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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승리의 함성
수 5:13~6:27
기억절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히 11:30)
중심사상
절대적인 순종으로 실천되어 충성된 이스라엘에 의해 성공을 거둔, 여리고 정복을 위한 하나님의 전쟁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를 위한 교훈들로 가득 차있다.
서론
여호수아가 싸웠네. “여호수아가 여리고 싸움을 싸웠네, 여리고, 여리고! 여호수아가 여리고 싸움을 싸웠네, 성벽이 무너져 내렸네!”
몸짓까지 해 가며 들려주는 여리고가 무너지는 이야기는 이와 같은 영감을 낳았으며, 젊은이와 노인을 불문하고 계속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더욱이 이에 매혹된 고고학자들은 여러 점에서 이 이야기의 정확성을 확증해 준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실제로 “여리고의 싸움”이 아니다. 성경은 여호수아가 거룩한 명령자와 조우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적 시각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이야기의 주요한 요소들은 물리적인 병기나 싸움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예배와 관련된 영적 상징물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사이다. 곧 언약궤, 제사장, 성소의 신호용 양각 나팔, 도성 안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바침 및 라합의 구원이다. 그러므로 여리고 싸움에 대한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영적 사건이다. 죄와 만남에서, 우리는 원칙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던 동일한 사령관 - 여호와의 군대 장관 - 의 지도하에 영에 속한 싸움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사령관께서 당신의 지휘관을 만나심(수 5:13~15)
여호수아는 군사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였는가?(수 5:13)
답: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누구였는가?(수 5:14; 단 8:11 비교). 여호수아 5장 14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여호와의 “군대”는 누구인가?(왕상 22:19; 시 148:2)
답:
<참고> “군대 장관” 이란 말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오직 다니엘 8장 11절에서만 발견된다. 여호수아 5장과 다니엘 8장의 문맥은 거룩한 존재를 장관으로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 앞에 서셨던 분은 지존하신 그리스도이셨다”(부조와 선지자, 488).
“여호수아의 눈이 도단에 있던 엘리사의 사환의 눈처럼 열려져, 눈앞의 광경을 볼 수 있었더라면, 그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둘러 진치고 있는 여호와의 천사들을 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훈련된 하늘의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싸우려고 왔으며,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명령을 내리기 위하여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리고가 무너졌을 때, 어떤 인간의 손도 그 성벽에 닿지 않았다. 여호와의 천사들이 그 요새를 무너뜨렸으며 원수의 성채로 진입하였다”(엘렌 G 화잇 코멘트, 본교성경 주석 2권, 994).
하늘의 사령관을 만났을 때 여호수아의 태도는 어떠하였는가?(수 5:14,15). 이것은 예배 시에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함을 가르치는가?
답:
<참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으로서 가장 높고 명예스러운 지위에 앉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모든 원수들을 대항하였다. 그의 마음은 위대한 사명에 대한 고상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기별을 통고 받고서 그는 지시를 받기 위하여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은 입장에 두었다.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수 5:14)라고 한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성화된 생애, 18).
전쟁 계획(수 6:1~7)
여리고에 대한 전쟁 계획은 어떤 면에서 매우 이상하였는가?(수 6:3, 6:1~5).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어떤 영적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답:
<참고>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간 먹이며 이제는 바로 홍수 철에 요단강의 흐름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에 관하여 들은 뒤라, 여리고 거민들은 방어 전략과 전쟁 무기들을 준비했음에 틀림없었다. 도성 밖에 진을 친 백성들은 틀림없이 공격적으로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전형적인” 군사 전략과는 반대였다. 여리고의 성벽은 이스라엘 편에서의 어떤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행위에 의해서 무너질 것이었다. 그 방법은 전쟁이 아니라 믿음의 방법이었다.(슥 4:6; 고후 10:4 참조)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였는가?(수 6:6,7). 이스라엘은 그같은 이상한 조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답:
<참고> 여호수아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순종함으로 그것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행동은 신자의 생활의 리듬-(1) 경배, (2) 경청, (3) 순종-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만 말씀하고 백성들에게 말씀하시지 아니한 사실을 주목하라. 여호수아의 말을 믿고 그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그들에게 남아 있었다(교회증언 4권, 162).
