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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 마리아의 신적 모성
1. 신적 모성의 조직신학적 중요성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칭은 모든 마리아론적 언급들의 가장 중요한 뿌리이다. 이 명칭으로부터 마리아에 관한 다른 모든 단언들이 나온다.
이 가장 중요한 마리아에 관한 교의는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론적 교의인 위격적 일치의 교의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느님의 아들의 인격 안에 (또는 위격 안에) 신적 본성과 인간적 본성이 결합된다. 에페소 공의회 (431)에서 테오토코스 Theotókos 라는 명칭의 정의는 분명하게 그리스도론적인 목적을 지녔다.
마리아는 하느님으로서 하느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그 낳음의 끝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정말로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2. 성경의 토대들
가장 중요한 단락은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갈라 4,4-5)이다. 선재하는 하느님의 아들이 «여인에 의해 태어났다».
루카에 의한 유년기의 복음에서 두 구절이 특별히 중요하다: ①«태어날 분은 거룩하시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루카 1,35). ②«주님의 어머니께서 제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루카 1,43). 여기서 “주님”은 퀴리오스 Kyrios 그러니까 하느님이신 주님이다.
3. 4세기 말까지의 교부학적 발전
1) 교부 시대에 마리아의 모성은 처음에는 예수의 참된 인성을 부정하는 영지주의적 흐름들을 반대로 강조되었다.
i) 가현주의자들에 따르면, 우리 주님은 참으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겉모양으로만 십자가에서 죽었을 것이다. 이 가현주의자들의 생각에 대한 반대로 이미 2세기 초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예수님의 참된 탄생과 참된 죽음을 강조한다.
ii) 영지주의자인 아뻴레 Apelle와 발렌티노 Valentino에 따르면, 예수님은 어머니로부터 참으로 육을 취함이 없이, 그러나 천상의 몸을 가지고서 관을 통과하는 것처럼 마리아의 태를 통하여 지나갔을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대하여 먼저 이레네오가 반대하고 예루살렘의 치릴로 (4세기)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말씀의 육화는 «표면적으로나 환상적인 방식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인 방식으로 발생했다. 관을 통하여 지나가듯이 동정녀를 통하여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녀로부터 육을 취했고, 우리처럼 실제로 먹고 우리처럼 실제로 마시면서 그녀에게 정말로 젖을 먹으며 양육되었다».
이것에 대해서 신경의 정식 안에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per Maria Virgine (그리스어 dià)가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ex Maria Virgine (그리스어 ek) 태어났다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모성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보증한다.
2) 그러나 하느님의 아드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신성도 강조한다. 이 핵심적인 진리는 아리우스 Ario 이단을 반대하는 니체아 공의회 (325)에 의해서 옹호되었다.
우리는 니체아 공의회 이전에 이미 알렉산드리아에서 테오토코스 즉 “하느님을 낳으신 분 genitrice di Dio” 이라는 용어를 만난다. 이 단어는 처음에는 이교 사상에서 나타나고 (2세기), 대개는 메테르 테이온 méter theíon (신들의 어머니) 라고 불린 신들의 신적인 어머니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용법은 이교적 신화를 다시 취하지 않는다; 성경적 근간들과의 관계는 매우 분명하다: 마리아는 하느님으로서의 하느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신성의 어머니”라고 말하지 않고), 육화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 이교 사상과 거리를 두기 위하여 (그리스어 권에서는) “하느님을 낳으신 분” 테오토코스 Theotókos 칭호를 선호하면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보다 빈번한 칭호의 사용은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피해진다.
테오토코스라는 칭호의 사용 시점에 관한 논의는 분분하다.
