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펜클럽 』 을 읽고
치기 힘들면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우면 잡지 않는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은 박민규의 소설로 프로야구 원년에 인천을 지역 연고로 출범한 ‘삼미 슈퍼스타즈’ 팀이 후기 1할2푼5리의 승률로 5승35패라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참담한 기록을 작성했던 삼미구단의 추억을 그린 책이다. 이른바 최저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글이다.
야구를 잘 모르시는 분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이 팀이 이룬 성적은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우리를 압도한다.
* 82년 성적 전기 10승 30패, 후기 5승 35패, 팀 최다 연패 기록 보유(18연패, 85년 3월 31일~4월 29일), 시즌 최소 득점(302점, 82년), 2사 후 최다 실점(7점, 82년 5월 16일 대 OB) *
이 기록은 도저히 프로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록이다. 누구의 말따나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짜고 쳐도' 이루기 어려운 실로 놀라운 위업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부끄러운 팀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대강의 내용은 이러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에 열광하던 인천의 한 소년이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에 가입하여 팀의 부침에 따라 같이 울고 웃으며 팀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지낸다. 그러다가 팀의 계속되는 패배에 좌절하다가 나중에는 출세의 지름길인 소속의 중요성을 알고 열심히 공부하여 대기업에 입사, 결혼한다. 그러다가 이혼과 실직이라는 인생의 실패를 맛보고는 마침내 그동안 잊고 지낸 가슴속의 별과 같은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고 마지막 팬클럽을 재결성한다.
문학 비평가들은 그가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성장기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경쟁과 소속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야구와 인생을 서로 비유하여 비판한 글이라고 본다. 시니컬한 반대 입장의 사람들은 이 책의 가벼움과 경박함, 그리고 표절의 의혹이 다분히 있는 구성과 전개상의 비독창성에 비판의 논조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책을 읽고 그 느낌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유 불문하고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 팀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태동기부터 나는 인천의 삼미 슈퍼스타즈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며 꾸준한 열정으로 팀을 사랑해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 의 고향이 평안북도인 관계로 원적이 이북 용천이고 또 거주지가 인천이기 때문에 팀이 인천과 이북을 지역 연고로 한다는 점에서 정서적으로 끌리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평소에 약하고 힘없는 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성향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열렬한 팬이 되게 했다. 나의 팀에 대한 애정은 나중에 팀을 인수한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까지 꾸준히 이어졌으며 현대 유니콘스에 이르러서는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우승한 강팀의 펜이라는 강렬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했다. 지금도 나는 개인 홈페이지의 이름이 ‘우공의 유니콘스’이듯이 삼미의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의 열렬한 팬이다. 지금 거주하고 있는 제천에서는 아마 유일하게 아파트 현관문에 ‘현대 유니콘스’의 로고를 부착하고 매일을 자랑스럽게 다니는 사람은 나뿐이리라.
작가는 이 책에서 우리의 비굴한 80년대를 고작 1할 2푼 5리의 승률밖에 올리지 못하는 야구팀의 현실과 빗대어 우리의 평범함과 비겁함이 그렇게 자학만은 하지 않아도 되는 누구나에게 있는 평범한 삶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비평하듯 이 책은 이른바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는 인생의 실패자들이 갖는 애환을 너무나 가벼운 필치로 그려서 오히려 우리의 인생을 논의하기에 부박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흔히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한다. 어떤 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먼저 야구는 철저한 단체경기이다. 전통적으로 강한 팀을 보면 대개가 팀플레이를 우선하는 팀이다. 희생 번트와 희생 플라이, 팀 배팅, 대주자 및 대타자 기용 등은 대표적인 팀 위주의 전략이다. 그러나 야구만큼 선수들의 개인적인 역량과 기량, 그리고 정신적인 요소가 가장 많이 작용하는 경기도 없다. 그래서 흔히들 야구를 멘탈경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객관적인 승패를 섣부르게 점칠 수 없다. 강자가 약팀에게 물리고 그 약팀은 또 다른 전철을 밟는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인생에 절대강자는 없다. 누가 언제 어떻게 운명이 변할지 모른다. 인생역전, 임자 없는 의자, 세옹지마등은 인생의 예측 불가능한 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성공할 사람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확고하게 주어진다. 즉 명문대 출신들에게는 ‘명문’이라는 소속이 그들의 삶을 상류사회로 진입케 하고 안락한 생활과 명예로운 삶을 보장한다. 이 ‘소속’이 주는 매력은 책의 주인공과 그 아버지가 절절히 느끼며 추구한 목표이었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야구가 갖는 변화무쌍한 다양성이다. 야구의 결과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대강 짐작은 할 수 있다. 경기시작 전에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는 것을 면밀히 살피면, 아니 그것도 불안하여 최소한 2회 정도 까지 보면 그날의 승패를 약 70%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경험적인 판단과 분석력에 기인한다.
