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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기이한 출생 (7)
'경솔했구나!"
이튿날, 좌유(左儒)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주선왕(周宣王)은 두백을 죽인 것까지 후회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어찌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주선왕(周宣王)은 우울했다.
말수가 줄어들었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하들과 마주치는 것을 꺼려했다.
조울증이다.
왕후 강씨가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주선왕의 어두운 얼굴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날이 갈수록 강후(姜后)의 얼굴에도 수심이 짙어졌다.
조정대신들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제안했다.
- 왕을 모시고 사냥을 나가보자.
주선왕 46년 가을이었다.
하늘은 호수처럼 맑고 투명했다.
궁성은 오랜간만에 활기에 넘쳤다.
사냥준비를 하느라 부산했다.
궁성 내정 담당관인 사공(司空)은 법가를 정비하고, 군대 사령관인 사마(司馬)는 수레와 군사들에게 훈령을 내리고, 점복을 담당한 태사(太史)는 길일을 택했다.
천자가 타는 수레를 옥로(玉輅)라 한다.
여섯 마리의 말이 끈다.
그 수레 위에 세 사람이 올라탔다.
가운데 왕이 앉고, 오른편에는 윤길보가, 왼편에는 소호가 앉았다.
그 뒤를 기치창검을 든 군사들이 따랐다.
호경 동편 위수(渭水)가를 따라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선대부터 천자의 사냥터로 유명했다.
포전(圃田)이라는 곳이다.
오랜간만에 사냥 나온 주선왕(周宣王)은 기분이 상쾌했다.
수레를 몰며 마음껏 초원을 달렸다.
길들인 매는 쏜살같이 하늘을 갈랐고, 사냥개는 사냥개대로 신나게 날뛰었다.
장수와 군사들은 전후좌우로 교묘히 달리며 자신들의 사냥 솜씨를 발휘했다.
활시위 소리가 일 때마다 꿩이 떨어지고 토끼가 튀어올랐다.
주선왕(周宣王)도 여우 한 마리를 잡았다.
어지럽던 정신이 맑게 가시는 듯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사냥을 중지하라."
주선왕(周宣王)은 포획한 짐승을 거두어 환궁길에 올랐다.
3 마장쯤 갔을 때였다.
수레 위에 타고 있던 주선왕(周宣王)은 별안간 눈이 침침해짐을 느꼈다.
앞이 희미하게 보였다.
손으로 두 눈을 비벼댔으나 마찬가지였다.
왼편에 앉아 보좌하고 있던 대종백 소호(召虎)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물었다.
"몸이 불편하십니까?"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구려."
그때였다.
저편 언덕 위로 수레 한 대가 솟아나듯 나타났다.
백마가 끄는 백골나무 수레였다.
수레는 눈 깜짝할 사이 주선왕 앞으로 달려왔다.
수레 위에는 새빨간 의복에 새빨간 관(冠)을 쓴, 그리고 붉은 활과 붉은 화살을 어깨에 멘 두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주선왕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왕은 그간 별고 없으셨소?"
주선왕(周宣王)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수년 전에 자신이 죽인 대부 두백(杜伯)과 좌유(左儒)가 아닌가.
주선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너, 너희들은...."
그순간 수레와 두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황혼 노을만이 서쪽 평원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주선왕(周宣王)은 얼른 좌우에 앉아 있던 소호와 윤길보를 돌아다보았다.
"경들은 방금 수레를 보지 못했소?"
"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주선왕은 의아하게 여겼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다시 1마장쯤 갔을 때였다.
또 시야가 희미해지더니 두백(杜伯)과 좌유가 수레를 타고 눈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주선왕의 옥로 앞을 왔다갔다하는 것이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귀신이 분명했다.
주선왕(周宣王)은 무서웠으나 용기를 내었다.
"귀신들이 어찌 감히 왕가를 침범하는가? 썩 물러가지 못할까!"
이렇게 외치면서 태아검(太阿劍)을 뽑아 그들을 향해 휘둘렀다.
두백(杜伯)과 좌유(左儒)가 두 눈을 부릅뜨고 주선왕을 노려보았다.
"우리는 원한을 갚고자 왔다. 속히 우리의 목숨을 돌려다오."
말을 마치자 두백(杜伯)은 붉은 활에다 붉은 화살을 걸어 주선왕의 심장을 겨누고 쏘았다.
화살은 정확하게 주선왕의 가슴에 가서 꽂혔다.
"으악---------!"
주선왕(周宣王)은 크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달리는 수레 위에서 쓰러졌다.
놀란 것은 좌우에서 보좌하고 있던 소호와 윤길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혼자 소리치며 칼을 뽑아 휘둘러대는 주선왕을 만류하려 했다.
그러나 그럴 틈이 없었다.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져버린 것이었다.
급히 달려들어 살피니 숨은 붙어 있었다.
생강즙을 짜서 주선왕의 입안에 흘려 넣었다.
응급조치가 끝나자 나는 듯이 옥로(玉輅)를 몰아 궁성으로 돌아갔다.
환궁한 주선왕(周宣王)은 그 날 밤 늦게 정신이 돌아왔다.
왼쪽 가슴이 쑤시듯 아팠다.
그것은 견딜 만했다.
정작 그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두백과 좌유의 환영이었다.
눈만 감으면 그들이 나타나,
- 내 목숨을 돌려다오.
외쳐대는 것이었다.
무서워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3일간 한 번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약도 소용없었다.
"나의 생도 여기까지인 모양이구려."
주선왕(周宣王)은 강후의 손을 잡았다.
이틀이 지나자 병세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주선왕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재위 46년.
폭군 주여왕(周厲王)과 군주 공백기인 암울한 공화시대를 이어 왕위에 올라 주왕실을 부흥시킴으로써 '중흥의 군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공적이 많은 임금이었다.
그러나 말년에 어지러운 모습을 자주 보였다.
결정적인 것은 충신 두백(杜伯)의 처형이었다.
두백과 좌유는 주선왕과 간난(艱難)을 함께하며 주왕조 부흥을 이루어낸 공신이었다.
부부로 치면 조강지처(糟糠之妻)인 셈이다.
그런데 그러한 충신들을 주선왕은 간단하게 죽여버렸다.
- 어려움을 함께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할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장경오훼(長頸烏喙)형의 인물이라고 한다.
장경오훼란 목이 길고 입이 뽀족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명나라 때의 학자이자 사상가로 유명한 이탁오(李卓吾)는 주선왕을 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틀림없이 장경오훼(長頸烏喙) 형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주선왕이 간난(艱難)을 함께 해온 충신 두백과 좌유를 죽였다는 것은 그의 통치 말년의 상징이다.
충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간사스러운 말이 판을 친다.
아마도 주선왕 말기가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선왕(周宣王)은 천성적으로 악독한 사람은 아니었다.
두백과 좌유의 귀신을 보았다는 것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는 증거이다.
두백(杜伯)과 좌유(左儒)의 죽음 이후 몹시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냥을 나가 그 귀신을 보았다.
주선왕의 죽음과 두백의 귀신을 연관시켜 적은 역사서는 없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거론되어 있지 않다.
다만 <묵자>와 <국어(國語)>에서만이,
'두백(杜伯)의 망령이 주선왕의 심장을 활로 쏘아 맞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 다음은 제 2장 요녀의 등장이 이어집니다.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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