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꿀에 빠지다
손한옥
감밭 아래 모인 아이들은 하얀 감꽃을 실에 꿰어 내 목에 걸어주고
대밭 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담뱃대가 긴 청도할배 대밭
바람 불면 시퍼런 바다 파도 소리가 났다
깊이 들어가면 길을 잃을 것 같은 무서운 대숲
대나무에는 대꽃이 피었다
어른들은 대꽃이 피면 난리가 난다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신이 난거다 꽃 아래 반짝이며 매달린 꿀을 따먹을 수 있으니
나도 가지를 휘어잡고 쫀득쫀득 먹었다
과자도 귀해 꿀아재비 넣고 밀을 뽂아 먹거나 노란 찐쌀뿐인데
천혜의 꿀이 온 나무에 달렸으니
청도할배만 안 나타나면 되는 거다
대꿀을 따먹은 뒤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았다
코가 모과처럼 울퉁불퉁 붓고 입술도 땡깔처럼 부풀고
손과 발 엉덩이까지 부어올랐다
두드러기에 효험 있다는 검정 옷을 덮어쓰고 찾아간 돌팔이 의원은
신장염으로 위독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팔랑개비처럼 사방팔방 돌아다니지만 나를 잃을까 놀란 엄마는
조약을 찾아 해먹이고 부기가 빠진다는 문어를 삶아 먹였다
신통방통 문어 물을 먹은 뒤 부기가 빠지기 시작했다
대나무 벌레 진액의 꿀만 핥아 먹을 일인데
벌레집을 통째 따먹은 식중독으로
대꽃이 온몸에 난리 꽃으로 피던 때
지금도 주홍빛 그 벌레집 온몸에 오래 쫀득거린다
손한옥 시집 < 얼음 강을 건너온 미나리체>에서
후사포 큰집 대나무 밭에 대꽃이 피자 사촌언니는 나를 데리고 60년 만에 피는 꽃이고 대꽃이 피면 대나무는 죽는다며 귀한 꽃 맘껏 보라고 했다. 왕대가 자라던 대나무 밭이 망그러져 가는 대가 많았고 꽃은 가는 가지에서 피었다.
언니는 문학소녀였었고 내 시심의 시작점엔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대밭과 언니가 있지만 언니를 못 본지 한참 되었다.
경기도 안양에서 얼굴도 모르는 내게 시집을 보내준 인연이여 우리는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까 그땐 마스크 벗고 손깍지도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