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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적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법적으로는 우리의 영혼몸 전부가 구원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의 영만이 구원을 받았다. 즉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지만, 우리의 혼과 몸은 예수 그리수도 안에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분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 우리 존재의 속성이고 삶이다.
[롬 8:10-11]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원함이 나타나는 삶(고전 1:30),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 함께 나눈 네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면, 이제는 거듭난 우리가 킹덤빌더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의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거듭난 우리는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위치에 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세상 신이 통치하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써 다시금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의 통치를 이루시도록 하는 통로의 역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우리는 새언약의 성취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다시 이 땅에 파송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땅을 통치할 수 있는 통로 수단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이 땅을 통치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그분의 통치권을 행사하실 수 없다. 그만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자녀의 특권과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구원의 의미를 부분적으로 이해하여 단지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은 자로서-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로서-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좀 더 잘 섬김으로써 더 나은 그리스도인,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있지는 않은가?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인데, 지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탈육신적인 삶을 살고자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2 생득권으로 주어진 신성과 원복을 누리는 성육신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으면 그분의 신성이 우리 안에 임함으로써 이제는 원죄나 결핍과 부족이 아니라 원복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우리 몸이 하나님의 신성과 원복을 경험하도록 혼이 허용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 땅에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삶을 사셨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요일 2:6, 4: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거짓자아로 기초한 정체성으로 지금과 다른 내가 되고자 하는 탈육신적인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3 우리가 거듭났다면 우리의 혼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 안에 거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느껴지든 느껴지지 않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어 있는 상태라면, 우리의 혼은 이미 하나님의 영 안에 거하고 있다. 그것이 거듭난 우리 존재의 기본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늘 과거의 습성 때문에, 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마귀의 유혹에 이끌려 우리의 혼이 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선택하으로써 거짓자아로 스스로 존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존재는 마치 육신에 기초한 거짓자아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 것이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장 16절은 명령문이다. 육체의 욕심은 이루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이 말씀의 전제인즉,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수 있는 것은 구원받은 후 우리의 혼의 본래 위치가 하나님의 영 안에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거짓자아에 속아 다시 관념과 형상세계로 끌려 나오지 말라는 것이다. 거짓자아로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다시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죄사함을 받고, 다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롬 8:2-3]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킹덤빌더의 영성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온전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며 이 땅을 다스리는 자로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의 말에 속아 타락함으로써 마귀의 통치를 받는 자로 두려움, 죄책감, 슬픔과 원망, 시기와 질투 가운데 결핍과 부족 그리고 질병과 고통, 분열과 전쟁을 이루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하지만, 그 말씀을 이루지 못하게 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며 이루신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회복시켜주셔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신성과 원복을 가지도록 하신 것이고,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존재로 살도록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도록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실상을 붙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이 땅에 그 실체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요일 2: 5-6]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히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열매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 하나가 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거짓자아인 내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가 될 때(즉 우리의 혼이 더 이상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혼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을 때), 또한 거짓자아인 내가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할 때, 즉 내 몸이 말씀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몸을 통하여 실제 삶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론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하나님과 분리된 타락한 인간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는 개혁인데(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인데) 오늘날 기독교는 거짓자아가 주체가 되어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이원성적인 관점에서 이분법적으로 나누고(부정적 인간론에 기초해서 선과 악, 영과 몸, 신과 인간이라는 관념과 개념과 신념으로 나누고) 자신의 죄와 타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스로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굴례와 속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는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복음을 보지 않기 때문에, 다음 세 가지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첫째, 전적 타락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구속 후 우리의 본질이 새로워진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둘째, 원죄에 대해서는 강조하지만 구속 후 원복을 생득권으로 가지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있다. 셋째,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알지만, 구속 후 하나님의 생명(본질)을 나누는 하나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자아의 깨달음과 관념적 믿음일 뿐이다. 그 거짓자아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있는 신성(그리스도 의식)이 우리의 육신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죽고 난 다음에 천당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주님과 생명적으로 연결되어 우리 몸을 통하여 그분이 주신 원복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과 삶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는 의의 삶을 살아내어야 하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여전히 거짓자아에 기초하여 윤리와 도덕을 잘 지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의 일부인 십자가의 대속만을 강조함으로써 부정적 인간론에 기초한 신학을 만들고, 신적 생명의 나눔과 성육신적인 삶 대신에 교리와 그에 대한 믿음체계 훈련 그리고 윤리 도덕적 회복만을 강조한 결과이다. 인간의 온전히 변화된 삶은 존재적 변화에 따른 열매를 맺여야지, 교리와 믿음에 따른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백 년에 걸쳐서 경험했지만, 여전히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지금 죄를 지어도 된다. 윤리와 도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이 하나님을 경험하면 할수록, 그분이 나를 통해 나타날수록 하나님의 의와 성품이 더 드러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난 후에도 우리 안에 임한 신성이 우리의 인성을 뚫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슬픈 현실이다. 속사람이 겉사람으로부터 깨어나야 한다. 그것은 겉사람이 죽을 때 가능한 것이다. 겉사람과 속사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거짓자아의 깨달음일 뿐이다.
주체가 바뀌면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도, 믿음도, 기도도, 삶도 바뀌게 된다.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되게하고, 그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에 있다. 그것은 바로 내(에고, 거짓자아)가 진정한 내(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아)가 되어(고전 15:10) 하나님나라의 삶을 사는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신비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죄와 죄악으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자신과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다시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가 되어(다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알고), 다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이 세상으로 파송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 땅에 그의 뜻을 이루도록 하는 데 쓰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킹덤빌더의 삶이다.
출판사: 규장 지음이: 손기철
첫댓글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킹덤빌더의 삶이다.
아멘 주님께영광
속사람이 겉사람으로부터 깨어나야 한다. 그것은 겉사람이 죽을 때 가능한 것이다.
아멘~!!
주님께서 하십니다!!
주님께 영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알고
우리를 통해 이땅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하는데 쓰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