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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성막(聖幕)의 지성(至聖)소
1.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갈 준비(準備)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 (레16;1-2)
인간은 죄(罪)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없습니다. 삶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오직 지성소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다른 불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다가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하나님께서는 광야(廣野)에서 모세에게 성막(聖幕)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겠다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25;;22)
성막(聖幕)의 전체적(全體的)인 모습을 살펴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뜰 안에 있는 번제(燔祭) 단입니다. 이곳에서 구속(救贖) 곧 죄사함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1;7)
성소(聖所)와 지성(至聖)소는 덮개로 덮여 있습니다. 번제(燔祭)단을 지나면 물두멍에서 수족(手足)을 깨끗이 씻어 정결(淨潔)하게 되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헌신(獻身)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고 지성소에 들어갈 준비(準備)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직도 거쳐야할 여러 과정(課程)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죄(罪)도 없으신 분으로서 대속(代贖)의 죽음을 죽으신 분이시며 부활(復活)하셔서 의(義)를 이루신 의(義)의 왕(王)이시며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들이 성소의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子女)로서 하나님의 보호(保護)를 받고 삽니다. 세마포 안에서 거룩한 신분(身分)을 가졌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우리는 아론이 집례(集禮)한 첫 번째 예배의 큰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처음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속죄제, 번제, 소제, 화목제의 제사를 집례(集禮)한 아론의 제사 가운데 모세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그들에게 타나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슬픈 사건이 발생(發生)했습니다.
그것은 아론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입니다. 그 가운데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命令)하지 않으신 다른 불을 담아서 분향(焚香)한 것입니다. 다른 불은 번제단이 아닌 금지(禁止) 된 불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직은 하나님이 세우신 영광(榮光)스러운 직분(職分)입니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윤리(倫理)와 성결(聖潔)된 삶이 요구(要求)되는 것입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위기10:2)
대재사장의 두 아들이 왜 죽었는가? 명령하신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드린 것입니다. 번제단은 십자가(十字架)를 예표(豫表)합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성도는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위해서 그 어떤 작은 죄악(罪惡)도 그냥 넘어 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 할지라도 생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분리(分離)되고 거룩한 삶을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레10;9-11)
거듭난 성도(聖徒)의 삶에서 지성소에 들어갈 준비(準備)를 하는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막의 원리(原理)는 이 사실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막은 성경(聖經)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主題)입니다. 성막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성막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자신의 스스로의 신앙(信仰)을 점검하고 어디까지 이르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감히 이렇게 외칩니다. 성막(聖幕)이 서있는 곳을 향(向)하라! 그 성막을 마음 중심(中心)에 세워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심령(心靈)에 거(居)하신다. 그러면 당신이 드리는 예물(禮物) 바구니에 당신의 마음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지성소 앞에서 우리는 죄악(罪惡)이 깨어지고 부서지고 눈물이 나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신 것처럼 우리는 완전(完全)히 죽어야 합니다. 이렇게 죽지 아니하고 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지성소에 들어 갈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지성소에서 주님을 만나고 평안과 자유를 얻고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까?
신약(新約)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순서(順序)가 성막(聖幕)순서로 되어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뜰만 밟지 말고 지성소로 들어가기를 소망(所望)합니다.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쫓아가십시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8-14)
2. 언약(言約)궤 (The ark of the covenant) (출25:10-16)
“그들은 조각 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 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 내지 말지며“ (출25;10-15)
언약궤는 2.5×1.5×1.5규빗 (1.2×0.7×0.7m)의 크기로 조각 목으로 만들어 정금(正金)으로 쌌습니다. 위로 돌아가면서 금테를 둘렸고 양편에 두 금 고리를 만들어 채(봉)를 꿰어두게 했습니다. 물론 이동(移動)할 때 쓰는 그 채도 조각 목으로 만들어서 정금으로 입혔습니다. 성경에는 성막기구 중 언약궤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언약궤는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신약에서는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겼을 때에 하나님은 그 법궤를 스스로 지켰습니다. 법궤가 이동(移動)되는 곳마다 재앙을 내려서 유다로 돌아오게 했고 또 유다의 벧세메스 사람들도 그 법궤를 열어 보다가 적어도 70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삼상5:1-8, 6:19).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히9;3-5)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한대로 그 세 종류의 성물(聖物)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언약궤안에 있고, 그것들이 예표(豫表)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직분(職分)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민16;8)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민17;10)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신10;5)
3. 속죄소(贖罪所)(an atonement)와 (시은소) (a mercy seat)
속죄(贖罪)소란 어떤 곳인가?
