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
지난 봄, 서울에서 속초까지 자전거 투어에 참가한 뒤부터 자전거로 부산까지 갈 수는 없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단독 강행은 무리 같았고 가는 분들이 계시면 묻어 가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러 인터넷 싸이트 자전거동호회에도 그런 공지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이 들기 전에 혼자라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획과 준비
긴 여정인 관계로 정확한 자료와 계획이 필요했다. 인터넷 자전거동호회에 도움이 될 자료를 요청했다. 여러분들이 모아 준 자료 위에 내 생각을 덧붙여, 3박 4일로 정했다. 그 리고 계획은 부산까지지만 우선 울산까지 목적지를 정했다. 출발 일자와 시간은 5월 10일 06 : 25분 동서울 터미날 출발 속초행으로 확정했다.
-출발
사실 출발 전날까지도 가야할 건지 말건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자료에는 7번 국도가 공사 중인 곳이 많고 차량이 많아 위험하다는 말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 반대 때문이었다. 아내는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편이지만 딸아이와 아들 녀석이 한사코 반대했다. 그 먼 길을 그 연세에 간다는 것은 무리며 혹여 불상사라도 생긴다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고. 그러나 여러 곳에 자전거로 부산에 간다고 광고를 한 상태라 쉽 게 포기할 수 없었다. 나도 고집을 꺽지않았다. 이번에 못 가면 언제 가 보겠느냐, 고 물 러 서지 안했다.
-서울에서 속초(1일 차)
자전거를 챙겨서 동 서울 터미널을 향했다. 운전기사님께 자전거를 싣겠노라 양해를 구 한 뒤 자전거를 움직이지 못하게 끈으로 동여맸다.
6시 25분 고속버스는 속초를 향해 떠났다. 한강에는 안개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름 다운 풍광이다. 지난 봄 생각이 났다. 지난봄에는 짙은 안개를 헤집고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지나갔는데……. 가는 길목마다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여기서 쉬어갔고, 이곳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피곤을 덜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미시령 정상을 지날 때는 내가 이 고개를 자전거로 넘었단 말인가, 하는 탄성을 내 질렀다.
고속버스는 정확하게 예정시간인 09 : 50분에 속초 터미널에 나를 내려놓았다. 속초항에 들려 아침을 황태 해장국으로 해결했다. 식당 아저씨가 나의 형색을 유심히 보더니 어디 가느냐? 고 물었다. 부산 간다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속초에서 삼척구간
5월 10일 10 : 30 속초 출발.
오늘 일정은 삼척까지다. 동해의 푸른 바닷물이다. 수평선이 아득하다. 바다 바람이 시원하다. 지난번에 불이 난 낙산사 옆을 지났다. 관동팔경인 의상대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울창한 삼림들이 붉그스럽하게 변해 있다. 정말 불조심을 해야겠다. 한 순간의 잘 못으로 수 십 년을 가꾼 삼림이며 문화재가 잿더미로 변하다니 안타깝다.
새로 난 해안도로에서 양양여고 싸이클 선수들을 만났다. 기념 촬영도 했다. 하조대에 들렸다. 하조대에서 내려다 본 경치는 기가 막혔다. 조선시대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숨어 살았다고 해서 부처 진 이름이라고 한다. 기암괴석이 인상적이다.
주문진항과 경포대를 지나 정동진 해안도로로 정동진에 도착했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모래시계 촬영지며 새해 해맞이로 유명한 곳이다. 정동진을 넘어가는 언덕이 지친 몸을 무척 힘들게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동해 바다와 해수욕장 그리고 언덕과 내리막 점점 몸이 지쳐 왔다.
추암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촛대바위 일출 장면을 촬영하러 몇 번 와 본 곳이다. 많이 변해 있다. 전에는 진입로 자체가 비포장이었고, 일반인들이 잘 찾지 않은 곳이었는데, 관광 명소로 바뀌어 있었다. 새천년 해안도로를 달려 오늘의 목적지인 삼척 소망의 탑 앞에 도착했다.
19 : 00 이다. 속도계를 보니 총 143km를 달려왔다. 소담이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그 건물 2층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삼척항을 둘러보고 첫 밤을 맞았다.
-삼척 강구구간(2일 차)
5월 11일 06 : 00 삼척 출발
새벽 5시 잠이 깼다. 부푼 기대 때문인지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다. 동해 일출을 볼까 했는데 하늘이 잔뜩 흐려있다. 아쉬웠다. 공기가 좀 차겹게 느껴진다. 그러나 라이딩 하기엔 최적의 날씨다. 알맞게 흐려있어 햇빛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성 싶다.
