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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곤
아들이 기껏 건축학부에 진학하겠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기왕 어렵게 한 공부, 갈 수 있는 길이 얼마나 많은데.
"그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나와서 나랑 똑같은 거 하겠다고? "
"아빠 일이랑은 살짝 다르죠. 그리고 아빠 일이 뭐가 어때서요?"
"내가 이렇게 어렵게 하는 것 다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아빠도 얼마든지 다른 걸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잘 맞으니까 계속 하신 거 아닐까요?"
진곤은 목소리에서 못마땅함을 숨기지 못했는데 아들 연모는 차분하고 능글맞게 대답해 왔다. 열아홉. 진곤이 고향을 떠나 일을 시작한 나이다. 같은 나이인데도 연모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처럼 느껴진다. 물론 진곤도 연모가 나중에 하게 될 일이 자신의 일만큼 고되고 위험하지는 않을 거란 걸 이해하고 있지만 뭔가 마뜩찮다. 괜찮은 회사의 쾌적한 사무실에서 일할 연모를 쉽게 상상할 수 있으면서도 욕심을 더 내고 싶었다. 연모가 현장과는 아예 관련이 없는 직업, 현장이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직업을 가졌으면 했다. 그런 직업이 어떤 직업인지는 전연 몰라도 진곤의 상상 바깥에 분명 있을 터였다.
"성적이 모자라는 거면 내년에 한 번 더 해도 돼."
진곤이 아쉬움에 덧붙였다. 연모가 학교 보충수업, 인터넷 강의, 동네에서 제일 싼 학원만으로 서울의 좋은 대학에 합격한 게 자랑스러웠다. 부모에게 짐지우지 않으려 속 깊게 노력해온 아이다. 1년쯤 더 공부하게 해주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아빠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달라요.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아들은 눈썹을 찌푸리고 입은 웃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고집을 부렸다.
"저녁에 엄마 퇴근하면 다시 이야기 하자."
진곤은 옛시절처럼 아버지가 아이를 윽박지를 수 있다면 좋았을 거라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사춘기 아들과 사이가 좋았던 것이 자랑 중의 자랑이었지만 이럴 때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머리 굵어지기 전, 말 잘 듣던 나이는 금방 지나가버렸다. 억울할 정도로 금방이었다. 진곤은 혀를 찼다. 어쩌다 이렇게 무른 아버지가 되었지? 연모 탓이다. 연모에겐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면이 있었다. 주변 모든 어른을 무르게 만드는 깜찍한 면이. 진곤은 고개를 흔들며 고개를 털어내고는 신발을 신었다. 추워질 때도 되었는데 해가 강해서 가벼운 운동화를 골라 신고 집을 나섰다. 작업화는 현장에 있었다.
상가 증축이 막 시작될 참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목은 좋았다. 내장과 외장을 싹 다시 하고 두 층을 더 올린다 했다. 뜯어보니 잘 지은 건물은 아니어서 안정성 검사를 겨우 통과했다. 기둥 위치가 설계도와 다르고 바닥도 고르지 않고 손볼 곳이 한두군데가 아닌데 공사기간은 말도 안되게 짧게 주어졌다. 진곤은 노무장이었다. 노무장이니 노무감독이니 요즘 부르는 말은 뭔가 격식 있어 보이지만 사실 원래 쓰던 '십장'이란 말도 싫어하지 않았다. 십장이라 불릴 때의 진곤은 어쩐지 나이 많은 병사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런 뜻인줄 몰랐는데 연모가 가르쳐주었다. 그래, 똑똑한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 똑똑해서 안 듣는지도 모른다.
십장이라 해서 열명만 데리고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이 뽑으면 서른 명에서 쉰 명 정도를 뽑아 일했다. 최근에 회사를 옮기고는 늘 스무 명 안팎이었다. 업무도 십장보다는 현장 팀장에 가까워졌다. 지난번 회사 이사는 성질이 불같았는데 원청 업체에서 돈을 못 받자 찾아가서 그쪽 사람을 칼로 찔렀다고 한다. 한번도 아니고 수십번을 찔러서 뉴스에 났다. 돈을 진짜 오래 못 받긴 했다. 진곤도 자다가 못 받은 돈 때문에 벌떡벌떡 일어났을 만큼 사람을 화나게 하는 악질들이었다. 이사와 밥을 먹고 술을 먹을 때마다 욕을 욕을 해댔지만 정말로 가서 찔러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느날 이사가 출근을 안 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벌써 잡혀간 다음이었다. 하여간 더러운 판이었다. 큰 회사부터 코딱지만 한 회사까지 사슬 지어 더럽다. 아들이 정말이지 이 판에 안 들어오면 좋겠는데 그 나이 때 애들은 참 세상 더러운 줄을 모른다. 그걸 모르게 키웠으니 잘 키운 건가, 못 키운 건가.
"안 더러운 판이 어딨어요? 다 더럽지."
