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재의 탄화속도는 섭씨 800~1천도에서 시간당 19~39mm로 매우 느린 데다,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탄화막이 형성돼 더 이상 타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철의 경우 목재보다 100배 이상 열 전도율이 높아 쉽게 팽창하거나 휘는 약점이 있다.
숲이 늙어간다? 보이는 곳마다 지천이 푸르름인데? 도대체 무슨 얘긴지 어안이 벙벙해질 독자들이 많으시리라. 그렇지만 우리나라 숲은 점점 늙어가고 있다. 사실이란다. 우리나라 국토의 65%를 차지하는 숲. 천둥벌거숭이 산이 녹음으로 갈아입은 건 지난 1973년, 전국적인 치산녹화 10개년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때 조성된 나무들은 30여년이 지나면서 이제 키가 크고 살이 찌는 시점에 이르렀다. 불과 30여년의 기간 동안 우리네 산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짙푸른 나무들로 빽빽한 숲을 만들었다. 오죽하면 UN 식량농업기구(FAO)가 우리나라 산림녹화사업을 두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가 성취한 20세기 유일의 성공 사례”라고 혀를 내둘렀을까. 여기서 잠깐 눈을 낮춰 속을 들여다보자. 짙푸른 녹음 속은 너무나도 빽빽히 잔가지를 섞고 몸을 부대낀 탓에 햇볕조차 숲 바닥에 닿지 않는다. 아름드리나무로 자라고 싶어도 발 한번 편하게 뻗을 공간이 숲에는 없다. 나무를 건강하게 해주고 나무와 함께 성장할 숲속 하층생물들은 햇볕을 받지 못해 말라죽고 있다. 인구 과밀이 아니라 나무 과밀인 셈이다.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드는 데 쓸 만한 아름드리나무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숲은 콩나물 시루가 아니다. 산림청의 설명은 이렇다. 나무는 보통 땅 1평에 1그루를 심는다. 그러다가 30년이 지나면 5평에 1그루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베어내야 한다. 50년 뒤에는 7평에 1그루, 100년 뒤에는 10평에 1그루만 남기고 나머지는 베어낸다. 이 과정에서 열등한 품종은 잘라내 활용하고 우량 품종 중심으로 숲을 푸르게 만드는 것이다. 적절하게 솎아내야 건강한 나무가 잘 자란다. 숲은 푸르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한 것이 아니다. 발붙일 수 없도록 빽빽히 들어선 나무끼리 서로 몸을 부대끼고 뿌리를 섞으며 멍들고 썩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네 숲의 실상이다. 이제 발상을 전환할 때다. 나무를 많이 심는 시대에서 제때 베어주고 돈 되는 나무로 교체하는 시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산림정책에도 ‘선택과 집중’ 원칙이 도입돼야 할 시점이다. 지난 2월16일,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하는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산림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많이 확산되고, 그에 따라 온실가스를 빨아들이는 숲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2004년을 기준으로 우리 숲의 온실가스 흡수량은 대략 1천만탄소톤. 이를 유럽 이산화탄소 거래 금액 기준으로 환산하면 대략 4억5천만달러, 우리돈으로 4500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연간 숲에 투자하는 금액의 2배 이상을 숲이 벌어들이는 셈이다. 이제 숲의 고령화 시대를 대비할 시점이다. 자연은 순환할 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심기만 하고 관리하지 않은 나무는 늙고 썩어들어간다. 늙은 나무는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고 베어내는 데도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된다. 늙어 죽은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싱싱한 젊은 숲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또다시 수십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늦기 전에 고령숲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경과 경제 두 토끼 잡는 길 ‘솎아내기’ 솎아낸 간벌목 건축자재로 활용…숲 살리고 목재산업 활성화시키는 지름길