첫 번째 증언은 니체아 공의회 몇 년 전인 320년 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로 안에서 발견된다. 주교는 다른 주교들에게 보낸 회문에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신경을 설명한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겉보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으로 테오토코스인 마리아로부터 육체를 받았다». 324/325년에 안티오키아 시노드는 아리우스를 반대하여 알렉산드리아 신경을 인용하고 반복한다: «말씀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은 테오토코스 마리아로부터 태어났고 육이 되셨다». 이 칭호는 용어의 의미를 바꾸면서 일지라도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도 사용될 만큼 그렇게 이미 일반적이었다.
역사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3세기 또는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모래에 묻혀 있던 파피루스 안에서 가장 오래된 마리아 기도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이 기도에서 테오토코스 칭호가 나타난다.
이러한 주목들은 이 칭호의 첫 번째 기원으로 3세기경을 우리에게 보고한다. 사실 역사가 소크라테 Socrate (†450)는 이미 오리게네스 (†254)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그것을 길게 설명했었다고 언급한다. 어쨌든 이 칭호는 4세기 동안 폭넓게 퍼진다.
이 칭호는 안티오키아에서는 신학이 다소 반대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도 퍼진다. 안티오키아에서의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두 본성을 강조하고 “말씀/사람”
(Logos/anthropos) 스케마를 선호한다. 반면에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은 “말씀/육” (Logos/
sarx) 스케마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단일성에 초점을 맞춘다.
안티오키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체의 단일성을 간과하는 위험을 무릅쓴다; 알렉산드리아인들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받아들이는 데 보다 준비된 데 반해 안티오키아인들은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하느님의 아드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에서처럼 산다, 분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요한 크리소스토모 (그곳에서 테오토코스라는 칭호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와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 Teodoro di Mopsuestia (†428, 그러니까 431년 에페소 공의회 이전에)의 스승인 타르소의 디오도로 Diodoro di Tarso (†394)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티오키아 신학자들의 회의주의에도 불구하고 테오토코스 칭호는 4세기 말에는 동방에서 보편적으로 퍼진다. 서방에서 이 용어는 하느님을 낳으신 분 Dei genitrix에 대해 말하는 스페인 사람 쁘루덴찌오 Prudenzio (†405)의 저술들에서 처음 발견된다. 반면에 암브로시오는 하느님의 어머니 mater Dei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다음과 같이 언급할 수 있었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았다».
4. 신적 모성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의 이교적 기원?
테오토코스 Theotókos라는 용어는 자체로 이교적 기원을 가진다. 그래서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종교의 역사에 대한 자유주의적 흐름은 “하느님을 낳으신 분 Genitrice di Dio”이라는 말의 이교적 기원을 고대 그리스도교 사상이 다양한 종교들로부터 유래된 혼합주의였다는 논증에 대한 입증이라고 간주했다.
이들에 따르면, 신들의 어머니들에 대한 다양한 경배들이 마리아 신심과 신적 모성의 가르침의 원천일 것이다. 이 학파의 신학자들은 테오토코스교의가 여신 아르테미데 Artemide (Diana)에 대한 경배의 중심지로 알려진 도시인 에페소의 공의회 (431)에서 선포되었다는 것을 주목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종교의 역사에 대한 자유주의적 흐름에 대한 논문들은 단순하게 잘못되었다. 신적 모성의 가르침은 계시 자체로부터 유래한다. 고대 교회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사상에 이교적 요소들의 무차별적 수용에 대한 지지자들이 아니라, 이교 종교들을 대개 악마의 나타남으로 간주했다. 예를 들어서 떼르뚤리아노는 치벨레 Cibele (신들의 어머니)를 마냐 마뗄 대모눔 magna mater daemonum (사탄들의 위대한 어머니)라고 부른다.
마리아 신심과 여신들에 대한 경배는 어쨌든 종교 안에 여성적 상징의 중요성을 공통점으로 가진다. 고대 교회에서 여성적 상징주의에 대한 종교적 중요성은 구원의 과정에 인간의 협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강조되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용어에 있어서도 주의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교 사상에서 흔히 사용되었던 (특히 이시데 Iside에 대한 경배에서) 메텔 테우 méter theou 라는 용어 대신에 덜 유명한 용어인 테오토코스 Theotókos 용어가 의미의 변화와 함께 선호되었다.
