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봉의 힐링여행(9) / 강원 평창 ‘봉평메밀밭’
‘초가을의 전령’ 메밀꽃을 만날 수 있는 곳, 강원 평창
글과 사진 / 송일봉(여행작가)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칩칩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이 동업의 조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서두에서 묘사하고 있는 봉평장터 풍경이다. 1930년대 강원도 봉평 일대를 떠돌아다니던 장돌뱅이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소설인 ‘메밀꽃 필 무렵’. 그 소설 속에서 메밀꽃은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9월이 되면 마을 전체가 새하얀 메밀밭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은 해마다 9월이면 온통 새하얀 메밀밭으로 뒤덮이는 마을이다. 봉평에 메밀밭이 많은 것은 ‘경관농업’과 관련이 있다. ‘경관농업’이란 농작물을 통해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농업형태를 말한다. 즉,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꽃이나 밭을 보여주는 댓가로, 정부로부터 일정 금액을 지원받는 농업형태를 가리킨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이 같은 ‘경관보전직불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봉평 메밀밭’이다.
메밀이 봉평과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봉평이 가산 이효석의 단편소설인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봉평에서는 메밀꽃이 필 무렵인 9월 초에 ‘효석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9월 8일부터 17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참고로 ‘효석문화제’는 ‘봉평 메밀꽃축제’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봉평 메밀꽃축제의 주인공, 가산 이효석
가산 이효석은 1907년부터 1942년까지 36년의 짧은 삶을 살다간 소설가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인 1928년에 ‘도시와 유령’으로 문단에 데뷔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인과 차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양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산 이효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그가 스물아홉 살 때인 1936년에 발표했다.
지금도 봉평에 가면 소설 ‘메밀꽃 필 무렵’과 관련된 명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봉평장터 근처에는 가산공원이 있다. 가산 이효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1년에 조성한 문학공원이다. 가산공원 옆으로는 흥정천이 흐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동이라는 청년이 주인공 허생원을 업고 건너던 개울로 묘사된 곳이다. 지금은 개울 위로 다리가 놓여 있고 개울 건너편에는 근사한 물레방아간이 있다. 물레방아간 역시 소설 속 주인공인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하룻밤 정분을 맺은 장소로 등장하는 곳이다. 이 물레방아간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로서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는 상징물 가운데 하나다.
물레방아간 근처의 ‘효석달빛언덕’에는 이효석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가산 이효석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쉽게도 많은 유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효석문학관에 가면 가산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가산 이효석이 남긴 주요 작품으로는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해서 화분, 벽공무한, 장미 병들다 등이 있다. 이효석문학관 근처에는 가산 이효석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이 있다.
*근처 명소, 평창무이예술관
봉평면 소재지에서 태기산 쪽으로 4km쯤 가면 또 하나의 메밀꽃 명소인 평창무이예술관이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근사한 문화예술공간으로 꾸며 놓은 곳으로 서예가, 조각가, 화가들의 작업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운동장은 야외 조각품 전시장으로, 교실은 예술가들의 작업장으로, 복도는 작품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운동장 옆에는 꽤 넓은 메밀밭이 조성되어 있다.
메밀은 대체작물이다. 다시 말해 봄에 감자나 보리를 수확한 밭에다 장마가 끝날 무렵 씨앗을 파종한다. 그 씨앗은 여름 내내 잘 자라서 9월 초순 무렵에 예쁜 꽃을 피우고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을 한다. 수확철의 메밀을 자세히 살펴보면 줄기가 붉게 물들어 있다. 강원도에서는 이 부분을 가리켜 ‘대궁’이라 부른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이 붉은색 대궁을 ‘자신의 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거친 땅을 헤치고 나온 승리자’의 상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라고 인용했다.
▲찾아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평창나들목→경강로⤍봉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