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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휴거
많은 성도들이 휴거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휴거란 용어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지만,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8절에 나타나는 내용 중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에서 휴거란 용어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끌어올려’란 ‘낚아채다’, ‘강탈해가다’라는 헬라어 ‘하르파조’에서 나온 의미인데, 이는 순간적으로 갑자기 끌려가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다. 70인역에서 약 40회 정도 사용되는 단어로 붙잡다, 훔치다. 데리고가다 등의 의미도 있다.( 이 땅에 사는 성도는 어는 순간 갑자기 하늘로 끌려가 주님을 만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휴거에 대해 알고 있는 성도 중 대부분이 성경의 내용과 상관없이 환난 전 휴거를 은연중에 믿고 받아들인다. 나도 성경을 알기 전에는 환난 전 휴거를 받아들였다. 이는 성경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휴거를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기에,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줄 알고 그냥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그리고 종말론을 기술한 여러 서적에서도 대부분 환난 전 휴거를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성경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펄시 콜렛의 『100가지의 천국 비밀』, 어네스트 앵그리의 『휴거』, 조용기 목사의 『다니엘, 요한계시록 강해』 등의 책들이 활개를 치던 때였다. 성경을 올바로 알지 못하던 때에 호기심으로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그 진위를 분별할 수 있는 성경적 지식이 전혀 없어 목사님이 쓴 책은 모두 올바른 책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모두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책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으며, 내가 다니는 교회(아주 보수적인 장로교회)에서는 그에 대한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록 환난 전 휴거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성경을 읽다 보니 그러기엔 내용상 맞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종말론 강화나 부활 장인 고린도전서 15장의 내용,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8절의 내용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을 읽어가면서 등장하는 환난 때의 성도나 교회들, 이 모두가 휴거에 대해 상당한 혼란을 주었다. 그래도 내가 성경을 잘못 알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오랜 세월 그렇게 믿고 지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좀 더 깊이 보게 되고, 신학 공부를 마친 후 성경을 다시 연구하고, 좀 더 폭넓은 신학적 안목과 성경적 안목을 갖게 되면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휴거는 절대적으로 환난 전 휴거가 될 수 없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휴거란 예수님의 재림과 따로 일어나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고, 예수님의 재림 나팔소리, 죽은 성도의 부활, 그리고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의 휴거가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환난 때까지 살아 있는 성도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반드시 환난을 이기고 통과한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실제로 성경은 환난 전 휴거를 말하고 있지 않다. 환난 전 휴거의 가르침은 철저히 비성경적이며, 마지막 시대 우리 성도들을 미혹하는 배도적 가르침이다.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은,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 모두를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환난 전 휴거라는 자신의 믿음 위에 성경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 식으로 시도한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거되기 위한 조건으로 성도의 행위를 강조하고, 올바른 성도로서의 행위를 갖지 못하면 휴거되지 못하고 환난에 던져져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멋진 거짓말로 성도들을 배도로 이끌고 있다. 결국 행위에 의해 휴거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행위 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구원에 있어서도 행위 구원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이후 최소한 휴거라는 거짓 신학이 나오기 전까지 성도들은 휴거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성도란 당연히 이 땅에서 많은 환난을 당한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었다. 종말론적 신앙에서도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 이 땅에 환난이 닥칠 때, 성도는 당연히 환난에 들어가 환난을 받는다는 신앙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선교의 문이 열려 기독교가 들어오게 될 때 외국에서 넘어온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세대주의의 기초를 놓은 존 넬슨 다비가 만든 휴거에 대한 그릇된 신학 사상을 갖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런 이들의 사상이 초창기 성도들에게는 크게 영향력을 주지 않았다.