«마리아와 이시데의 차이점은 아주 명확했다: 마리아는 “주님의 여종”이기도 했고 그의 아들이 참 하느님이며 참 사람인 순결한 동정녀였던 데 반해, 이시데는 그의 아들을 수난 중에 잉태했고 육화의 신비스런 계획으로부터 완전히 멀었던 여신으로 알려졌다».
에페소에서 테오토코스 교의가 정의되었다는 사실로 인해서 일부의 프로테스탄트 저자들은 이것에 대한 여신 어머니 아르테미데 경배의 영향을 의심했다. 테오토코스 명칭의 선포에 기뻐했던 에페소 사람들의 열광은, 프로테스탄트 저자들의 저 그룹에 따르면, 공의회의 교의적 정의에 관한 이교적 영향의 “입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찰은 역사적 실재에 반대이다.
테오토코스 명칭은 에페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유래한다. 에페소 도시가 고트족에 의해 짓밟혔을 때 아르테미데 경배는 263년부터 이미 죽었다. 마리아의 모습은 그리스도교 사상에로의 개종 이전에 사람들 안에 있었던 여성의 실재를 고양하기 위하여 언급된 종교적 감정들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상징의 심오한 변형에로 향했다: 여성의 품위는 구원의 과정에서 피조물의 협력의 표현이 되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전혀 숨겨진 여신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협력하도록 불리운 보다 거룩하게 창조된 인격이다.
5. 에페소 공의회 (431)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pp. 348-350를 참조하십시오)
4세기 말에 테오토코스 명칭은 이미 폭넓게 퍼졌고, 특히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신앙의 보물로 간주 되었다. 그러므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가 이 명칭의 사용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교회 일치적 스캔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이 솟았다.
428년에 선출된 총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는 테오토코스 (하느님을 낳으신 분)나 안트로포토코스 antropotókos (인간을 낳으신 분)로 부르는 것이 필요했는지에 관한 토의에서 충돌했다.
“타협” 의 정식으로서 네스토리우스는 크리스토토코스 Christotókos (그리스도를 낳으신 분) 라는 명칭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테오토코스의 사용은 말씀이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즉 고통에 접근할 수 있는, 그러니까 피조물)고 생각했던 아리우스 신학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유일한 위격 (prósopon)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두 주체 사이의 윤리적인 결합만을 의도했다. 그의 어려움은 그의 출신지인 안티오키아 학파의 전형적인 것이다. 안티오키아 학파에서는 유일한 위격이 신적이며, 인간적인 속성들의 운반자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위격적 결합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테오토코스라는 이 명칭은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에 의해 옹호되었다: 우리가 말씀이 태어났고 고통을 받았다고 말할 때, 이것은 신성이 태어났다거나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결합된 인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육을 취한 영원한 아드님을 낳았기 때문이다.
네스토리우스도 치릴로도 교황 첼레스티노에게로 향했고, 교황은 치릴로의 편을 들었다. 황제에 의해 소집된 에페소 공의회 (431)는 네스토리우스에게 보낸 치릴로의 두 번째 편지를 토대로 받아들였다.
요약하자면: 하느님이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며 이로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인식되어야만 한다. 테오토코스는 문자적으로는 «하느님을 낳으신 분»을 의미한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영원하신 탄생의 문제가 아니라, 유일하게 예수님의 인간적 탄생의 문제라는 것이 분명하다. 마리아에 의해 말씀이 «육에 따라 태어났다».
더 나아가서 마리아가 “삼위일체”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이신 아드님의 어머니이다. “하느님”은 그러므로 유일하게 말씀의 위격을 가리킨다.