속죄(贖罪)(atonement)의 “속죄”라는 뜻은 영어로 “atone”은 at one(하나가 되어, 일치하여)라는 명사구(名詞句)에서 유래합니다. 어떤 사람과 “하나가 되어”있다는 것은 그분과 인격적(人格的)으로 조화(調和)관계에 있음을 뜻합니다. 속죄 소에서 대제사장이 드린 희생제물의 피는 죄 많은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和睦)하게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엄청난 일이 지성소의 속죄(贖罪)소 아래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5;14-15)
“속죄”는 원래 “하나 됨”이나 “화해”를 의미하였습니다. 죄 많은 인간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은혜 아래서 주님과 하나 되어 죄가 덮어졌고 가려졌고 하나님은 그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의 죄(罪)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넘어 가신 것입니다. “속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동사는 “카파르”로 덮는다는 의미입니다. 희생제사는 죄를 덮어주는 것으로 간주(看做)할 수도 있습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4;6-8)
대속(代贖)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죄인들을 위해 그들을 대신(代身)하여 죽으셨고 의롭다함을 얻기 위하여 사흘 만에 부활(復活)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징벌(懲罰)을 받아 죽어야 마땅할 죄인들의 벌(罰)을 대신 받으신 대리인이 되셨으므로 대속(代贖)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됨으로 주님은 그들의 징벌을 대신 담당하셨고 인간의 죄는 사해졌습니다. 웬 은혜입니까? 그래서 속죄소를 시은(施恩)소(a mercy seat)라고도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5-6)
구속(救贖)(redemption)이란 무엇인가?
구속이란 말은 "시장에서 구매하다"라는 뜻의 헬라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구속(救贖)이라는 말은 시장에서 노예(奴隸)를 사는 일에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죄의 노예시장으로부터 신자(信者)들을 사서 죄의 속박(束縛)에서 그들을 풀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신자들을 죄에서 풀어주는 구매(購買)대금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20)
어떤 성도는 나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았습니다. 라고 간증합니다. 확실히 아십시오. 죄사함 받은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구속(救贖) 곧 죄사함 받음이 구원(救援)입니다. 신자(信者)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매(購買)되었으므로 그리스도께 속하며 그의 종이 된 것입니다. 종이 되었다는 것은 다시 노예가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유인입니다. 이 사실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표(豫表)한 것입니다. 죽으심만 있고 부활(復活)이 없다면 그것은 헛된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1;7)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5;13-15)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自己)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代贖)물로 주시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몇 구절만 찾아보면 "우리는 그 아들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다“(롬5:10)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 (엡2:13) ”그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벧전2:24)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罪)를 담당하시려고 단번(單番)에 드리신바 되셨다“ (히9:2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2;16-18)
구속(救贖) 곧 죄사함을 받았다.
속죄(贖罪) 소 곧 시은(施恩)소에 1년에 1번 있는 대속일이 되면 대제사장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全體)의 죄를 씻기 위해서 휘장(揮帳) 안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세마포 옷을 입고 번제단에서 취한 속죄제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있는 속죄 소위에 1번 뿌리고 그 앞에 7번 뿌렸습니다.