2003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들여오는 임산물은 모두 21억7천만달러, 우리 돈으로 2조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원목과 제재목, 합판 등 목재류가 17억7천만달러로, 전체의 81.5%에 이른다. 이에 반해 국내 목재의 자급률은 겨우 6.4%. 목재류에 있어서만큼은 수입에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나무의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산림을 뒤덮고 있는 나무들의 평균 수령은 대략 30년 안팎. 1970년대 치산녹화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한꺼번에 대량으로 심어진 수종들이 대부분이다. 당시 군사 정부는 벌거벗은 산을 빠른 시간에 녹음으로 뒤덮기 위해 자생력이 강하고 성장이 빠른 수종을 대량 보급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따라 목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이른바 ‘돈 안 되는’ 나무들이 산야를 뒤덮었다. 게다가 국내 수종들은 모양새가 삐뚤삐뚤해, 길게 잘라 건축재나 가구재로 쓰기 어렵다. 수입생 나무에 비해 길이와 폭도 짧은 편이다. 국내에서 자라는 30년생 나무들은 직경이 10~20cm 안팎으로, 직경 40~50cm의 수입 원목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 수입 원목들이 가구나 건축자재 등 고부가가치 자재로 탈바꿈하는 동안, 국내산 원목들은 기껏해야 수익성이 낮은 숯이나 사료, 톱밥과 펄프재 등으로 소비될 뿐이었다. 낮은 자급률 못지않게 경제성 면에서도 국내산 나무들은 수입품 앞에 맥을 못 추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IMF 이후 실업자 활용, 숲 가꾸기 활동 본격화
국산 나무의 활용도도 높이고 환경도 보전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지나치게 빽빽해진 산림을 적절한 수준으로 솎아내 우량 품종을 성장시키는 동시에, 이렇게 솎아낸 ‘간벌목’을 건축자재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다. 이를 위해선 국내 산림정책의 변화를 잠깐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해방과 6·25 전쟁 직후인 60년대까지 국내 산림은 식민지 수탈과 전란의 후유증으로 벌거숭이가 돼 있었다. 70년대 이후 군사정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치산녹화사업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수종과 열매를 맺는 유실수를 중심으로 대단지 조림에 집중했으며, 이런 ‘심기’(조림) 중심의 산림정책은 90년대까지 지속됐다. 일단 심고 보자는 생각에서 관리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IMF 외환위기였다. 대량 실업사태로 인해 인건비가 낮아지면서 실업과 산림 관리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98년 3월, 정부의 공공근로사업이 발표되면서 그동안 방치됐던 숲 가꾸기 활동도 본격화됐다. 그로부터 5년 동안 5700억원이 숲에 투입됐고, 해마다 1만3천여명의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아 숲으로 몰렸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국내산 목재의 수급률(자급률)이 갑자기 상승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표 참조). 하지만 이렇게 솎아낸 간벌목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베어낸 나무가 돈이 되지 않는 까닭이다. 나무를 베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인건비 즉 자본이 투입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베어온 나무가 돈이 돼야 한다. 수익이 나지 않는 곳에 투자할 바보는 없다. 간벌목은 경제성이 낮고 수요가 없다. 이 때문에 솎아내기 작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을 뿐더러, 베어낸 나무 또한 자원으로 활용할 생각 없이 야산에 방치해 두기 일쑤였다. 이렇게 방치된 나무는 갖가지 부작용을 일으켰다. 건조한 봄날, 야산에 버려진 간벌목은 그 자체가 대형 산불의 불쏘시개다. 장마철에는 야산에서 떠내려온 간벌목들이 다리 교각을 막아 둑을 이루면서 범람의 주범이 됐다. 일부는 썩어서 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곳곳에 버려진 간벌목은 그 자체로 자원 낭비일 뿐 아니라 흉물덩어리에 다름 아니었다.
