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는 성경을 중심으로 성령의 조명을 받는 신학과 설교를 전개한 개혁자입니다. 그의 성경관은 그의 성경 해석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츠빙글리는 '성경의 명료성'이 공식적인 교회 해석의 필요성(예: 카톨릭 교회가 성경보다 우위에서 성경을 판단)을 제거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중개자 없이 성령이 신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성경을 조명하는 것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구분선 아래에 츠빙글리의 12가지 말씀 지침을 올립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공부할 때 좋은 참고사항이 될 것 같습니다.
츠빙글리의 “12가지 말씀 지침”
츠빙글리는 요약하여,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영의 조명을 받은 말씀인지를 아는지, 어떻게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을 훼손하는지, 하나님의 진리를 순수하게 바로 가르치는지, 또는 개인적 열의로 인하여 하나님 말씀을 더럽히지 아니한지를 일반 성도가 이해할 수 있도록 12가지로 설명한다. 일반 성도의 관점에서 성경해석을 판단할 수 있도록 내리는 은혜로운 지침이라 하겠다. 아마도 츠빙글리는 이 12가지를 설교하며, 깊은 은혜를 스스로체 험했으리라 생각한다. 츠빙글리가 반복해서 가져오는 독일어 어휘가 쉬퓌렌(spiüeren)인데, '성령의 역사를 감지하고 느끼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점이다. 츠빙글리의 성령의 신학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1. 모든 이는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인간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는 옛사람을 죽여야 한다.
2. 옛사람이 죽고 내쫓김을 당할 때, 하나님은 그 안에서 자비롭게 그 심령에 오셔서, 풍성하도록 그가 오직 하나님만 믿고 신뢰하게 한다.
3. 그럴 경우, 넘치는 기쁨을 체험하게 되며 한량없는 위로를 받는다. 이때 성도의 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하게 된다. 시편 68:29과 고린도전서 10:12을 따라, 나의 주인이신하나님, 우리를 굳세게 하시고, 우리를 붙드셔서 넘어지지 않게 하소서! 라고 고백한다.
4. 하나님은 누구도 간과하지 않으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을 부르신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통해 바울에게 말씀을 주셨다(행 9:15).
5.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자의 교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로 만든다(눅 1:52; 3:5).
6. 하나님 말씀은 가난한 자를 향하시고, 그들을 도우시며, 위로를 잃어버린 자들과 의심하는 자들을 강하게 한다.
7. 하나님 말씀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나는 제자들에게 돈 자루나 주머니를 갖지 말라고 하셨다(누가 10:4).
8. 하나님 말씀은 강퍅한 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며, 겸손한 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한다. 설교자는 바로 이러한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 인간의 규칙을 옹호하려는 설교자는 거짓 예언자이다. 그러한 설교자는 복음을 너무 나약하게전하는 것이다.
9. 하나님 말씀이 당신을 새롭게 하고, 당신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도록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이끄는 것을 감지한다면 (Spuerst du, ...),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10.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원한 구원을 확신하도록 느낀다면,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11. 하나님 말씀이 당신을 작게 그리고 왜소하게 만드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커진다면,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12. 하나님을 두려워함(die Furcht Gottes)이 당신을 슬프게 하지 않고, 점점 더 당신을 기쁘게 만든다고 느낀다면, 이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는 확실한 표시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그의 영을 성도 안에 주시기를 원한다! 아멘.
주도홍, 『개혁신학의 뿌리 츠빙글리를 읽는다』(세움북스), pp.62∼64.
첫댓글 로마교회가 보기에 성경은 애매한 것이며, 신앙과 실천의 문제에서조차 해석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 로마교회의 이 입장에 반대하여 개혁자들은 성경의 명료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성경에 인간 이성을 초월하는 신비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려 하지 않고 흔쾌히 인정하고 있다. ... 구원에 필요한 지식은 성경 각 부분에서 똑같이 명료한 것은 아니지만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인간에게 단순하고 포괄적인 형태로 전달되어서, 진지하게 구원을 찾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 아래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필요한 지식을 자기 힘으로 얻을 수 있으며 교회나 성직자 개인의 도•움이나 인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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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명료성
로마교회가 보기에 성경은 애매한 것이며, 신앙과 실천의 문제에서조차 해석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성경은 삼위일체 교리, 성육신 교리 등과 같은 깊은 신비들도 담고 있으며, 대단히 애매하여 오해될 수 있다. 이 이유 때문에 무오한 해석이 요구되며, 이 해석은 교회가 제공한다.
베드로는 분명히 성경의 어떤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으며, 수 세기 동안의 역사도 교회의 무오한 해석이 없이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바람직한 통일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증명해 주었다는 것이다. 로마교회의 이 입장에 반대하여 개혁자들은 성경의 명료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성경에 인간 이성을 초월하는 신비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려 하지 않고 흔쾌히 인정하고 있다. 또 그들이 해석자가 학문적인 석의 없이도 잘해 나갈 정도의 명료성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들은 로마교회의 성직자들보다 훨씬 더 석의 작업에 몰두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구원의 길이 성경에 대단히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이 성령의 조명을 받거나 받지 않거나 또 구원의 길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거나 갖고 있지 않거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구원에 필요한 지식은 성경 각 부분에서 똑같이 명료한 것은 아니지만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인간에게 단순하고 포괄적인 형태로 전달되어서, 진지하게 구원을 찾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 아래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필요한 지식을 자기 힘으로 얻을 수 있으며 교회나 성직자 개인의 도움이나 인도를 필요로
인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말씀을 전파합에 있어서 교회의 해석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성경이 스스로의 명료성을 증거하여 우리 발의 등이며 우리 길의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뿐만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자기들의 메시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했고, 결코 그들을 진리를 이해할 수 없는 미성년자로 취급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가리켜 판단하고 이해하는 사람이라고까지 하였다(고전 2:15 10:15: 요일 2:20).
