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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셉수트 여왕
하트셉수트(c. 1498-1483 BC) 조각상, 석영 섬록암 보스톤 세공 박물관
여왕 아흐모세, 파라오 투트모세 1세, 공주 네페루비티-하트셉수트의 가족
제세르-제세루는 하트셉수트의 장례사원 복합체의 주 건물이다. 데이르 엘바흐리에 있는데 그녀의 재상 세네무트에 의해 설계되었다.
하트셉수트 스핑크스
하트셉수트 사원의 오시리스 석상
하트셉수트 사원
3. 소말리아 내전
소말리아는 영국 보호령이었던 북부와 이탈리아의 신탁통치를 받던 남부로 갈라져있었다가 1960년에 통일해서 그 결과로 소말리아 민주 공화국이 탄생했다. 1969년 시아드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1991년까지 22년간 소말리아 대통령을 역임했다.
미국은 친소정부였던 시아드 바레 집권부를 지지했다. 1986년 시아드 바레가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부족들을 특수부대인 레드 베레로 공격하자, 소말리아 혁명이 시작되었다.
1991년 1월 26일 시아드 바레 대통령이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군벌연합의 쿠데타로 축출되어 퇴임한 이후, 소말리아 혁명에 반대하는 혁명이 발생했다. 내전에 따른 폭력의 증가는 인권 마비, 무정부 상태를 초래했다.
내전이 격화되자, 소말릴란드라고 불리는 소말리아 북서부 지역이 소말릴란드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다. 북동부 지역은 푼트랜드라고 불린다. 푼트랜드도 1998년 자치 공화국을 선포했으나, 인접한 소말릴란드와 달리 푼틀란드는 소말리아에 대해 명백하게 독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1993년 소말리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부대인 델타 포스를 모가디슈 전투에 파병했다가 현지 민병대원에게 헬기 두 대가 격추당하고 18명의 병사가 체포돼 목숨을 잃었던 이른바 "블랙호크 다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1991년부터 20년간의 내전속에서 소말리아인 4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57만 명은 난민이 돼 인접국으로 떠돌고 140만 명이 살던 곳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소말리아인들은 지금의 무정부 상태보다 시아드 바레 정부 시절이 훨씬 좋았던 '황금시기'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말리아 인권단체들은 정부군의 20%(5000∼1만 명), 반군 병력의 80%가 소년병이며 9세 어린이까지 전장에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대륙 동북쪽 뾰족하게 튀어나온 반도에 위치한 소말리아. ‘아프리카의 뿔’로 불렸지만 이제는 ‘실패한 국가’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게 됐다. 지난달 26일로 20년을 넘긴 내전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그동안 약 4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67만명가량은 난민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다. 소말리아 내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민이 된 사람도 142만여명에 달한다. 부족에 뿌리를 둔 세력들이 벌이는 내전으로 인해 소말리아의 젊은 세대들은 총과 함께 성장해 총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생계를 위협받은 사람들은 해적으로 내몰린다. 무법천지가 된 소말리아 사태의 출구는 과연 없는 것일까?
미국과 국제사회도 사실상 손을 뗀 상태다. 아프리카연합(AU) 평화유지군 8000명 정도가 배치돼 있지만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상태다. 미국의 소말리아 개입 실패는 영화 <블랙호크다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92년 클린턴 행정부가 군벌 소탕을 내세워 모가디슈 작전을 펼쳤지만 오히려 군벌의 포탄에 맞아 최첨단 블랙호크 전투헬기가 추락했다. 이후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도 군벌의 공격에 노출됐다가 95년 소말리아 활동을 실패로 규정하고 완전 철수했다. J 팜 피터 전미외교정책위원회(NCAFP) 부대표는 AFP통신에 “미국과 유럽연합이 9000명의 무장군을 훈련하는데 수백만달러를 퍼부었지만 과도정부는 무력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 부대는 1000명만이 남은 상태다.
최근에는 ICU의 무장분파인 알샤바브가 폭탄테러를 일삼으면서 소말리아가 국제 테러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다. ICU가 물러나는 과정에서 유수프 정권을 지원해 정부군을 파견했던 에티오피아와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던 우간다, 부룬디가 알샤바브의 주 공격대상이었다. 활동 반경을 넓힌 알샤바브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무장세력과 연계하는가 하면, 알카에다와의 연합을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미 당국은 알샤바브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소말리아계 미국인들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미국 본토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전했다.
