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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 1921년 6월 12일 | 본당의 시초 원산본당에 소속되었던 영동지방에 1921년 6월 12일 서품된 방지거(길연) 신부가 같은 해 7월 강릉군 구정면 금광리에 본당을 개설(구 금광리 공소 위치, 당시 명칭은 영동교회)하였으니, 이것이 임당동 본당의 시초이다. |
1923년 6월 | 본당 발촉 당시 경성교구 부주교이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유(Davred)주교의 지시로 1923년 6월, 주문진에 이사하여 당시 강릉군 신리면 교항리 133번지에 10간 상당의 가옥을 신축하였고 11월 본당으로 발족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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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20일 | 임당동으로 본당 이전 1926년 2대 본당신부로 부임한 김인상(야고보)신부는 1931년 6월 20일 당시 강릉읍 임정(林町)에 12간 짜리 가옥을 매입하여 명실상부한 본당의 건물을 갖추게 되었다가 1934년에는 강릉시내 임당동으로 다시 이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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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 교황청은 1938년 강원도지역 사목을 성골롬바노 선교회에 위임 | |
1939년 4월 25일 | 서울교구에서 분리 강원도는 서울교구에서 분리되어 감목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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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 1940년 | 춘천교구 편입 구인란(도마)신부가 춘천 감목대리가 됨에 따라 3대 본당신부인 김학용(시몬)신부 재임 시 임당동 본당은 춘천교구로 편입되었다 |
1945년 | 본당의 활성화 해방과 더불어 골롬바노회 지베라도 신부의 부임을 계기로 본당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전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냉담신자를 회두, 사망자를 위한 연도, 장례까지도 돌보는 등 본당의 활성화를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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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6월 | 성심공민학교 발촉 본당 소속 건물(약 60평)을 활용하여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방안을 협의한 끝에 지신부의 인준을 받아 불우청소년을 위해 성심공민학교라는 야간 중등학교과정을 발족시켰으며, 후에 성심중학교로 개칭하여 10여년 간 계속되었다. 우리의 이웃 모두가 헐벗고 굶주리던 시기에 오직 사랑과 봉사의 일념으로 무보수로 봉사한 교사들의 헌신 속에 졸업생 420여명을 배출하였으나 당국의 인가를 얻지 못하여 1957년 2월 자진 폐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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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도 | 1951년 | 본당부지 매입 6. 25전란의 와중에서도 본당은 1951년 현재의 성당 소재지인 임당동 159번지에 본당부지 1,128평(14필지)을 매입하였으니 이것이 영동지역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 현재의 임당동성당 자리이다. |
1951년 11월 | 주문진 본당 분리 | |
1954년 | 현 임당동 본당 착공 현재의 임당동 본당 건물은 1954년에 착공되었다. 그 당시는 생계유지 자체가 어려운 민족적 수난기로서 본당신자들의 경제적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외국인 신자들의 경제적 도움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본당신자들은 우리성전은 우리의 힘으로 짓겠다는 일념 하에 몸을 돌보지 않고 성전건립에 적극 참여하였다. 새 성전건립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으셨는지 본당의 12대 주임신부이셨던 간 도마신부는 1954년 5월 과로로 선종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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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 본당 준공 간도마 신부에 이어 새로 부임하신 표 바드리시오 신부 재임 시절인 1955년에 본당건물이 준공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23일 구도마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되어 성골롬바노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55년 춘천교구가 정식교구가 되어 구 도마 몬시뇰이 11월 23일 주교로 축성되어 교구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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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2월 2일 | 본당 레지오 마리애 발족 1956년 12월 2일에는 본당 레지오 마리애가 발족하여 이웃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통해 성모신심을 기르는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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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 1960년 1월 3일 | 사목활동의 행정영역 정착 1960년 1월 3일 주교령에 의해 27개 지역이 준본당으로 설정됨으로써 본당경계가 정해져 사목활동의 행정영역이 정착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1963년 9월 | 사제관
