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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3장을 이해하는 열쇠
(히 4:9) 그런즉 안식할 때(삽바티스모스)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 3:11 안식 : 카타파우시스
히 4:9 안식 : 삽바티스모스(여기서만 1회 사용됨 hapax legomenon)
# 안식 = 그리스도를 굳게 잡아야 함
(히 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히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광야의 방황 - 안식에 들어가지 못함
그 이유는?
새로운 지도자를 설명함
(히 3: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가데스바네아의 반역
민 14장
민 20장 신 광야 (Zin) 맛사, 브리바
(히 3: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신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모세가 인도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음
(히 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히 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히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히 4: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런데...
(히 4:9) 그런즉 안식(삽바티스모스)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 4:10) 이미 그의 안식(카타파우시스)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미 들어간 안식은 무엇인가?
이제 들어가야 할 안식은 무엇인가?
안식할 때(삽바티스모스) - 안식일의 쉼
안식(카타파우시스)
이 두 용어의 의미는?
# 악한 마음
(히 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악한 마음이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마음
도덕적인 악보다 더 심한 악
(히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 히 3:7 오늘 시 95편 인용
피차(세아우투) 권면 - 피차 비난 아님
완고(스클레뤼노) = 걍팍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메토코스, 메토코이)가 되리라
모세의 독자 = 히브리서의 독자
40년 동안 흔들림
(히 3: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 믿지 않음 = 순종하지 않음
(히 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아페이떼오)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 그러므로
(히 3: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모세 시대 유대인들)이 들어가지 못한 안식
우리에게 약속하신 안식
모세 시대의 안식 - 시 95편 다윗이 언급함
(히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구약에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예수님이 오신 후로부터 복음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았다?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 때부터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주장함
따라서 구약은 율법 시대, 신약은 복음시대라고 주장할 수 없다.
이미 율법 안에는 의와 복음이 포함되었기 때문
(히 4:2)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들은 바 그 말씀(복음)
모세는 기별(복음)을 전하는 데 신실했음, 복음을 충분히 외쳤다.
그 시대에 안식을 누리지 못한 이유는 모세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자들의 문제, 곧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부( 슁케란뉘미) : 결합하다, 혼합하다
# 기독교는 들음으로 믿음이 생긴다고 가르침, 봄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Listening is believing.
속담은 Seeing is believing.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계시록의 처음과 시작은 듣는 자를 강조함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모세가 복음을 전했음에도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믿음을 합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은혜로운 말 - 이사야 인용
믿음을 합하지 아니한 예1) -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도,
눅 4:16 안식일에 예수님의 설교이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은혜로운 말을 선포한 예수를 죽이려고 한 이유?
(눅 4: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눅 4: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믿음을 합하지 아니한 예2) 스데반의 설교와 베드로의 설교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7-38)
자신들에게 향한 설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
(행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디아프리오, 조각조각 톱질하다, 화나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그러나 마음에 찔려 회개했을 때 성령을 받음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카테뉘게산, 깊이 찔리다, 자극받다, 충격 받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씨 뿌리는 자의 비유처럼 마음이 문제
(히 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시 95: 인용
(히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세상 창조할 때부터 안식은 있었음
(히 4:4) 제칠일(헵도모스)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어딘가에 :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다 알기 때문에 출처를 밝히지 않았음
쉬셨다(동, 카타파우오)
히 3, 4장의 안식을 이해하려면 모세시대에서 창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함
(히 4:5) 또 다시 거기(성경)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히 4: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출애굽 시대, 시편 시대 = 복음을 받은 시대
(히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시 95: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 여호수아 시대
여호수아가 주지 못한 안식
그러므로 9절 안식할 때가 남아 있다는 것
(히 4:9) 그런즉 안식(삽바티스모스)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신 3:18)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가나안 정복) 너희의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신 3:19) 너희에게 가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게 하라
(신 3: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에게도 안식(누아흐, 쉼 휴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쪽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받아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고
(수 21: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수 21:44)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니라
안식을 주심 : 출애굽한 사람들은 다 죽었음 그러므로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
모세도 들어가지 못했음
여기서 안식은 1차적으로 가나안을 의미함
여호수아가 준 안식은 가나안에 들어간 것 - 전쟁 없는 안식, 그러나 영적 안식이 없음
(히 4: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시 95: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 다윗 시대에 영적 안식에 들어오라는 초청
(히 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누가 그 안식을 주나? 예수님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함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다윗은 왜 카타파우시스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을까?