마리아는 “신성의 어머니”라고 불리지 않는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는 교황 사절들과 시리아 주교들 (그러니까 안티오키아인들)이 도착하기 이전에 공의회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교황 사절들 (그리고 교황)은 빠르게 동의를 표했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와 안티오키아의 주교들 사이의 결합의 정식은 두 해 후인 433년에야 세워졌다.
433년의 결합의 정식은 이미 451년의 칼체돈 공의회의 정의를 준비한다: 그들 사이에 분리도 되지도 않고 혼합되지도 않은 본성의 이원성과 함께 그리스도의 위격적 결합이 강조된다. 이러한 정황에서 다시 테오토코스 명칭이 나타난다: «신성에 따라 세기 이전에 성부로부터 나신, 그리고 이 마지막 때에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인성에 따라 동정녀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로부터 나신 유일한 바로 그 아들...» (DH 301).
반 네스토리안적 요구의 재개, 우리는 그것을 교황 요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의 원로원에 보낸 편지 (534년) (DH 401) 안에서 그리고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553년)에서 만난다. 네스토리우스를 반대하는 치릴로의 파문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DH 252-263).
6. 에페소 이후의 시기에 가르침의 심화
에페소 공의회 후에 이 가르침은 귀중하고 궁극적으로 심화된 보물로서 유지되었다. 모성에 관한 교의적인 훌륭한 종합은 교부시대 말에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에게 있어서 테오토코스 용어는 구원의 모든 신비, 전체 경륜을 표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본성 안에 성자의 유일한 신적 위격을 계시하기 때문이다.
중세에 신적 모성은 대개 육화에 대한 조직신학적 정황 안에서 소개되었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 탄생의 유비를 사용한다. 우리의 부모들은 우리의 영혼을 낳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육신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모든 여인이 그의 아들이 그녀로부터 그의 육신을 취하기 때문에 “어머니”라고 불리기 때문에, 복되신 동정녀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릴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드님은 그녀로부터 그의 육신을 취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그의 신적 위격의 일치 안에서 인간 본성을 취했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또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또한 인식해야 한다.
가르침의 중요한 심화는 페르소나 persona (인격 또는 위격)의 개념과 관계가 있다. 모성은 그 자체로 본성 (natura)이 아니라 페르소나 persona에 관계된다.
잉태와 탄생은 페르소나가 잉태되거나 태어나는 그 본성에 따라 페르소나에 속한다. 인간 어머니는 한 본성이 아니라 한 페르소나를 분만한다. 말씀의 신적 페르소나 (위격)가 인간의 본성을 취할 때 하느님의 아드님이 동정녀로부터 잉태되었고 분만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는 정말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려야 한다.
다른 중요한 공헌은 프란치스코 수아레즈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는 위격적 질서 안에서 마리아의 지위에 대해 말한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위격적 결합 안에서 인간 본성을 취했던 하느님의 아드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다.
마리아는 분명하게 위격적 결합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긴밀하게 아들의 위격에 결합된다: 그녀는 “위격적 질서”를 이룬다. 18세기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공헌은 쉐벤 Scheeben에게 속한다. 그는 마리아의 “개인적인 특성”과 “신부적 모성”에 대해 말한다.
교도권의 문헌들 중에서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에 (1931년 12월 25일) 쓰여진 비오 11세의 진리의 광채 Lux veritatis 회칙을 넘어서 일신론자들(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고, 그래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도 부정했던)의 분파에 대항하는 바오로 4세의 교서 (1555) (DH 1880)가 언급되어야 한다. 교황은 신적 모성의 교의적 중요성에 대한 폭넓은 묘사를 제공한다. 비오 11세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사목적인 측면들도 설명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에서 다룬다.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은 동정녀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낳았던 하느님의 어머니와 교회 사이의 비슷함을 강조한다.
성 암브로시오의 표현에 따라 마리아는 “교회의 전형” (typus Ecclesiae)이다. 교회는 하느님 말씀을 신앙으로 받아들여 “어머니”가 된다. 교회는 복음의 설교와 세례를 통하여 성령에 의해 잉태된 그의 자녀들을 출산한다.