준공
1963년 9월에는 사제관이 준공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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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8월 | 수녀원 건물 준공 본당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수녀들이 파견되어 봉사하고 있는데 수녀원의 건물은 1964년 8월에 준공되었다. 같은 해에 호주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수녀들에 의해 갈바리 의원이 설립되어 이 지역의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한 의료 활동에 교회가 노력하는 산 역사가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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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내곡동에 교회 묘지 매입 1968년에 본당에서는 내곡동에 교회 묘지를 매입하여 교우들의 영혼의 안식처를 마련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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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 1973년 3월 | 강릉신용협동조합 신자들의 손으로 창립 1973년 3월에는 강릉신용협동조합이 신자들의 손으로 창립되었다. 신협은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라는 구호 아래 기존의 금융권에서는 쉽사리 금융혜택을 받을 수 없는 영세 상인들과 일반서민들을 위하여 경제적 상부상조를 꾀하기 위하여 설립된 것이다. |
1973년 4월 | 본당출신 사제인 천신기(요한)신부 부임 본당출신 사제인 천신기(요한)신부가 제20대 본당 주임신부로 부임(1973~79)하게 됨에 따라 신자들은 큰 기대를 걸고 열렬하게 환영했다. 이에 따라 신자들의 열의와 공동체의 활력으로 이전에는 교구의 지원을 받았던 본당은 이제 본당자립의 기치를 높이 들었고, 더 나아가 영세한 인근본당을 지원할 정도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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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월 | 옥천동 본당 분리 1974년 11월에는 옥천동 본당이 분리되어 강릉시내에 천주교 신자가 금속하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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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4월 | 김종석(도마) 신부 부임 21대 본당신부로 부임(1979)한 김종석(도마) 신부의 성품은 평신도들과 격의 없는 나눔에서 서민적 사랑실천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셨다. 특히 김신부는 성세 성사후 신심이 무디어져가는 신자들에게 재교육을 통한 복음화의 실천을 강조하셨다. 특히 본당 설립 69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81년에는 교육관(123평)이 본당신자들의 자발적인 헌금에 의해 착공되었다. 같은 해 11월 26일 본당설립 6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교육관 축성식을 가짐으로써 본당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이러한 일련의 행사와 사업들은 본당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김신부는 신심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세속생활과 영성생활의 조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가정성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1984년에는 40-50세 장년층 남자교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요셉회가 창립되어 본당의 사목활동과 봉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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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 1984년 3월 | 김정식(도마) 신부 부임 1984년에는 김정식(도마) 신부가 본당 22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김도마 신부는 본당의 사목협의회 임원진을 개편하고 본당 신앙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
1985년 8월 15일 | 성모승천대축일에는 53명이 영세를 받음 1985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는 53명이 영세를 받음으로써 신앙으로 하나 되는 형제, 자매들의 숫자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김도마 신부는 가정성화와 가정공동체에 대해 남달리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미사 집전하는 모습의 경건함은 지금도 많은 신자들의 가슴 깊이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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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 노암동 본당 분리 1987년 10월에는 노암동 본당이 분리, 신설되어 전교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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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 1990년 2월 | 황영택(사도 요한) 신부 부임 1990년 2월, 23대 본당 주임신부로 황영택(사도 요한) 신부가 부임하였다. 황요한 신부는 76년 12월 사제서품 후, 본당의 보좌신부로 부임하여 청장년 심신단체인 빠스카의 창립 등 심신단체의 활성화에 헌신하였던 까닭에 본당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