1970년대 들어 오순절 교단이 득세하면서, 세대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던 순복음 중앙교회 조용기 목사의 『다니엘, 요한계시록 강해』 등의 책이 대중에게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그러면서 수많은 성도들이 세대주의적 사고에 물들기 시작했고, 서달석 목사의 종말론 강의 또한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환난 전 휴거 신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은 이장림 목사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어네스트 앵그리의 『휴거』라는 소설책을 번역하면서, 이 책에서 가르치는 환난 전 휴거가 사실인 것처럼 성도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수많은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환난 전 휴거를 확신하게 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먼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휴거 신학의 뿌리가 세계정부를 만들려는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성경의 계시와 진리, 그리고 정통신학을 파괴하기 위해 만든 멋진 걸작품이 바로 휴거이다.
휴거 신학은 18세기 중엽 일루미나티 예수회 회원이며 사탄을 숭배하는 장미십자회의 비밀결사 요원이던 스페인계 칠레인 임마누엘 라쿤자(가명은 랍비 벤 에즈라임)와 루이스 드 알카자, 그리고 프란시스코 리베라가 교황의 명을 받고 합작으로 만들어낸 무서운 신학이다.
당시 정통교회는 교황을 짐승으로 적그리스도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받은 대부분의 성도들도 교황을 적그리스도 혹은 짐승의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교황이 이를 없애기 위해 예수회에 속한 위 세 명의 예수회 회원들에게 명을 주어 이런 사실을 없애도록 지시한다. 이들에게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도록 명령해 루이스 드 알카자에겐 계시록을 과거적 해석으로 하도록 해 이미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사라진 것으로 해석하도록 했고, 리베라와 라쿤자에겐 계시록을 미래적으로 해석하도록 해 교황이 짐승이 아니며,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들은 모두 적그리스도 즉 짐승이 나오기 전에 휴거 된다는 신학을 확립하도록 한다.
특히 임마누엘 라쿤자는 1747년 16세에 예수회 정회원이 되었던 사람으로 사탄숭배 집단인 장미십자회의 비밀 결사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예수회 수사의 감독관을 했던 사람이다.
1801년에 스페인의 예수회의 신부였던 임마누엘 라쿤자가 책을 한 권 썼는데, 그 책이 “비밀스러운 휴거”라는 책이다. 이스라엘 랍비가 쓴 것처럼 해 가명을 사용 “랍비 벤 에즈라”로 권위를 놓이고자 했다. 이러한 라쿤자의 책은 1812년 스페인어로 출판되었고, 1816년에 런던에서 출판되었으며, 1826년 당시 켄터베리 대 주교였던 매이터 랜드 박사가 “예언서”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다시 출판했다. 그리고 1827년에는 당시 꽤 유명하게 알려진 성서학자 “에드워드 어빙”(1792-1834))이라는 사람이 번역 출간하게 된다. 에드워드 어빙은 예수님의 인성에 죄가 있다고 주장함으로 1830년 런던 장로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당시 에드워드 어빙의 교회에 출석하며 이 책에 영향 받은 마가렛 도날드라는 소녀가 1830년, 교회의 성도들이 대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역시 같은 교회에 출석하던 카르데일이라는 여인이 1830년 4월 30일 가정기도회에서 같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이 신학이 퍼지기 시작했다.이는 당시 이들을 지도했던 어빙의 영향 때문이다.
이 사상을 폴리머스 창시단인 넬슨 다비가 수용, 체계화 시키면서 세대주의 사상을 만들어 확산 시켰으며, 넬슨 다비는 프리메인슨 랏지에 자주 강의를 했던 인물로, 사탄숭배자이며 일루미나티 멤버인 알레이스트 커로울리와 함께 일했던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프리메이슨이며 사탄숭배자 였던 알레 이스트 크로울리의 고백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는 종교에 바쳐졌고, 폴리머스 형제단의 창설자인 존 넬슨 다비의 수행자가 되었다. "나는 폴리머스 형제 교회의 신학을 받아 들였다. 실제로 나는 그 신학을 의심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어 그 책에서 그는 “나는 그저 사탄의 편으로 갔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을 원문 그대로 캪쳐해 보여주니 참고 바란다.