◇ 실패한 국가, 고통받는 국민 = 만성적인 내전에 노출된 소말리아 국민들은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소말리아가 ‘실패한 국가’ ‘무법천지’로 불리는 이유다. 소말리아 주민의 평균수명은 유럽연합(EU)의 3분의 2 정도로 50세가 채 되지 않는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유엔난민기구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말리아는 아프간과 이라크 다음으로 많은 망명자들을 양산하는 나라가 됐다. 지금까지 약 67만명이 케냐, 예멘, 에티오피아 등 외국으로 망명했으며, 전투가 지속되면서 집과 일터를 잃은 사람들도 140만명이 넘는다.
수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에 노출된 상태고 목숨을 걸고 외국으로 도피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낡은 밀수 선박을 타고 아덴만 너머 예멘으로 향하던 소말리아 난민들이 바다에 빠져 익사하거나 실종되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정치적인 안보와 안정이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소말리아가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건 당연하다고 영국 BBC 방송이 지난달 26일 보도했다. 소말리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달러(약 66만원) 정도로 세계 하위권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하루 2달러 이하의 최저생계비로 연명하는 빈곤층도 인구의 75%에 달한다. 세계은행은 아예 소말리아의 실업률을 산출하지 않는다.
자생적 소득원을 찾지 못한 소말리아의 경제는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100만명가량의 난민들이 송금하는 돈에 의존하고 있다. 소말리아에 송금업체를 만든 이스마엘 아메드에 따르면 연간 약 20억달러(약 2조2280억원)가 송금되고 있다. 90년대 후반 유엔 조사에 따르면 소말리아 경제의 약 67%가 해외송금액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최근엔 그 의존도가 더 커졌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아메드는 “40%의 소말리아 가정이 단지 해외송금액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소말리아 경제의 생명줄과 같다”고 말했다.
식량사정도 좋지 않아 굶주림은 이미 일상이 됐다. 장 지글러는 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소말리아 군벌들을 굶주림의 주 원인으로 지적했다. 무정부상태와 군벌들 간의 무력 충돌로 70%가 농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경작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외부의 식량원조도 차단되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어렵게 도착한 구호품도 대부분 군벌들의 차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해적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으로 꼽힐 정도다. 3300㎞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긴 소말리아 해안은 해적들의 근거지가 됐다. 북부 아덴만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이중에는 외국 어선들이 트롤어선으로 참치, 새우, 바닷가재 등 연간 3억달러(약 3300억원)어치의 어류를 싹쓸이하면서 해적으로 돌아선 가난한 어부들도 있다. 외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어족자원의 씨가 마른 탓이다.
그런데도 사실상 무정부상태의 소말리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무능한 소말리아 정부가 국민들을 해적 행위를 하도록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미국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 ‘원 어스 퓨처 재단’이 발표한 ‘해적의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44건의 소말리아 해적 행위가 있었고, 인질의 몸값도 540만달러(약 60억6000만원)에 달했다.
◇ 해답은 없나 = 소말리아의 정치는 ‘약한 정부는 더 많은 폭력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다시 정부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며, 그 결과 더욱 강력한 폭력이 반복되는’ 악순환(뉴욕타임스)을 보이고 있다. 승자없는 내전이 지속되는 끝이 안보이는 혼란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뒤늦게 그동안의 소말리아 문제 해결방식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지역전문가인 존 프렌더개스트는 2009년 블로그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국가통합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의 군사적 접근은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행정부가 해왔던 보복성을 띤 군사적 접근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 행정부는 2009년 치안 병력을 지원해 정권안정을 도모하는 쪽으로 소말리아 전략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지 치안불안 해소가 해묵은 내전을 종결하는 첫 단추라는 판단에서다. 필립 카터 미 국무부 아프리카담당 차관보는 이 역시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친미정권이 반정부 세력에는 되레 좋은 공격거리가 될 수 있어서다.
피터 NCAFP 부대표는 “국제사회가 소말리아에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뻔한 수작”이라면서 “새로운 전술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소말리아가 부족과 군벌에 근거한 정치방식을 택한 이상 “현재의 과도정부 수립 방식처럼 위에서부터 아래로 중앙집권화된 국가를 세우려는 야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말리아 과도정부와 국제사회가 논의하고 있는 헌법개정안의 완료시한은 오는 8월이다. 하지만 국가의 통합성에 대해서조차 의견이 갈리고 있어 새헌법이 어떠한 희망의 이정표도 되기 힘들 것임을 예견케 한다. 1960년 제정된 구헌법은 ‘하나의 소말리아’를 지향하고 있지만, 개헌논의 과정에서 거대부족간 권력분점을 위한 연방제 의견도 만만치 않아서다. 하지만 소수 부족 또는 비무장 부족의 경우 연방제 내에서 더욱 차별받을 것이라는 비관적 관측(카타르 대학 아프야레 델미 교수)도 제기되고 있다.
소말리아 군벌도, 국제사회도 모두 길을 잃은 상태가 앞으로도 적지 않은 세월동안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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