계속 투덜투덜하고 있자 여자 목수가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여자들도 종종 눈에 띈다. 도구가 좋아져서 여자들도 곧잘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영리한 축들이다. 틀을 짤 줄 아는 일꾼들은 일당을 훨씬 많이 받으니 잘된 일이지만, 그래도 근골이 아니면 하기 힘들어 아직 수가 많지는 않다. 남녀에 상관없이 진곤은 일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한번도 돈을 떼먹고 도망간 적 없는 십장이라고 소문이 나서였다. 그런 당연한 걸로 인기가 좋은 것 역시 이 동네의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오전에 남아 있는 외장대를 마저 뜯읍시다."
일은 힘들지만 여름보다 나았다. 열사병은 위험했다. 지금껏 열사병으로 쓰려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사람을 삶아버리는 더위가 점점 심해지는 것은 연모가 설명해준 대로 지구온난화 때문일까. 진곤은 여름이 아니라도 몸속에 든 물이 나빠지는 듯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어딘가가 막혀 꾸덕꾸덕하고 흐르지 않게 되었다. 몇년 안에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아들에게 벌써 대출을 받게 하고 싶진 않았다. 부부의 노후도 사실 대비된 게 없었다. 이제 와 귀향해봐야 몇년 전 다친 허리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리 없다. 농사 짓기 싫어서 열아홉에 올라왔는데 나이들었다고 다를 리 없고 말이다. 허리만 안 다쳤어도 조금 나았을 텐데. 진곤은 그래도 아이가 하나라 다행이라고, 둘이었다면 심란했을 거라고, 하나 낳았는데 똑똑해서 고마울 정도라고 생각했다. 누굴 닮아서 똑똑한 건가, 아마 제 엄마 쪽이겄지, 아내에게 공을 돌렸다.
4층 빌라에 사는 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가끔 허리에 통증이 도지는 날은 연모가 부축해주곤 한다. 매번 귀찮을 법도 하건만 어느새 단단해진 팔로 잡아줄 뿐이었다. 목말을 태우고 다녔던 꼬마가 오히려 진곤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 머지않아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로 옮겨야 하겠지만 계속 미루게 된다.
금새 지쳐서 비계에서 내려왔다. 다른 작업을 하던 세 사람을 대신 올려 보냈다. 싹 끝마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진곤의 팀이 작업을 마치면 위층에 들어옽 극장과 지하에 들어올 대형 마트는 또 그쪽 팀대로 따로 공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날짜가 물리면 아주 곤란해질 것이었다. 찬물을 마시고 쌓여 있는 자재들을 확인하니 한숨이 나왔다. 순 싸구려 자재들이었다. 건물주가 이 지역을 쥐락펴락하는 유지라던데 그러면 뭐하나 싶었다.
"선하게 사니까 애가 대학에도 턱 붙고 복 받나 봐? 선비, 양반 소리 듣고 살더니."
축하 반 놀림 반으로 다른 십장이 말을 걸어왔다. 진곤이 아주 좋아하는 축이었냐면 그건 아니고 그래도 완전히 도둑놈은 아니라는 걸 아는 정도였다.
"우리 집 애들은 영 공부를 못해. 그래도 등록금 안 대도 되니 그건 호도지. 자랑 그만하고 다니고 거하게 한턱 내."
"등록금 대야 해서 못 내."
좋아하는 인물이었으면 뜨뜻한 탕이라도 사주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진곤은 잠깐 앉았던, 스프링이 튀어나온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환풍기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컨테이너 사무실의 문을 닫고 나와 다시 비계에 올라섰다. 층을 올라가기 위해 경사로에 섰을 때였다. 발이 주룩 미끌어지며 헬멧을 무언가가 때렸다. 골이 울렸다 비명도 못 지르고 넘어졌는데 얼굴부터 떨어지는 것만 겨우 피했다. 굉음이 머릿속에서 나는지 밖에서 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뒤로 이내로 계속 미끄러졌다. 진곤은 아무거나 잡고 매달렸다.
충격이 잦아들 때까지 매달린 채 기다렸다. 눈을 가렸던 팔등을 천천히 치워보았다. 코앞밖에 보이지 않았다. 넘어지면서 혀를 깨물었는지 먼지 속에 피를 뱉어야 했다. 복부 어딘가도 두들겨 맞은 듯 아팠으므로 더 깊은 곳에서 나온 피일 수도 있었다. 진곤은 그대로 엎드린 채 일어설 수 있는지 발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귀울림이 심했다.