대진항에 들렸다.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항으로 내려가는 내리막 경사가 대단하다. 항에 들렸다 올라 오는 길이 아침도 먹지 않은 나그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었다. 그런데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 온 나에게 굴삭기 운전기사가 무엇 때문에 그 짓을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고종황제가 땀을 흘리며 테니스를 하는 미국 선교사들을 보고 하인들에게나 시키지 무엇 때문에 저 짖을 하느냐고 했다더니 그 짝이었다.
황영조 기념공원이 나왔다.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를 기념하기 위한 조각 공원이었다. 황영조 선수 고향이 이곳 삼척인 모양이다. 해당화가 이쁘게 피워있다.
임원 항에 도착했다. 배가 고파왔다.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저 손님 배고파 다 죽어 간다고 하면서 빨리 밥 차러 오라고 한다. 정말 배가 고팠다. 도중에 준비해 온 육포와 건포도를 먹긴 했어도 밥을 먹어야 한 끼를 때우는 기분이다.
동해 바다를 끼고 계속 해안도로를 달렸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칠전교 위에서 한 라이더를 만났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동류의식이랄까. 부산에서 오는 길인데 전국을 돌아 볼 예정이란다. 안전 라이딩을 기원해 주며 헤어졌다. 덕구온천 가는 길이 보인다.
죽변 해안도로를 따라 갈영재에 올라서니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다. 드디어 강원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지겹다는 생각도 들고 허벅지에 경련 같은 것이 감지된다. 약국에 들려 스프레이 파스를 샀다. 울진 원자력 발전소다. 먼 곳에서 처다 보고 다시 달리기를 계속한다. 망월정에 도착했다. 심신이 피곤해서 올라 가 보고 싶은 정이 없다. 처음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여행이 아닌 둘러보는 여행이라 마음먹었는데 모든 게 싫어진다. 일정을 기록하는 것도 카메라를 꺼내어 촬영하는 것도 귀찮아 진다.
평해에 도착했다. 계획된 일정대로라면 이곳에서 이틀째 1박을 하기로 되었는데 빨리 달려 온 것 같다. 가게에 들려 캔 맥주 한 캔을 샀다. 목이 무척 말랐다. 월송정에 들렸다. 동네 노인들이 무슨 행사를 하는지 가무에 열중이다. 신라 시대 화랑들이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수련했다는데 오늘은 노래판으로 대신하는 모양이다. 입구에 평해 황씨 시조를 모신 제각이 보였다. 강구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하루의 일정이 단축된 것이다.
울진에서 시작된 구산 해안도로와 대진에서 시작된 대진 해안도로는 끝이 없다. 바다와 구불구불한 길 그 길 위의 내리막과 오르막...... 무엇이 좋은 건지 이제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름다움도 심신이 편해야 눈에 보이는데 그 푸른 동해 바다도 지겹다.
고개에서 쉬고 있는데 웬 싸이클 부대가 나타났다. 그것도 여자들만의 자전거 부대. 어디 가느냐? 고 물었더니 대진해수욕장까지 간다면서 이제 오르막은 없느냐고 묻는다. 오르막에 질린 게 틀림없다. 자기들은 대전 여자 싸이클 동호회라면서 감포까지 관광버스로 이동했다고 했다. 미인 라이더 들이다. 기념촬영도 했다. 서로 무사 라이딩을 빌며 헤어졌다.
강구 못미처 풍력 발전소가 나왔다. 이색적인 풍경이다. 제주도 해안에서 보고 처음이다. 해 뜨는 곳이라고 표지가 붙어 있는 언덕은 모든 피로를 잊게 했다. 디지털 카메라는 물론 아날로그 카메라도 꺼내어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달력 표지에서나 봄직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지금까지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을 풍광이다.
언덕을 내리 쏟는 다운힐. 강구란다. 이곳이 강구라고요? 의외로 빨리 온 것 같아 반문했다. 오늘 저녁을 쉬어 갈 강구다. 최불암이 나온 드라마 촬영지다. 등대로 갔다. 맥주 한 캔을 들고. 석양빛에 물든 항구가 아름답다. 그리고 어느 항 보다 깨끗하고 공기가 맑다. 그러나 내 마음은 외로운 생각이 든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밥이나 먹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아들 녀석한테 전화가 왔다. 조심하시라고. 어느 곳 어느 때든 가족이다. 가족이 붕괴되는 시대에 산다곤 하지만 가족 품보다 좋은 곳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을 새쌈 느끼게 된다..
