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징계로 오역한 ‘파이데이아’는 훈련, 교육, 양육을 의미한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은 좋은 씨를 제(아우토스) 밭(아그로스)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3)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하는 ‘아그로스(마음 밭)’가 있다고 한다.
4) 아그로스 마음 밭은 ‘코스모스’ 마음 밭 안에서 발견하는 마음 밭이다.
나. 본론
1) 징계로 오역한 ‘파이데이아’는 훈련, 교육, 양육을 의미한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번역이 잘못 되었다.
‘징계’로 번역한 ‘파이데이아’는 훈련, 교육, 양육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는 양육이다. 참 아들에게만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징계가 아니다. 번역이 잘못되었다.
하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저희에게는 ‘파이데이아’ 훈련을 하지 않고 이들을 떠나신다. 오직 너희에게만 오셔서 하시는 훈련이다. 내 안에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의 일하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난의 과정을 알고 이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파이데이아’는 훈련, 교육, 양육으로서 신약에 6회 나온다. ‘파이데이아’는 ‘파이듀오’에서 유래하였다. ‘파이듀오’는 훈련시키다, 교육시킨다는 뜻이다. 신약에 13회 나온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은 좋은 씨를 제(아우토스) 밭(아그로스)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파라볼레)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아그로스)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 13:24)’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은 좋은 씨를 제(아우토스) 밭(아그로스)에 뿌린 사람과 같다’ 하였다. ‘제 밭(아우토스 아그로스)’을 저 자신(아우토스)이라 말씀하신다. ‘예수 자신’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살과 뼈로 말씀하시고 있다. 우리는 마음을 항상 ‘나’로 생각한다.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느끼고 인식하고 생각하고 반응하고 하는 것을 모두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하는 ‘아그로스(마음 밭)’가 있다고 한다.
보는 나, 생각하는 나, 느끼는 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도몽상(顚倒夢想)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 예수 자신이라고 하는 ‘아그로스(마음 밭)’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왜 그러한지 우리 마음 세상(코스모스)을 파헤쳐서 분석하여야 한다. 마음에는 가라지가 나오는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 밭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아닌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아닌 것은 항상 변한다.
그런데 우리는 변하지 않는 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마음(아그로스) 밭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가다가 허무하게 죽어가고 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아그로스)이라는 마음(아그로스) 밭을 발견하지 못하고 종교행위만 하고 죽는 다면 끝없는 고난의 과정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고통을 받게 된다.
4) 아그로스 마음 밭은 ‘코스모스’ 마음 밭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음 밭이다.
아그로스 마음 밭은 ‘코스모스’ 마음 밭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음 밭이다. 창 1:1 그 하늘들과 그 땅 안에서 아그로스의 마음 밭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그로스의 마음 밭을 얻기 위해 먼저 와 있는 마음 밭(그 하늘(핫사마임)과 그 땅(하아레츠)을 바라하신다.
아그로스 마음 밭, 코스모스 마음 밭, 그 하늘들과 그 땅의 마음 밭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말씀의 씨앗을 뿌리며 일해야 할 그 마음의 바탕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창조가 아니며, 우주는 우주의 원리를 따라 그 속성대로 흘러갈 뿐이다. 내 안에서 아그로스의 마음 밭을 발견하면 그 때부터는 시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 잠시 잠간 있는 몸을 벗든지 벗지 않든지 아무 관계가 없다. 우주가 없어져도 아무 상관이 없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