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0일(일) 2017년 최강마를 선발하는 제36회 그랑프리(GⅠ)가 열렸다.
그랑프리 역사상 가장 큰 이변으로 기록될 이번 대회의 우승마는 '파워블레이드'(한,수,4세, 메니피- 천마총, 김형란 마주, 김영관 조교사). 인기 3위의 말이었지만 단승식이 13.2배이니 인기도가 앞섰던 두마리가 전체 배당판을 모두 휩쓸었다는 뜻이다. 더불어 준우승을 거둔 말은 '동방대로'(미, 수,5세,CURLIN- WILLA JOE, 정광화 마주, 오문식 조교사)는 인기순위 10위, 단승식 155.6배로 그야말로 복병이었으니 진정한 이변의 주역은 '동방대로'인 셈이다.
그랑프리는 어느정도 전력이 드러난 말들간의 격돌이라 그리 이변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중단거리 위주로 펼쳐지는 한국경마의 편성체계에서 2300M로 대폭 늘어난 거리를 극복할 수 있느냐를 시험해야한다는 점에서 인기마라하더라도 자신하기는 어려울 뿐이다. 이변이 발생했던 그랑프리 대회의 특징 중 하나는 선행마가 인기마에 등극했을 경우인데 이번 대회 역시 마찬가지다. 대상경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단승식 1.9배의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청담도끼'가 무너지면서 이변은 발생하고야 말았다.
12월 10일 일요일 오후 4시 40분 과천, 게이트가 열렸다.
출발이 가장 좋았던 말은 음? 1트리플나인이었다. 아니 쟤가 왜....;; 곧이어 강선행마인 4디퍼런트디멘션이 선행 선점을 위해 나섰고, 3생일기쁨과 7실버울프의 출발도 좋았다. 8청담도끼는 본래 게이트 이탈속도가 좋은 유형은 아니기에 지금 저 정도 출발이면 무난하다고 볼 수 있겠다.
출발 후 200M를 지나자 대부분이 예상했던 그림이 얼추 나와준다. 다소 의외인 것은 4디퍼언트디멘션이 선행다툼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었다는 정도? 치고나올 8청담도끼에게 후다닥 선행자리를 내준후 본인은 그 외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반경주에서도 편한 선행이 아니면 압박에 쉽게 무너지던 말인데 저 전개를 한다는 것은 올림픽정신이었단 뜻이다. 물론 알고 있다. 선행으로 승산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어찌보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그래도 그랑프리인데,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라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해야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4디퍼런트디멘션의 주파기록은 2:30.9, 총 12두 중 12위였다.
8청담도끼가 결과적으로는 선행을 나섰지만 나서는 과정이 수월친 않았다. 바로 옆 게이트의 7실버울프를 넘어서는데 한번, 이후 4디퍼런트디멘션을 넘어서는데 또 한번 힘을 써야했다. 게다가 넘어서는 과정에서 8청담도끼의 문세영 기수가 인코스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생각해도 의아했을 것이다. 1트리플나인이 저 위치? 허허....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2코너를 빠져나와 건너편 직선주로 진입 직전이다. 일단 가속이 붙기 시작한 8청담도끼가 조금씩 격차를 벌리고는 있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힘안배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눈치다. 7실버울프도, 3생일기쁨도 안정적으로 제 위치를 잡았고 12클린업조이도 순위를 끌어올릴 채비를 갖추고 있다. 저 위치에서 한번 힘을 쓰겠다는 뜻인데, 이는 지난해 그랑프리 우승 당시의 전개를 염두에 둔 작전이다. 근데 자꾸 신경쓰이는 저 1번의 위치. 1트리플나인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선두권에 3코너에 진입하는 시점. 이번 대회의 승부포인트 장면이다. 4디퍼런트디멘션이 외곽에서 순위를 끌어올리는 말들을 신경쓰는 사이 인코스의 빈틈을 낚아챈 1트리플나인이다. 임성실 기수가 뛰어난 기수인 이유 중 하나는 '타이밍포착'이다. 즉, 1트리플나인은 여기서 승부수를 띄운 셈인데 평소 그가 즐겨해왔던 전개와 비교하면 타이밍이 많이 빠르다. 그만큼 앞선의 8청담도끼를 의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랑프리 디펜딩챔피언인 12클린업조이는 작전에 실패했다. 같은 작전으로 응수한 컬린의 아들 5챔프라인과 진로가 겹치면서 힘만 쓴 상황. 우승후보마 두마리가 더 앞에 있는 시점에서 뒷심을 발휘하려면 차라리 참고 한발을 쓰고있는 위치가 낫다.
