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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태어나고 유년을 보낸 고향을 사랑하고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중에서도 필자의 고향 진도는 특별한 곳이다. 나는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2학년 재학 중 육지(목포)로 유학하여 광주를 거쳐 반세기 이상을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 바다 그 파도 소리를 잠시라도 잊은 적이 없다.
진도는 한반도 최서남단에 위치한 보배의 땅이다. 서울과는 멀리 떨어진 섬이어서 170여명에 이르는 문인들의 애환이 서린 유배지로 수준 높은 문화를 받아들여 남도 예향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서화(書畫) 소리(唱)의 본 고장 이곳에서는 좁은 골목을 지나다가도 예사로 남도소리와 북 장단을 들을 수 있으며 웬만한 집에도 서화 한 두 점쯤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삼별초, 명량대첩 등 호국 전적지로서, 예기치 않은 세월호의 상처를 겪었지만, 최근 전 일본 총리가 참석하여 위령제를 지내 화제가 된 왜덕산을 비롯하여 보석 같은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내 고향이다. 지면상 다 소개할 수 없으므로 대표적인 것만 선정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민족의 역사와 오늘을 잊는 가교 ‘진도대교’
나의 어린 시절 목포와 이어지던 뱃길은 여객선으로 약 4시간, 배멀미가 무척 심했다. 그런데 1984년 해남군 문내면과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를 잇는 484미터의 진도대교가 세워지고 그 후 2005년 제2의 진도대교가 개통되어 지금은 자동차로 목포까지 약 1시간 거리로 섬 아닌 육지가 되었다. 진도대교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지 ‘소리를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을 뜻하는 울돌목 위에 세워졌는데 다리를 건너면 우측에 이충무공 승전공원이 있다. 울돌목의 폭은 294미터 정도이나 물살이 세고 소용돌이가 쳐서 그 소리가 해협을 뒤흔들 정도이니 실로 바라다보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다. 당시 장군의 고뇌와 치열함이 아직도 이 바다 깊숙이 배어있는 것만 같다.
바람 물살 바람 심장 속
열세 척으로 삼백삼십 여 척의 일대 격전
400여 년 전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신화
아프게 떠 오르는 봄바다
그 물살, 명량鳴梁은
오늘도 울면서 휘돌아 나간다.
- 하순명 시 「바닷목이 운다」에서
2. 예술의 향기 깃든 곳, 진도
* 전통 남화의 성지 ‘운림산방’(국가지정 명승 제80호)
필자가 몇 년 전 서초문인협회 회원 40여명 1박2일 진도 역사문학기행을 주선했는데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진도가 너무나 인상적이라며 그 중 특히 운림산방이 최고라고 말했다. 첨찰산을 배경으로 첩첩산중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 그곳에 들어서면 일단 연못과 정원이 조화를 이루며 그림 같은 풍광에 누구나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된다. 이곳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 련 선생(1808~1893)이 말년에 거쳐하며 여생을 보냈던 곳으로 선생이 그림을 그리던 화실, 기거하시던 초가집, 소치기념관, 진도역사관 등이 있다.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의 배경이 되기도 하여 더 유명하다. 소치기념관에 들어서서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유,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전 허문 등 5대의 수려한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하노라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진도역사관에는 삼별초실, 유배문화실 등으로 구성되어 도서문화와 유배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민족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 진도읍에 위치한 소전미술관에는 추사 이래 서예 대가로 추앙받을 정도로 우리나라 서예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서예계의 거목 소전 손재형 선생의 작품과 소장품 및 의제 허백련 선생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필자는 소전 선생의 손녀와 초등 동창으로 어린 시절 집에 놀러가서 소전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며 벽에 걸린 작품을 본 기억이 난다. 진도의 피를 받고 자라서인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묵향을 좋아해서 지금 우리 집 거실 벽에는 현대적인 유화도 있지만 소전의 서예작품과 허백련의 산수화가 한 점씩 오래된 빛을 발하고 있다.
* 또 임회면에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나절로 미술관은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 나절로는 ‘스스로 흥에 겨워 즐거움’이란 뜻의 전라도 사투리로 이상은 관장의 호이자 자유분방한 내면적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 그에게 미술관은 5천평의 크나큰 하얀 도화지다. 봄이면 새하얀 마가렛꽃이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연못의 물이 흐르고 음악이 흐르고 담쟁이가 소설을 쓰듯 초가를 오른다. 허스름하게 흙으로 만든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낭만 속에서 미술관을 음미할 수 있다. 또한 이상은 관장은 화가이면서 시인 못지않은 자연 시인으로 필자는 그와 아주 친근하게 지내고 있다.
