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다툼
노은희
‘아구아구 아구찜’ 주인장은 썩 친절한 편이 못 되었다. 하지만 주방에서 내오는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주인장의 형이 안강망어선을 타는 사람이라고 했다. 안강망어선은 아귀를 잡는 배다. 아귀의 한자 이름 안강(鮟鱇)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구아구 아구찜’은 싱싱한 아귀를 들여오는 통에 입소문이 난 가게라고 했다. 마산에서 직송으로 받는 신선도 높은 아귀는 주인장의 큰 자랑거리였다. 팔팔한 고기는 뒤로 하고 나는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알싸하고 자극적인 주방장의 손맛에 끌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은 날, 주저없이 ‘아구아구 아구찜’을 찾았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내어주고 쑥으로 만든 얇게 부친 전이 나온다. 노릇하게 구운 전은 리필도 가능했지만, 주인장은 접시가 비었다고 주는 성격은 아니고 손님의 요청이 있을 때만 가져다주는 스타일이다. 탱글탱글한 묵도 마트에서 파는 것이 아닌 도토리 가루로 직접 쑤어 만든 것이라 간장 양념만 찍어도 맛있다. 적당히 아삭거리는 콩나물의 식감과 향긋한 미나리가 주린 배를 자극하면 간판처럼 아구아구 아구찜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입이 짧은 민이가 눈치 없이 한 소리를 뱉는다. 나는 말이야, 아귀라는 생선 자체가 왠지 싫더라. 아귀라는 귀신 알아? 배가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은 바늘구멍처럼 아주 작아서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는 정말~ 불쌍한 귀신. 그 가엾은 귀신이 생각나서 아귀찜 자체가 딱 싫더라고. 빨간 콩나물만 몇 가닥 집어 깔짝거리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민이는 딱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민이 같은 사람만 있으면 음식점 장사들은 다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귀를 찾아 야무지게 탱탱한 살을 발라 먹었다. 미끄덩한 살을 싫어하는 민이에게 탱글탱글 흰 살은 양보해 주었지만 민이는 그조차 깨작거렸다.
옆 테이블의 속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데이트 중인 남녀 같다. 아귀찜을 앞에 두고 앉을 정도면 꽤 오래된 커플일 것이다. 아귀찜은 예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지 않은가. 쓸데없이 입만 커다란 녀석은 온몸이 주둥이라며 이빨이 너무 징글맞게 생겼다며 투덜거리는 여자에게 남자는 무심하게 답한다. 경남에서는 물꿩이라 부르고 인천에서는 물텀벙이라 부른다며 슬쩍 말을 돌린다.
모락모락 김이 오른 아귀찜이 나오자 여자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검정 고무줄을 찾아 야무지게 머리를 묶는다. 여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요 앞 건물 새로 짓는 거 알지? 거기 1층부터 3층까지 전체가 아귀찜이 생긴다는데 19,900원이 3인분이라고 하더라. 대박 아니니? 그럼, 이곳 장사 잘 안될 것 같아. 가격이 싸지도 않고 사실 건물도 너무 후졌잖아. 사실 난 화장실 때문에 이곳에 오는 게 좀 꺼려지거든. 예의 있는 커플은 한껏 목소리를 낮춰 주인장에게는 들리지 않게 이야기를 나눴다.
눈치 없는 민이는 옆 테이블의 말을 듣고 곧바로 반응했다. 맞다! 너도 들었어? 바로 앞 도로에 아귀찜 집이 생긴다고 하던데. 거기는 체인이라서 값이 무지 싸다고 하더라. 이 가게도 손님 다 뺏기는 거 아냐? 나는 우적우적 콩나물을 씹으며 민이를 쏘아 보았다. 목소리 좀 낮춰. 민이는 입을 삐죽이며 밑반찬으로 나온 옥수수 콘을 깨작댔다. 주인장은 민이의 말을 들었는지 공연히 큼큼 소리를 냈다.
나도 옆 테이블 남자와 같았다.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은 아니더라도 쪼그려 앉는 변기에 앉을 때면 기분이 별로였고, 무릎이 불편한 엄마와는 자연스럽게 찾지 않는 음식점이 되었다. 주인장은 단골이라고 해도 음료 한잔 서비스로 주는 법이 없다. 공짜는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단체 손님을 모시고 와도 본 체, 만 체할 때는 서운한 생각도 들었던 터라 내심 19,900원의 아귀찜 신장개업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싼값에 좋아하는 음식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건 기대되는 일이었다.