1991년 | 본당설립 70주년 1991년이 본당설립 70주년이 되는 해여서 부임후 기념사업의 하나로 성전을 보수하여 깨끗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주님께 봉헌하기로 결정하고 사목위원들을 중심으로 성전 보수에 대하여 형제, 자매들에게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홍보작업을 시작하였고, 본당신자들은 본당설립 70주년 기도문을 봉헌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힘으로 성전을 복구한다는 의지로 모든 신자들이 하나 되어 신자들의 힘으로 해야 하는 작업을 새벽 2-3시까지 함께 노력하며 일체감을 느꼈다. 이때 본당 형제, 자매들이 보여준 희생과 열의는 하나 된 교회, 기도하는 교회로서 신자들의 자각을 심어준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황요한 신부는 주님의 군대를 양성하는 신심교육인 꾸르실료 교육에 유달리 관심이 깊어서 짧은 기간에 형제 15명, 자매 18명이 꾸르실료 교육을 마쳤으며, 또한 레지오 활동을 활성화시켜 9개의 레지오 쁘레시디움을 신설하여 교회 안에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신자들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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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7월 | 로고스회
신설 기존의 청장년 단체인 빠스카를 분리하여 1991년 7월, 40세 이상 50세 미만의 남자신자들로 구성된 로고스회를 신설하였다. 황요한 신부는 본당설립 70주년이 되는 해인 1991년에 본당을 형제적 사랑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로 가꾸어야 한다는 사목지침을 설정하였다. 이를 위해서 본당의 모든 가족은 서로 힘을 모아 기도하며 활동하고 일치하는 공동체가 되어 본당을 사랑하며 아름답고 경건한 주님의 궁전으로 만들어 보자고 강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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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7월 | 스테인글라스
부착 1992년 7월 본당신자들의 기대와 설레임 속에 기다려 왔던 스테인드 글라스가 조광호(엘리지오) 신부의 그림으로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 수사들의 기도와 정성어린 손 끝에 의해 성전 유리창에 부착되었다. 그 신비로움과 은은함은 우리의 영혼을 위로해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또 이콘 그림으로 장식된 제대, 청동 십자가 고상과 새로 조각된 14처도 성당 분위기를 일신시켜 신자들이 아늑하게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의 터전으로 가꾸어졌으며, 92년 11월 2일 본당 모든 신자들의 기도와 정성을 모아 본당설립 7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게 된다. 1992년 11월에는 본당 설립 70주년 기념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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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5월 | 수세식
화장실 착공 1993.5월에 수세식 화장실 공사에 착수해서 7월말에 준공을 하였고, 14필지로 나누어져 있던 성당 토지를 단일 번지인 한 필지로 합병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황요한 신부는 각종 행사를 통해서 신자들의 형제적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단체 대항 연도 경연 대회 본당 신자 척사대회 및 레지오 아치에스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서 영동 지역의 표상이 되도록 이끌어 주었다. 또 호스피스 교육을 본당 신자 및 영동 지역 신자들을 대상으로 적극 추진해서 현재 갈바리 병원 및 자선 단체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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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30일 | 박
토마 주교 선종 1994.10월 30일 박 토마 주교께서 본국 아일랜드에서 선종하시고, 1994.12월에는 현재 교구장으로 계시는 장 익(요한) 주교님의 수품과 착좌식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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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 김명식(가브리엘)
신부 부임 1995.9월에는 제24대 김명식(가브리엘) 신부가 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김가브리엘 신부는 거주불명. 쉬고 있는 신자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매일 신자 교적을 들고 방문한 결과 많은 신자들이 회두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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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 요아킴회
창립총회 1997.5월에는 본당 노인들의 모임인 요아킴회 창립총회를 갖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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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 건축위원회