교회는 «동정적으로 온전한 신앙, 견고한 희망 그리고 신실한 사랑을» 보존하면서 그의 신적 신랑에게 주어진 약속을 유지하기 때문에 동정녀이기도 하다.
1969년의 전례력 개혁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대축일을 1월 1일에 배치하면서 도입했다. 대축일은 1931년 비오 11세에 의해 배치되고 10월 11일에 놓여진 신적 모성의 축일을 대체한다. 비잔틴 교회에서 테오토코스의 대축일은 12월 26일에 거행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Redemptoris Mater (1987)에서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교의가 에페소 공의회를 통해서 있었고, 말씀이 인간 본성을 무화시킴 없이 자신의 위격의 단일성 안에 실제로 취하는 육화의 교의의 인장으로서 교회를 통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여성의 존엄성에 관한 그의 사도적 편지에서 (여성의 존엄 Mulieris dignitatem, 1988) 교황은 모든 여인의 소명과 신적 모성의 관계를 나타낸다.
교황은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1600주년 그리고 에페소 공의회 1550주년 기념 때 (1981) 그의 사도적 서한에서도 테오토코스 칭호의 항구한 중요성을 반복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나의 인간의 인격으로서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일부 신학자들 (그들은 아리우스와 네스토리우스의 옛 이단들을 쇄신했다)의 제안도 비판했다; 이 경우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일 수 없을 것이다. 힘차게 교황은 2000년 대희년 준비 동안에 신적 모성을 강조했다. 거기에 대해서 교황 베네딕또 16세도 그의 에페소 방문 동안에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그리고 일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에 머무르면서 언급했다.
7. 일치적 측면들
에페소 공의회는 원칙적인 노선에서 모든 그리스도교의 동의를 얻는다.
1) 그러나 테오토코스 호칭은 에페소 공의회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안티오키아 전통의 영적 상속자들에 의해서는 사용되지 않았고, 오늘날 매우 작은 그룹이 된 (약 400,000명의 회원) 동방의 아씨라 교회를 이룬다. 이들은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 그리고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1994년에 아씨라의 총대주교 마르 딩카 Mar Dinkha 4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오늘날 가톨릭 교도들과 아씨라 교도들이 하느님의 아드님에 관한 동일한 신앙 고백에 결합되었다는 그리스도론적 선언에 서명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혼합도 없이 그리고 분리도 없이 하나의 위격에 결합된다.
아씨라 교도들은 우리의 하느님이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공경한다. «같은 신앙의 빛으로 가톨릭 전통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우리 둘은 같은 신앙의 이러한 표현들의 정당함과 올바름을 인식한다...».
2) 프로테스탄트에 관해 말하자면, 종교개혁의 신학자들은 테오토코스 호칭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위격적 결합의 그리스도론적 교의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원칙들은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의 무가치함을 준비한다. quem meruisti portare («너는 모시는 공로를 세웠다») 라는 표현을 포함하는 천상의 여왕 Regina coeli의 설명에서 루터는 마리아의 품위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나무의 품위와 비교한다: 모든 것은 무상으로 된 것이고 마리아에게 어떤 공로를 부여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가톨릭의 가르침에 있어서 은총의 제일의 요소는 인간의 협력을 배제하지 않는 데 반해, 은총만으로 sola gratia의 프로테스탄트의 원칙은 은총에 의해 지지된 어떤 공로도 없이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의화를 세운다.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에페소 공의회의 결과가 받아들여지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능동적 공헌은 거부된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이러한 모호함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된다.
20세기의 보다 유명한 칼빈주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 Karl Barth는 테오토코스 호칭이 성경에 기초가 있고 (갈라 4,4; 루카 1,43) 그리스도의 유일한 주체 안에 두 본성들 사이의 참된 일치를 올바르게 강조하는 «그리스도론에 대한 밑받침이 되는 언급»이라고 지지한다. 반면에 자유주의적 신학의 영향은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삼위일체에 대한 결별과 함께 다른 저자들 안에서 신적 모성도 붕괴하게 한다.
