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서는 초등생 13% 시험 끝난 뒤 ‘죽고 싶다 "라는 기사를 보고 서운한 생각이 많이 드신 것 같군요. 대체로 기사를 쓰는 기자님들뿐 아니라, 정책당국자들이나 관계자들까지 우리 교육의 대안을 알고 있는 분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대안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그 대안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육에서 여라 가지 말들은 많이 하지만, 정작 그 대안을 찾고 있는 분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기껏해야 저명한 교육학자나 교육학 교수님들께 답을 물어보는 것이 고작입니다.
좀 다른 얘깁니다만, 신문의 건강관련 기사에는 종종 의사 선생님들이 자신 있게 음식, 수면, 생활습관 등 건강법에 대해 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명한 의사선생님들이 과연 건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요. 건강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잘 알고 있을까요? 사람들의 질병(극히 일부의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그 분들이 과연 건강을 말할 만큼 심신의 건강을 실현하고 있으며, 그 방법을 알고 있을까요? 나아가 정작 본인들은 건강한 분들일까요?
한번 깊이 생각해봅시다. 아마도 그분들이 일부 질병의 요법(대증적 요법)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단지 질병 상태에 대해 잘 아실뿐입니다. 과연 병없는 상태가 건강한 상태일까요? 엄밀히 말해서 건강한 상태와 질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병원에 찾아가 치료를 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의)는 전혀 별개의 차원입니다(아무튼 이 문제는 원래의 논의 주제가 아니므로 다음 기회에 말해보겠습니다)
우리 교육의 대안 문제도 이와 같습니다. 교육학자님들이 우리의 교육현실을 말씀하시지만, 그분들이 제대로 지혜롭게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 교육학은 서구에서 도입된 학문체계이며, 이에 심취된 교육학자들 중에는 과학적인 여러 가지 분석기법으로 우리 교육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내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대안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 분들에게 길이 안 보이는 것일까요, 혹은 구태여 길을 외면하는 것일까요?
엉뚱한 말 같지만, 옛날에 공자님이나 예수님, 또 우리의 퇴계 선생은 교육학을 공부했기에 제자들을 잘 가르쳤을까요? 교육은 어쩌면 근시안적인 서양교육학이 감지하지 못하는 또 다른 층차의 무엇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중요한 사실을 주의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인생의 깊은 지혜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는 말이나 글로 쉽게 전달하기 어려우며, 어쩌면 다소 다른 방법 예컨대,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교육학자가 친지 소개로 기공을 배우러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독일에 가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아온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독일에 가면 뭔가 우리 교육의 대안이 있으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특별한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간 김에 할 수 없이 학위를 받아오긴 했지만 실망감을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놀랍게도 대석학의 강의 아닌, 백화점 문화센터의 초라한 기공강좌에서 우리교육의 대안을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지덕체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전통교육과 완전히 단절된 채, 서구식 교육을 해왔지만 현재는 제대로 된 서구식도 아닙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기형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 우리나라일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 여건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덕체를 갖춘 인격체를 만들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 청소년들이 병들지 않은 것만도 기적입니다. 열악한 교육 여건은 역설적으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도록 강인한 정신력(?)을 훈련시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닌가도 보아질 정도입니다. 과거 세대들이 한 반에 100명이 넘는 콩나물 교실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듯이.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줘야 하며 굳건한 정신력도 길러줘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의식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전반적인 인성교육이 절실합니다. 과연 이것을 누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전통교육에선 이러한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었습니다. 문무(文武)를 함께 가르쳤던 프로그램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오늘날 청소년문제는 청소년들에게 매일 운동만 제대로 시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끓어 넘치는 에너지는 어딘가로 탈출구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혀두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은 더 나약하게 병적, 퇴행적으로 출로를 스스로 찾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빨리 지덕체(智德體)교육이 실시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전인교육, 인성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지와 덕 그리고 체는 반드시 병진(竝進)합니다. 지는 덕을 기르고 덕은 체를 기르며, 그 역도 성립됩니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은 이미 전통교육 가령, 선가 기공(氣功)의 커리큘럼에 완비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현대교육은 지(智)가 무엇인지 덕(德)이 무엇인지, 체(體)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지(智)란 뭘까요. 책을 수만 권 읽으면 지혜가 생길까요? 공부를 많이 한 세계적인 석학은 과연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제가 아는 한 수행자는 말하길, ‘배울수록 무식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박이문이라는 철학교수는 과거 자신의 지적 방황을 회고하는 글에서 위대한 현대의 서양철학자 한 사람을 지칭하며, “견고한 이성의 갑옷을 입은 그도 궁극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없는 “사색하는 불쌍한 동물”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소위 서양철학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렇듯 큰 지혜나 에너지가 없는 학문입니다.
