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겨울 들판을 거닐며
허 형 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을 알았다
겨울들판을 거닐며
겨울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 시는 겨울 들판이라는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무척 포근하고 따뜻한 시다. 나는 어렸을 적 들길을 걸어 학교를 다녔다. 때문에 눈 쌓인 겨울 들판이 정겹고 그립다. 겨울들판에는 풀 뿐만 아니라 봄동과 갖은 나물들이 눈 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짧은 햇귀에 기대어 살고 있다. 이 시에는 어떠한 일에 당면하거든 함부로 말하지 말고, 제대로 알고 말하라는 회초리 같은 교훈이 들어 있다. 과묵하신 저자의 철학이 잘 녹아있어 이 시가 더욱 좋다. (김 두 녀)
첫댓글 어떤 일에 대해 기까이 다가가서 완전히 알고 이해 하기 전에 속단하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금물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우리에게 주는 뼈아픈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