그러나 야구는 변화하는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결과를 알 수 없다. 흔히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야구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것은 결코 마지막까지 모든 가능성과 개연성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측 불가능한 인생사에서 우리 삶을 결단하고 선택하는 주체는 바로 ‘나’ 이기 때문이다.
책속의 주인공들인 삼미의 팬들은 삼미 팀이 초반의 승부중심의 냉혹한 프로세계에서 비참한 실패를 맛보는 것과 같이 자신들도 주류사회에서 아웃사이더로 서서히 밀려난다. 그렇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창단 후 첫 전지훈련을 갈 때부터 선수전원이 정장차림으로 가며 야구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고 장담하였듯이 애초부터 우승을 추구하고 이기는 팀은 아니었다. 왜? 책속에서는 엉뚱하게 군부세력의 음모론까지 들먹이며 이들의 실패를 합리화하지만 결국 원인은 출발이 달랐고 소속이 달랐기 때문에 주어지는 계층의 한 신분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언급함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추구한 것은 ‘치기 어려우면 치지 않고 잡기 힘들면 잡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무슨 괴상한 생각인가? 모든 프로경기의 속성이, 아니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이 경쟁과 효율, 그리고 최고를 추구하는데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본질을 뒤집어 추구하는 팬클럽을 결성하고 자신들의 본 모습을 찾아간다.
* 쳐낸 공은 인필드를 벗어나지 않고, 입맛에 딱 맞는 공은 그냥 서서 보낸다. 글러브에 빨려 들어오는 공을 멋있는 자세로 잡았다가는 큰일이 난다. 전력으로 달리면 3루타인 것을 일면서도 그들은 세상사 모두를 살피며 느릿느릿 2루에 도착 한다*.
물론 이것은 소설이 나타내는 허구이다. 그리고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시원하고 통쾌하다. 하루에 몇 번씩 사표를 썼다가 찢어버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고 야구팀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팀에 합류하라고 한다. 이혼을 도모하는 젊은 가장은 혼자 살아가는 묘미를 생각하니 아내의 얼굴이 그렇게 밉지만은 않다. 상사의 불합리한 지적은 그의 소속이 곧 바뀌어 상사를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일할 생각을 하니 그것도 꽤나 괜찮다. 스카이대학 출신들이 대머리가 많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내가 젊은 모습으로 앞서가는 청년이 된듯하다.
‘치기 어려우면 치지 않고 잡기 힘들면 잡지 않는다’
이 말은 쉽게 말해 ‘배 째라! ’식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야 만다.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왜?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 팀처럼 이 치열한 경쟁사회 자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곧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자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세상아, 내 배는 두껍다. 한 번 째보아라’ 하는 배짱은 세상을 내 위주로 만들지 않을까?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자칭 ‘올스타 팀’과 장렬한 경기를 치른다.
지금 나는 많은 독자들이 그러하듯 모든 것을 홀가분하게 털어버리고 경기의 본질에 충실 하는 경기를, 아니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마음은 그러하나 한편으로는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승부욕과 명예심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당장 오늘 저녁의 더블헤더 경기를 현대가 모두 독식하여 1위 자리를 고수하기를 원한다. 현대 유니콘스가 그러하듯 나 또한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하여 강력한 성취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까지 계속 ‘현대 유니콘스’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작가가 놀린다. 지금까지 무엇을 읽었느냐고 말이다.
(2004년 6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