세대주의의 환난 전 휴거는 넬슨 다비에 의해 체계화 되면서 서방세계에 그의 사상이 퍼져 나갔으며. 당시 미국 캔자스 주의 주 의원이며 주 검사이고 변호사이자 프리메이슨이던 스코필드가 1909년 300만 부 이상의 관주 성경을 편찬하면서, 미국 내 거짓 휴거 신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넬슨 다비와 스코필드의 영향으로 환난 전 휴거 신학이 미국에 자리 잡게 되고, 이러한 이들의 사상은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까지 잠식, 달라스 신학교, 탈봇신학교, 그레이스, 웨스턴보수 침례회 신학교, 무디 신학교 등에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된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이들의 신학은 성경적 올바른 검토 없이 이들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들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목회자들에 의해 환난 전 휴거가 성경의 진리인 양 오도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성경은 절대 환난 전 휴거를 지지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공중 재림이니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성경은 철저하게 우리 성도들이 환난을 통과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이 부활과 동시에 공중에서 재림하시는 주님과 만난다고 기록해놓고 있다.
수많은 인터넷 카페에서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대부분 거짓 계시를 받은 무리들의 간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간증들을 읽어보면 정말 휴거는 환난 전에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두려운 일이다.
성도의 휴거가 환난 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성경이 증명할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때부터 성도들이 일관되게 믿어온 사상이다. 이 사상은 사도들의 사상이요 교부들의 사상이었다. 그리고 신실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상이었다. 저스틴이 그랬고, 터툴리안, 락탄리우스,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등 대부부의 신실한 교부들의 사상이 역사적 전 천년주의의 환난 후 휴거설을 지지하고 믿은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가, 비록 교회(신실한 성도)라 할지라도 대 환난을 온전히 피할 수 없으며, 직접 겪어야 한다고 했다.
2세기 초의 저술인 『디다케』(Didache, 초기 교부들의 저작물)와 『바나바 서신』(희랍 교부들의 저술집)은 “교회가 환난을 겪고 그 끝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을 기대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적그리스도를 멸하고, 교회를 구원하기 위해 환난 끝에 재림하실 것으로 보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렇게 교회가 환난을 통과한다는 성경 말씀은 1900여 년 동안, 초대교회 때부터 가르쳐온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환난 전 휴거가 나타나게 된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영국의 존 넬 슨 다비(John N. Darby, 1800-82)라는 사람의 영향 때문이었다.
휴거가 환난 전에 일어날 것이라는 그의 사상은 거짓 복음에 불과하며, 성경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화신인 교황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천주교 예수회 소속인 임마누엘 라쿤자의 주장을 자신의 주장과 사상으로 발전시켜 개신교에 접목시킨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사상이 인본주의자, 기복주의자 등 성경을 잘 모르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누룩처럼 번져 퍼져가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개최된 예언 대회, 신학을 공부한 적 없는 자칭 신학자 스코필드의 관주성경, 그리고 성서학원 운동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일어난 근본주의 신학계에서조차도 널리 수용하게 되었고, 이런 이들의 사상이 우리나라에 검증 없이 그대로 유입되면서, 불행히도 많은 교역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약한 성도들에게도 이 사상이 주입되어 이 사상을 신봉하며 따르게 된 것이다.
환난 전 휴거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비라는 사람의 개인적 사상, 즉 사람의 사상을 믿는 것이며, 그 사상을 신봉하는 자들에 불과하다. 이는 사탄이 정통 신학을 무너뜨리기 위해 만든 거짓 신학이다. 가톨릭에서 성경을 거짓으로 해석해 자신들의 정체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진 이런 휴거 사상을 믿고 있는 세대주의는 거짓 신학이다.
