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스님이 황벽스님 문하에 찾아간 때를
25,26세 무렵이라고 추측할 때,
하북의 진주로 돌아간 시기는
당 무종武宗 회창會昌 연간(841~ 846)의
불법사태佛法沙汰10가 지난 대중大中
7년(853) 이전으로 임제스님의 나이 30세 후반 즈음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원화元和 연간(808~ 820)에 출생하여
50여 세의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다
867년에 열반에 드셨다고 하겠읍니다.
중화제국이 불국세계라고 할 만큼 흥성했다고
할 수 있는데 당 무종 황제의 회창 연간(841~
846)에 불법사태를 만났습니다.
천하의 절들이 다 부숴지고,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모두 강제로 환속됐으며,
청동으로 만든 불상과 불구들은 파괴돼
농기구 등으로 변했고, 경전은 전부
불태워졌습니다. 불법이 여지없이 망하게
되어버린 차에 무종이 죽고 삼촌인
대중천자大中天子, 즉 선종(宣宗,
재위 846~ 859)이 즉위해 불법을 다시
크게 일으킵니다.
선종과 관련해서는 그 당시 역사를 좀 알아야 합니다.
헌종(憲宗, 재위805 ~ 820)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목종(穆宗, 재위 820~ 824)
이항李恆과 재중천자 선종 이침李忱입니다.
목종은 장경長慶 4년에 붕어하고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는데
경종(敬宗, 재위824~ 826),
문종(文宗, 재위 826~ 840),
무종(武宗, 재위 840~846)이 그들입니다.
경종은 부친의 제위를 계승한 지 2년만에
역모에 의하여 제위를 빼앗겼고, 이어
문종이 제위를 계승한 지 14년 후에 무종이
즉위하였는데, 무종은 삼촌 이침을 극도로
미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종은 지난 날 이침이
장난삼아 용상에 올라간 일에 원한을 품고
그를 때려 후원에 내다 버리고 더러운
똥오줌을 끼얹어 죽이려 했습니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살아난
이침은 남모르게 황궁을 빠져 나옵니다.
향엄지한(香嚴智閑, ?~ 898) 선사의
회상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사미가 되었으나
구족계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뒤에 염관제안( 鹽官齊安, 75?~ 842) 선사의 회상에서 서기 소임을 보게 되었는데,
당시 황벽희운(黃檗希運) 스님이 그곳의수좌로 있었습니다.
훗날 대중천자가 되는 이침이 사미신분으로
서기를 보다 황벽스님에게 뺨을 세 차례나 맞는
일이 이때 븰어집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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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법안法眼선사의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
(x. 63 p.37c)에 임제종을 평하여
"호환위기互換爲機)"라 한 말이 보인다.
상대가 번갈아 가며 선기禪機를 활발하게 주고받는 작용을 임제종의 특징으로
포착한 평이다. 임제스님이 손님과 주인의 위치를 번갈아들며
살활자재하게 펼치는 선기가 마치 전쟁터에서 시의에 맞게 전략 전술을 펼치는
장군과 같다 하여 이에 비유하여
'임제장군' 이라 한 것이다.
10. 불법사태佛法沙汰: 중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법난法難으로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을 꼽는다
11. "황벽스님이 염관스님 회하에 있을 때,
후에 천자가 되는 대즹大中은 사미로 있었다.
황벽스님이 불전에서 예불하자 대중 사미가
물었다.
'부처에 집착하지 않고 구하고, 법에 집착하지
않고 구하며, 승중에 집착하지 않고 구하라 하였는데
장로께서 예배하심은 무엇을 구하고자 해서입니까?
'부처에 집착하지 않고 구하고,
법에 집착하지 않고 구하며,
승중에 집착하지 않고 구하며 항상 이와 같이 예배할 뿐이니라.'
예배는 해서 무엇 하려고요?
이에 황벽이 사미의 뺨을 때리자 사미가 말했다.
"너무 거치시군요.' 황벽은 ' 이 행위에 무슨 뜻이 있다고 거칠다느니 세밀하다느니 하느냐?'라
하고는 뒤이어 다시 뺨을 때렸고
사미는 곧장 달아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