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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행(강원도 강릉 부근)
토요일 화창한 날씨에 출발한 나의 여로는 정말 나의 마음을 한층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도로변으로 펼쳐지는 만추의 풍경은 설렘을 안고 과거 내가 처음 교직에 몸을 담았던 주문진과 그 주변으로 향한다는 감회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벌써 자동차는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드높은 산과 들, 계곡과 푸른 강으로 어우러진 강원도 땅을 달리고 있다.
가을을 먹으며 물 들어가는 산천을 보며 답답한 도시에서 느끼던 가을에 대한 감성을 잊기에 충분한 아니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그런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문막을 지나 대한 땅, 등줄기인 태백산맥의 중심을 관통하는 대관령을 바라보며 달리던 자동차는 잠시 열띤 몸을 시키려는 듯 한 휴게소로 들어섰다. 다른 휴게소와 달리 예쁘게 단장되고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진 소사 휴게소.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으며 주문진에서 근무 할 때 고향을 찾아 길을 달리다 몇 번인가 이곳의 휴게소에 멈추었다 지나간 기억이 새삼 정겨운 느낌을 주었다. 유독 파스퇴르 우유공장이 있어서 눈에 뜨이던 그곳……. 추운 겨울에는 따스한 커피 한잔하면서 밖으로 펼쳐진 설경을 보며 추위를 녹이다보면 이곳이 그럴 때는 꼭 내가 이국땅에 온 듯 착각에 빠지게 하는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산바람을 받으며 더위를 식히기도 했던 휴게소, 그 곳이 이 가을에 단풍든 산야에 펼쳐진 멋진 가을 색을 느끼게 하는데 아마 다른 지역보다 단풍이 드는 낙엽송이 많은 것이리라.
최고와 최상만을 고집하는 민족사관학교의 화려 웅대한 모습을 보며 또한 이런 학교 하나쯤 우리나라에도 있어야하지 않는가하는 사주의 큰 뜻을 삭여보기도 했었는데 얼마 전 TV프로그램에서 이 학교 학생들의 생활하는 모습이 방영되어 참 교육의 중요성과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교육과정과 이를 소화해 내는 학생들의 교육활동을 보며 훌륭한 교육자에 대한 선망과 빼어난 인재들의 학습욕구에 대한 감탄을 느꼈는데 -한편으로는 짜여진 교육과정을 소화해 내려는 교사와 학생들의 처절한 몸부림 같은 모습에 안쓰럽기도 하고 너무 고단한 청춘의 소비가 아닌가 하는 우리 교육의 또 다른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하면서-이제는 자율 시범학교로 바뀌었고 거의 무상으로 교육을 받던 것이 일반 학교의 두 세배가 넘는 교육비를 지불하고 다녀야 한다니...... . 자율 시범학교, 특수목적교, 특성화교, 외국어교 등 다양한 모습으로 교육의 열을 올리는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에 내 중고교 시절 받았던 교육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당시도 물론 명문고 있고, 과외공부며 학원도 있었지만 특별히 학력이 부족하거나 재수를 하지 않을 때는 학교 공부만으로도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충분히 희망하는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미 도심을 완전히 벗어난 강릉행은 첩첩 산중으로 우리를 몰고 가면서 자연에 동화가 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기분이었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은 이미 가을을 접고 앙상한 나신을 드리운 모습으로 지난여름의 화려함을 회상이나 하는 듯 아래로 내리면서 빨강과 노랑 그 밑으로는 초록을 일부 지닌 채 나를 반기고 있었다. 달리는 차로 변으로 연보라 빛 들국화와 노랑 들국화가 잎 바란 잡초의 흔들림 위에 더욱 자신의 작태를 뽐내듯 하늘거리며 미소를 보내고 있다. 간혹 도로변 멀 치에 사람의 손길로 피어난 코스모스의 반김도 나의 가을을 더욱 화사한 충족으로 몰아갔다. 계속 이어지는 구불거리는 대관령을 향하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높아져 가는 산길을 오르며 차안에서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것을 보니 역시 높은 산들이 펼치는 내륙의 기후를 체감했다. 차는 다시 휴게소로 밀려들어갔다.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하여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 간다는 주목나무군락지를 향했다. 일부 고사목이 된 주목나무 숲으로 난 계단을 오르던 나는 추울 것 같아서 준비해간 조금 두툼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런데 막상 정상에 오르니 따듯한 기운이 돌고 입었던 옷을 벗어야 할 정도였는데 아마 태백산맥이 만드는 특유의 푄현상에 의한 기후인가 보다. 대관령임을 나타내는 비석을 비켜서서 내려다보는 강릉 시내 전경은 아담한 시가지와 그 뒤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 산 아래로 듬성듬성 깔려 떠다니는 구름사이로 보이는 계곡으로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면서 또 한 번 가을이 화장하고 있는 모습을 느끼며 여행의 새로운 감회에 젖어본다.