번제단에서 죽은 흠 없는 생축(生祝)의 피가 속죄 소에 뿌려지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사(赦)해졌습니다. 언약궤의 뚜껑에 해당되는 시은소위에 피를 뿌렸습니다. 오늘 날 우리에게도 적용(適用)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고 구속(救贖) 곧 죄사함을 받은 성도(聖徒)들이라 할지라도 죄를 짓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고의적(故意的) 죄도 있지만 부지중(不知中)에 지은 죄도 있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두려워말고 즉시 자백(自白)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1;8-10)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17;11)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 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9;7)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예수님은 대속(代贖)의 죽으심과 부활(復活)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셨고 의롭다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는 그 율법이 우리를 정죄(定罪)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권세(權勢)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3:13)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다.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죽음은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구속사역에 대한 천사들의 경탄.
속죄(贖罪)소위에는 그룹 천사의 형상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천사는 직책에 따라 “스랍” “그룹” “가브리엘” “미가엘”천사가 언급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寶座) 주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천사(天使)입니다.
일반적(一般的)으로 그룹천사들은 하나님의 위엄을 수호하는 직책을 갖고 있지만 (창3:24) 속죄소위의 그룹은 속죄소 사역에 수종(隨從)드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룹들은 확실한 순종을 위해 날개를 펴고 있었습니다. 또한 서로 유기적(有機的) 협력을 위해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속죄소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 보좌에 있지만 예수님의 구속(救贖)사역을 직접 도왔습니다. (마4:11, 28:2)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출25;18-21)
4. 오직 하나님과 단 둘이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시49;1-3)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25;22)
하나님과 당신 단 둘이
모든 인생(人生)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사망(死亡)도 들어왔습니다.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살아야 할 인생이 죄로 인해서 두려움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가야하는 가엾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돈으로도 지혜(智慧)로도 명철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귀중한 생명(生命)을 구속(救贖)하는 일입니다. 죄 아래 팔려있는 생명을 속량(贖良)하려면 죄 없는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奴隸)생활하던 이스라엘을 홍해를 건너 광야의 생활로 이끌어 내신 후 성막(聖幕)제도를 베푸셨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이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豫表)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우리의 성막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보좌(寶座)에 모시는 것은 커다란 행복입니다. 참된 신앙은 단체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하나님과 단 둘이 만나야 합니다.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민들아 들으라” 참된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始作)됩니다. (롬10;17) 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야 할 대상은 “만민들” “세상의 거민들”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성경은 초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은 모두 평등(平等)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啓示) 하신 진리(眞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민족이든 누구든지 빈부를 물론하고 듣고 깨달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본분(本分)이며 생명입니다. 존귀한 자나 비천한 자나, 배운 자나 무식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살다가 한번 죽는 것은 똑 같습니다. (히9;27) 마지막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기의 행한 대로 심판(審判)을 받을 것입니다.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12;11-14)
이 글을 쓰는 저 자신(自身)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救主)로 깨달은 경험(經驗)이 있는 사람입니다. 죄악의 환난(患難)에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너무도 감사(感謝)한 일입니다. 우리의 대속(代贖)자이신 예수님은 십자가(十字架)에 달려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대가를 모두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 없이 팔려간 인생은 값없이 대속(代贖)을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사52;3)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이며 그분의 부활(復活)하심은 우리의 의(義)를 위해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怨讐)가 되었던 우리를 그 아들이 화목(和睦)케 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를 대속할 수 있고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5;21)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살았습니까? 아니면 죽었습니까? 죄사함 받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했으면 살았다하나 실상(實狀)은 죽은 것입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1)
인간의 종말에는 자연적(自然的)인 종말이 있고 개인적(個人的)인 종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존귀합니다. 그러나 죄는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켰으며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倉曹) 되었으나 멸망하는 짐승 같은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인생은 새롭고 산길을 깨닫지 못하면 멸망(滅亡)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聖幕)을 세워라 내가 너를 속죄소위에 거기서 만나고 너의 행할 일을 일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소입니다. 이제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 위 속죄(贖罪)소까지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당신 단 둘이 만나는 것입니다.