발족, 신축기공식 주임신부를 주축으로 건축위원회가 발족되어 98.3월에는 주교님을 모시고 신축 기공식을 갖게 되었다. 본당의 부속건물은 6.25전쟁 후에 지은 건물로 낡고, 신자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으며 유치원으로 사용되었기에 그동안 신자들이 절약하여 모은 성금으로 새로이 신축함으로 신자들의 헌신적이고 단결된 모습은 기대만큼이나 매우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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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 본당
부속 건물(유치원, 사제관, 수녀원, 사무실) 준공 축복식 1998.11월 본당 부속 건물(유치원, 사제관, 수녀원, 사무실) 준공 축복식을 본당 신자들과 함께 축복 미사를 드릴 때 본당 신부가 부임해서 지금까지 부속 건물 자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 하였고, 모든 본당 내 경비는 최소한으로 절제한다는 방침아래 신부, 수녀 모든 신자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공사가 시작되어 철근 하나하나가 기둥으로 들어 설 때 모든 신자들의 마음을 끈으로 엮어서 함께 하듯 기쁜 마음과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한 순간 사진 필름처럼 스쳐서 신자들의 기도의 두 손은 어느새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고 있을 만큼 가슴 벅찬 감동의 축복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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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월 18일 | 본당
부설 노인대학 개설 1999.2월 18일부터 11월 말까지 본당 교우 중 65세 이상 노인을 상대로 본당 부설 노인대학을 개설하여 매주 금요일 신앙교육 및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건강, 레크레이션과 골롬바노 성가대의 도움으로 성가, 건전가요, 민요 등을 배우며, 특히 레지오 단원의 봉사로 푸짐한 음식으로 모든 분들이 손꼽아 기다릴 만큼 보람 있고 뜻 깊은 만남의 시간이었다. 참고로 본 대학 운영은 본당 신부의 지휘아래 박병열(타대오) 형제가 전체적으로 운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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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10일 | 외짝교우
해소를 위한 초대 1999.10월 10일 외짝교우 해소를 위한 초대시간을 사제관에서 가졌으며, 약 2개월에 걸쳐 집중 교리를 하여 그해 12월 24일에 세례성사를 받아 많은 외짝교우가 화목한 성가정을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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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 성서
필사본 루가복음 쓰기 대회 1999.12월 성탄절에는 본당 주관으로 “성서 필사본 루가복음 쓰기 대회”를 열어 하느님께 봉헌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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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 2000년 1월 1일 | 대희년
맞이 기도 및 기념행사를 준비 2000년 1월 1일은 본당 공동체가 대희년 맞이 기도 및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신자들의 가슴에 대희년 맞이 촛불이 담겨질 때 서로 서로 손을 잡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었고, 4월에는 뜻하지 않은 영동지역에 산불 연속 방화 사건이 발생해서 최북단부터 남쪽 울진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백두대간 길목에 온통 검붉은 꽃으로 수놓은 악몽의 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본당에서는 어려운 이재민 가정에 신자들의 정성어린 위문품 및 자원봉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
2000년 4월 | 청소년
자원 봉사 센타 개소식 200년 4월 갈바리 병원 건물 내에 “청소년 자원 봉사 센타”를 열어 개소식을 가졌다. 면적은 1, 2층 약 28평으로 분소장(임당동 주임신부), 책임수녀, 직원 2명으로 구성되어 영동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자원 봉사 알선 및 노인 문제 등 다양하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며 교육도 시켜 앞으로는 많은 청소년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계속 홍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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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 양완모(야고보)
신부 부임 2000년 9월에는 제25대 양완모 야고보 주임 신부가 부임해서 본당 사목 목표를 “기도하는 공동체, 공부하는 공동체, 선교하는 공동체”로 설정하고 즉시 구역별 가정 방문을 시작해서 전 구역을 5개월에 걸쳐 돌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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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1일 | 주교님의
본당 사목 방문 2000년 11월 1일 주교님의 본당 사목 방문 시에 교구청 신부 2명과 본당 사목위원 및 제단체장, 구역장 등이 교육관 2층에서 앞으로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과 문제점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의 장을 갖는 뜻 깊은 시간이 본당을 위해서는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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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 2001년 4월 20일 | 이판석