편안하게 안을 듯한 동해바다의 쪽빛 푸름을 앞세우고 구불거리는 대관령을 내려오면서 숙소로 정해진 휴양림이 있는 어흘리 숲속을 들어섰다. 좁게 만들어진 동네 길목을 돌아 나오며 산속 깊숙이 시골마을을 고스란히 간직한 담장과 그 담 장 너머로 가지를 늘어트리고 매달린 주홍 감들의 휘 들어진 풍요, 뒤 담장을 넘어 늘어진 늙은 호박의 풍만한 게으름, 툇마루에 기둥에 매달린 옷수수, 빠끔히 열어놓아 저녁 햇살이 성큼 들어앉아 집을 대신 보아주는 넉넉한 인심을 보는 …….
겨우 차 한 대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몇 구비 돌아 언덕으로 오르니 계곡 사이로 울창한 숲과 그 안에 들어서 있는 통나무가 주재료로 만들어진 집이 우리를 반겼다. 웅대한 모습은 아니지만 제법 물이 많이 흐르는 금바위 폭포를 건너는 자리에는 콘도형 휴양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구적인 분위기의 건물을 보면서 아담하고 안락한 숲 속의 화려함을 동시에 느끼며 머지않아 다시 올 그곳에서의 하룻밤을 상상해 보며 몇 가지 점검을 하고 푸른 바다가 그리워 정동진을 향했다.
곧 바로 정동진으로 가는 동해 고속도로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바다와 면하며 나있는 안인의 해안도로를 택해서 정동진을 향했다. 해안도로에 들어서자 멀리 검푸른 바다와 가까이 비취색의 바다가 어우러져서 나를 반겼다. 가까이 비취색 바다는 거친 포효와 함께 성난 듯 거품을 물고 커다란 파도가 되어 뭍의 바위를 부딪고 할퀴며 커다란 포말과 안개를 만들어 내며 도로변을 적시고 있었다. 그렇게 파도치는 해안도로를 몇 굽이 휘돌아 도착한 정동진…….
서정적인 풍경으로 예스럽던 역전과 올망졸망 바다를 바라보며 정겹게 살던 동네는 인간의 얄팍한 상흔에 카페와 술집,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씁쓸한 잡맛만 남기고 있었다.
정동 진 역을 나와서 바닷가로 향했다. 무엇에 성이 났는지 커다랗게 파도를 만드는 바다는 멀리 떠 있는 작은 어선을 삼킬 듯이 흔들고 있고 못내 아쉬운 듯 모래사장에 포말로 부딪고는 한 움큼 모래를 물고 되돌아 이어지는 파도에 수렴한다.
정동진 모래사장에는 파도에 휩쓸러 오는 스티로폼 조각하나 파도에 밀려오면 몇 아이들이 주워서는 다시 멀리 바다로 던지고 파도가 밀려간 백사장에 그것이 남게 되면 그것을 주우려 달려가고, 주워서는 다시 바다로 던지고 그러면 파도는 그것을 다시 뭍으로 던지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반복을 하며논다. 그러다 파도의 속임수에 넘어가 빠르게 밀려 덮치는 물벼락을 맞고 물에 빠진 새앙 쥐가 되어서 울먹이다가는 이내 까르르 서로의 모습에 웃음을 자아내곤 다시 같은 놀이를 반복한다. 바다도 그네들과 한 몸이 되어 즐거운 듯 넘실대며 더욱 세차게 부딪고 달려들었다가는 작게 밀려오며 어우러진다. 한동안 바라보다 해가 등 넘어 산 위에 걸린 것을 보고는 재촉해서 해돋이 조각 공원으로 향했다.