예수께서 오셔서 진짜 카타파우시스에 들어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오늘 카타파우시스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히 4:9) 그런즉 안식(삽바티스모스)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 4:10) 이미 그의 안식(카타파우시스)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하나님은 어떻게 쉬셨는가? 히 4:4 그의 모든 일을 쉬심
(히 4: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처럼 우리의 모든 일을 쉬어야 함
(히 4:9) 삽바티스모스 Sabbath keeping rest
그러므로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함으로 얻는 참된 쉼을 쉬어야 함
창조 역사로 보면 안식일은 7째 날 - 하나님의 날
그러나 첫 사람들은 6째날 지음을 받고 안식일을 맞이함
# 안식일에 쉰다는 의미
유대인들은 이것을 오해했음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긴다고 생각했음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창조의 삽바티스모스 -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누리라는 은혜의 초청
☑ 카타파우시스는 뭐냐?
인간이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모든 구원을 다 이뤄놓으시고 인간은 그 카타파우시스의 초청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는 그 쉼의 초청에 응하는 게 하나님이 베풀어 놓으신 구원의 안식에 들어가는 거죠.
창조의 안식의 초청이나, 구원의 안식의 초청이나 카타파우시스의 초청이나 사바티스모스의 초청이나 하나님께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뭘 해가지고 내가 피곤해서 내가 뭘 쉬어야지 이게 아니라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은혜 앞에 그 은혜를 받아들여서 그걸 굳이 붙잡고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보내심을 받아서 아버지께서 그렇게 보내셔서 대제사장이 되어 모든 걸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 살아가자
안식일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완전한 하나님이 이루신 것
안식일은 철저하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 놓치고 인간이 뭘 하려고 폼 잡지 마라.
여러분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맨 처음 교회 나올 때 그때 제가 들은 얘기가 뭔지 아세요?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를 채워주시옵소서 그거 제가 처음 교회 나올 때 들은 이야기예요.
여러분 그러면 구원은 반쯤은 내가 하고 내가 10% 정도 하면 90%는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거니까 신앙생활이 많아지고 경건이 많아질수록 신앙생활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길어지고 영적 경험이 깊어질수록 내가 잘났다는 의식이 점점 더 깊어집니다.
영적 경험이 깊어지면 바울처럼 반대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풍성 변화 이야기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예수 재림을 준비한다고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
세월 지나갈수록 정말 꼬장꼬장하고 같이 살기 어렵고 힘든 사람 얼마나 많아요.
자기 자기 죄인 된 걸 모르고 남들 힘들 게만 만들어놓고 그렇죠.
사바티스모스, 카타파우시스 인간이 하나님 앞에 구원에 관한한 아무것도 이야기할 게 없고 이 안식에 들어가는 자 이거 믿지 않는 악심, 이거 다 해준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준 그 은혜를 믿지 않는 악심을 품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를 이루어 주신다는 개념은 잘못
품성, 믿음의 의, 재림 준비를 말하지만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함
(히 4:9) 그런즉 안식(제칠일 안식일의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9절 그런 즉 안식일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사바티스모스 안식일 안식입니다. 사바티스모 안식일이 남아 있도다.
10절.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신 안식일에, 하나님이 쉬신 것처럼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께 맡깁니다.
11절.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우리는 이제 정말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힘쓴다고요? 그게 뭐라고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날짜 안식일에 들어가면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에 들어가야 함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원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것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시나니” 이 유명한 구절은 우리가 문맥과 아무 상관없이 성경은 살아있는 책이야 이렇게 말하는데, 이 히브리 4장의 본문 속에 의하면 우리를 순종하게 만들고 우리를 믿음이 있게 만드는 모든 게 뭐라는 거예요?
말씀이라는 거죠.
그 말씀이 우리를 찔러 쪼개고, 모세 시대 때 모세의 말씀이 그들을 찔러 쪼겠고, 스데반의 설교가 그들을 찔려 쪼겠던 것, 베드로의 설교가 그들을 찔렀던 것처럼 혼과 영과 곤,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거죠.
(히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는 반응이 나와야 함
그 반응에 대한 답이 모세보다,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을 굳게 잡아야 함
굳게 잡다 크라테오(붙잡다, 체포하다, 굳게 지키다)
히브리서 3장과 4장에 나타난 모세보다 더 위대하고, 여호수아보다 더 위대한 우리에게 궁극적 안식을 약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사도이시며 보냄을 받으신 사도이시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주시는 카타파우시스를 누리면서 견고하게 그 안에 더해서 하나님께서 마침내 주시는 창조 때의 사바티스모스를 함께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오늘 강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2:1
3:1
4:1
4:14의 그러므로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연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