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국
庚 庚 乙
辰 辰 巳
대운
기무정병을갑
묘인축자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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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사주입니다. 명리학 공부를 하면서 사람이 팔자대로 살았구나를 느끼게 하면서도 인간의 존엄함을 시사하는 몇 안 되는 전율이 일어나는 팔자입니다. 이 사주를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가져가 보시길 바랍니다.
[오행, 십성]
진월 경금입니다. 월주와 일주가 쌍으로 동일합니다. 이런 사주가 가끔 있습니다. 심지어는 연월일시가 모두 동일한 갑자로 되어있는 사주도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개인적 영역이든 사회적 영역이든 동일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사람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 사주는 지지에 편인, 편관으로 난세의 영웅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답게 흉신만 빽빽하고 천간에는 그나마 있는 길신인 정재가 비견과 합을 하여 쟁재의 형상을 갖고 있으니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치가 않네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 이순신 정도 영웅은 사주팔자가 아주 좋고 특이한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웅의 삶은 힘들고 고단하며 희망을 주나 싶으면 금새 빼앗고 절망을 주는 법입니다. 그러니 사주팔자도 어떻겠습니까. 아주 난장판이 나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일반 서민으로 힘든 삶을 살다 간 민초와 영웅의 사주팔자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영웅은 그 위기를 극복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장군 답게 경금이고, 경금의 특성인 무뚝뚝하고 우직한 성품은 무과로 가기에는 딱이며, 지지에 인성이 깔려서 대쪽같으면서도 시를 지을 정도로 문예를 좋아하는 성품이 나왔을 것이라 추측되며 연지 편관은 그가 선택했던 무인으로서의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주의 병은 천간에 비견과 합한 정재로서 그것이 쟁재를 불러오니, 그것 때문에 한평생 아웃사이더로 살고 정계의 모함을 받은 첫 번째 이유가 발견됩니다. 많은 역학자들이 쟁재를 재성을 두고 쟁투한다는 1차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데 쟁재는 그런 것이 아니라 비겁이라는 주체성과 재성이라는 사회성 간의 부조화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순신의 쟁재는 편관이라는 관직을 두고 정재가 천간에 올라와서 이순신에게 요구되는 상황들(윗사람에게 아부해라, 지시에 따라라, 뇌물을 바쳐라 등 그 시대의 환경에 맞는 정치적 행동)을 이순신이 본인의 사상과 신념(비견)에 따라서 거부하여 극한 것이 되며 이는 곧 정부로부터 미움을 받는 계기가 됩니다. 만약 월상에 비견이 아니라 정관이 투출해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지요. 아주 눈치 빠르게 윗사람에게 척척 뇌물을 가져다 바치고 탐관오리들 옆에서 눈치껏 처신하는 사람이 떠오릅니다.
[용신]
병이 있는 사주이기 때문에 그 병을 치유하는 관성을 제1용신으로 삼아야 합니다. 마침 연지에 편관이 존재하고 직업도 무과를 선택했으므로 용신은 당연히 화 관성입니다. 그런데 대운을 보십시오. 초년에 목방으로 흘러 재성 운을 달릴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네요. 그래도 천간에서 쟁재가 발생하는 유형이고 천간에 인성 운이 오므로 쟁재를 어찌할 방도가 없어 많은 고생을 하면서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그 후에 오라는 화는 오지 않고 수로 흐르니 이순신의 고생길이 시작됩니다. 이 사주에 축토가 오면 용신인 편관을 사(유)축으로 묶어 비겁으로 만들어 버리니 환장하겠고, 자수가 오면 진토와 합을 하여 상관 국을 이루니 환장 하겠고, 해수가 오면 사해충을 하여 용신을 괴롭히게 됩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할 운으로 흘러갑니다. 이걸 봤을 때 한숨과 함께 이순신의 바람잘 날 없었던 생애가 떠오르지 않으신가요.
그렇습니다. 용신 운이라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일을 막힘없이 편하게 성취해주는 운이라고 했을 때 이순신은 그 정반대인 기신 운으로 흘렀고 영웅은 그 상황에서 눈뜨게 됩니다.
특히 수국이 이루어져 용신 화를 괴롭히게 되니 자꾸만 용신 편관(임진왜란 전에는 조선 정부를 뜻함)의 미움을 사서 시기질투, 모함 등을 당하게 됩니다. 천간에는 쟁재, 아래에는 상관견관입니다. 타고난 쟁재도 꺼림칙한데 사주명리학에서 가장 꺼리는 두 가지 어려움을 모두 갖게 된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끝났겠지요. 그러나...
[구조]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 것은 병자대운~을해대운으로 추측됩니다. 대운에서 수기운이 많이 들어오는 와중이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정치적으로 낙인찍혀서 축출되고 마는 실패한 무인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놀라운 변화가 있게 됩니다. 이순신 사주의 편관이 원래는 조선 정부를 뜻하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왜구를 뜻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주에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면 진토가 두개나 된다는 것인데 특히 진토 술토는 해수 사화를 보게 되면 천라지망이라 하여 음양을 묘지에 묻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개고 입묘 작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니 단순하게 운에서 들어온 수의 힘으로 편관 사화를 물리친 것이 아니라 진토의 힘까지 합하여 편관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몰아낸 것입니다. 단순히 식신으로 편관을 극하는 식신제살 팔자보다 더 강력하게 편관을 뿌리뽑습니다. 이순신은 그렇게 영웅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지요. 용신을 극해버린 것입니다.
원래 장군이 전쟁터에서 편관을 용신으로 삼고 있다면 뒤에서 진두지휘하면서 왜구의 공격에 노출되지 않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편관을 극하면서 식신상관인 수기운을 쓰고 있었으니 적극적으로 전쟁을 지휘하느라 왜구의 공격에 노출되어 사망하고 맙니다. 그야말로 용신 운으로 살아갈 때의 일신의 안녕과 행복을 전부 거절하고 나라를 위해 갖다바친 모습입니다.
이순신이 수 기운을 썼다는 증거는 전쟁통에 썼다는 시를 보면 그 감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만약 화 기운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감수성이 풍부하면서 깊은 철학적인 맛 까지 나는 시를 구태여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거북선을 건조하는 기술도 식신 상관에서 나오는 것이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식신제살을 해낸 것으로 보면 대운에서 들어온 수를 원국의 진토로 받아서 썼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렇게 이순신의 사주를 알아보았는데 사주팔자 탓만 하면서 삶을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장군은 인생 전체를 통하여 따끔한 훈계를 내리고 있습니다. 영웅은 온갖 흉신과 기신과도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이라고.
아래는 홍자성이 쓴 채근담에 나오는 시 한편입니다. 원래 채근담은 벼슬에서 물러나서 자연을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삶을 노래하였으나 오로지 이 시에서만큼은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노래하였습니다.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하게 준다면 나는 나의 덕을 두텁게 하여 이를 맞이하겠다.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한다면 나는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 그것을 보충하겠다.
하늘이 나를 역경에 처하도록 한다면 나는 나의 길을 형통하여 뚫어나갈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하늘인 들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