찢어진 휘장(揮帳)은 곧 예수의 육체(肉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10;19-20)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성막(聖幕)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해달의 가죽으로 된 지붕과 흰 세마포 천 울타리입니다. 적당한 높이의 흰 세마포 담장은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합니다. 그들의 눈은 가려져서 우리의 구주(救主)를 해달의 가죽처럼 거무튀튀한 매력(魅力)없는 존재로 보거나 아니면 훌륭한 도덕률(道德律)에 의해 사는 좋은 사람으로 보는 경향(傾向)이 있습니다.
이 휘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며 무죄하고 거룩한 인성(人性)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이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휘장(揮帳)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하나님이 찢으신 것입니다. 분리(分離)의 휘장을 위에서 아래까지 완전히 찢어버림으로 성소(聖所)에서 지성(至聖)소로 들어가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妨害)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 길이 바로 새롭고 산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
오직 하나님과 단 둘이 (언약궤) (생명의 말씀)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8-10)
언약궤는 성막의 기구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가장 완전한 모형(模型)입니다. 지성소는 높이, 길이, 너비가 모두 4.5미터입니다. 지성소는 이곳에 들어가는 통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무겁게 드리워진 휘장(揮帳)에 의해 성소(聖所)와 분리(分離)되었습니다.
세 가지 궤 (ark)
세 가지 궤는 1.언약(言約)궤(증거궤) 2.노아의 방주, 3.모세의 갈 상자입니다. 영어로는 모두 (ark)라고 했습니다. 이 궤들은 생명을 살리는 궤이며 보호와 안전을 위한 것이었고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豫備)하신 것입니다.
언약(言約)궤(증거궤)
성막의 가장 깊은 곳 지성소에 위치했으며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가장 중심이 되었습니다. 심판으로부터 피하는 피난처이며 도피처이며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궤 안에는 죄인의 죽음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는 피로 얼룩진 속죄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피 아래 있는 언약궤는 심판으로부터 보호되는 안전한 곳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전한 구속의 상징이 됩니다.
노아의 방주(方舟)
여덟 명의 노아의 가족이 안전하게 보호되었습니다. 역청이 안팎으로 발려져 있었습니다. 역청은 “카파르” (속죄) 피를 상징합니다.
요게벳이 만든 갈 상자
죽음의 심판이 어린 모세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언제나 속죄는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역청을 바르는 것은 피를 바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
언약궤는 왕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출25:11) 그 왕관들은 주권과 권력의 상징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삼중(三重)적 직분을 가지셨습니다.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이 그것입니다. 성막의 놋 제단과 전체적인 번제물은 모두가 그분의 초림을 말해 줍니다. 성소(聖所)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보게 되고 지성소에서는 왕과 주권자로서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막(聖幕)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바깥뜰에 들어와 구원(救援)은 받았으나 거기에서 머무릅니다. 혹은 성소(聖所)에 들어와 외적(外的)인 섬김에만 몰두하고 지성(至聖)소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感謝)하게도 아주 적은 수의 신자(信者)만이 휘장 안 지성(至聖)소로 들어와 왕이신 주님을 섬기고 그분에게 복종하며 영광(榮光)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소에서는 제사장들이 함께 봉사할 수 있었지만 지성소에는 대제사장 한 분 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곳은 가장 은밀(隱密)한 공간이며 하나님과 단 둘이 있는 장소입니다. 오늘 날에도 너무도 많은 신자들이 거실(居室)에 해당되는 성소(聖所)에서 갖는 교제(交際)로 말미암아 너무 바빠서 휘장 뒤 지성소 (침실)에 들어가서 보내는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 지성소에 능력이 존재하며 승리(勝利)와 보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個人的)으로 지성소에 들어와 마음의 비밀을 다 털어 놓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사랑 이야기를 나누십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았습니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민12;7-8)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91;1-2)