조각 공원에 들어서 바다를 배경으로 어우러진 세계 각국의 조각가들이 만들어 세운 조각들을 감상하고 그곳에 있는 어울리지 않는 배 카페에서 따스한 커피 한잔하며 어둠에 잠들기 시작하는 바다를 바라보다 멀리 바다 위에 떠있는 오징어 배의 화려한 불 잔치를 보았다. 불빛에 놀란 듯 종종 뒤척이는 바다의 움직임은 검은 자리에 흰 다리를 뒤집곤 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정동진을 뒤로 하고 강원도에서는 가장 큰 어항이 있는 주문 진을 향했다.
한때 내가 살던 곳 시골 같은 정취에 나의 초임 발령지였던 그곳으로 향할 때 나의 마음은 뭔지 모를 감회와 회상에 젖어 들었다. 강릉 시내를 통과하면서 주문진을 향하는 길은 어둠 속에 달리고 있는데도 푸근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주말이라 어렵게 얻어진 숙소에 여장을 풀면서 이곳도 내가 살던 그 당시와는 너무 많이 변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나의 마음에 뭔가 아쉬움을 자아냈다. 항구로 향하던 길가도 이제는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도시 중심의 주차난을 연상케 했다. 막연한 실망감에 바다를 면하고 있는 횟집에서 쓴 소주를 마시며 그냥 지나치고 다른 곳에 숙소를 정할 걸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다행히 함께 근무하던 몇몇 지인들과 만나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하고 지나간 이야기, 지금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다음날의 가을 여행을 기대하면서…….
아침, 항내에 있는 여주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으며 그 집의 아들 중 하나인 내 제자의 소식도 듣고 이런 저런 변화된 주문진의 이야기도 하고 다음 목적지인 오대산의 소금강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소금강 입구인 연곡 천은 주문진과 사천 사이에 있는 데 그 맑은 연곡 천을 따라 오르는 길은 정말 환상적인의 드라이브 코스를 전개하는 16km길이었다. 연곡 천을 따라 양쪽으로 산자락이 펼쳐져 있고 그 자락 끝의 야트막한 곳에는 양지쪽을 향하여 전형적인 우리네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고 집집마다 감나무에 매달린 감이 평화로운 시골의 풍치를 자아냈다.
이맘 때 즈음이면 파리낚시를 매고 이곳으로 나와 은어 낚기를 하고 그곳에서 잡은 은어를 안주 삼아 마시던 술자리가 생각나기도 하고 겨울에 바위를 들썩여 잡은 개구리를 구워먹던 생각, 어른 둘째손가락 만한크기로 미꾸라지와 비슷하게 생긴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따서 꾹저구 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있는데 남원 추어탕처럼 고춧가루를 많이 풀어서 얼큰한 것이 추어탕 비슷한 맛인데 이곳의 추어탕이나 꾹저구 탕에는 국물에 밀가루(?)같은 것이나 계란을 풀어 넣어서인지 걸쭉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이곳에서의 추억이 적잖게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추억이 물들어간다.
계곡이 깊어질수록 가을 색은 점점 짙어지고 추억은 새록새록 피어나는데 무심히 지나던 길에서 언제부터 들어섰는지 경치 좋은 목에는 독특한 형태의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어느 곳은 주위의 경관과 어우러져 보기 좋은 구조를 하고 있어 잠시라도 쉬고 싶은 마음을 자아내는가하면 어느 곳은 너무 동떨어진 모습으로 아무리 휘황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볼 상 사나운 그런 모습이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데 어울리게 지어놓으면 좋을 것을 이런 저런 풍경을 눈으로 담아가며 소금강 입구에 다 달았을 때, 알 수 없는 수많은 인파가 나를 먼저 반기고 있었다.
