·서양 전선에서의 위기를 극복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 빌헬름 2세 [Wilhelm II, 1859.1.27~1941.6.4] :독일황제겸 프로이센의 왕으로 포츠담 출생. 보통 카이저라고 한다. 1888년 황제에 즉위하고, 얼마 안 되어 총리 비스마르크를 파면하였다. 해외시장의 획득과 아프리카 진출, 그리고 해군의 건설 등에 중점을 두었으나, 이러한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그가 취한 독선적 ·단견적(短見的)인 행동은 독일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끄는 대독 포위망을 만들게 하였다. 1916년 8월 P.힌덴부르크와 E.루덴도르프가 국내의 독재자가 된 뒤로는 전혀 권력을 쥐지 못하고, 패전후 국내의 지배계급으로부터 퇴위 권유를 받았으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신봉자인 그는 최후까지 자발적인 퇴위를 거부하였다. 1918년 11월 독일혁명이 일어나자 대전 말기에 국민의 원성을 샀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위하여 네덜란드로 망명하였다.
- 페탱 [1856.4.24~1951.7.23] :코시알라투르 출생의 프랑스 장군. 생시르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대학 교관을 거쳐 제1차 세계대전에 대령으로 참전, 후에 소장으로 진급되었다. 사단장에서 군단장으로 승진한 후 아르투아전투에서 전과를 올리고, 1916년 베르됭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저지하여 무훈을 세웠다.
- 니콜라이 2세 [Nikolai II, Aleksandrovich, 1868.5.18~1918.7.17]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아들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성격은 선량하고 교양도 있었으나 황제로서는 부적격하였다. 정치적으로 그는 서유럽식 입헌정치의 도입을 반대하고 보수적인 전제정치를 고집하였기 때문에 많은 반발을 샀으며, 결국 제1차 세계대전 때 수도를 떠나 러시아군 최고사령관이 되어 전군을 지휘하다가 2월혁명(1917)으로 제정(帝政)의 붕괴를 맞았다. 딸 아나스타시아의 비극적 운명으로 더욱 유명.
- 윌슨 [Wilson, Thomas Woodrow, 1856.12.28~1924.2.3] :버지니아주(州) 출생으로 미국의 제 28대 대통령. 191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 신자유주의(New Freedom)라고 하는 혁신정책을 내걸고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립주의를 내세웠으나, 1917년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공격을 감행하면서 이에 대항할 것을 이유로 연합국측에 가담하여 참전하였다. ‘전쟁을 끝내게 하는 전쟁’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슬로건으로 전쟁에 이데올로기성을 부여하고, 1918년 1월 비밀외교의 폐지와 민족자결주의를 제창,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파리평화회의에서는 지도적인 지위에 서서 국제연맹 창설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1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제 2차 세계대전
- 히틀러 [Hitler, Adolf, 1889.4.20~1945.4.30] :독일의 정치가, 나치스의 지도자.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지원병으로 입대하고 무공을 세워 1급 철십자장(鐵十字章)을 받았다. 이후 1919년에는 독일노동자당(후에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즉 나치스)에 가입, 이어 대표로 추대된다.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경제계와 정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보수파와 군부의 협력을 얻어 외교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경제의 재건과 번영을 이루었으며, 군비를 확장하여 독일을 유럽에서 최강국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에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독일민족에 의한 유럽 제패를 실현하고 대생존권(大生存圈)을 수립하기 위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그의 작전지령이 처음에는 효과를 거두어 프랑스에서 크게 승리하였지만, 스탈린그라드의 패전 전후부터 현실을 무시한 지령을 남발하여 패전을 거듭하였다. 1945년 4월 30일 그는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에 자살하였다.
