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서기(酷暑期) 산행의 묘미
신기섭
연일 폭염특보가 이어진다.
이열치열이(以熱治熱)라 하였던가?
그렇다면 오늘은 열로써 열을 다스려 보리라
오늘 산행은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면 광지원에서 장작산 – 희망봉 – 용마산 – 고추봉 – 검단산으로 이어지는 12km 능선산행이다.
13번 버스를 타고 광지원에서 내린다.
차 안의 에어컨 덕분에 그리 더운 줄 몰랐으나 아침이른 시간인데도 작렬하는 태양과
후끈한 지열이 어디 한번 다스려 볼 테면 다스려 보라는 듯 기세가 등등하다.
부리나케 들머리를 지나 그늘진 산속으로 숨어든다.
여기에도 더위 못지않은 복병이 숨어있을 줄이야 얼굴로 덤벼드는 거미줄과 하루살이, 모기의 공격이 덥고 습한 날씨에 또 다른 복병으로 등장한다. 모기는 한 열흘은 굶은 듯 무섭게 달려든다. 헌혈 좀 할걸 그랬나?
시간이 지날수록 태양은 머리 위로 다가오고 서서히 열을 가하고 있다
오전인데도 어느덧 기온은 34도에 다다른다. 산속은 활엽수가 많아 등산로에 그늘이 많아 그래도 견딜만하다. 그리고 해발고도에 따른 기온변화는 100m마다 0.6~0.7도씩 낮아진다. 검단은 해발 657m이니 정상에 올라서면 평지보다 4도 정도 낮은 셈이다.
깊은 산속으로 접어드니 각종 버섯의 향연이 벌어진다.
이름 모를 버섯들 덕분에 자칫 지루할뻔한 산행이 힘든 줄 모르고 이어진다.
떡갈나무 밑에 자라는 영지버섯도 있다. 이름을 아는 버섯이라고는 영지밖에 없다.
후드득 상수리나무에서 열매가 가지채 떨어진다.
등산로 내내 떨어져 있다. 생존경쟁에서 밀린 것일까?
저들도 힘없고 빽없는 열매는 저렇게 내동뎅이 쳐지는 건가?
한참을 가다 보니 약수터가 나온다.
물을 받아 팔에 흐르는 땀을 씻어내고 한 모금 마셔보니 참으로 시원하고 달디 달다.
목마를 때 물 한 모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영화 벤허에서 유다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지친 예수에게 물 한 바가지를 떠 주는데 로마 병사가 발로 차버려 못 마시게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희망봉 부근에 아주 오래된 듯한 묘지가 보인다 조선종실 창은군 권의 묘이다.
검색해보니 전주이씨 능원대군파 원종의 현손이라 되어있다. 왕족이었으니 그리 고달픈 생을 살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인생무상(人生無常) 누구나 사람의 일생은 덧없이 흘러가리라
날씨가 덥긴 더운가 보다 광지원에서 용마산까지 오는데 산객을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
휴가철이라서 가족과 함께 피서를 갔는지 아니면 이 더위에 산행은 미친 짓이라 생각해서인지..
용마산을 지나 고추봉으로 향하는 길에 각종 매미의 공연이 한창이다.
다가가 사진 찍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노래를 부른다.
매미는 유충으로 7년 정도 살다가 성충이 되어 고작 1주일에서 한 달 정도 산다고 한다.
저렇게 목청을 높이는 건 수컷 매미인데 짝짓기하려는 수매미의 세레나데인 것이다.
고추봉을 지나 검단 정산 부근에 다다르니 칡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보랏빛 꽃잎이 도발적이며 코끝을 간질이는 향기 또한 매혹적이다.
칡도 암칡과 수칡이 있는데 꽃이 피는 칡이 암칡이다.
뿌리도 암칡이 맛있지 수칡은 목질화가 되어있어 맛이 없다고 한다.
하산길에 광산 곱돌 약수터에 다다른다.
산속 곱돌냉동고에서 나오는 듯 이곳의 물은 0도 가까이 얼음물이다.
약수터 밑에 씻는 곳에 손과 팔을 담그니 5초를 버티기 힘들 정도로 차갑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 정말 시원하다.
드디어 검단의 계곡에 들어선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더위를 식힌다.
등산용어로 알탕이라는 것을 하고 싶은데 물이 너무 얕아 발을 담그는 걸로 만족한다.
어느덧 밤송이가 제법 굵어진 걸 보니 무더위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이치에 순응하는 자연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오후2시 하산을 마치니 삼복중에 8월 오후라서 더위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다음 주에 입추와 말복이 있으니 무더위도 2~3주 후면 처서와 더불어 물러가리라
굳이 내가 다스리지 않아도...........
2023년 8월4일 토요일 12km 6시간 산행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