숙소을 정하고 저녁을 먹으려 나갔다. 난장의 횟감 파는 곳에 갔다. 만원어치가 엄청나다. 못다 먹고 그냥 두고 왔다. 이불을 깔고 지금까지의 일정을 정리하려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잠에 빠져 들었다.
19: 20분 강구 도착. 총 라이딩거리 169km.
-강구 울산 고속터미널 구간(3일 차)
5월 12일 06 : 00 강구 출발
간밤에 비가 온 모양이다. 피곤해서 비 내린지도 몰랐다. 도로가 젖어 있고 하늘마저 흐려있다.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다. 짐을 챙겼다. 비가 오기 전에 한 걸음이라도 빨리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해가 떠올랐다. 일출은 생각도 못했는데 뜻밖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어 촬영했다. 흐린 날씨라 화려하고 열정적인 일출은 아니지만 은은하고 보기 좋은 일출 모습이었다.
칠포해안도로를 달렸다. 모내기를 준비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영일만이 내려다보이는 죽천이란 동네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내 나이 쯤 보이는 아주머니가 혀를 껄껄 차며, 속초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곳까지 왔능교? 배 고프것다, 밥 한 그릇 더 갔다 드려라 한다. 커피도 내가 타 마시겠다고 해도 가만 앉아 있으라고 손사래를 친다. 자기가 타 준다면서. 정이다. 사람들만이 가진 정. 이런 정이 없다면 살아가는 재미가 없으리라. 패달 질이 한결 부드럽다. 사람의 정이란 어느 때건 효과가 있는 법이다.
포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철강의 도시다. 언제인가 이곳 내연산을 등산 왔을 때 둘러 봤던 곳이다. 강 건너 굴뚝에선 연신 하얀 연기를 쏟아 내고 있다. 웅장하고 장엄하다. 다리를 건너 구룡포를 향했다. 포항 구룡포 간은 공포의 도로 같다. 대형 화물차가 조금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왜 그리 바쁘게 내 달린지. 등골이 오싹거린다. 차도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계속 인도를 달렸다.
호미곳 가는 길은 정말 화나게 했다. 모든 게 지쳐있는 나에게 혼마저 앗아가는 힘든 길이었다. 레미콘 운전기사가 미소를 짓는다. 보기에 딱한 모양이다. 업 힐과 다운 힐을 계속하다보니 멀리 등대가 보인다. 그리고 보리밭이 펼처젔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보리의 군무, 나는 섯터를 정신없이 눌러댔다. 피곤도 싹 가셨다. 푸른 바다와 넓게 펼쳐진 보리 밭, 환상적인 조화다.
호미곳 해안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호미곳. 한반도가 호랑이 형상이라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손을 펴고 있는 조각 앞에서 기념촬영하기에 정신이 없다. 나도 찍어 주기도하고 찍어 달래기도 했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구룡포를 향했다. 아홉 마리 룡이 승천했다, 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리가 뻐근해 왔다. 집으로 가고 싶어진다. 바람은 살랑거리고 하늘은 맑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이 지금까지 바라 본 바다 가운데 제일 파랗다. 코발트로 물을 들인 것 같은 바다색이다. 그런 바다도 이제는 지겨워진다. 감포 해안도로를 질주했다. 무척 한가하다. 경주 가는 이정표가 나왔다. 경주로 가버릴까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문무대왕 묘가 나왔다. 많은 학생들이 수확여행을 왔는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왜구들의 침범이 오죽했으면 육신을 받쳐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자처했을까? 그 때나 지금이나 그들의 속내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울산을 향했다. 문무대왕 묘에서 울산까지는 25km이지만 산을 넘는 고개 길은 부산에 가야겠다는 의욕을 깡그리 부셔 놓고 말았다. 그래 그냥 집으로 가자. 얼마 남지 않은 부산까지 가면 계획대로 되지만 원래 목표는 울산이 아닌가? 이유야 어쨌든 목표는 달성하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위안을 삼자. 고개를 내려오면서 마음을 굳혔다.
울산은 모든 도시가 공사 중인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공사하는 곳이 많았다. 우리나라 공업도시의 상징인 울산광역시. 공업산업의 메카라고 해야 할 도시다. 공업단지는 둘러보지 못했으나 화물차들이 홍수를 이루는 걸로 보아 이곳이 산업도시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울산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2박 3일의 자전거 여행이 끝나고 있었다.
16 ; 40분 울산 고속버스터미날 도착. 총 라이딩거리 174km
3일 간 총 라이딩거리 486km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저도 언제 도전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