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엇을 쓸 것인가?
우선 시라는 글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맙시다. 그리고 처음부터 너무 좋은 글을 쓰겠다고 욕심 부리지도 맙시다. 내가 시를 ‘영롱한 언어의 사리’라고 신비로운 정의를 내린 바 있기는 하지만 이는 좋은 시를 말하고 있다.
간략히 말하면 시는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짧게 기록한 글일 뿐이다.
‘어떤 것’이란 곧 ‘소재’를 말한다. 즉 ‘글 쓸 거리’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논의의 편의상 소재를 양분해 본다면 우리의 몸 밖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객체적 소재’,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정황들을 ‘주체적 소재’로 구분할 수도 있다.
우선 객체적 소재는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삼라만상 모든 것이 다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 중에서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들마다 취향이나 기호와 무관하지 않지만 대체로 ‘아름답거나 이채로운 사물’을 택하게 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쓴 시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글에 지나지 않다면 누가 관심을 갖고 그 시를 읽으려 할까.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기한 소재는 흔치 않다. 그래서 여행이나 모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조건들로 인해 쉽지 않다.
이채로운 대상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상에서 이채로운 생각이나 느낌을 얻는 일이다. 아무리 이채로운 대상을 만났더라도 그 대상 속에서 얻은 생각이나 느낌이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와는 달리 비록 평범한 사물을 대했을 경우라도 평소와 달리 이채로운 생각이나 느낌이 떠오르는 체험을 했다면 이것이 소중한 글감이 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소재 자체가 아니라, 소재로부터 얻어낸 이채로운 - 다시 말해 감동적인 생각과 느낌이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상으로부터 얻어낸 생각이나 느낌 - 이것을 서양에서는 ‘이미지(image)’라는 용어로 부르고, 동양에서는 ‘시상(詩想)’이라는 말로 즐겨 사용해왔다. 특해 기발한 시상을 “영감靈感”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이미지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접했을 때 그 ‘대상’이 우리의 심리(마음) 속에 불러일으키는 ‘과거의 체험 내용’이라고 심리학에서는 정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누가 이제 막 떠오르는 둥근 보름달을 보았다고 치자.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들이 떠올랐다. 과거에 자신이 본 바 있던 ‘둥근 쟁반’, ‘환하게 웃는 아가의 얼굴’, ‘이제 막 구워낸 따끈한 호떡’ 등이 떠올랐다면 이것이 바로 이미지이고 시의 싹이 된다. 그러나 앞의 두 개는 흔한 이미지이고 맨 뒤의 이미지는 조금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이런 색다른 이미지가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한 개의 이미지로 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하모니카
불고
싶다
-황순원 <빌딩>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