5. 우리의 대속 자이신 그리스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대속(代贖) (atonement, redemption)의 의미(意味)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復活)하셔서 온 인류의 죄를 속죄(贖罪) 곧 대신 갚아 주시고 참된 자유를 주셔서 이제는 죄와 심판의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解放)되게 하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代贖)자 이십니다.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성막에서 행해진 이스라엘 민족(民族)의 종교(宗敎)와 모형적인 의식(儀式)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제사(祭祀)로 드려지는 동물의 피에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피와 연관(聯關)되어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광야에 세워진 성막의 모든 섬기는 일들은 피를 흘리는 일과 연관되어 있었고 이 피의 제사는 이스라엘 민족이 드리는 모든 예배(禮拜)에 적용(適用)시키는 일과 관련이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이유(理由)는 피 흘림이 없으면 절대로 죄에서 구속(救贖)될 수 없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의하면 생명(生命)은 피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死亡)이기에 그 죽음을 피하는 것은 오직 생명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靈魂)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수단도 피를 흘림으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피는 완전(完全)하고 죄가 없어야 하며 썩지 아니할 피로해야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17;11)
인간의 피는 하나님의 그러한 요구 조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더럽고 썩어질 육체(肉體)입니다 이와 똑같은 이유로 동물(動物)의 피도 그러한 효력(效力)을 발휘할 수가 없었으니 이도 죽고 썩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대속(代贖)”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의 빚을 갚되 누군가 자격(資格)이 되는 사람이 대신 빚을 갚게 하셨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 하나님도 의롭고 믿는 자도 의롭게 되는 단 하나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것이 대속의 수단(手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며 죄를 모르시는 당신의 아들을 육체(肉體)를 입고 세상에 임하게 하셨고 한번 죽음을 맛보게 하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은혜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3;23-26)
예수님께서 내 죄 값으로 내 대신(代身) 죽으시고 심판을 받으실 때 나를 포함해서 내가 되어 죽으셨습니다. 부활(復活)하실 때에도 나를 포함하여 살아 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신 것입니다. 나의 모든 주권(主權)을 생명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 넘겨 드려야 합니다. 옛것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새로운 피조물(被造物)이 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 (갈2;20-21)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5-17)
성막(聖幕)에서 통과해야할 일곱 과정
성막(聖幕)의 일곱 과정(課程)을 통해서 나는 어디가지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뜰 문 앞에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다가 동편 출입문을 통해서 안 뜰로 들어와서 내가 죄인 것을 깨닫고 무릎 굻고 눈물을 흘렸는가? 나는 그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는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救援)의 유일한 구주로 고백(告白)하고 있는가?
둘째, 번제단 앞에서
나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아는가? 나의 그 많은 죄가 예수 피로 구속(救贖) 곧 속죄함 받은 것을 확실히 믿는가? 그리고 용서 받은 의인이라는 확신(確信)이 있는가?
셋째, 물두멍 앞에서
나의 죄가 번제 단에서 용서(容恕)된 사실이 확실한가? 나는 매일 죄를 씻고 성결(聖潔) 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거듭난 이후로 지은 죄의 사슬을 끊었는가? 버리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죄는 없는가?
넷째, 등대 앞에서
나는 빛 된 생활을 하고 있는가? 성소의 밝은 빛 가운데서 다른 성도(聖徒)들과 교제(交際)의 생활을 하는가? 나는 받은 사명(使命)에 충실하고 있는가?
다섯째, 떡상(床) 앞에서
나는 매일 일용할 양식(糧食)을 먹는가? 나는 베풀고 나누는 헌신(獻身)의 생활을 하고 있는가? 나는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靈)의 양식으로 삼고 있는가?
여섯째, 분향단 앞에서
나는 기도를 중단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는가? 나는 중보의 기도를 드리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고 사는가?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가?