간벌목 활용한 목재건물 짖기 운동 주목
이런 간벌목을 경제성 높은 건축자재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구조용 집성재’다. 구조용 집성재는 작은 목재 여러 개를 붙여 만든 가공 건축자재다. 우리나라처럼 10~20cm의 작은 나무들이 많은 나라에선 작은 목재들을 붙여 만든 집성재를 활용하면 부족한 대형 목재 공급을 대체할 수 있다. 또한 원목에 들어 있는 옹이처럼 질이 떨어지는 부분을 제거하고 우량 목재들만 가공해 만들 수 있어 질이 고르고 우수한 장점도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산림청과 목재문화포럼이 함께 진행하고 있는 ‘목재교실이 교육을 살린다’ 운동은 이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대표적 캠페인이다. 친환경 소재인 목재를 활용해 학교나 공공기관, 노인정 등의 건물을 목재로 건축하자는 운동이다. 이를 통해 버려진 간벌목도 활용하면서 목재 수요를 활성화해 관련 산업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최근 들어 기존 콘크리트 건물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목조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 시마네대학의 나카오 데쯔야 교수가 지난 2000년에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콘크리트에 살면 9년 일찍 죽는다>이다. 나카오 교수가 일본 내 1천여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이 논문에 따르면, 목조주택에 사는 거주자일수록 자녀수가 많은 반면 콘크리트 주택 거주자는 사고사나 암 사망률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카오 교수는 나무나 철 구조물보다 차가운 콘크리트의 ‘냉복사열’을 그 원인으로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목재문화포럼의 상임이사이자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희 회장은 “나무는 흙과 함께 가장 자연친화적인 요소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옥 소재”라며 “무한정 순환 가능한 천연자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간벌목을 활용한 목조건축물 보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위해 우선 자라나는 세대들의 보금자리인 학교나 유치원 건물을 중심으로 목조건축물의 보급을 확대하면서 점차 그 비중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3년에는 시범 사업의 일환으로 경기도 부천의 일신초등학교 체육관을 순수 국산 낙엽송을 이용해 제작했으며, 서울 경복고등학교 체육관 또한 목재를 활용한 친환경 건물로 리모델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내의 목조건물 보급률은 여전히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목조 건물은 비싸고 불에 잘 탄다’는 소비자의 인식 탓이 크다. 하지만 최근에는 목조건물이 콘크리트나 철근건물보다 화재에 더욱 강하다는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이런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 실제로 목재의 탄화속도는 섭씨 800~1천도에서 시간당 19~39mm로 매우 느린 데다,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탄화막이 형성돼 더 이상 타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철의 경우 목재보다 100배 이상 열 전도율이 높아 쉽게 팽창하거나 휘는 약점이 있다. 그럼에도 국산 집성재를 활용한 건축물은 콘크리트 건물에 비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가공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김대영 솔스티스종합건축 사장은 “최근 들어 수입철강 원자재가격과 수송비의 핵심인 기름값이 인상하면서, 과거 40%까지 차이를 벌렸던 건축비가 20% 정도로 줄어든 상태”라고 말했다.
목조건축물 보급, 법적·제도적 지원 필요
목조건축물의 보급을 위해선 정부의 법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80년대 후반부터 학교 건물을 대상으로 목조건축물 건립을 장려하는 한편 금전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86년부터 신축 목조건물의 2분의 1, 증·개축 건물의 3분의 1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문부성을 중심으로 목재 사용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공공시설이나 학교시설을 중심으로 국산 목재를 적극 활용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한편, 신설 학교시설의 일정 비율을 목조화 시설로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건설 후 임대(Build-Transfer-Lease·BTL)사업자 선정에서도 목재 사용업체에 대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과 더불어 목조건축 기술 보급을 위한 시범학교 운영 등도 거론된다. 산림청 또한 간벌목 활용과 목조건축물 보급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숲 가꾸기 5개년 계획’을 수립, 2008년까지 관리가 시급한 산림 100만ha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정비와 관리에 나선 상태다. 이와 함께 임업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토양에 맞는 경제 수종 개발에 나서는 한편, 산림조합중앙회로 하여금 정부보조금을 활용해 국산 목재 가공시설을 운영하도록 하는 등 다각도의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상태다. 김진균 산림청 산림정책국장은 “임업 및 산촌 진흥촉진에 관한 법률 등에서 국산재를 공공기관에 널리 쓰이도록 권장하고, 교육부에서 책·걸상을 국산재로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면서도 “자유시장 경쟁체제에선 아무래도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 보급이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균 국장은 “목재자급률이 10%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간벌목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며 “올해 2월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산림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면서 관련 예산도 증액돼, 올해부터는 좀 더 다양한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다. 간벌목을 경제성 높은 목재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숲을 살리고 목재산업도 활성화시키는 유력한 방안으로 받아들여진다. 더구나 환경친화적이고 건강에 이로운 목조건물의 보급을 확대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또다시 돈으로 돌아간다. 10~20년을 내다보고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투자를 할 것인가, 또다시 예산 타령하며 세월을 보낼 것인가. 대답에 앞서, 오늘도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 틈에서 원인 모를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온몸을 긁어대는 우리의 아이들를 떠올려 보시길…. ‘환경’과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살리는 비결은 다름 아닌,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데 있다. 이희욱 기자 asadal@economy21.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