신부를 초청 '가두 선교' 세미나 2001년 4월 20일에는 대구 지산동 본당 이판석 신부를 초청하여 '가두 선교'란 주제 아래 세미나를 열었고 본당 신자들에게는 선교 교육을 강화시킨 다음 5월 31일에는 대구 지산동 본당 16명 도우미의 도움으로 레지오 단원 전체가 오후에 가두 선교 캠페인에 돌입해서 복음 말씀을 전하는데 사랑을 아끼지 않았고 전교를 하는데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
2001년 7월 | 본당사
편찬위원회를 조직 2001년 7월에는 본당사 편찬위원회를 조직하여 본당 80주년에 즈음하여 자료집 발간에 일임을 다하고, 춘천교구로부터 다양한 자료를 찾아서 임당동 천주교회 역사자료 수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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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8월 27일 | 본당
조경사업 착수 2001년 8월 27일부터 오랫동안 숙원 사업이었던 본당 조경사업에 착수하여 본당 정문 출입구 벽돌담을 철거하고 나무를 심어서 외부와의 벽을 낮추었으며 시공회사는 “평화조경”에서 시공하였으며 김노식(바오로) 형제가 소나무 3그루를 기증하였고, 아울러 성당 교육관 및 유치원 담장 내.외부 도색작업도 함께 실시하였다. (소요경비: 조경→천만원, 성당도색→천삼백만원, 유치원도색→이백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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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7일 | 하상
바오로회 발족 2001년 9월 17일에는 50대 형제들의 단체인 하상 바오로회가 발족되었으며 초대 회장은 김정기(분도) 형제가 맡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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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 본당
설립 80주년 감사미사와 자료집 발간에 노력 2001년 10월에는 본당 설립 80주년 감사미사와 자료집 발간에 노력하고 있으며 준비하고 있다. 2001년 10월 7일에는 본당 설립 80주년의 해로 본당 형제, 자매들이 보여준 희생과 열의는 하나 된 교회, 기도하는 교회로서 신자들의 자각을 심어준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행사내용은 11시에 경축미사로 집전되었고, 이어서 춘천교구 총대리 신부, 강릉시장 외에도 많은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2부 행사가 진행되었고 축하연이 베풀어져 본당 신자 500명과 함께 성대하게 마쳤다. 심기섭 강릉시장이 섬잣나무(오엽송) 1그루를 기념 식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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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29일 | 평신도
단체 협의회 구성 교구지시에 따른 평신도 단체 협의회가 2001년 11월 29일에 구성되어 대표로 김정기(분도) 형제가 선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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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24일 | 45명의
새 영세자 탄생 2001년 12월 24일 유아세례 및 성인 세례성사로 45명이 새 영세자로 탄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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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2002년 1월 | 신자
재교육의 일환으로 매월 특별 강론을 실시 2002년 1월에는 본당 사목목표를 “쉬고 있는 가족 찾기”에 방향을 두고 본당 구역 반 및 레지오를 중심으로 활동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으며(쉬는 가족 주보 전해주기 및 묵주의 기도 100만단 봉헌 운동 전개) 신자 재교육의 일환으로 매월 특별 강론을 실시하였다. |
2002년 2월 15일 | 신
마리 데레사 수녀 이임, 박 에우프라시아 수녀 부임 2002년 2월 15일 분원장 수녀(신 마리 데레사)가 서울 목동성당으로 이임, 후임에는 특수 사목으로 활동하던 박 에우프라시아 수녀가 부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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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31일 | 부활절
행사 2002년 3월 31일 부활절에는 부활 달걀과 떡을 준비하여 지역 내 기관과 쉬고 있는 교우 가정을 방문하여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전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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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8일 | 본당
사무실 지붕 덧씌우기 공사 2002년 6월 18일부터 29일까지 본당 사무실 지붕 덧씌우기 공사를 실시하여 여름에는 쾌적하고 겨울에는 보온 효과를 얻게 되어 에너지 절약에 한 몫을 하게 되었다. (총 공사비 9,400,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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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22일 | 최