성경은 결코 환난 전 휴거를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성도들이 환난 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을 수차례 알려주고 있으며, 이 환난 가운데 이기며 승리할 것을, 그리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서 말씀하는 시험의 때를 이기게 해주겠다라는 영어 문장에 보면 “I(예수님) also will keep thee from the hour of temptation.”으로 되어 있다. 이 말씀은 일인칭인 나, 즉 예수님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내(예수님)가 반드시 시험의 기간 동안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내(예수님)가 의지를 갖고 이기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씀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말씀인가.
노아의 사건이나 롯의 사건도 환난 전 휴거의 모형이 아니라, 비록 환난이 있다 하더라도 그 환난으로부터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노아가 비록 방주를 탔다 하더라도 환난 가운데 있었으며, 자신도 멸망당하는 자들의 환난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방주 속에서 지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환난 전 휴거를 믿고 요한계시록을 읽는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읽어가면서 내내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왜냐하면 환난 가운데 등장하는 성도들이 무수히 많으며, 계속적으로 환난 가운데서 주님의 보호하심과 성도의 인내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믿음 생활을 잘못해서 환난에 던져져, 그 가운데서 회개해 믿음생활을 철저히 하게 된 성도들이라고 애써 믿어보려 해도,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신실하고도 믿음생활을 잘해온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1장의 신실한 두 증인, 12장의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백성들, 13장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무서운 박해들, 이어 등장하는 성도들의 순교 등, 이 모두가 환난 시대 때의 성도들이다.
그리고 환난 전 휴거를 믿게 되면, 종말에 관련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사도의 가르침, 좀 더 나아가서 구약의 가르침 또한 상당한 의문을 갖고 보아야 한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종말론 강화를 살펴보면, 성도는 환난 전 휴거를 당해 환난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켜나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 마태복음 24장 15절이나 22절, 23-26절, 31절, 36절, 42절, 44절 등을 자세히 읽고 살펴보면, 이 모두가 성도가 환난에 들어감을 가르치는 말씀들이다.
사도들 또한 환난 전 휴거가 아니라 환난 후 휴거를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환난 후 휴거를 가르치고 있으며, 환난 가운데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한다.
신실한 성도라면 휴거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환난이 오더라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 던져지더라도 믿음을 지켜, 주님의 재림 때까지 그 믿음을 잘 지키고 간수하여, 환난 가운데 승리함으로써 휴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잘못된 배교적 가르침인 환난 전 휴거를 받아들여선 결코 안 된다.
성도의 휴거는 단회적 사건으로,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한 번에 휴거되는 사건이다.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고 그 주장을 정당화시키려다 보니, 그와 관련해 여러 합리적 대안들을 만들어 경건한 사람만 휴거시킨다는 부분 휴거니 중간 휴거니 이중 재림이니 하는 인간적 학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환난 후 휴거를 인정하면 이런 모든 문제가 단번에 사라지고, 이런 문제 또한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환난을 이긴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백성이었기에 적그리스도에게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환난 동안 믿음을 지킨 모든 성도들이 빠짐없이 휴거되는 것이다. 성도의 휴거는 환난 후 일어나는 것이 성경적임을 믿어야 하며, 성경이 그것을 지지하고 있다. 휴거의 순서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다음과 같다.
살전 4:16-18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 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 으로 끌려올라 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 로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라.
고전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눈 깜짝하는 순간에 그러 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위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을 보면, 휴거 때 나타날 일곱 가지 상황과 휴거의 대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황을 보면, 먼저 예수님의 호령 소리가 나고(16절), 천사장의 소리가 나며(16절), 이어서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난다(16절).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며(16절), 곧바로 주께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고(16절), 이어 그 다음에 살아남은 자가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가는 휴거 사건이 일어나(17절)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
그리고 휴거의 대상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며(살전 4:16, 고전 15:52), 이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가 변화(휴거)되고(살전 4:17, 고전 15:52),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살전 4:17)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1. 예수님의 호령소리가 나고
2. 천사장의 소리가 나며
3.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난다.