진곤이 일어서서도 곧바로 균형을 못 잡고 몇번 더 헬멧을 박으며 반쯤 무너진 더미를 헤치고 나가자,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진곤을 도와 꺼내주었다. 기다시피 겨우 빠져나와 건물에서 멀어진 다음 돌아보았다. 비계가 U자로 휘어 있었다. 거인이 양손으로 우그러뜨린 것처럼 가운데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뭐라 외치고 있었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열네 명이 비계 위에 있었다. 여섯은 가장자리에 있어서 간신히 매달린 채였지만 나머지 여덟은, 가운데에 있던 여덟은 그대로 추락한 듯했다. 추락한 여덟 중 둘읃 폐자재 위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를 못 들었다. 진곤은 바닥에 주저앉아 한 손으로 귀를 막았다 떼었다. 장갑에 피가 묻어났다. 주머니를 더듬어 휴대폰을 찾았다. 하필 깨져 있었다. 옆읕 지나는 사람의 바지릍 붙잡았다.
"전화기! 전화기!"
"했어. 지정병원에서 올 거야."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입술을 읽어야 했는데 진곤은 화가 났다.
"웃기지 마, 119에 전화하란 말이야! 큰 병원이 코앞인데 언제 지정병원까지 갈 거야?"
자기 목소리조차 멀게 들렸다. 하지만 꽤ㅈ큰 소리를 낸 건 틀림없었다. 사람들이 진곤을 쳐다보았다. 그중 하나가 휴대폰을 건넸다.
"자네가......자네가 좀."
그 동료가 통화하는 걸 보고 진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어진 사람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다리를 끌고 건물 쪽으로 다가갔다. 좋지 않아 보였다. 튻니나 네 사람은 더 좋지 않아 보였다. 이제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때로 좋지 않아 보였던 사람들이 멀쩡하게 회복될 때도 있었짖만 대개는 그렇지 않았다. 좋아 보였던 사람이 낲가지는 경우는 많아도.
진곤은 휘고 부러진 비계를 걷어찼다. 현명한 행동은 아니었다. 강렬한 통증이 허리까지 타고 올라왔으니까. 중고 비계. 몇번이고 몇번이고 조립되었다가 해체되었읕,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나와서 안전하다고 스티커를 붙여줬을 비계였다. 게다가 발판이 띄엄띄엄 고정되어 있었다. 불안하다고 생각했었다. 생각했었지만...... 불안보다는 조급함에 시달렸다. 세 명을 더 올려 보낸 건 진곤이었다. 세 명을 올려 보내지 않았다면 무너지지 않았을까? 입안이 부풀어오르며 피 섞인 침이 입술 가장자리로 흘렀다.
입원해 있을 때 연모는 매일 와서 곁에 앉아 있었다. 제 엄마가 어릴 때부터 자주 시키긴 했지만 과일을 어찌나 가지런히 깎는지 입원실의 다른 가족들이 놀라워했다.
"아들을 참 잘 키우셨어요."
그 말만은 귀가 잘 안 들려도 계속 듣고 싶었다. 연모는 길쭉하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백조 모양으로 깎았다. 하지만 진곤은 사과를 몇 조각 먹지 않았다. 사과를 먹을 기분 기분에 좀처럼 이르지 못했다.
"내 탓이었어."
한참이 지나서야 그 말을 할 수 있었다.
"당신 탓이 아니었단 거 알잖아."
퇴근 후 들른 아내가 단호하게 말했지만 진곤은 그 말을 믿을 믿지 않았다.
"아빠 어떤 일들은 너무 복잡하게 엉망이어서 벌어져요. 아빠가 바꿀 수 없었어요."
연모도 말했다. 부드러운 손바닥을 진곤의 손등에 얹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어린 얼굴로. 그래도 진곤은 연모가 계속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했다. 연모의 손이 계속 굳은살 없이 부드러웠으면 했다. 사과나 깎으면서. 엉망인 세계 가운데를 살아가지 않았으면 했다. 아이인 채로 계속 있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인가. 바람에 춤추는 풍선을 손목에 감고 유원지를 걷듯이 살아가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인가. 분명 어딘가에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부모도 있을 텐데, 진곤은 자신이 그런 부모가 아닌 게 속상했다. 멍든 곳, 긁힌 곳, 금이 간 곳, 고름 나는 곳이 속상할 때마다 아파왔다.
연모는 결국 건축학부에 진학했다. 부풀었던 입안이 가라앉고도 진곤은 반대의 말을 하지 못했다. 엉망이 아닌 곳을 떠올릴 수 없었으므로 자식에게 다른 방향을 가르쳐줄 수 없었다.
"저는 괜찮을 거예요."
연모가 걱정으로 눈썹을 찌푸리며, 하지만 입은 위로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곤은 대답 없이 거친 손바닥을 연모의 손등에 얹었다.
첫댓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빠 서진곤.
아들이 그저 기특하고 이쁘고 자기보다 똑똑하다고 여기며 박수 쳐주는 아빠. 이보다 좋은 부모는 없다.
"엉망이 아닌 곳을 떠올릴 수 없었으므로 자식에게 다른 방향을 가르쳐줄 수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라벤더 님
감사합니다
부모보다
자식은 수월하게 살았음하는
부모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