이레네 수녀 부임, 주목 식수 등 유실수를 심어 주변 환경을 정비 2002년 8월 22일 최 이레네 수녀가 부임하여 전교에 최선을 다해 힘쓰고, 특히 청소년들을 위하여 복음 전파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유치원 및 교육관 미화작업으로 유치원 앞마당에 유실수 4종류, 등나무 쉼터·마로니에 나무 4그루를 식목하고, 또한 씨름장(모래 놀이장)을 정비하여 아이들의 안전을 도모하였으며, 교육관 앞 김대건 신부님 상 주변 주목 식수 등 유실수를 심어 주변 환경을 정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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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27일 ~ 9월 1일 |
태풍
'루사'로 사상 최대의 피해가 발생,구호품과 수재 의연금 2002년 8월 27일~ 9월 1일까지 태풍 “루사”로 인한 사상 최대의 피해가 발생하여 강릉 시내 전 가구의 2/3가 완전 침수 및 반 침수로 본당에서는 전국에서 전달된 구호품과 수재 의연금을 주임신부 입회 하에 전 교우가 합심하여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달하였고, 무료 급식소 운영 및 수재민들을 물질적·정신적인 면에서 수재민들과 아픔을 나눌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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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20일 | 배론
성지(버스 8대, 298명)를 순례 2002년 10월 20일에는 배론 성지(버스 8대, 298명)를 순례하였다. 꾸리아 옥외 행사를 겸해 실시한 성지순례로 인해 신자들은 영적 신앙의 본뜻을 깨닫게 되고 신앙의 선조들을 본받아 교회 복음화 선포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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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26일 | 박영근(사도요한)
총대리 신부의 주례로 86명의 신자가 견진성사 2002년 11월 26일 본당 사목 방문시 주교님을 대신하여 교구청 신부 2명과 본당 사목위원 및 제단체장 등이 본당발전에 관한 진지한 토론의 장을 가졌으며, 박영근(사도요한) 총대리 신부의 주례로 86명의 신자가 견진성사를 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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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3일 ~12월 17일 |
대림특강 본당 신자 재교육 차원으로 대림절기간(12월 3일~12월 17일) 6회에 걸쳐 가톨릭교리사목연구소의 피정 지도팀을 강사로 모시고 대림특강을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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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5일 | 어른
9명, 유아 18명이 세례성사 2002년 성탄절을 맞아 어른 9명, 유아 18명이 세례성사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 후 본당 소공동체의 기본틀 정착과 발전을 위하여 1단계로 레지오 쁘레시디움을 구역․반별로 재편성하여 2003년 1월부터 시행하였다. 또한 본당 남성 쁘레시디움 “원죄없이 잉태되신 모후”가 신설, 2003년 1월 7일에 첫 회합을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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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2003년 1월 28일 | 최창덕(프란치스코)
보좌신부 이임, 엄기선(베네딕도) 신부 부임 2003년 1월 28일 교구 인사이동에 따라 최창덕(프란치스코) 보좌신부가 효자동 성당으로 이임하고 후임에는 엄기선(베네딕도) 신부가 부임하였다. |
2003년 6월 2일 ~6월 6일 |
단오제를
맞아 '사랑의 종가집'을 운영 영동지역 최대의 민속제인 단오제를 맞아 2003년 6월 2일~6월 6일(5일간) 교동 택지 분가 기금 조성을 목적으로 한 “사랑의 종가집”을 운영하여 주임신부를 비롯한 모든 신자들이 혼연일치되어 천주교회 이미지를 보여주고 타종교에도 좋은 표양을 보여주었으며, 약 4,400만원의 수입금(분가기금)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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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26일 | 성당
내부 보수 7월 26일부터 쾌적한 성당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냉·온풍기 교체, 바닥 장판 교체 및 장궤틀(왜관, 베네딕도 수도회 의뢰)을 약 5,000만원(신자봉헌 2,520,000원)을 투자하여 보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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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13일 | 성모상
옮김 본당 숙원사업으로 제의방 앞 성모상을 8월 13일 성당 앞으로 옮겨 성당 분위기 조성은 물론 신자들로 하여금 성모신심을 북돋우게 하였다.(공사비 약 900,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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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1일 | 본당
출신 박재우(사도 요한) 부제 수품 받음. 9월 1일 본당 사목평의회를 재조정하여 전병성(바오로) 형제가 사임하고, 18대 본당 총회장으로 김정기(베네딕도) 형제가 임명되었다. 또한 본당 출신 박재우(사도 요한) 신학생이 주교좌 본당에서 부제 수품을 받게 되어 가족과 본당신자들이 함께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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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2일 | 최종현(미카엘)
신부 부임 10월 2일 보좌신부로 재직하던 엄기선(베네딕도) 신부가 소임을 마치고 강촌본당 주임신부로 떠나고 후임으로 최종현(미카엘) 신부가 부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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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7일 | 주교님의
