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퇴계원교회의 산파들
박노선(교적 5번) 장로 - 수십 년을 수석장로로 봉사하였으며, 교회의 산파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그는 1961년 10월 21일 지고석 목사로부터 침례를 받고, 그 때 교회서기로 봉사하였다. 1965년에 장호원에서 집사 안수를 받았고, 1968년 3월에 송권 목사의 집례로 퇴계원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아 신실하게 봉사하였다. 정현덕 전도사가 시무하던 1969년부터 둘째 성전이 건축될 때, 1987년 9월까지 18년 동안을 교회 사택 단칸방에 머물면서 목회자 없는 교회의 아버지 역할과 장로로서 교회를 잘 섬기고 목회자와의 관계를 잘 협력하여 조화롭게 운영하였다.
아내인 김정순A 집사는 매주 안식일마다 예식목사와 학생전도사의 점심식사 대접을 하고 교회 청소를 하면서 교회 봉사를 하였다. 당시 19명의 학생전도사는 김정순 집사의 정성 어린 식사 대접과 사랑을 잊지 않고 지금도 정을 나누고 있다.
우홍정(교적 29번) 장로 - 어린 시절 유년반으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12살 때에 한국삼육고등학교 형과 누나들이 하던 분교에서 재미를 붙였다. 당시 신창휴와 오경자(한상우 목사 사모) 그리고 김원자 학생이 지도한 분교가 어린 우홍정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었다.
우홍정은 16세 청소년 시절, 1964년 10월 17일에 임병의 목사의 집례로 손기판(교적 28번, 현 명일동교회 장로), 박병수(교적 30번, 현 공릉동교회 장로)와 함께 침례를 받았다. 청년 시절부터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였으며, 퇴계원교회 외에는 다른 교회를 다녀보지 않은 순수한 퇴계원교회 토박이 성도이다. 지금도 교회 관리를 하며 교회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충직함과 성실함을 보인다.
박옥자(교적 41번) 집사 - 박옥자 집사는 오빠 박병수 집사의 인도로 어릴 때부터 퇴계원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박 집사는 퇴계원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퇴계원에서 보냈으며, 1970년 10월 31일에 송권 목사의 집례로 중생하였다. 손원영(교적 117번) 장로와 결혼 후에도 퇴계원에 살면서 퇴계원교회에 현재까지 출석한다. 박 집사는 특별히 어린이 사업, 도르가회장과 여수석집사에 수 년간 봉사하였으며, 남편과 함께 교회일에 적극적이고 헌신적이다. 박집사의 인도로 김귀분 어머니가 1973년 10월 13일에 차도순 목사의 집례로 침례를 받았고, 남동생 박병철(교적 81번)은 1980년 6월 21일에 한성보 목사의 집례로 박일규(교적 82번), 김차석, 이광훈, 김선희, 이경희(현 이경희 집사와 동명이인임)와 함께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김세현 사장과 인동환 장로
김세현 사장은 퇴계원 사거리에 있는 ‘동북건재’의 창업주이다. 큰 딸 김명순(교적 42번, 도현석 목사의 사모)은 중학생 시절, 1973년 6월 23일에 송권 목사의 집례로 송현정(교적 43번), 고순오, 박점숙과 함께 침례를 받았다. 신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딸을 보며 교회에 관심을 갖던 중 뜻밖의 병으로 서울위생병원(현 삼육서울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이때 원목 김봉호 목사로부터 성경을 배움으로 심령의 변화가 일어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1980년 1월 16일에 김세현(교적 89번) 사장은 아내 이성숙(교적 90번), 아들 김창훈(교적 91번), 며느리 윤명순과 일가족이 함께 김봉호 목사의 집례로 침례를 받았다.
그 때 김세현 사장이 신앙을 갖고 침례를 받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운명 직전에 교회부지를 헌납하도록 봉사한 분은 인동환(교적 88번) 장로와 박영애 사모였다. 박영애 사모는 당시 수원교회를 담임하던 김세원 목사의 사모로서, 병원에 입원한 조카사위 김세현 사장의 간병인으로 밤낮 병상을 지키며 수발을 들었다. 김세원 목사는 현재 삼육대학교 신학과 김은배 교수의 아버지이다.
1980년 이른 봄, 김세현 성도는 퇴계원 교회의 건축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퇴계원 사거리 부근의 퇴계원 218-99 답(畓) 104평(당시 시세로 2,000만원)을 교회부지 용도로 기증하여 헌납하였다. 김세현 성도는 운명하기 얼마 전에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하나님과 교회에 많은 은혜를 입고 보답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송구스럽다. 교회를 위해 대지를 기증하겠다.”라고 유언하고, 2월 28일에 자택에서 주님 품에 잠이 들었다. 그가 기증한 부지는 당시에 퇴계원에서 가장 비싼 땅이었다.
기증된 교회부지는 1980년 3월 18일에 재단 사무실에 보고하고, 의정부등기소에서 재단 앞으로 서중한대회 총무부장 임병훈 목사의 수고로 등기를 하였다. 고(故) 김세현 성도의 교회부지 기증으로 퇴계원교회는 성전건축에 대한 큰 꿈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이 부지를 담보로 1986년에는 둘째 성전 건축이 이루어졌으며, 이 부지를 매각하여 1997년에는 셋째 성전 건축의 긴요한 원동력(1996년 4억 2천만원에 매각하여 현재 교회를 신축함)이 되었다.
1980년 당시에 퇴계원교회 수석장로는 인동환 장로였다. 인동환 장로의 아내는 김숙자 집사(현 미국 로마린다교회 출석, 인숙희로 개명함)로 1953년에 퇴계원교회를 개척하던 여청년이며,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와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퇴계원교회 첫째 성전에서 결혼하였다. 인동환 장로는 서울위생병원(현 삼육서울병원) 원무과의 보험 담당 직원으로, 남다른 열성과 영혼에 대한 애착심이 많고 헌신적이며 탁월한 지도력을 갖춘 평신도 지도자였다.
연령이 비슷한 김세현 사장과 가깝게 지내면서 퇴계원교회에 대한 애착과 발전 가능성, 그리고 앞으로의 기대와 전망 등을 잘 설명함으로 김세현 성도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하여 김세현 사장이 마음에 결심을 작정하였고, 퇴계원 사거리 104평의 땅을 교회에 기증하기에 이르렀다. 하늘이 준비한 큰 축복이었다.
퇴계원교회는 당시 평신도 지도자로 헌신한 인동환 장로의 사랑어린 활동과 박영애 사모의 헌신적인 간병 봉사와 교회 건축부지를 기증한 고(故) 김세현 성도의 교회를 향한 넉넉한 마음에 대해 큰 빚을 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세원 목사의 글에 자세히 기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