이로써 근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테오토코스 호칭에 대해서 나누어졌고, 그 호칭이 성자의 신적 본성을 낳은 마리아의 자연적인 힘을 암시하리라는 논증과 함께 대개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이 거부된다. 일부의 저자들은 테오토코스 용어와 함께 신화가 마리아론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지지한다.
3) 영국 성공회에서 우리는 고대 교회에서 정식화된 마리아 교리에 대한 더 큰 수용을 만난다. 에페소 공의회와 칼체돈의 정의의 수용에서 영국 국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함께 마리아를 테오토코스로 고백한다.
8. 조직신학적인 측면들
1) “하느님의 어머니”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의 이해를 위해서 중요하다
에페소 공의회의 첫 번째 의도는 마리아 신심이 아니라, 네스토리우스를 반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테오토코스 호칭은 육화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위격적 주체의 단일성을 명확하게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적 인격으로서 묘사될 때 네스토리우스적 위험은 오늘도 현존한다.
2) 신적 모성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 (예정)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리아는 그의 모성적 과제를 위하여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준비되었다: «말씀의 육화와 함께 하느님의 어머니로 영원으로부터 예정된...». 비오 9세와 비오 12세 교황은 무염시태와 성모 승천을 정의하기 위한 그들의 교서에서 하느님께서 «단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뜻으로 마리아의 기원과 신적 지혜의 육화를» 미리 세우셨다고 반복한다.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마리아의 구원적 과제와 구세주의 사명은 긴밀하게 결합된다. 천사의 인사와 “은총이 가득하신 이” (루카 1,28) 라는 이름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아드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선출에 관계된다». «완전히 예외적이고 유일한» 선출, «여기에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그의 위치의 특수성과 단일성도 관계된다».
3) 신적 모성은 마리아의 성성에 의해 준비되었다
원죄로부터의 보호는 육화를 위하여 일어난다. 마리아의 성성은 신적 모성 자체의 은총으로서 무상의 선물이다.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지탱된 그의 성성과 함께 마리아는 하느님 계획의 의도들과 만나게 된다.
4) 신적 모성은 변형시키는 관계를 동반한다
루카 복음의 이야기에 따른 (루카 1,26-38) 마리아 위에 성령의 강림은 창조의 행위 (창세 1,2)와 계약의 궤 안에 하느님의 현존 (탈출 40,34)을 불러일으킨다. 주님 탄생 예고에서 일어난 육화와 함께 마리아는 순결함과 하느님께 대한 동화의 새로운 단계에 도달한다.
마리아의 존재의 시초에 무염시태의 은총 안에서 준비된 신적 모성은 성령의 힘을 통하여 인간 본성을 그녀로부터 취한 그의 아들과의 관계 때문에 마리아를 하느님께 성별한다. 쉐벤에 따르면, 신적 모성의 은총은 마리아의 삶의 시초에 이미 그녀 안에 현존한다.
그는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과의 영적 결혼과도 동일시하면서 “개인적인 특성”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거룩한 동정녀의 그리스도와의 모성적 관계를 묘사한다. “개인적인 특성”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며 “신부”라는 것을 함축한다. 이렇게 쉐벤은 “신부적 모성”의 개념에 도달한다.
쉐벤의 이러한 조직신학적 개념은 신적 모성이 예수의 육체적 탄생에 제한되지 않는 역할인 마리아의 중재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가톨릭의 확신을 견고히 한다. 마리아의 “신부적” 모성은 교회의 교부들 안에서 그리고 교도권으로부터 여러 번 인용된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명한 언급에서 이미 그 표현을 발견한다: 주님 탄생 예고의 사건은 «하느님이 아드님과 인간 사이의 하나의 영적인 결혼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적합했다. «그래서 주님 탄생 예고를 통하여 모든 인간 본성의 대표자로서 동정녀의 동의가 기다려졌다».