지(智)는 과연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요? 이는 명상을 통해 내면의 나를 만날 때, 수백 만 년 잠들어 있던 ‘참나’가 깨어서 기지개를 켤 때 비로소 지혜가 살아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요가에선 ‘제3의 눈’이라 하고 불가에서 혜안(慧眼), 도가에선 천목(天目)이라고 하는 상단전이 열리지 않고는 진정한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혜안이 열리지 않고서 뭔가 아는 듯이 말한다면, 이는 모두가 자신도 잘 모르는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옛 스승들은 말했습니다.
현대교육에서 덕(德)은 더욱 어렵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공자와 붓다, 플라톤의 말을 줄줄 외운다고 덕이 길러질까요. 덕에는 기본 바탕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오장(五臟)의 오기(五氣)입니다. 오기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자애, 친화, 베품 등이 나타나지만 반대로 불균형이 되면 짜증, 분노, 잔인, 불신, 공포 등 말성(末性)이 쉽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덕을 기르는 방법은 뭘까요? 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성(內省)이고, 또 하나는 수행(修行)입니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야 하며, 수시로 기를 쌓아 오기의 균형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체(體) 역시 쉽지 않습니다. 단지 몸만 튼튼하면 체가 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건강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건강임을 세계보건기구(WHO)는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바로 그 통합체입니다. 건강한 몸도 건강한 마음과 영혼이라야 성립됩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서, 온몸에 문신을 한 험악한 얼굴로 울퉁불퉁 근육을 키우고 칼싸움을 잘하는 조폭 하수인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지덕체 중에 체 하나는 이뤘을까요? 아마도 그가 자신의 명대로 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지나친 음주와 분노, 폭력 등으로 중년을 넘기 전에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거나 혹은 뒷골목에서 누군가에 의해 비명횡사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굵은 근육도 안에는 탁기로 가득 차서 여기 저기 에너지의 흐름이 막혀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머지 않아 견비통이나 요통, 위장병 등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결코 체를 이룬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체(體)에는 강건한 몸과 함께 건강한 정신이 필수이며, 또한 바이오에너지(氣)가 원활하게 소통되도록 해야 하며- 이는 특히 마음의 영향을 받습니다. 분노, 근심 등은 그 흐름을 크게 저해합니다- 영적(靈的)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해야 합니다. 또한 이웃과 민중, 생명을 사랑하는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는 튼튼한 한 마리 야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육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까는 자명합니다. 심신을 닦는 수행을 함께 해야 합니다. 만약에 제가 교육책임자라면 저는 초등학교의 시험 대부분을 없애고, 예체능교육 비율을 50%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중에 기공과 명상은 필수입니다. 명상학습법을 활용하면 모든 학생들은 불과 1,2년만에 학과 지식을 모두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인성이고, 진정한 지혜와 덕(德), 체(體)입니다.
누구나 한 때 자살 충동을 겪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자살은 자신의 삶에 극히 자신이 없을 때, 미래에 대한 가슴 떨리는 비젼이 전무할 때 나타납니다. 어려움이 많은 미래시대의 주인공이 될 우리 아이들은 심신이 더욱 강건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교육이 앞장서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굳건한 용기와 힘을 주어야 합니다. 아울러 용맹스런 치우(蚩尤) 할아버지의 후예임을 일깨워 줘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명상학습법을 활용하면 1년 내네 천하의 영재이자 효자인 자녀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그 기사를 쓴 기자분이나 이 글을 보신 어느 분과도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드릴 수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 카페의 <氣명상학습법>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육문제는 너무나 절실한 시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한 전인교육, 지덕체 교육이 실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확실한 대안은 기공을 통한 전인교육입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기공 명상 | Re:교육이 인간을 황폐화 시킨다는 문제제기만 있고, 대안이 없습니다.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