일곱째, 법궤 앞에서
나는 말씀 속에서 살려고 애쓰고 있는가? 나는 주님을 통하여 부활(復活)할 것을 믿고 있는가? 나는 죽은 나무에서도 싹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能力)을 확실히 믿는가? 나는 시은소의 은혜 받은 자로서 참된 평안(平安)을 누리며 안식(安息)이 있는가?
6. 속죄(贖罪)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대 속죄(贖罪)일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림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성막의 제사는 복음(福音)의 그림자이며 아사셀 양은 예수님을 예표(豫表)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1년에 1번씩 아사셀 양(羊)을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죽여 이스라엘백성의 원죄를 씻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또한 7월 10일 속죄(贖罪)일에 그 피를 성막 곳곳에 뿌려 하나님이 주신 성막(聖幕)을 정결케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대제사장(大祭司長)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場所)는 어디입니까? 지성(至聖)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구속(救贖) 곧 죄사함 받는 일입니다. 1년에 한번 7월 10일 대 속죄일이 되면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두 마리 염소(크기, 모양, 색깔 등 같은 것으로)를 취하여 회막 문으로 가지고 옵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죽임을 당하고 한 마리는 광야(廣野) 아사셀에게 보냅니다. “아사셀”은 “염소”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내 보냄을 받은 염소”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드리는 “속죄제물”은 한 마리인데 대 속죄일에 드리는 두 마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使役)의 두 방면을 의미하며 “여호와를 위하여” 재비 뽑힌 염소는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에 죽임 당하심을 예표(豫表)합니다. “아사셀을 위하여” 재비 뽑힌 염소는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죄악(罪惡)을 멀리 제거해 버린 것을 상징합니다. (시103; 12-13)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죽임을 당한 것 같이 염소와 백성은 동일시(同一視)하여 염소의 죽음으로 백성(百姓)의 죄는 사하여졌고 또한 같이 죽은 것입니다. (롬6;1-11)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9;6-10)
7. 성막(聖幕)의 덮개 (출26;7-14)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소 털로 만들되 열한 폭을 만들지며 각 폭의 장은 삼십 규빗, 광은 사 규빗으로 열한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 그 앙장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또 여섯 폭을 서로 연하고 그 여섯째 폭 절반은 성막 전면에 접어 드리우고 앙장을 연락할 말 폭 가에 고 오십을 달며 다른 연락할 말 폭 가에도 고 오십을 달고 놋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그 고를 꿰어 연합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그 막 곧 앙장의 나머지 그 반폭은 성막 뒤에 드리우고 막 곧 앙장의 길이의 남은 것은 이편에 한 규빗, 저편에 한 규빗씩 성막 좌우 양편에 덮어 드리우고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 덮개를 만들지니라“ (출26;7-14)
첫 번째 덮개 : 가늘게 꼰 청색(靑色), 자색(紫色), 홍색(紅色) 실로 짠 천으 로 휘장(揮帳)을 만들되 그룹들을 무늬를 수놓아 만든다.
두 번째 덮개 : 염소 털로 만든다.
세 번째 덮개 : 붉은 색으로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다.
네 번째 덮개 : 해달의 가죽으로 맨 위의 덮개를 만든다.
성막(聖幕) 덮개의 길이(세로)와 넓이(가로)
성막의 덮개를 10폭의 휘장으로 만들었습니다. 10폭의 길이는 동일하게 28규빗 입니다. (28규빗 × 45cm는 1260cm 즉 12.6m) 넓이는 4규빗 입니다. (4규빗 × 45cm = 180cm 곧 1.8m) 가로는 1.8m x 세로 12.6m 사이즈의 휘장을 모두 10개를 만들었습니다. 10폭의 휘장을 다섯 개 단위로 2개를 만들어서 연결합니다.
성막을 덮는 이 막(幕)은 지성소와 성소를 동일하게 덮게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염소 털로 만들되 11폭으로 만들었습니다. 각 폭의 길이는 28규빗, 넓이는 4규빗으로 여섯 폭을 연결하되 여섯째 폭의 절반은 성막의 전면(全面)에 접어 드리우게 했습니다.
