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경험담>
퇴계원 교회와 도현석 목사
도현석 목사(둘째 성전 건축)
1957년 4월 교회지남 48쪽 새 소식란에 다음과 같은 소식이 실렸다. “춘천교회 도재필 군 퇴계원 교회 박금순 양이 (1956년) 11월 14일 퇴계원 교회에서 문선일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 거행.”
당시 도재필 군은 춘천에서 육군 중위로 근무하던 신실한 재림청년이었고, 박금순 양은 박성섭 목사의 누이동생이었다. 박성섭 목사는 광주광역시 사동의 그리스도교회 목사로서 1954년에 온 교인과 함께 재림교회로 개혁하였다(교회지남 1955년 1월호 42쪽 참조, 오늘날 광주 서부교회임). 그 때에 도재필 씨는 육군 소위로 광주에서 근무하면서 사동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후 박성섭 목사는 한국연합회의 장학금으로 삼육신학원에서 공부하는 중 퇴계원교회를 섬기면서 사택에 살았고, 아우들을(박귀섭, 박재섭, 박금순, 박대섭) 퇴계원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 박성섭 목사의 외동딸 박명숙(서정준 목사 사모)씨에 의하면, 1956년 초등학교 4학년을 퇴계원 교회 사택에 살면서 태강삼육으로 다녔다고 한다. 그 기간이 거의 8개월이 된다고 하였다. 결혼식에는 박성섭 목사가 전도한 도재필 씨의 친척들이 강화도 구하리와 볼음도에서 대거 몰려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결혼식에서는 고 인동환 장로의 부인 김숙희(김숙자⦁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인숙희로 칭함) 집사가 들러리를 섰다. 당시 김숙희 집사는 퇴계원 교회 교인이었다.
1979년부터 중병으로 고생하던 동북건재 김세현 사장은 고통 중에 침례를 받았다. 그 후 퇴계원 교회를 위하여 부지를 기증하였다. 교회지남 1980년 4월호 28, 29쪽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퇴계원 교회가 오랜 숙원이던 교회 신축을 설계하게 되었다. 퇴계원에서 건축 자재상을 하는 김세현씨가 친척 되는 김세원 목사의 감화와 병원입원 중에 베풀어 준 퇴계원 성도, 위생병원 원목실의 감화로 오랜 장로교회의 인연을 청산하고, 김봉호 목사의 집례로 부인과 아들과 자부와 함께 침례를 받고 퇴계원교회에 입교함과 동시, 일요일에 문을 닫던 자재상회를 안식일에 문을 닫고 구원의 대열에서 기뻐하게 되었다. 특히 김세현씨는 읍내의 요지에 땅 100평(1980년 당시 시세로 2,000만원⦁1996년 4억 2천만원에 매각하여 현재 교회를 신축함)을 교회 대지로 기증함으로 낡은 예배당으로 염려하던 성도들에게 교회 신축의 부푼 소망을 안겨 주었다.”
1980년 2월 27일 김세현 사장은 주 안에서 잠들었다. 미망인 이성숙 여사, 장남 김창훈, 장녀 김명순, 차녀 김명화를 유가족으로 남겼다.
1983년 4월 24일 도현석 군과 김명순(고 김세현 사장의 장녀) 양이 서울 위생병원 교회에서 신현철 목사의 주례로 결혼하였다. 김명순 양은 퇴계원에 살고 있었으며, 어릴 때 퇴계원 교회에서 풍금 반주로 봉사하였다.
1986년 3월 서중한합회는 시조사 편집실에 근무하는 도현석 목사에게 퇴계원 교회 목회를 맡겼고, 예식 담임은 삼육대학교 신학과 교수인 한성보 목사였다.
1986년 7월 교회가 비좁아서 퇴계원 사거리의 부지(고 김세현 사장 기증)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
주택(우남 아파트)을 짓는 우남 건설 회사가 불도저로 옛 예배당을 밀어내려고 하여 교인들과 함께 기도하며 몸으로 막았다.
1987년 6월 13일 도현석 목사는 퇴계원 교인들과 교회 건축을 마치고 새 교회에 입당하였다. 1987년 9월 중순 도현석 목사는 앤드류 신학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도현석의 아버지 도재필은 퇴계원 교인 박금순과 퇴계원교회에서 결혼하였고,
도현석 본인은 퇴계원교회 처녀 김명순과 결혼하였고,
퇴계원 교회에서 목회하였고,
도현석은 장인 고 김세현 사장이 기증한 부지를 힘입어 퇴계원 교회를 위하여 교우들과 함께 예배당 건축을 하였다.
도현석 목사는 퇴계원교회와는 운명적 함수 관계를 갖고 있다.
(사진 1987년 천막교회내부, 1990 건강 전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