집전으로 37명의 신자가 견진성사 받음. 10월 7일 교구장이신 장 익(십자가 요한) 주교님의 집전으로 37명의 신자가 견진성사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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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 2004년 2월 2일 | 성인
14명, 유아 10명아 세례성사 받음. 2004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을 맞아 성인 14명, 유아 10명아 세례성사를 받았다. |
2004년 2월 9일 | 양완모(야고보)
신부의 은경축 행사 2004년 2월 9일 주임신부로 계시던 양완모(야고보) 신부의 은경축 행사를 교구 총대리 신부와 함께 동창 신부 등 여러 귀빈을 모시고 축하미사 및 축하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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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일 | 교동
택지 내 솔올 성당을 분가 2004년 3월 1일 옥천동, 노암동 성당에 이어 교동 택지 내 솔올 성당을 분가하여 강릉에 복음을 확산하는데 종가집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분가수: 432세대, 1,15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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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7일 | 청년
연합회가 발족 2004년 3월 7일 본당에 청년 연합회가 발족되어 레지오, 빈첸시오회 활동 등으로 청년들의 본당에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초대 회장으로 최중일(다니엘) 형제가 선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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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6일 | 교구
레지오 마리애 50주년 감사제 행사로 토론대회를 실시. 2004년 5월 26일 교구 레지오 마리애 50주년 감사제 행사로 토론대회를 실시, 본당 함형조(세례자 요한) 형제가 “골든벨”을 수상함으로써 본당에서는 은혜로운 감사제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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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15일 | 중·고등부
자모회가 발족. 2004년 8월 15일 중·고등부 자모회가 발족되어 초대 회장에 방금옥(율리안나) 자매가 선출되었다. 또한 최미운(이레네) 수녀가 본원 발령으로 본원으로 가고 후임에 안향신(클라우스) 수녀가 부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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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7일 | 본당
출신 박재우(사도 요한) 부제가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 서품 받음. 2004년 9월 17일 본당 출신 박재우(사도 요한) 부제가 죽림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게 되어 신자들이 서품식에 참석하였고, 9월 19일(일)에는 본당에서 여러 내빈을 모시고 첫 미사와 축하식, 축하연 행사를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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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일 | 이기범(요셉)
신부 부임. 2004년 10월 1일 교구 인사발령으로 최종현(미카엘) 신부가 포천 성당으로 가고, 이기범(요셉) 신부가 부임하였다. 또한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대축에 성인 26명, 유아 6명이 세례성사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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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4일 | 본당
전체 성지순례 2004년 11월 14일 레지오 옥외행사를 겸한 본당 전체 성지순례를 경기도 이천에 소재한 어농성지를 순례하여 선조들의 신앙의 얼을 본받고, 복음 선포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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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 2005년 2월 25일 | 제26대
정비오(비오) 신부 부임 2005년 2월 25일 제26대 정비오(비오)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 사목 목표로 “가정 성화, 본당 쇄신, 영적 성장”으로 설정하고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베푸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권유하고, 신자들과 격의 없는 나눔에서 서민적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
2005년 5월 18일 | 성당
및 부속건물 보수공사. 2005년 5월 18일 성당 및 부속건물 보수공사가 대대적으로 착수됨에 따라 모든 신자들이 신부님과 혼연일체 되어 더위를 뒤로 한 채 몇 달 동안 기도와 육체적 희생, 물질적 협조 등 보수 공사에 정진함으로써 쾌적한 분위기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고, 2층에서 3층으로 증축한 교육관도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되어 다목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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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8일 | 본당