민이의 예상은 적중했다. 19,900원의 가격은 손님의 발걸음을 끌기 충분했다. 네이버 영수증 인증을 하거나 SNS에 가게 개업을 알리는 글을 올려주면 음식값을 할인해 주었고 인심 좋게 음료수도 서비스로 내어주었다. ‘아구아구 아구찜’에는 콜라와 사이다만 있었지만, ‘싸다, 아귀찜’에는 제로 콜라부터 닥터 페퍼까지 음료도 종류별로 구비해 두었다. 화장실에는 물비누와 구강청결제까지 준비되어 있었고, 진하지 않은 디퓨저 향도 썩 마음에 들었다. 문득 ‘아구아구 아구찜’ 주인장의 얼굴이 스쳤다. 맛으로 승부를 걸기에는 턱없이 힘든 싸움이 시작된 듯싶었다.
‘싸다, 아귀찜’은 주인장이라는 직함보다 대표이사라는 호칭이 훨씬 잘 어울렸다. 젊은 사장은 계산대 앞에 싹싹한 얼굴로 앉아 명함 이벤트에 대해 열심히 홍보했다. 손님들 명함을 추첨함에 넣어두면 오픈 행사로 선물을 증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아구아구 아구찜’과는 달리, 빠릿빠릿한 로봇이 서빙을 보고 있었는데 추가 반찬도 부담 없이 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제주산 레드비트로 담은 물김치는 시각적으로도 먹음직했고 으깬 고구마 샐러드와 생수 대신 내어주는 홍화 차의 깔끔한 맛도 매력적이었다.
사실 메인 메뉴만 두고 평가하자면 내 입에는 ‘아구아구 아구찜’이 맛있다. 감칠맛도 깊은 맛도 ‘싸다, 아귀찜’은 따라올 수가 없다. 하지만 가성비를 생각할 때 ‘싸다, 아귀찜’은 나쁘지 않았다. 밑반찬의 가지 수가 많았고, ‘아구아구 아구찜’은 대, 중, 소만 선택할 수 있다면, ‘싸다, 아귀찜’은 아귀 추가, 콩나물 추가, 해물 추가가 가능해서 왠지 더 싸게 먹는 기분이 들었다. 간판부터 싼 이미지로 대중을 휘어잡고 가니, 살기 팍팍한 시절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싸다, 아귀찜’을 선호하게 되었다.
지역방송 TV에서도 ‘싸다, 아귀찜’은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아구~ 아니죠! 아귀~ 맞죠!” 여배우의 입을 빌려 ‘아구아구 아구찜을’ 저격하는 듯한 뉘앙스! 표준어를 제대로 알려준답시고 사용한 광고 문구는 ‘아구아구 아구찜’을 두고 한 말 같았다. 아구찜 주인장이 들으면 얼마나 밉살맞을까 싶었다.
‘자장면’이 표준어였지만, 실상 ‘짜장면’이란 단어가 주는 힘이 있다. 슥슥 비벼 먹는 면은 ‘자장’이 아닌 ‘짜장’이어야 제맛인 듯 여겨졌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난이 덕지덕지 붙은 면은 ‘자장’이 아닌 ‘짜장’이 되어야 옳았다. 내겐 아귀찜도 그랬다. 아구아구 먹는 아구찜이 아귀찜보다 정감 있게 느껴졌고, ‘아귀’라는 포준어보다 ‘아구’라는 방언이 착착 입에 감겼다. ‘자장면’과 ‘짜장면’ 모두 표준어로 인정해 주었듯 ‘아구’와 ‘아귀’도 둘 다 표준어가 되면 어떨까. 그래서 우리 동네에 ‘아구아구 아구찜’도 ‘싸다, 아귀찜’도 공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싸다, 아귀찜’ 주변에 장어집도 들어섰는데 서로 경쟁하기보다 음식점 골목으로 유명세를 떨치면서,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되었다. 그즈음, ‘아구아구 아구찜’에는 파리가 날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코로나 때보다 더 손님이 없더라는 얘기가 들렸고, 주인장이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았다는 말도 들려왔다. ‘싸다, 아귀찜’을 다니면서 ‘아구아구 아구찜’엔 발길을 끊어 확인할 길은 없지만, 위기의식을 느낀 주인장이 화장실을 올 수리 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사무실 회식이 있어 ‘싸다, 아귀찜’을 예약했다. 오랜만에 ‘아구아구 아구찜’도 끌렸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직원들이 ‘싸다, 아귀찜’을 원했기 때문이다. 테이블을 예약하면서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단골 미용실이 있었다. 내가 단골이 되길 원했던 곳은 아니고 어머니가 자주 드나들면서 가족이 이용하는 미용실이 된 경우였다. 아빠도 엄마의 입김으로 이발소 대신 ‘머리나라’를 가야만 했다. 동생의 컷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는 큰길가에 새로 생긴 헤어샾에서 친구 미란이가 펌을 말고 왔는데 찰랑거리는 머릿결이 너무 좋아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단골 미용실이 아닌, 내가 머리를 만지고 싶은 헤어샾에서 염색과 파마를 했고, 만족스럽게 머리를 찰랑이며 걷던 나는 ‘머리나라’ 아줌마와 좁은 골목에서 딱 마주쳤다. 어색하게 미소를 띈 아줌마는 “머리 이쁘네.”라고 씁쓸하게 말을 뱉었는데 나는 물건을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져 주절주절 필요 없는 말을 했었다. “친구 언니가 미용실을 오픈해서요. 한번 가봤어요.” ‘싸다, 아귀찜’에 자리를 예약하면서 나는 좁은 골목에서 마주했던 아줌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퇴근은 생각보다 늦어졌다. 물건 발주에 문제가 생겨, 일 처리가 늦어지는 직원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점심도 한식뷔페에서 부실하게 먹은 탓에 더욱 배가 고팠다. 말이 한식뷔페지 달라지지 않는 메뉴에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아삭아삭 콩나물에 매콤한 양념, 쫄깃한 아귀의 식감을 떠올리자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었다. 저녁 시간이라 주차장도 꽉 차 있었다.