3. 다도해의 절경
* 150여개의 섬들이 새떼처럼 펼쳐진 곳 ‘조도鳥島’
필자는 고향이면서도 읍내에 거주했기에 조도를 가 본 적 없다가 6년 전 늦가을 진도문화원장과 몇 사람 상조도 하조도를 한 나절 관광하며 그 풍광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기억이 있다. 팽목항에서 쾌속정으로 30여 분 달리면 조도에 도착한다.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 섬들이 생동감 있는 바다의 숨결을 느끼게 하고 100년 가까운 하조도 등대는 유인 등대로, 만가지 형상을 한 만물상 바위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도리산 전망대는 150여개의 섬을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제1경승지로 한국관광공사의 ‘국내우수관광상품’에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지녔다.
* ‘관매도’는 수천 년의 시간이 만들어 낸 바다의 정원이다.
관매도는 다도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조도 6군도 가운데 대표적인 섬이다. 관매8경(제1경:관매도 해변, 제2경:방아섬, 제3경:돌묘와 꽁돌, 제4경:할미중드랭이굴, 제5경:하늘다리, 제6경:서들바굴 폭포, 제7경:다리여, 제8경: 하늘담)의 아름다운 절경뿐 아니라 천연기념물 212호 후박나무가 있고, 최근 자생풍란이 복원되고 있어서 생태관광지로서 가치가 높은 곳이다. 관매도 해변은 KBS ‘1박2일’과 SBS 드라마 ‘패션 70s’촬영지이기도 하다.
* 지산면에 있는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의 경관은 압권이다. 해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펼쳐지는 일몰의 장관은 단풍 빛보다 더 환상적이다. 세방낙조는 중앙기상대가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전망지’로 선정했을 정도로 댜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다도해 드라이브 코스를 품고 있다. 이 곳에 두 개의 시비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필자의 것이다.
나는 알았네 / 세방리에 와서 //
섬과 섬이 저문 하늘을 내려 받아/ 바다의 심장에 눕히는 순간//
천지는 홀연히 풍경이 되고/ 홍주빛 장엄한 침묵이 되고//
어디선가 울려오는 아라리가락에/ 일렁이며 잠겨드는 섬의 그림자//
때로는 섬도 꽃이 되는가 //
저 놀빛에 붉게 젖어 /한 생애 황홀한 발자국을 찍네//
- 하순명 시 「세방낙조」 전문
4. 역사 유적지
우리나라 남쪽 끄트머리 보배섬 진도, 그 땅에 우리를 지키고자 했던 뜨거운 열정들이 살아있다. 지금도 고이 간직된 우리의 정신, 우리의 문화 그것은 진도의 뿌리이고 힘이다.
* 진도 용장성은 국가지정 사적 제126호로 원종11년 고려가 몽고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환도를 강행하자 이에 불복하여 대몽항쟁의 결의를 다짐한 삼별초군이 남하하여 근거지로 삼았던 호국의 성지이다.
* 국가지정 사적 제127호 진도 남도진성은 조선시대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수군과 종4품 만호(萬戶)를 배치하여 조도해협과 신안 하의도 해역 등을 관할하였다. 현재 관아와 내아 객사를 복원하였으며 앞으로 선소(船所)와 활터를 복원할 계획이다.
*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는 진도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세워졌으며 명량대첩의 당시 역사가 적혀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비문을 짓고 진도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선생이 글씨를 남겼다. 우리는 그 때 광주를 가려면 읍내에서 30리길 벽파진을 거치곤 했다. 기억하건대 파도치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전첩비, 그 앞에서 친구들과 찍은 흑백 사진이 그리움으로 떠 오른다.
* 왜덕산을 역사 유적지라고는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곳은 명량해전 당시 전사한 왜군들의 시신이 묻힌 곳으로 최근 9월24일 한일 합동 왜덕산 위령제가 진도군 고군면 현장에서 엄수됐다. 위령제에 참석하여 고개숙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추모사를 통해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한·일 관계 개선을 기원했다는 보도가 떴다. 왜구에 시달렸던 진도 백성들이지만 100구가 넘는 시신을 거둬 일본열도 쪽 바다가 보이는 산에 묻고 ‘조선이 왜구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뜻으로 그곳을 왜덕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왜덕산 사연은 진도문화원 박주언 원장이 2002년 찾아냈지만 그동안 반일감정 등으로 쉬쉬하다가 주민들을 설득한 끝에 무덤들을 확인했다고 한다.