성소후원회가 새로이 창립. 2005년 6월 28일 본당 성소후원회가 새로이 창립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입단할 수 있도록 하여 성소자를 발굴하고 기도로 후원하는 단체로 발족되어 초대 회장에 이상령(아가다) 자매가 선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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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0일 | 사목평의회
회장 및 본당 총회장으로 조제현(베드로) 형제가 선출 2005년 12월 20일 본당 최고 의결기관인 사목평의회가 10개 분과, 25명의 임원이 새로이 선임되었으며, 제19대 사목평의회 회장 및 본당 총회장으로 조제현(베드로) 형제가 선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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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 2006년 9월 14일 | 본당
소속 이창섭(안토니오), 오경택(안셀모), 오대석(바오로) 3명의 부제가 사제 서품. 2006년 9월 14일 사제의 길을 택하여 그동안 꾸준히 준비해 온 본당 소속 이창섭(안토니오), 오경택(안셀모), 오대석(바오로) 3명의 부제가 사제 서품을 받는 영광을 하느님께서 주셨다. 아울러 본당에서의 첫 미사가 신자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봉헌되었다. 참고로 사제 서품(죽림동 성당)식에 본당 골롬바노 성가대가 봉사하여 주교님으로부터 치하와 더불어 격려금도 받았다. |
2006년 12월 20일 | 본당
휴식 공간 개설 2006년 12월 20일 본당 신자 만남의 자리를 모색하던 중 사무실 앞 공간을 약 600만원의 시설비를 투자해 본당 휴식 공간(Seton Hall)을 개설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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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 2007년 4월 17일 | 나자렛
어르신 대학' 개교미사. 2007년 4월 17일 지역 어르신들의 복음화 학교를 상징하고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한 ‘나자렛 어르신 대학’이 신청한 230명 어르신과 함께 개교미사를 갖게 되어 봄 학기(3, 4, 5월), 가을 학기(9, 10, 11월)에 매주 화요일 성경 공부반과 취미교실 반으로 운영하였다. |
2007년 9월 28일 | 베드로
복사단 창단. 2007년 9월 28일 제단에서 신부님을 도와 봉사할 어르신 ‘베드로 복사단’이 6명으로 창단되어 조제현(베드로) 형제가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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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 2008년 1월 20일 | 사목평의회
모든 위원의 임기 만료에 따라 위원장과 임원을 유임 또는 신임. 2008년 1월 20일 사목평의회 모든 위원의 임기 만료에 따라 10개 분과 25명의 임원 그리고 구역 협의회 임원, 평신도 단체협의회 임원, 재무평의회 임원과 특별 사업추진(성지 개발, 묘지 개발, 성전 문화재 추진, 어르신대학) 위원장과 임원을 유임 또는 신임하였다. |
2008년 4월 1일 | 입암
성당 분가로 인하여 편입·재조정 2008년 4월 1일 입암 성당 분가로 인하여 우리 지역 중 내곡동 구정면 왕산면 지역이 노암동 성당으로 편입되었으며, 교1동 구 명주군청 능선을 따라 북쪽 지역이 솔올 성당으로 편입․재조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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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9일 | 임당동
성당이 지역 전대사 교회로 선정. 교황님께서 2008년 6월 29일부터 2009년 6월 29일 1년 동안 성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 특별 희년으로 선포하였다. 특별 희년 기간 동안 교우들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교령을 선포하셨다. 특히 영동지역에 임당동 성당이 지역 전대사 교회로 선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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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5일 | 제27대
주임신부로 김현준(율리오) 신부 부임 2008년 9월 25일 제26대 정비오(비오) 신부가 교구 인사이동으로 설악동 성당으로 가시고, 제27대 주임신부로 김현준(율리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부임하여 심신이 무디어가는 신자들에게 영적 신앙의 본뜻을 깨우쳐 주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발돋음 하자는 뜻으로 9일 기도 10회를 실시함과 더불어 ‘헌소매’ 간지를 제작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복음 선포에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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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 2010년 2월 19일 | 임당동성당
등록문화재 지정 임당동성당이 등록문화재 제475호로 지정(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된 바, 이는 1950년대 강원도 지역 성당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로 외관의 뾰족한 종탑과 지붕 장식, 첨두형 아치 창호, 부축벽을 이용한 입면구성 및 내부의 정교한 몰딩구성 등 의장기법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