마지막 폭 가에는 고리 50을 달고, 놋으로 갈고리 50을 만들어 그것으로 고리를 꿰어 연결하여 한 막이 되게 했습니다. 나머지 좌우편은 성막 뒤에 드리우게 했습니다. 그 다음 나머지는 성막지반 막에 각각 1규빗씩 드리웠습니다. 또 붉은 물 드린 수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어 덮고,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웃 덮개를 만들어 씌웠습니다. 그러므로 덮는 막은 4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성막의 덮개는 모두 4종류로 덮여 있었습니다. 안쪽부터 보면 먼저 첫 번째 덮개는 성막 뜰 문과 같이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백색의 4색의 천이 있었습니다. (출 26:1-6) 두 번째 덮개는 염소 털로 실을 만들어 짠 덮개였고(출 26:7) 세 번째 덮개는 붉은 물들인 숫양 가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출 26:14)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덮개는 해달의 가죽이라고도 하는 물개의 가죽이었습니다. (출 26:14).
첫 번째 덮개
첫 번째 덮개는 성막 뜰의 문과 같이 청색(靑色)은 생명(生命)의 색’으로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요14:6) 자색(紫色)은 왕권(王權)의 색으로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 2:2) 홍색(紅色)은 피의 색으로 고난의 예수 그리스도를, 백색인 베실은 순결의 색으로 순결(純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로 짠 천으로 휘장(揮帳)을 만들되 그룹들을 무늬를 수놓아 만들었습니다. 모든 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 합니다.
첫 번째 덮개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흰색 베실)
두 번째 덮개 (염소 털)
두 번째 덮개는 염소 털로 감싸게 했습니다. 염소는 속죄제(贖罪祭)를 드릴 때 사용하는 제물입니다. 염소 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속죄를 통한 회개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덮개 (붉게 물 드린 숫양 가죽)
세 번째 덮개는 숫양 가죽을 붉게 물들인 가죽을 덮어씌웁니다.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은 무엇을 상징(象徵)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犧牲)과 죽음의 피, 즉 그리스도의 보혈(寶血)의 피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와 사랑을 말합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덮개의 재료인 염소와 양은 모든 제사(祭祀)의 제물로 가장 많이 쓰인 동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막 바깥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네 번째 덮개인 해달 또는 물개의 가죽은 가장 바깥쪽을 덮고 있어 해와 바람과 먼지 등으로 인해 외관상(外觀上) 가장 볼품이 없었습니다.
네 번째 덮개 (해달 또는 물개의 가죽)
네 번째 덮개는 해달의 가죽입니다. 해달의 가죽은 신발을 만들어 신기 위해서 애급에서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막을 바라볼 때 보이는 것은 해달 가축의 모양만 보일 것입니다. 해달 가죽 밑에 붉게 물든 숫양 가죽이 있고, 그 밑에는 하얀 염소 털로 만든 장막이 있고, 그 아래에는 그룹 천사들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보호(保護)하는 무늬가 있다는 걸 전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무죽죽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해달 가죽 밖에 안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구속(救贖) 곧 죄사함의 은혜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기록된 진리가 담겨있다는 것을 성막(聖幕)의 이러한 구조를 통해서 상징적으로 예시(豫示)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막(聖幕)의 겉을 감싸고 있는 덮개는 외부(外部)의 흙먼지로 더럽혀지지만, 내부(內部)의 덮개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子女)된 우리는 외식(外飾)하는 자들처럼 속은 부패(腐敗)하고 겉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것이 아니라 겉은 나이 들어 늙고, 입고 있는 옷은 누추하더라도 내면(內面)은 날마다 새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4;16-18)
교회(敎會)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은혜위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며 나아가 형제(兄弟) 사랑으로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으로 함께 연합(聯合)하여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은혜(恩惠)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엡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