5. 진도의 문화 예술
* 강강술래, 지금도 내 귓전에 눈에 선하다. 어린 날 초등학교 운동회 날 또는 달 밝은 밤 동네 빈 터에서 흥겹게 펼쳐지던 진도의 강강술래는 노래와 무용 음악이 어우러진 원시종합예술로 남도지방의 정서를 잘 표현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8호이다. 이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매년 10월~11월 중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전국강강술래 경연대회를 개최한다.
* 진도씻김굿은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72호로서 다른 어느 지방에서도 접할 수 었는 진도만의 것이다. 하얀 상복을 입고 춤과 노래로써 신에게 비는 무속의식으로 죽음에 대한 인간의 초연한 자세를 예술세계로 승화시켜 관객에게 신비하고 야릇한 느낌을 갖게 한다. 세계민속음악제에서 금상을 받은 바 있다.
* 금요 상설 국악공연은 연중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진행되는데, 국립남도국악원 대극장에서 ‘전통 예술의 향기’를 주제로 국악 전반을 구성하는 공연을 펼쳐 아주 흥겹게 관람할 수 있다.
그 외 남도들노래(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51호). 다시래기(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81호), 예향 진도가 마련한 수준 높은 미술시장, 남도 예술은행 토요경매(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남도전통미술관)가 있다.
6. 축제
*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곳 신비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 프랑스대사가 진도 관광을 왔다가 이 현상을 목격하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이 바닷길은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 사이 약 2.8킬로미터의 바다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바다 밑이 40여 미터의 폭으로 물 위로 드러나 열린다는 신비로움이 있어 매년 이 현상을 보려고 국내외 관광객 수십만 명이 몰려온다. 뽕할머니의 제사로 시작된 이 축제는 매년 4월~5월 중 진도 고유의 민속예술 씻김굿, 만가, 북놀이 등을 선보이고 조개잡이 체험, 홍주 시음회 등 다양한 이벤트가 제공된다.
* 명량대첩축제
매년 10월 중에 열리는 이 축제의 슬로건은 ‘세계 속에 울리는 명량의 북소리’로 전라남도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명량해전 재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해군의 협조를 받고, 해남군 진도군의 어민 소유 130여척의 선박과 연인원 1300명을 동원한다고 한다. 관광객은 마치 월드컵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보듯 눈 앞에서 펼쳐지는 명량대첩의 재현을 체험하게 된다.
* 진도 아리랑 축제
향토무형문화유산 제1호인 진도아리랑은 옛부터 구전으로 불리어져 다른 민요와 같이 그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조선 말부터 진도아리량이라 이름하여 가사와 함께 가락에 독특한 흥취가 있어 남도민요의 진수로 일컬어진다. 진도군에서는 2년마다(11월 1일~6일) 향토문화회관 및 진도군 일원에서 관광객과 군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개최하여 남도민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7. 진도의 특산품
품성이 우수하고 민첩한 진도개(천연기념물 제53호, 세계 명견 334호)는 진도개 사업소 사육장에서 직접 관람 체험할 수 있다. 또 전통 토속 명주 진도홍주(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 불로장생의 명약 진도구기자, 옛 궁중의 진상품 진도돌미역, 울금의 명품 진도울금이 유명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진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잊지 않고 이 특산품을 구입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
필자가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새 반 세기가 지났다. 요즘은 승용차로 선산에 모신 부모님 묘소에만 잠깐 참배할 뿐, 무엇이 바쁜지 서둘러 귀경하면서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곤 하는데 이 글을 쓰노라니 울컥 그리움으로 목이 메인다. 내가 이렇게 자랑스러운 진도 출생이라는 점에서 감격의 눈물이 고인다.
그래서 최근 발간한 제5시집 약력의 맨 앞에 하순명 ‘진도 출생’을 힘주어 선명하게 게재했다. 또한 진도 문인임을 자랑스럽게 품어주는 ‘진도문화’ 잡지에도 더 자주 원고를 보내야겠다. 보배의 섬 내 고향 진도여, 영원하라!!
하순명( 한국공무원문인협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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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명스럽게 이제사 읽습니다
제가 아무 연고도 없는 2009~2012년 진도땅에서 3년간 다문화운동과 노인과 장애인 복지를 실현한 곳으로서 ,서울의 사회복지 법인에서 선교사적인 사명감으로 진도에 가서 곳곳 구석구석 역사 탐방하듯 숨을 쉬고 진도의 섬 여러곳,이를터면 진도 끝 선 독거도와 동거차도,서거차도,맹골도,옥도 등 많은 섬을 다니면서 전문봉사단을 꾸려 활동하러 다녀온적 있고, 관매도 바닷가 수천의 악기같은 바위 절벽은 큰 오케스트라 해변을 잊을 수 없습니다..그리운 곳, 그리운 사람들....,그 곳 사람들과 지금도 교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