5) 신적 모성과 함께 마리아는 구원의 역사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취한다
육화는 구원의 역사를 앞서는 전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룬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동의는 복되신 동정녀의 생명의 시초에서부터 주어진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 가능하게 된 구원적 특성을 지닌다. 마리아의 협력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은 육화에서 이미 시작한다. 그리스도가 “새 아담”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마리아는 “새 하와”로서 일한다. 이 둘은 모두 죄에 떨어진 인류를 쇄신하기 위하여 결합된다.
6) 신적 모성은 교회를 위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의 시작이다
신적 모성은 신비체의 머리로서 육화한 말씀의 위격과 긴밀한 관계 안에 있다. 마리아의 영적 모성에 관한 가르침의 발전을 위한 초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 안에서 인용된 아우구스티노의 아주 유명한 본문 안에 있다:
«저 머리이신 분의 지체를 형성하는 신자들이 교회에서 탄생하도록 사랑으로 협력했다는 의미에서 어떤 의심도 없이 그의 지체들인 우리의 어머니이시다» (LG 53).
교회의 구성원들의 영적 탄생에 대한 마리아의 협력은 보편적인 측면에로 열려진다. 육화에 기초한 영적 모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실한 모든 제자들의 전형인 요한의 “어머니”로 마리아의 소명을 계시할 때 십자가 아래에서 확고히 되고 충만하게 이루어졌다.
7) 신적 모성은 마리아를 다른 모든 피조물 위에 들어 높인다
이미 신약 성경은 주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지극히 높으신 품위에 대해 암시한다. 이것은 천사의 인사에서 (루카 1,28: «문안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 은총이 가득한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또한 엘리사벳의 말씀들 안에서도 (루카 1,42: «여인들 중에 복되시고 당신 태중의 아들도 복되십니다! 나의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리고 마니피캇의 찬미 안에서 (루카 1,48: «이제로부터 모든 민족이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분명해진다.
예를 들자면, 3세기에는 사도들에 비해 마리아의 더 큰 은총이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4세기에 우리는 다른 모든 피조물에 비해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더 큰 고귀함을 강조하는 명확한 증언들을 만난다.
에페소 공의회와 함께 그러한 확신은 보편적이 된다. 이러한 신앙의 반향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만난다: 신적 모성의 선물로 마리아는 «천상과 지상의 다른 모든 피조물을 훨씬 앞선다».
신적 모성으로부터 나오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창조된 인간과 창조주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관계이다.
8) 신적 모성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특별한 관계를 이룬다
17세기의 신학적 작품은 마리아를 «삼위일체의 거울이며 계시»라고 부른다. 주님 탄생 예고의 신비는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비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의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와의 관계에 대한 세밀한 요약을 제공한다: «그의 아들의 공로로 탁월한 방식으로 구원되고 그에게 긴밀하고 풀 수 없는 끈에 의해 결합되어 하느님의 아드님의 어머니라는 최고의 직무와 품위가 주어졌고, 그래서 성부의 사랑스런 딸이고 성령의 성전이다: 성령을 통한 예외적인 은총의 선물은 천상과 지상의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훨씬 앞선다».
마리아는 이미 하느님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성부의 사랑스런 딸”이며 “성령의 성전”이었다; 그러나 성부와 성령과의 관계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와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한 출발점인 신적 모성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딸”이라는 칭호는 천상의 성부와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더 자주 채택된 칭호이다. 우리는 이미 “시온의 딸”이라는 구약 성경의 유형 안에서 예표를 만난다. 동시에 마리아의 자녀됨은 «아빠, 아버지!»라고 기도할 수 있는 모든 세례 받은 이들의 양자적 자녀됨에 유사하다 (참조. 갈라 3,26; 4,4-7).
