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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을 적시며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하늘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어머
니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이 강물은 어머
니의 품에서 느꼈던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강운은 하늘을 쳐다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엄마.. 잘 지내고 있지? 운이는 이렇게 튼튼하게 잘 지내고 있는 거 엄마
도 보이지? 그렇지? 나.. 이제는 외롭지 않아. 항상 따뜻하게 운이를
보살펴 주시는 사부도 있고 그리고 백호도 있고 항상 따뜻하게 날 쳐다봐
주고 있는 엄마도 있잖아. 그리고 이렇게 따뜻하게 안아주는 엄마의 품이
있잖아.. 나 이제 울지 않을게.. 앞으로는 엄마 보고 싶어도 울지 않고
외로워도 울지 않을게.. 아니! 난 외롭지 않다고 했었지.. 난 외롭지 않다
고.. 엄마도 그곳에서는 아빠와 함께 언제까지나 행복했으면 좋겠어.. "
한참동안 하늘을 쳐다보던 강운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아직은 이 포근함
에서 헤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걸까.. 눈이 부셨다. 아마도 밤새도록 강물과 함께
흘러 내려온 것 같다. 이곳이 어딘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산 밑으로 가는 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니까 말이다. 강운이 처음 산에서 내려올 때
까지만 해도 바깥세상에 나가면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지만 지금
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강물에서 언제까지
고 편히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날이 밝았는데도 강운은 강물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포근함이 느껴지는 강물에서 나오기 싫었기 때문이다.
계획한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말 그대로 강운이 바깥세상에
나가려는 이유는 단지 유람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 한가지뿐이다.
한참동안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중에 근처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그 인기척이 서서히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추남은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서
사냥을 나왔다. 요즘같이 추운날씨에는 사냥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봐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많았고 자연히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할 돈이 없어서 이웃집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원래 행실이 바른데다가 인심이 좋고 사람이 착해서 마을사람들은 추남
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았고 추남의 어려운 집안 사정을 걱정해서 도움을
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부유한 마을은 아니지만 인심이 좋았고
인정이라는 게 있는 곳이었다.
오늘도 아무것도 못 잡아간다면 이젠 염치가 없어서 돈을 꿀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오늘은 토끼 한마리라도 잡아가야 했다.
오전 내내 산속을 돌아다녔지만 아직 소득이 없어서 기분이 유쾌하지
않던 추남은 점심용으로 싸온 주먹밥을 먹다가 사리가 걸려서 계곡으로
뛰어가 물을 마셔야 했다.
다행히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강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
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서 뛰어갔다.
계곡에 도착해 얼굴을 처박고 물을 들이마셨다. 예상은 했었지만 생각보
다 물이 더 차가웠다. 뼈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추남을 진저리치게 만들
었다.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던 추남의 눈에 계곡 밑으로 흘러 내려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한참동안 흘러내려가고 있는 사람을 쳐다보던 추남은
정신이 번쩍들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대로 두고 볼 수
는 없는 일이다.
물살이 그렇게 거세지는 않아서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물속으로 막
몸을 던져 구해낼려고 하던 순간 흘러가던 사람이 고개를 돌려 추남을
쳐다봤다.
누군가 가까이 오는 것 같았지만 별다른 신경을 쓰고 있지 않던 강운은
그 사람이 자신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순박한 시골청년 티가 나는 한 사내가 뛰어오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 저렇게 급하게 뛰어오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긴 운은 천천
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운이 몸을 일으켜 세우자 뛰어오던 사내가 뛰
어오던 것을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운을 쳐다봤다.
"이봐! 왜 그래?"
아직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던 추남은 갑자기 앞의 소년이 초면
부터 나이가 훨씬 많은 자신에게 반말로 말을 하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꼬마야 괜찮은 거니? 추운데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얼어 죽을 라고
작정한 거야? 빨리 나오지 않고 뭐하고 있어."
말을 마친 추남은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불을 붙이기 시작
했다.
"응..? 따뜻하기만 하구만 왜 그러지?"
운은 갑자기 낯선 사내가 달려와서 얼어 죽으려고 작정했냐고 하면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푸풋.. 그러고 보니 날 구해줄려고 그렇게 뛰어온 거였구나.. 잘은 모르
겠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
모닥불을 다 피울 때 까지도 운은 물에서 나오지 않고 가만히 사내가 하
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물에서 걸어 나왔다.
거의 하루 동안 물속에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옷은 전혀 젖어 있지 않았
다. 마찬가지로 운이 가지고 왔던 물건들 역시 전혀 젖어있지 않았다.
