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적색 신호등을 켜다
어데다 호소를 하나
길은 앞뒤 막혀 빵빵거리는 아침
초보운전 파란색 딱지 시야를 가린 출발은
컨디션 점검에 앞서, 기름
떨어져가는 주유소를 지나치면 다음
주유소는 항상 불길하다
적색신호등 멈칫거려 조심조심 몰아가는 차의 언덕,
브레이크와 엑셀이 교차하는 순간
거리의 움직임은 슬로우모션으로 눈앞을 지나친다
보이지 않는 거리의 차들, 제멋대로 달려
나도 달린다 제멋대로의 삶이 있고 색이 바랜
도로의 어디선가 들리는 교통의 호각소리
시내의 복판은 온통 소음 뿐.
네온사인 흔들리는 일방통행에 들면
시나브로 지나치는 분주한 인간들,
조급한 마음으로 비상깜박이를 켜면
불안한 시동소리에 움츠린 어깨가 들썩인다
기회 엿보다 나온
녹색등만의 일방통행로.
이쯤에서 돌아서자
거리의 어둠이 도시의 어둠으로 바뀌어
쉬임없이 달려드는 세월이 오기 전에
적색 신호등을 켜자
신호위반의 범칙금이 부과되어 버린
도시 한복판의 적색 신호등,
들켜버린 어둠 속으로 돌아서다
바람 신호등을 켜다
바람을 지켜야 한다
길은 앞뒤 뚫려 시원하고 시원한
신호등 안 막혀 시야가 트인 출발이다
컨디션 점검은 서서히 이루어지고
다음 건널목엔 마음 졸이지만
여유 있는 출발은
멈칫거리지 않는 세상과 더불어
눈앞으로 날아온 세상에 있는
사람을 지나치는 어떤 차들도
바람을 내뿜으며 내달리지만
결국은 제멋대로인 삶이
거리의 사람들과 뒤엉켜
흔들리는 어깨
흔들리는 질주
기회 같은 건 엿보지 말자고 다짐하던
아무것도 부과되지 않은
삶의 이정표
멈추길 바라는 바람으로
적색, 황색, 녹색 신호등을
들켜버린 바람으로 들켜버린 바람으로
황색 신호등을 켜다
어딘가 지켜야 하나
길은 앞뒤 뚫려 지끈거리는 아침
녹색 신호등 시야가 트인 출발은
기름 점검에 앞서, 신호등
바뀌어가는 건널목을 지나치면 다음
대기자는 항상 불안하다
황색신호등 멈칫거려 조심조심 몰아가는 길의 골목,
앞세상과 옆세상이 눈앞으로 날아오는 순간
엔진의 움직임은 퀵모션으로 사람을 지나친다
빠르지 않은 도시의 차들, 드디어 달려
결국 제멋대로다 규범화된 삶이 있고 빛이 바랜
거리의 어디선가 들리는 경찰의 호송소리
도로의 복판은 온통 엉킴 뿐.
호송소리 흔들리는 고속도로에 들면
시나브로 지나치는 마음의 소리들,
조급한 마음으로 엔진소리를 켜면
불안한 차들소리에 움츠린 어깨가 속삭인다
사람 엿보다 나온
녹색등만의 일방질주로.
이쯤에서 돌이켜자
도로의 시간이 세월의 어둠으로 바뀌어
쉬임없이 달려드는 소리가 오기 전에
황색 신호등을 켜자
아무것도 부과되지 않은
도시의 어딘가에 녹색 신호등,
들켜버린 시간 속에서 돌아서다
모든 고속도로에서는 새들에게 우선권이 있다·1
새들이 떠나는 고속도로에서는
백킬로미터 이하라는 푯말이
심각한 웃음을 띠고 그들을 통과시킨다
아직
보도블럭 위의 설치된 간판들은
제 몫을 다해 멋대로이다, 가는 길
움직임마다 놓인 피사체.
비상(飛上)하는 저들의 힘찬 날개짓.
승리지상주의가 짓밟힌 흔적들.
짓밟힌 것은 저 사람,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법.
끝없이 변화하는 법.
머물 곳을 찾아보지만
이미 한번 돌아간 도로에
후진은 없다. 유턴도 없다.
가끔 지나치는 간판들
모두 들떠서 아롱거리다가
서민들을 위한다며 일렬로 일렬로,
함께 고속도로를 탄다
모든 고속로에서는
질주하는 자유만이 있다.
모든 고속도로에서는 새들에게 우선권이 있다·2
겨울도 아닌데 창가에 또는
거리 곳곳에 서리가 붙는다
혹독한 장마와 수해
그리고 가뭄의 여름을 보낸 뒤
비로소 내리는 가을,
감전이 두렵지 않은 듯 태연하게
전깃줄에 발을 감싸 안는 까치 한 마리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의 앞으로 번식기를 맞은 듯한 참새가
참새를 쫓고 있다
올해도 추위가 빨리 찾아왔군, 애써
태연한 말투로 중얼거리는 관리소 아저씨의 홍조(紅潮).
여름 내내 공원을 가득 채웠던 비둘기,
평화를 상징하는 파출소 모퉁이에서 간혹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만 모이를 쪼아댈 뿐.
그 비둘기를 따뜻하게 응시하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담도 들리지 않는다
새들이 떠나는 고속로에서는
100킬로미터 이하라는 푯말이
조금은 일찍 찾아온 추위에 당황해
심각한 웃음을 띠고 그들을 통과시킨다
흐린 날씨 탓에 어둠은 조금 더 일찍
잔디 사이사이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파트
건물 주택 상호들이 차츰차츰 불을 밝히면
아직 남아있던 새들도 스스로 사라져간다
나무나무마다 들려져 있던 낙엽들.
밤이 오는 강한 바람에 휩쓸리고
추위를 가리지 않고 한겨울을 보내는 텃새는
부랴부랴 집을 짓는다 겨울도 아닌데
철새들은 벌써부터 보색을 띤다
모든 고속도로에서는 새들에게 우선권이 있다·3
사람이 있는 여름 고속도로
어딘가에선 도로의 바람이 불어오고
유턴 어딘가로 향해 가면
내려 앉은 파란 딱지 하나
슬픔과 함께 하늘을 세고 있었다.
우선하여야 할 것은 아무것도 내주지 않은
모두를 위해 내달리던 새들이
강물 어딘가에 콕콕콕 먹이를 쪼아대어
드러눕는 어딘가,
바람이 일렁이던 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