하나님께서 비상식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도록 요구하실 때, 그대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답:
<참고>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유사한 상황하에서 그와 같이 행동할까? 의심할 바 없이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계획대로 행하고자 할 것이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과 수단들을 제안할 것이다. … 그러나 의무의 법칙은 절대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 (理性) 위에 군림하여야 한다. 믿음은 장벽을 뚫고 나아가며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원수의 진영 중앙에 그 깃발을 꽂는 산 능력이다”(엘렌 G 화잇 코멘트, 본교 성경 주석 2권, 995).
양가 나팔과 침묵(수 6:8~15)
이스라엘이 여리고 둘레를 돌때 어떤 소리가 들렸는가?(수 6:8, 6:8~10). 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침묵하도록 요청하셨을까?
답:
성경에서 양각 나팔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다음의 상징적인 의미들 가운데 어느 것이 여리고를 도는 상황에 적합한가?
레 23:23~25, 25:9
삿 7:22
시 47:5 사 27:13
확실히 여리고를 일곱 번 반복해서 돌라는 하나님의 지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도성 거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성벽이 최종적으로 전복되기 전에 그처럼 오랜 시간을 통하여 이 의식을 계속한 바로 그와 같은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믿음을 증진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힘은 인간의 지혜나 그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상에 전적으로 감동 되어야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의 거룩하신 지도자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하였다”(교회증언 4권, 163).
그와 같은 광경은 여리고의 거민들을 공포로 충만하게 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괴상한” 행군을 반복하는 것을 보는 것은 얼마나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일이었을까! 그 일은 언제 그칠 것인가? 처음에 이 백성들은 홍해를 마른땅 위로 건넜고, 다음에는 홍수 철에 요단강을 건넜다. 그리고 이제는 양각 나팔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날마다 도성 둘레를 돈다.
그대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가정해 보라. 여리고를 돌 때에 조용히 할 수 있었겠는가? 할 수 있었거나 할 수 없었다면 그 이유는?
답:
<참고>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믿음이 부족하다. 오늘날 여리고를 점령할 때에 이스라엘 군대가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택하신 종을 통해서 주신 지시를 따르고자 하는 자들은 거의 없다”(교회증언 4권, 162).
승리의 함성(수 6:1,6~20)
백성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을 때 일어난 기적을 묘사하라. 여리고의 함락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사례가 고고학적인 사실을 확증해 주는가?(수 6:20,16~20)
답:
<참고> 고고학자들이 여리고에서 발견한 사실들을 조사한 최근 분석에서 브라이언트 우드 박사는 성경의 기록과 고고학적인 자료 사이의 특별한 관련성을 탐지하였다. 첫째, 네 가지 증거물들(도기 측정, 단층학적 고려, 애굽의 갑충석, 방사성 탄소 측정)은 도성의 주된 패망 날짜를 정확하게 성경과 같은 시기(약 기원전 1410년)로 잡는다. 둘째, 대대적인 지진이 있었음을 증거 하는데, 실제로 성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 갈수 있도록 온 둘레가 경사를 이루면서 “무너져 내”(수 6:20)렸다. 셋째, 아래 옹벽 또는 난간과 진흙 벽돌로 된 위 성벽 사이에 위치하여 “성벽 위에”(수 2:15) 있게 된 라합의 집과 같은 많은 집들이 존재하였음이 증명되었다. 넷째, 여호수아 6장 24절에 기록된대로, 불로 완전히 파멸된 증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곡식이 가득 찬 많은 항아리들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1) 공격이 봄철의 수확 직후에 있었고(수 2:6, 3:15, 5:10에 지적된대로), (2) 오랫동안 포위되어 있지 않았으며(수 6:12~20에 따르면 오직 7일간 포위됨), (3)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관행과는 달리 도성은 불에 타기 전에 약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브라이언트 우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를 정복하였는가? 고고학적인 증거에 대한 관찰”, 성경 고고학 리뷰 16, 1990년 3,4월호, 45~47참조).
우리는 여리고의 함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고자 하는 위대한 일들에 관해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는가?
답:
<참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실 것이다. 당신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보다 큰 능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크게 의지하고 여호와께 저희를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그분에게 기회를 드리지 않는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충실히 당신을 순종한다면 당신을 믿는 자녀들을 위급할 때마다 도와주실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493).