아직도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사내를 힐끗 쳐다본 운은 천천히 그 앞에
까지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형아.. 아까 나보고 꼬마라고 했지? 내 이름은 강운이니까 앞으로 꼬마
라고 부르지 말어. "
불을 지피고 있던 추남은 소년이 갑자기 자신을 형아라고 불러대자 또
한번 당황했다.
"그래.. 앞으로는 꼬마라고 안 부를게.. 나는 장추남이라고 하고 요 아랫
마을에 살고 있어. 근데 너 옷이 하나도 안 젖었네? "
"아, 이거? 특별히 방수처리 된 옷이라서 잘 안 젖는 옷이야. 우리 할아버
지가 옛날에 서방에 있는 나라에 여행 갔다 오면서 사다 준거야. "
서방에 있는 나라라는 말이 나오자 추남은 다시 한번 강운이 입고 있는
옷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그냥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음.. 그렇구나. 근데 운이 너는 왜 이렇게 추운 날에 물에 들어간 거야?
가다가 미끄러져서 빠진 거니? "
"으응.. "
설명하기가 귀찮아진 운은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보통 사람들 한테
이렇게 추운날 강물에 들어가는 미친 짓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리고 만 것이다.
"역시 그랬었구나. 좀 조심하지 그랬냐.. 쯧쯧..그나저나 많이 추울 텐데
여기 불 가까이로 와서 앉어. 밥은 먹었니? "
"아니. 며칠 동안 못먹은 것 같은데.. 그게 그러니까 며칠이더라.. "
자신이 며칠 굶었는지를 계산하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는 강운과는
달리 추남은 이 어린 소년이 며칠 동안 밥도 못 먹고 이 처럼 고생을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마침 하나 남아있던 주먹밥을 운에게
건네준 추남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오늘은 사냥도 안 되는데
운이를 데리고 산 밑으로 내려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운아.. 그거 먹고 몸좀 녹으면 우리 마을에 같이 가자. 별로 보여줄 건
없는 마을이지만 운이 또래아이들도 많이 있고 마을사람들 인심도
다 좋으니까 같이가자. 갈 거지? "
"우물우물.. 그래. "
마침 특별히 갈 곳도 없던 강운은 안 그래도 모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서 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갈 생각이었는데 선뜻 먼저 같이 가자고 하
자 바로 같이 가겠다고 대답해주었다.
주먹밥을 다 먹은 강운은 이제 다 먹었으니까 빨리 마을로 가자고 졸라댔
지만 추남은 아직 몸을 더 녹여야 된다는 이유로 떠나지 않았다.
추남의 눈에 비친 강운의 모습은 15살 정도 밖에 먹지 않은 아직은 보호
받아야 될 약한 소년으로 보였기 때문에 차가운 물에 빠져 위험을 겪었던
강운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이대로 그냥 마을로 돌아가
다가 나중에 강운이 탈이라도 난다면 큰일이었다.
옆에서 계속 빨리 가자고 징징대는 운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낸다는 생각을 하니까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다.
추남이 느긋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과는 반대로 강운은 지금 몹시 불안
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단순히 느긋하게 살아가는 걸로 따진다면 강운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지금 강운의 마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혈향때문에 불안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거리상으로 볼 때 추남이 살고 있다는 마을과 거의 일치
하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피 냄새를 맡은 강운은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자
고 했으나 추남은 소귀에 경읽기 식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실대로 말해 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믿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사실, 마을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볼 때 어쩌면 믿지 않는 게 정
상일테지만 강운은 결코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리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알 수 있었다.
"형아! 빨리 가자니까.. 나 이제 몸 다 녹았어. 못 믿겠으면 와서 만져보란
말야. "
말을 하면서 강운은 몸을 뜨겁게 만들었고 추남에게 만져보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앗 뜨거! 운아 어떻게 된거니? 몸이 불덩이잖아? 아차.. 이런 내가 실수
를 한 모양이구나. 몸이 이렇게 불덩어리인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니?
안 되겠다. 안 되겠어.. 어서 빨리 마을로 돌아가야지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는 걸.. 운아 걸을 수 있겠어? 형이 업어 줄테니까 빨리 업혀. "
강운은 등을 내밀며 허둥대고 있는 추남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생겼다. 추남이라는 사내는 정말 정이 많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혼자 걸을 수 있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리며 업히라
고 야단을 떠는 추남 때문에 마지못해 업힐 수밖에 없었다.
마을로 향하는 추남의 등에 업혀서 강운은 생각했다. 자신이 냄새를 잘
못 맡았기를.. 자신의 그 불안한 느낌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마을에 점점 가까워 질수록 짙어가는 혈향과 함께 조금 전 까지는
맡아지지 않았던 매캐한 냄새도 같이 느껴졌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