- 루스벨트 [Roosevelt, Franklin Delano, 1882.1.30~1945.4.12] :미국의 제 32대 대통령. 1921년 39세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렸으나, 치료 후 체력이 회복되자 1924년 정계로 복귀하였다. 193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되자, 그 지명수락연설에서 ‘뉴딜(New Deal)’을 선언, 32년 당선되었다. 정책은 크게 성공을 거두어, 국민생활은 점차 안정되어 갔다. 1936년 대통령에 재선되었고, 1940년 3선되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眞珠灣)공격을 계기로 참전하였다. 대서양헌장의 발표를 비롯하여 카사블랑카·카이로·테헤란·얄타 등의 연합국 회의에서 전쟁의 결정적 지도권을 장악하여 영국의 총리 W.L.S.처칠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지도적 역할을 다하고 전쟁종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44년 대통령에 4선되고 국제연합 구상을 구체화하는 데 노력하였으나, 1945년 4월 세계대전의 종결을 보지 못하고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 스탈린 [Stalin, Iosif Vissarionovich, 1879.12.21~1953.3.5] :레닌의 후계자로서 소련공산당 서기장 ·수상 ·대원수를 지냈다. 1919∼1922년 국가통제위원, 이어서 초대 당 서기장이 되어 죽을 때까지 통치하게 된다. 1939년 제18차 당대회에서 그는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문제를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긴박한 국제정세하에서 나치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지만, l개월 후에 독일의 기습을 받아 독 ·소전쟁(1941∼1945)에 돌입하였다. 그는 국방회의 의장, 적군(赤軍) 최고사령관이 되어 개전 초에는 패배하였으나 급속히 국내의 임전체제를 갖추고, 주코프 등 소장 장군들을 이끌고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연합국(미국 ·영국)과의 공동전선을 굳혀, 독일을 굴복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 처칠 [Churchill, Winston Leonard Spencer, 1874.11.30~1965.6.24] :영국의 정치가, 문학가로 1874년 11월 30일 옥스퍼드셔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총선거에 패한 후에는 야당 당수로서 집권 노동당에 대한 공격을 늦추지 않았으며, 국제정치상으로는 동서양극화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반소(反蘇) 진영의 선두에 섰으며, 1946년 미국 미주리주(州) 풀턴에서의 연설에서 ‘철의장막(iron curtai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1951년 다시 총리에 취임하였고, 그 해 ‘경(卿:Sir)’의 칭호를 받았다. 1953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화가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 도조 히데키 [東條英機(동조영기), 1884.12.30~1948.12.23] :도쿄[東京] 출생. 육군대학을 졸업한 후 관동군 헌병사령관, 관동군 참모장, 육군차관 등을 역임하였다. 41년 12월 8일 하와이의 새벽 진주만(眞珠灣)에 있는 미국함대기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개전(開戰) 후 독재를 강화하여, 1943년 문부(文部)·상공·군수(軍需) 장관도 겸임하고, 한국에서는 징병제와 학도병 지원제를 실시하였으며, 1944년에는 참모총장까지 겸임하였다. 패전 후 A급 전쟁범죄자로 극동국제군사재판에 회부, 1948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 맥아더 [MacArthur, Douglas, 1880.1.26~1964.4.5] : 제2차세계대전의 명장. 1936년 퇴역 후 대일관계(對日關係)가 긴박하였던 1941년 7월 현역에 복귀하여 제2차세계대전을 맞이하였다. 1942년 초부터 연합군 남서태평양 방면 사령관으로서 대일작전을 지희, 45년 7월에는 필리핀을 완전히 탈환(奪還)하고, 이어 8월에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국제연합군(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지휘, 전세를 역전시켜 적을 한만국경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한 장군이기도 하다. ‘노병(老兵)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트루먼 [Truman, Harry Shippe, 1884.5.8~1972.12.26] :미주리주(州) 출생으로 미국 제 33대 대통령. 1934년 미주리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40년 재선되어 이어 1944년 대통령 F.D.루스벨트 때 부통령에 선출되었다. 1945년 루스벨트의 급서(急逝)로 대통령직을 승계, 제2차세계대전을 마무리 짓는다. 1947년 반소·반공을 내세운 트루먼독트린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정치의 방향을 결정한 것으로서 중요하다. 1948년 대통령에 재선되어 6·25전쟁으로 인한 한국 파병에 이르기까지 내정 ·외교를 지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