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수저 "
우리사회에 언제부터인가 가난한 사람을 일컬어 '흙수저'라는 말로 대신하는 언어관습이 생겼습니다.
금속문명이 출현하기 전에는 흙으로 수저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흙수저는 강동구 암사동에서 출토된 6,000년 전 흙수저라고 합니다.
그런데 역사상 흙수저로서 가장 뛰어난 영웅으로 대접을 받은 분은 아마도 '공자님( 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 '이 아닌가 합니다.
공자님의 출생에 대해서 '공자가어(孔子家語) 등에는 '상(商)나라'의 후손이라고 적고 있으나 사실은 이 기록이 정확한지는 의문이 있다고 합니다.
공자님은 무사인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야합(野合)에 의해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자님의 시대에는 '야합'이 일종의 혼인풍속이었다고 하니 이것을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재단함은 다소 무리가 있기도 합니다.
공자님은 춘추시대 노(魯)나라에서 태어났는데 무사였던 부친의 유전자를 물려받으셨는지 공자님은 키가 9척 6촌에 달하며 꺽다리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께서 홀로 공자님을 키우셨다고 합니다. 공자님은 어릴 때 천하다며 문전박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고 공자님은 사생아였기에 공씨 집안에서 자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나라 재상(大宰, 태재)이 공자님을 보고,
"정말 성인이시다. 다방면으로 재주가 넘치시니."
라고 재주가 많음을 비꼬았는데, 이를 들은 공자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그가 나를 잘 아는구나. 나는 어렸을 때 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잔재주가 많을 뿐이다. 군자가 재주가 많아야 할까? 꼭 그렇진 않은 법이다. "
공자님은 춘추시대 "노(魯)나라'에서 태어났는데 "노(魯)나라'는 나라가 작아서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괴롭힘이 잦았습니다. 이렇게 된 연유는 이러합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를 남긴 상나라 마지막 천자인 주왕(紂王) 제신(帝辛)의 폭정으로 혁명이 일어나 주나라가 건국되어 동성(同姓), 이성(異姓)의 여러 제후들에게 천하를 분봉(分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작 주나라 황실에 좌장 중 일인이었던 주공 단 (周公 旦)에게는 분봉할 토지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세간에 강태공으로 알려진 주나라 개국일등공신인 태공망 여상에게 분봉했던 제나라를 조금 떼어서 나라를 만들어 주공 단에게 분봉하게 되었는데 이 나라가 노나라로 출발부터 미약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공자님은 출생이 흙수저이고 태어나신 조국도 흙수저 나라였던 샘입니다.
그런데 훗날 당나라에서는 공자님을 "문성황(文宣皇)"으로 추존하였으며, 서하에는 "문선제(文宣帝)"로 추존하니 흙수저로 나셔서 일약 황제의 반열에 오르니 실로 역사상 드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데에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공맹(孔孟)의 학문을 위주로 하는 인문학으로 전세계를 아우를 태세로 소위 '공자학원'을 각국에 세워 나갔읍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공자학당의 기세는 주춤하고 중국의 전래적 인문학은 세계시민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반면 한국은 "K-Pop"을 필두한 소프트파워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는 가히 "인류문명사의 혁명"이라고 규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중국에는 '쿵푸' 도장보다 '태권도' 도장이 월등하게 많다고 합니다.
인류사적 의의가 있는 수준의 유구한 역사의 중국의 인문학보다도, 현대의 소산인 "K-Pop"이 어떻게 세계인의 자발적 수용에 의해서 전파되어 나아가 전체적으로 '한류(韓流)'로 확대되어 세계사적 흐름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이테크 사회인 현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의 관심과 수용의 대한 부문이 "공맹의 사상"보다는 "K-Pop" 등의 소프트한 문화체계가 적합했던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 견해로 보입니다. 저도 이 점에 대해서 동의합니다.
결론은,
"공자학원" vs. "K-Pop"
의 결과는,
" K-Pop 승!!! "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