확실히, 마리아는 성부의 “사랑스런” 딸이기도 하다. 이 배타적인 관계는 그리스도를 성부 하느님과 동정 마리아의 공동의 아들로서 묘사했던 교회의 교부들의 숙고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칼체톤 공의회에서도 만난다: «신성에 따라 세기 이전에 성부로부터 나시고 이 마지막 때에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동정녀이시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로부터 인성에 따라 나셨다» (DH 301).
고대 교회에서 성부 하느님과 함께 하는 마리아의 “혼인적” 관계에 대한 앎도 시작한다.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 Munificentissimus Deus (1950)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의 승천을 정의했고, 언급한다: «성부의 신부가 천상의 신방에 거주하는 것이 필요했다». “신부”라는 칭호는 중세에서 더 일상적이 된다.
올리에 Olier에 따르면, 성부는, 마리아가 육화 안에서 그와 함께 말씀의 시간적 탄생의 시작이 될 수 있도록 마리아를 그의 신부로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의 신부”라는 칭호는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아들의 영원한 탄생을 부여하는 오해의 여지 때문에 매우 일반적이지 않은 반면에, 그의 공헌은 일시적으로는 명확히 남는다.
어떤 면에서 마리아는 성부의 “여성적 모습”이라고, 특히 그의 자비와 온유를 계시하면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되신 동정녀는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모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창조된 실재의 최고점을 나타내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이 강조된다.
아들과의 관계를 지적하기 위하여 틀림없이 “어머니”라는 호칭은 근본적이다. 그러나 이미 교부시대에 그리고 중세에 더 우리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동반자로 이해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마리아에 대한 묘사를 만난다.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호칭은 성경의 원천으로부터 시작하면서 다소 교회를 위하여 사용되었다 (특히 에페 5,21-33).
오늘날 “신부” 호칭은 성령과의 관계를 통해서 더 퍼져 있다. 마리아를 “성령의 신부”로 소개한 첫 번째 사람은 성 프란치스코였다. 이 습관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제3위의 “협조자”로서 강조되었기 때문에 정당화된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 성령에 의한 탄생이 있다는 생각을 피하기 위해서 마리아의 “신랑”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성령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육화에서 그의 행위는 탄생과 함께가 아니라 첫 번째 창조와 함께 루카 복음에서 비견된다. 보다 최근의 마리아론은 그러한 칭호를 피하려 하고, 마리아를 성령의 “성전”, “거처” 또는 “지성소”라고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 (LG 53).
다른 한 편 “성령의 성전”이라는 묘사는 마리아의 성령과 함께 하는 특별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치 있는 것만을 숙고한다. “성령의 신부”라는 표현은 복되신 동정녀의 특별한 특징을 나타내는 장점을 지닌다. 배타적으로 마리아에게만 (봉헌된 동정녀들에게가 아니라) 이 칭호를 사용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작품들 안에서 이미 그렇게 보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간과된 이 칭호를 새롭게 강조한다. 교황은 명확하게 “성령의 신부”로서 마리아가 성령과 특별한 관계를 놓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과 같은 단지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넘어간다는 것을 언급한다.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인 마리아 공경 Marialis cultus (1974)에서 마리아 신심의 삼위일체적 특징을 강조했다. 마리아는 우리가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로 향하도록 돕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주님 탄생 예고가 마리아와의 관계 안에서 삼위일체의 계시를 우리에게 언급한다고 상기시킨다.
마리아는 이러한 방식으로 피조물의 최고의 소명을,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소명을 실현한다. 다른 한 편, “성령의 신부”와 “성부의 사랑스런 딸”이라는 표현의 특별한 사용도 비춘다. «여기서 마리아의 특권의 삼위일체와의 예외적인 관계들의 진정한 의미가 나타난다: 이들은 마리아를 인류의 구원에 협력하는 데 적합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