“헤렘”, “기생” 및 “영웅”(수 6:22~27)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위하여 전리품을 취하지 못하도록 금하셨는가?(수 6:17,18)
답:
하나님께서 라합과 그의 가족 외에는 모두 다 죽이라고 명하신 것이 왜 정당하였는가?(수 6:21, 6:17,24; 비교, 창 15:16~21)
답:
<참고>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도성을 헬렘(herem)이라고 선언하셨다(수 6:17~19). 이 히브리어는 멸망이나 거룩한 목적에 사용하기 위하여 전적으로 취소할 수 없도록 “바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두 국면이 다 함축되고 있다. 불은 도성을 멸망시켰으며 불에 타지 않는 금속들은 하나님의 곳간에 들어갔다.
“멸망하도록 바쳐졌다”는 의미는 그들 자신을 전적으로 반역에 바친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즉 그들은 은혜의 시기 끝에 당도하였다.
여리고가 멸망되기 400여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창 15:16)하였으므로 가나안 땅을 상속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기동안, 가나안 족속들에게도 명백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증인들이 있었다. (멜기세덱, 창 14:18~24; 발람, 민 22~24장).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은 타락하여 가장 비열한 행습에 빠졌다. 20세기의 발굴과 여호수아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우가릿 점토판은 그들의 종교 의식 중 다산(多産) 숭배의 핵심으로서 가나안 족속들 사이에서 행해진 총체적인 성적 방탕(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열한)을 드러내었다. 서판(書板)의 내용은 또한 가나안 족속들의 신(神)과 여신(女神)들의 특징이었던 피와 폭력에 대한 탐욕스런 갈망을 나타내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종교에 대해 그들이 가진 개념 이상 더 높아질 수 없다. 가나안 종교는 그 핵심에 성(性)과 폭력에 대한 그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수세기 이내에 온 문명이 성령의 권고에 반응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생존을 마감시킨 것은 공의일 뿐 아니라 자비였다.
여호수아 6장 26절에는 누구든지 여리고를 재건하려고 하는 자는 그의 장자와 계자(季子)를 잃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이 예언은 벧엘 사람 히엘이 “그(여리고) 터를 쌓을때” 와 “그 문을 세울 때”(왕상 16:34)에 그의 장자와 말째 아들을 잃음으로 성취되었다.
연구 토의 요약
연구와 명상
여리고의 함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전략을 사용하신 유일한 경우가 아니다. 다음 성결절을 읽을 때, (1) 이상한 전략은 무엇이었는지, (2) 왜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전략을 사용하셨는지, (3)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정확하게 지적하라)(삿 7:1~22; 왕하 5:1~15; 행 2:1~12, 8:1~3, 9:1~22).
“우리가 성공을 거두려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우리 앞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여호수아를 돕기 위하여 준비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돕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것은 여리고에서 처럼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명령을 순종하여 도성의 둘레를 돌 때에, 한 힘센 천사가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도록 보내졌으며, 이스라엘 군대는 곧장 도성 안으로 행군해 들어갔다. 우리는 자아를 덜 신뢰하고 예수님을 더 많이 신뢰해야 한다”(엘렌 G, 화잇, 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7월 12일).
토의 상황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에 침묵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 함성을 지르며 양각 나팔을 불어야 할 때는 언제인가?
이번 주 교과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사실에 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여리고의 싸움”을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고후 10:4)과 영적 싸움의 병기(엡 6:10~18)에 관하여 말하는 신약의 교훈과 비교하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이 때만큼은 놀라운 연합과 충성심을 보여 주었다. 그들의 실례를 통해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
요약
여리고의 싸움은 영적 전쟁에 관해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정복하시지 못할 만큼 어려운 장벽은 없다.
준비는 우리가 무릎을 꿇고 다만 우리의 군대 장관과 함께 할 때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단순하고도 가망이 없어 보이는 방법을 사용하셔서 죄에 대하여 승리하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우리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당신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게 하신다.
우리는 비록 그 모든 이유를 알 수 없을 지라도, 그분의 모든 구체적인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 연합해야 한다.
싸움은 여호와의 것이다. 조건이 충족될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