그 위치에는 11파워블레이드와 6동방대로가 자리해있다. 와중에 6동방대로는 인코스의 2다이나믹대시와 외곽의 11파워블레이드 사이에 낑겨 고전하고 있다. 이 역시 승부포인트가 되는 장면으로 만약 2다이나믹대시가 이 시점에서 꾸준히 피치를 올려줬다면, 그래서 2동방대로가 진로를 뚫을 일이 없었다면 아마 이번 대회 우승마는 6동방대로였을거다.
4코너를 지나면서 선두권과 중위권이 재편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걸음이 무뎌진 4디퍼런트디멘션의 외곽을 11파워블레이드가 차지하면서 스퍼트를 올릴 시점을 기다리고 있고, 저런~6동방대로는 간신히 올라온 7위권에서 또다시 진로를 걱정할 위치다. 외곽무빙을 선택했던 5챔프라인과 12클린업조이는 그들만의 리그 속에 걸음이 무뎌저가고 있고 여전히 선행은 8청담도끼다. 1트리플나인이 이런 각에서 나오니 이제야 트리플나인같다.
결승선 전방 300M를 지나고 있다. 여전히 8청담도끼가 선두를 유지하고 있고 1트리플나인의 추격이 매섭다. 그리고 어느덧 가시권에 들어와있는 2두. 11파워블레이드가 중간에서 스퍼트를 시작했다. 선행마를 뒤따르면서 꾸준히 힘을 써온 1트리플나인보다 걸음이 매섭다. 6동방대로의 걸음도 거침없다. 직선들어 또다시 7실버울프와 진로다툼을 한 끝에 3위권 자리를 획득했다. 사실 난 이 6동방대로를 지난해 그랑프리 때도 무지막지하게 응원했더랬다. 작년엔 무의미한 외곽질주로 무너져버렸는데 그래서인지 이번엔 인코스 추입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모습이다. 컬린의 아들로 참 좋아하는 말인데 뛰는 모습이 늘 이렇다. 인코스를 들어가면 반드시 진로가 막히는 통에 올라오는데 고전하고, 직선에서는 발을 못바꾼다. 그래도 그 파워가 마음에 들어 좋아라했는데 작년에 쫌 이러지 왜 이번에 이러느냐고~ 안정적으로 전개를 잘풀어내고 있는 부경의 신인기수(아직 감량도 못뗐다;;) 박재이 기수가 기특하고 대견스럽긴 한데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ㅠㅠ
결승선 전방 200M. 개인적으로는 대상경주가 늘 이렇게 연출되면 좋겠다. 보는 재미 쏠쏠하고 응원할 맛이 나는 구도다.
11파워블레이드가 1트리플나인을 따라잡고 선두로 부상하기 직전. 버티려는 8청담도끼지만 이미 걸음은 무뎌진 상태. 6동방대로의 기세가 좋지만 아직도 발 못바꿨다. 발 한번만 바꿔주면 그 큰 주폭을 맘껏 감상할 수 있을텐데 겸손한(?) 6동방대로는 자기자랑을 잘 하질 않는다;;;
결승선 전방 100M. 2강으로 압축됐다. 8청담도끼의 2분천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 페이스를 쫓아가느라 힘안배에 실패한 1트리플나인이지만 그래도 근성하나는 끝내준다. 8청담도끼를 끝내 잡지 못할 것 같더니 기어이 잡아내고 있다.