성경은 그 명료성으로 인해 자기 해석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개혁자들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서 신앙의 유추 또는 성경의 유추에 따라 해석한다고 말했고, 성경이 성경의 해석자(Scriptura Scripturaeinterpres)라는 위대한 원칙을 설정했다. 그들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교회의 특별한 역할을 불필요한 것으로 보지 않고, 이 점에 있어서 교회의 의무를 분명하게 강조했다. 따라서 그들은 교회의 교훈권(polestas doctrinae)을 말했다.
루이스 벌코프, 『벌코프 조직신학』, p.113.
@장코뱅 성경의 명료성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진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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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7항에 대한 해설
성경에 계시된 교리 가운데는 삼위일체, 성자의 영원한 발생, 성육신과 같은 인간의 이해력을 뛰어넘은 교리들이 존재한다. 그런 교리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지만, 성경은 그런 교리를 명확하게 가르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증언에 따라 그런 교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울러 성경에는 불확실한 내용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불확실한 내용은 우리의 구원과 크게 관계없는 역사나 예언에 주로 국한된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자연 속에 다 존재하고, 또 그 안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보석이나 황금같이 덜 필요한 것들은 특정한 장소에 깊이 숨겨져 있어 큰 노력을 기울여 성실하게 추구해야만 발견하고 얻을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에도 그것을 알지 못해도 영혼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진리(심지어는 뛰어난 지성과 학식을 소유한 사람들조차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진리)가 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해 꼭 알고, 믿고, 지켜야 할 모든 진리는 성경 곳곳에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진지한 태도로 일상적인 수단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그런 진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자체가 이 점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믿음과 실천의 규칙으로 허락하셨다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을 읽고 배우라고 명령한다. 이런 명령은 성경이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성경은 말씀을 상고하고, 기록된 말씀으로 스스로에게 전달된 교리를 시험하라고 명령한다(행 17:11). 평범한 신자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없고, 교회가 그 의미를 해석해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들은 확실한 믿음의 근거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신자들의 믿음이 인간의 증언에 의존할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증언은 오류가 있기 때문에 확실한 믿음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아울러 우리는 성경의 주관적인 명료성, 곧 성령의 내적 조명이 구원을 위해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이해력이 타락과 부패로 인해 어두워지고 왜곡되었기 때문이다(고전 2:14). 성령의 조명이 불필요하다면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이 성경을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마 11:25). 하나님은 성령의 특별한 조명을 통해 자신에 관한 일을 이해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성도들은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할 수 있다(요 14:26. 시 118:18).
로버트 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p.39.
@장코뱅 명확하고 분명하게 진술하는 성경을 믿으며 성령의 조명을 또한 기도합니다.
성경의 명료성 perspicuity of Scripture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해 얻는 구원"에 관한 복음이 성경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음을 밝히는 교리, 종교개혁 이전에 통용되던 견해는 성경이 너무 복잡하므로, 교회 전통과 사제들의 중개가 없이는 일반인들이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관점에 항기하면서 성경의 명료성을 주장했다. 이 교리는 그들이 성경 번역의 열정을 품으며 자국어로 전달되는 단순한 선교를 선호하게 되는 네 영향을 미쳤다. 다만 명료성을 옹호한다고 해서 숙련된 성경 해석의 필요성이 제거되거나, 성경의 모든 내용이 분명하고 알기 쉬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도 이 교리에서 단언하는 것은 곧 성경의 메시지가 명확히 제시되어 있으므로, 적어도 기본적인 수준에서는 고도의 신학석, 주해서 훈련이 없이도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켈리 M. 케픽 등, 『개혁신학 용어사전』, p.32.
사전적 정의는 간단하고 압축적이어서 초보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회가 해석해서 주는 말씀을 받으라고 하면서 성경보다 교황과 교회의 권위를 더 위에 두었지만, 츠빙글리는 모든 사람이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고 역설을 했군요. 각자가 말씀을 읽으면서 옛사람을 죽여서 내쫓아낸 그 자리에 하나님의 위로와 넘치는 기쁨이 함께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하게 된다. 츠빙글리의 이 지침이 과감한 개혁 정신을 잘 보여주네요.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의 관계를 확실히 붙잡고 있었던 개혁자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설교자가 사적인 유익을 취하려 하고, 인간의 규칙(당시 가톨릭을 염두한 것으로 이해됨)을 옹호하려 한다면 거짓 예언자라고 한 말씀을 오늘날 교회 설교자들이 잘 새겨들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포스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분별에 공감합니다.
현대 교회는 설교를 잘 하려고 애쓰기보다 틀린 설교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코뱅 두 분 말씀에 모두 공감합니다.
츠빙글리의 12가지 말씀 지침을 응용하여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한편 설교나 책의 내용도 잘 분별하고 싶습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