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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중국 #난징 에서 #일본군 에게 살해된 중국인 시신들을 한 일본군이 바라보고 있어요.
바이두
난징대학살을 설명하기 위해 #중일전쟁 (1937~1945) 이 왜 일어났는지부터 살펴볼게요.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루거우차오 다리 부근에는 마쓰이 이와네가 이끄는 일본군이 진을 치고 있었어요. 당시 중국의 반(反)제국주의 농민 투쟁인 #의화단사건 이 실패한 후 각국의 군대가 중국에 들어와 있었거든요. 1937년 7월 7일, 여름밤의 정적을 깨고 여러 발의 총소리가 들렸어요. 지금까지도 누가 어떤 이유로 총을 쏘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일본군은 중국에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며 #루거우차오다리 를 점령 해 버렸어요.
이후 일본군은 #베이징 과 #톈진 에 이어 #상하이 까지 #공격 했어요. 중일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답니다. 당시 #중국 은 #국민당 과 #공산당 이 서로 다투던 때였어요. 일본에 맞서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되자 국민당과 공산당은 힘을 합해 일본군에 저항했어요. 처음에 일본은 3개월이면 승리할 줄 알았는데 중국의 저항이 예상보다 강해 전쟁이 지루하게 계속되었지요.
난징의 운명은 국민당이 수도를 난징에서 충칭으로 옮기면서 달라졌어요.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했을 때부터 이듬해 1월까지 40여 일간 일본군의 잔혹한 #살상 이 이어졌지요. 도시는 연기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무차별 #학살 됐어요. #생매장 을 당한 사람도 있었고, 여자와 아기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목 베기 시합을 하는 일본 군인들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어요. 이번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유산 중에는 무릎 꿇은 중국인의 목을 단칼에 베는 사진도 있어요.
아비규환의 지옥 불구덩이 속에서 한 줄기 빛은 #독일 #기업인 #욘-라베 , #미국인 #선교사 #미니-보트린 등 외국인이었어요. 이들은 외국대사관과 난징대학교를 중심으로 안전구역을 만들고 중국인들에게 숨을 장소와 음식을 제공했어요. 욘 라베는 자기 재산을 털어 650명이 넘는 중국인을 보호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때 오스카 쉰들러가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구했던 것처럼 욘 라베는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구해낸 거예요.
중국이 공개한 1947년 난징시 군사법정 판결문에 따르면, 난징대학살 당시 30만명 이상이 살해됐다고 해요. 12초에 한 명 꼴로 억울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셈인데요. 일본은 이 자료의 사실 여부를 따지며 중국과 대립하고 있어요.
얼마 전 #아베신조 #일본총리 는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경위를 조사하라고 지시했어요. #일본군위안부 #관련자료 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준비라고 해요. 우리나라와 일본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기록과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의 유네스코 등재를 놓고 갈등 중이에요. 난징대학살 관련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이유랍니다. 중국과 일본이 양국의 역사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도 눈여겨봐야겠지요?
출처: 조선일보|[공미라]세계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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