1트리플나인에게 1번 게이트가 정말 독이 되었던걸까. 왜 굳이 8청담도끼를 쫓아가려 애를 썼을까. 결과적으로 11파워블레이드가 우승을 차지한 것을 보면, 어쩌면 이 또한 김영관매직일지도 모르겠다. 인코스의 말로 우승후보마 뒤를 지속적으로 추격하면서 오버페이스를 만드는 작전이었을까. 그래도 그렇지 트리플나인으로? 지금까지 봐왔던 트리플나인 중 가장 멋진 상태였다. 실제로 19조 팀장은 자기가 봐도 말이 미친것 같다면서 절정의 컨디션임을 피력한 바 있다. 아마 최상의 상태를 믿고 무리한 작전을 펼친 것이 아닐까 싶어 못내 아쉽다.
2017년 제36회 그랑프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우승을 차지한 11파워블레이드와 머리차로 석패한 6동방대로의 주파기록은 2:24.0였다. 역대 그랑프리 역사상 가장 큰 배당을 선사하면서도 그랑프리 신기록을 수립하는 순간이다. 지난해 한국 최초의 통합삼관마라는 역사를 썼던 '파워블레이드'는 또 한번 대기록의 역사를 썼다. 대.다.나.다!
씨수말로의 전향의 대가로 주어지는 삼관마 인센티브를 포기한 파워블레이드는 내년에도 전력질주 할 것이다. 당분간 부경에서의 상대마는 트리플나인 뿐이라 상승세가 기대된다.
이번 대회 유일한 3세였던 '청담도끼'는 내년을 기약해볼 수 있겠다. 최근에 봤던 말 중 가장 좋은 말임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그랑프리에 도전했던 말들 중 2천미터를 2분 05초대로 뛰어온 말은 없었다. 구간페이스 역시 12초 중반정도로 꾸준하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편인데, 남다른 폐활량이 뒷받침해준 덕이다. 함께 뛰어본 말들은, 자기는 숨고르기를 해야할 타이밍인데 청담도끼는 여전히 숨고를 생각이 없더라고 전한다. 2300M 첫도전에서 4위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한편으로는 4위가 못내 아쉽기도 하다. 왜 선행을 고집했을까 싶어서다. 지난해 2세때 문화일보배(1200M) 우승을 차지할때 청담도끼의 전개는 바닥추입이었다. 이후 순발력이 보강되면서 선입력을 발휘했던 말인데 서울의 외산마 트리오인 '돌콩', '뉴시타델'에게 연거푸 밀린 이후 선행을 시도했고 그 결과 4연승을 거뒀다. 허나 처음 두번의 선행시도는 빠른 상대가 없었던 편성에서 자신의 주폭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 후 기수가 바뀌면서 다짜고짜 선행으로 변모했다. 대체 왜? 아무리 서울경마가 선행마 놀음이라고 하지만 게이트 이탈 속도가 압도적으로 좋은 도주성 선행마가 아닌 이상 쓸데없는 힘소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기수와 마주가 아주 잘 어울리는 궁합인 것을 알기에 앞으로도 그 조합으로는 선행만 나가겠구나 싶어 한숨이 난다. 간만에 정말 좋은 말 나타나나 싶었는데 내년까지 버텨줄려나 걱정이 먼저다. 솔직히 문세영 기수의 선행빨로 내년 그랑프리를 기약한다? 기대 안할란다;;
괜찮다. 내년엔 뉴시타델이 살좀 빼고 나올 수 있을테니까, 돌콩도 얼른 제 주인찾아서 기량발휘 해줄테니까 서울의 라인업은 기대해볼만하다. 여기에 가격제한이 풀린 고가의 외산마들도 대기하고 있고, 삼관경주가 끝나고 나면 새로운 국산 3세 강자들도 출현할테니 올해보다 더 재밌는 그랑프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잔재미 없을 것 같던 올해 그랑프리를 재밌게 만들어준 '동방대로'의 박재이 기수에게 감사드린다. 어느순간 포기했던 '동방대로'였다. 안장의 변화로 말의 전력을 이끌었다고 본다.더불어 과감한(?) 기수기용을 단행한 조교사와 마주의 용병술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