소금강이라고 새겨진 비석을 지나며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깊은 계곡을 옆으로 두고 오르는 소금강은 정말 가을의 경치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깎여진 절벽사이로 동양화에서 보는듯한 소나무의 하늘 향하기 그 사이사이로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들 그 잎 하나 떨어져 계곡의 맑은 물에 앉을 때 비취빛 여울물은 금방 붉게 물들어 갈듯 하였다. 식당 암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할 때 둘러본 주위의 가을은 정말 아름다움이라는 말로밖에 다른 표현을 넣을 수가 없었다. 무심히 내려다 본 깊은 계곡 물에 빠르게 헤엄쳐 이동하는 팔뚝만한 커다란 물고기……. 누군가가 산천어다 혹은 열목어다 하며 그곳을 가리켰다.
그때 문득 스치는 과거의 추억……. 내가 지도하던 학생들과 한여름을 보내고 가을 초입에 진 고개를 오르는 삼산 계곡에서 작살을 갖고 수경을 쓰고 산천어를 잡던 기억이 난다. 짓궂은 제자 녀석들의 꼬임에 빠져 옷 입은 채로 계곡에 던져져서 허우적이다 나와서는 다시 옷을 벗고 계곡 물에 들어가 같이 물놀이도 하고 그 곳에 사는 학생 집에 가서 옷도 말리고 학부형이 즉석에서 만들어준 토종닭찜도 먹고 산에서 캐온 꾀 큼직한 자연산 더덕도 몇 뿌리 얻어온 정말 시골스런 정을 많이 느낀 추억이었다. 그 놈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시 구룡폭포를 향해 오르기 시작할 때 헬기 소리가 계곡을 뒤흔드는가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모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는 것이었다. 손을 흔들어 보이며 구룡폭포가 있는 위로 향했다. 곳곳에 곱게 물든 단풍이 너무도 고와 따서 만져보고도 싶은 마음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눈요기를 위하여 마음을 추슬러 눈으로만 보고 입으로만 감탄을 하며 올랐다. 구룡폭포에 오르니 제법 세차게 바위를 부딪고 떨어지는 폭포를 감상하였다. 오르는 동안 송골송골 맺힌 땀을 계곡 물에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출출한 허기짐을 느껴 빠른 걸음으로 하산을 했다.
점심은 강원도에서 토속음식으로 유명한 막국수를 먹기로 했다. 막국수하면 춘천 막국수가 유명하지만 동해안 쪽으로도 막국수 집이 유명한데 춘천의 비빔 막국수와는 달리 이곳에는 물 막국수가 더 유명하고 잘하는 집이 많았다. 내가 살 때 즐겨가던 잊히지 않는 맛의 집을 가기로 했다. 주문진읍 내 중심을 흐르는 실리 천 옆에 있는 실리 면옥인데 그곳은 너무 자주 가서 주인이 내가 오면 특별히 가자미 식혜를 많이 주기도하고 싸주기도 했던 곳이다. 연곡 천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 혹시 주인이 바뀌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입 속에 흥건하게 고이는 침을 몇 번인가 삼키었다.
실리 면옥에 들어가는 입구는 변함이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있어 그곳에 자리하고 앉아 주인을 찾으니 주방에 주인이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주인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들어서며 먼저 알아보고 나와서는 반가이 맞아주며 정겨운 눈짓으로 반겼다.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하는데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6년이 다 지나가는데도 나에게 해주던 모습으로 수육에 많이 담은 가자미식혜를 내 놓았다.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는 맛으로 눈 깜짝할 새에 먹어치우고 이어서 나온 막국수를 먹으며 정겨운 이곳에서의 생활을 기억 속에서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넉넉해진 포만감을 뒤로하고 삶의 터로 향해 장도의 길을 다시 열어본다. 진 고개를 넘어오는 길에 송천 약수도 한모금하고 구비 구비 진 고개를 넘어 공해에 찌든 곳을 앞으로 보며 차를 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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