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치
김민희
버스를 타고 가는데 현수막이 보였다. 향남 읍 주민자치센터에서 내건 강사 모집이었다. 여러 분야 가운데 요가 글자를 본 순간 가슴이 뛰었다. 나도 응모해 볼까. 집에 오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구비서류가 여섯 가지나 되었다. 주민등록등본, 이력서, 졸업증명서, 자격증, 3개월 수업계획안, 가족 관계 확인서, 다른 것은 쉽게 준비할 수 있는데 수업안이 문제였다.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친 적은 있지만 수업안을 제출해 본 적은 없기에 당황스러웠다. 며칠이 지나도 못 만들 것 같은 중압감이 나를 감쌌다.
마감 날이 되었다. 달력을 보며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생각이 스쳤다. 내가 수업 계획안이란 것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것 없이도 수업을 해 왔으면 계획안이 아니라 보고서를 쓰듯 하면 되는 것 아닐까.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우선 달별로 나누면 되는 것 아닐까.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우선 달별로 나누고, 주별로 나누어서 한 칸씩 메워 나갔다. 인근 초등학교에 가서 팩스로 도착돼 있는 졸업증명서를 찾고, 서둘러 나머지 준비물을 완성하여 달려가니 마감 시간이 가까웠다. 여직원이 빠진 서류가 없는지 확인하는데 조용히 물었다.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도 되겠느냐고.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심사위원이 하는 일이라서 자기는 모른다고 짧게 말했다. 더 말하고픈 마음이 싹 가셨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요가에 응모가 많이 들어왔느냐고 하니 알려 줄 수 없다는 냉랭한 대답만 돌아왔다. 어쩌면 이렇게 쌀쌀할 수 있을까. 처음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보다 나갈 때 더 주눅이 들어 버렸다. 20일이 지나고서 뜻밖에도 합격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정말예요? 소리를 세 번은 연거푸 한 것 같았다. 이 기쁜 소식을 어디에 전할까.
눈이 많이 온 날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20명의 주부들이 나를 바라보고, 나는 단 위에 앉았다. 대개는 바닥에서 같이 앉아 하는데 이곳은 특별히 단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남몰래 강의실에 와서 단에도 몇 번 앉아보았건만 왜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렸을까. 어른들을 가르치는 것이 처음이란 것을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입 안에 침이 마르고 혀까지 떨렸다. 떨리니까 호흡이 빨라지고, 호흡이 빨라지니 동작도 숨 가쁘게 몰아쳤는지 끝나자마자 한 주부가 물었다.
"선생님은 요가 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순간적으로 등이 섬뜩했다.
"음~ 30년 되었을 겁니다. 우리 애들이 어릴 때부터 했으니까요. 우리 큰애가 37살이거든요."
묻지도 않은 아이 나이까지 튀어나왔다. 내 눈이 왜 그러시는데요? 묻고 있었는지 그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 너무 빨리 하시니까 좀~ 동작을 할라치면 금방 바꾸고 하니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이럴까. 현기증이 온몸을 관통했지만 태연하게 대답을 했다.
"아, 그러셨어요? 앞으로는 좀 천천히 하도록 해야겠네요!"
미소는 띠고 있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 후로 그 주부는 매시간 나에게 일침을 놓았다. 해맞이 자세 때 오른발이 뒤로 나갔으면 다음엔 왼발이 앞으로 나와야 되는 것 아니냐, 왜 명상은 하지 않나, 얼굴요가는 집에서 하게 두어라, 척추 펴는 동작이 너무 없다, 다른 데는 90분을 하는데 왜 60분만 하냐…. 이런 꼴통이 다 있나! 나의 화는 거의 매일 폭발했다. 아, 정말 그 사람만 아니라면 요가 하러 가는 길이 얼마나 행복할까. 다음 시간에는 또 무슨 소리를 해서 내 속을 뒤집어 놓으려나.
이때부터 나의 도서관 출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요가 책만 빌려 보았다. 그 사람에게 책잡히지 않으려고 읽고 또 읽으며 자세를 연구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발전하는 내 자신의 모습에 재미가 붙자 다른 책에도 눈이 가기 시작했다. 두껍고 무거워서 들기도 힘든 <인체해부도>를 빌리지 않나, 지압 책에, 조헌영 씨의 <통속한의학원론>도 보게 되었다. 매일 책을 들여다보니 식구들이 저렇게 공부쟁이였어? 놀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작년의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도 나를 궁지에 몰아넣던 그 주부는 반년을 나오다가 그만두었지만 나의 향학열은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다.
우리 집에서 예전에 양어장을 할 때 춘천에 향어를 가지러 가곤 했었다. 하늘색 수조에 넣어 가지고 올 때 가물치를 한 마리씩 넣는 것을 보았다. 무차별 공격이 특징인 가물치를 피하려고 향어들이 이리저리 피하느라고 도착해서도 팔팔하다는 이야기를 그때는 무심코 들었다. 내 요가 생활에 그 주부야말로 분명 가물치였다. 가물치 덕분에 나는 더 실력 있는 요가강사가 되려고 몸부림쳐 왔다. 더하여 야심 찬 꿈까지 꾸고 있다. 향남 읍뿐 아니라 화성 시에서, 아니 경기도에서 가장 요가를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
이제 더 이상 가물치를 징그럽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김민희 : 전국주부백일장 산문부 장원(1984). ⌜수필공원」으로 등단(1992). 수필집 『고부일기』 『이 고구마야』.
첫댓글 전국백일장에서 장원이었다는군요. 서한 생각이 나서 올려봤습니다.
글 전체가 다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재미는 있네요.
수필 공부하는 사람에게 타산지석으로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 꼬집어 줄 때는, 좀 아프거나 못 마땅해도 지나고나서 잘 생각해보면 나의 모자라는 점을 메울 수 있게 되지요. 죽비에 한 대 맞은 기분입니다. 정신이 번쩍 드네요. 장원감이 확실합니다.
가물치 라는 제목에 부합되는 명 수필입니다. 수필에 진면목을 이글에서 볼 수 있어 이글을 올리신 김선생님께 우선 감사를 드림니다. 좋은 주말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더이상 가물치를 징그럽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문장이 맘에 드네요. 저는 글을 빨리 쓰는 편이 아니라 백일장에서 상 타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더군요
오른쪽 어깨에 찜 팩을 올리고 읽었어. 주부다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