친절한 종업원에게 발렛 파킹을 맡기고 열쇠를 넘겨주었다. 19,900원에 발렛까지 가능하다니! 예약석을 향해 올라가는데 계산대 앞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음식값으로 시비가 붙었나? 아니면 싼 식자재를 받아다 쓰다가 탈이 난 것일까? 아귀찜에서 머리카락이라도 나왔나? 싸움의 광경에 시선이 머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싸다, 아귀찜’ 대표이사와 ‘아구아구 아구찜’ 주인장이 한판 걸판지게 싸움이 붙은 것이다. ‘싸다, 아귀찜’ 집에서 ‘아구아구 아구찜’ 주인장을 만날 줄이야! 왠지 거북스러웠다. 서비스 한번 얻어먹지 못한 단골인데도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내 얼굴을 확인한 ‘아구아구 아구찜’ 주인장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네 놈 심보가 무어냔 말야. 나를 망해 먹게 하려고 이 동네로 온 거지. 하고 많은 동네를 두고 왜 하필 이곳에 와서 자리를 잡느냔 말야. 돈 자랑하고 싶거든 다른 데 가서 하라고! 썩 꺼리란 말야.”
불콰해진 얼굴의 ‘싸다, 아귀찜’ 주인장도 지지 않고 말을 받았다.
“이 땅이 전부 당신 겁니까? 내 맘대로 장사하는 거지. 내가 어디서 장사를 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내 참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네! 당장 나가주세요. 남의 영업 집에 와서 무슨 행패에요. 알만한 분이 이러시면 안 되죠. 내가 사장님 가게에 가 서 이렇게 깽판 치면 기분 좋으시겠어요?”
‘아구아구 아구찜’ 주인장은 대번에 ‘싸다, 아귀찜’ 사장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이판사판 끝장을 보겠다는 듯이 사정없이 흔들어대며 악다구니를 쓴다.
“나이도 어린 것이! 너 몇 살이나 먹었냐? 상도덕이라는 게 있는 법이야. 아무리 장사꾼이라고 해도 그렇지. 아구찜 앞에 떡 하니 아구찜을 차리는데 말이 되는 얘 기냔 말야. 아이고- 내가 속이 터져서. 못 산다. 니 에미 에비가 그렇게 가르치디?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덥썩덥썩 하라고 그리 가르치더란 말이 다!”
‘싸다, 아귀찜’ 사장이 매몰차게 손을 뿌리치며 발악하듯 소리친다.
“이 영감님이 돌았나. 뭐가 어쩌고 어째요! 보자보자 하니까. 영업 방해로 경찰 부 르기 전에 당장 나가주세요. 더는 못 참습니다. 제가 지금 손님보고 꾹 참고 있는 것만 아세요. 영감님, 지금 저한테 크게 실수하시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지금 당장 나가주세요!”
제 밥그릇을 두고 기를 쓰며 싸우는 아귀다툼이 가게에 쩌렁쩌렁 울리고, 나는 슬며시 가게를 빠져나왔다. 언젠가 민이가 말했던 배가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이 바늘구멍처럼 작아서 늘 배가 고프다는 귀신을 지금 막 만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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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희
제주기독일보, 『시와시학』, 세명일보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우아한 사생활』, 『다시, 100병동』, 『트로피 헌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