4.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부활)
5. 곧바로 주님이 하늘로 좇아 강림하며 (재림)
6. 이어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구름 속으로 끌려간다. (휴거)
7. 그리고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성도의 부활, 그리고 이 땅에 남아 있는 성도들의 휴거가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 된다.
이렇게 성경이 명백히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여 성도들을 미혹케 하는 것은 명백한 배도다. 성경은 일률적으로 성도의 휴거가 환난 후에 있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렇게 믿고 따르는 것이 성경의 바른 교훈임을 잊어선 안 된다.
세대주의자들은 환난 때 등장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을 이스라엘 민족으로만 보고 해석한다. 이미 교회, 즉 성도는 모두 환난이 오기 전 휴거되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 중 회개한 자들이 환난 끝에 예수님을 만난다는 억지 해석을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환난 때는 예수를 믿는 것은 물론,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라 스스로 이겨내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이런 거짓 가르침에 절대 속지 마라. 우리는 절대 스스로 환난을 이길 수 없다. 반드시 주님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세대주의자들의 성경 해석은 아주 무서운 해석이다. 설득력도 있고 다양한 성경을 인용하기 때문에, 마치 성경에 대해 정통한 자들인 것처럼 느껴지고 때론 신선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가르침에 속아선 안 된다. 세대주의자들의 문제점들은 독자들 스스로 연구해보고 잘못된 가르침을 잘 분별하여, 성경적 가르침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주의 백성들이여! 잘못된 거짓 복음인 거짓 휴거에 미혹되어선 안 된다. 성경이 밝히 말씀하고 있는데, 성경 중심의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와야 한다. 거짓 휴거는 세대주의의 창안자인 넬슨 다비가 예수회 신부인 임마누엘 라쿤자의 책에 영양을 받은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만들어 낸 사탄의 산물이다. 구약성경은 종말에 대한 많은 언급은 있으나 휴거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굳이 성경의 한 구절을 가져와 본다면 단12:1-2절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환난을 통과함을 이말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상징적인 내용이나 휴거와 연결시킨다거나, 중요한 구원을 계시하는 사건을 휴거와 연결시켜선 안 된다.
초대교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갖고 있던 그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 모두는 성도에게 있어 환난은 당연한 것으로 보았고, 모두 그리스도 재림 전에 환난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목회자나 성도들이 거짓 휴거에 미혹되어 이를 가르치고, 믿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평신도 목회자인 프리메이슨이며, 다비를 추종하는 세대주의자인 스코필드의 영향 때문이다.
성경은 단 한 번도 환난 전 휴거를 가르치지 않는다. 환난 전 휴거를 가르치면, 행위주의에 빠지게 되고, 주님의 십자가를 헛된 것으로 만들며, 주의 재림을 두려움 속에서 기다려야 되며,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항상 긴장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이런 모습을 옳지 않다. 주의 재림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은혜와 영광의 일이다. 우리의 모든 죄악이 영속되며,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의 올바른 분별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의 부활과 살아 있는 성도들의 공중 들림, 주님의 재림은 동시 사건으로 일어난다.(고전15:51-52, 살후4:16-18) 주님 재림이후 이 땅은 주님의 통치하에 1,000년 동안 다스려 질 것이며, 그 기간 동안 사탄은 무저갱에 갖히게 되고, 1,000년이 차게 되면, 잠시 무저갱의 열쇠가 풀려 사탄이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세력들을 다시 규합, 곡과 마곡 등 수 많은 사탄의 추종세력들이 주님이 다스리는 성으로 총 공격을 가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탄의 공격을 모두 제거하고, 백보좌 심판을 통해 영원한 불 못으로 사탄과 그의 모든 추종자들을 던져 넣어버리며, 자신의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신천신지로 이들을 데리고 가면서 성경의 문은 닫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