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이들은 세상은 사람이 인식하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본다. 이런 생각의 틀 안에서 이들이 깊이 고찰한 것이 외부 세계를 인간이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인간이 외부의 물상을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거쳐서 인식한다고 본다. 이 다섯 가지를 5식(識)이라 하고, 정신을 6번째의 인식 방법으로 생각해서 제6식(識)이라고 한다.
그 다음 제7식은 말라식(末那識, manas- vijñāna)라고 부르는데, 이는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 정신보다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뜻한다. 아뢰야식은 제8식으로 자아의식의 뿌리가 되는 심층의식을 뜻한다. 인간이 생활하면서 제1식으로부터 제7식에 이르기까지 인식하는 모든 것들은 심층으로 내려가 아뢰야식에 기록된다. 모든 것이 누적된 아뢰야식은 무의식중에 거슬러 나타나서 인간의 마음과 행위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아뢰아식이 인간 모든 활동의 근원이 된다고 본다. 마음이 따뜻하고 차가운 것, 행동이 착하고 악한 것, 생각이 더럽거나 깨끗한 것도 모두 그 깊은 바닥에 있는 아뢰아식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다. 아뢰야식보다 위에 있는 제1식부터 제7식까지의 인식은 대상을 대할 때마다, 기분에 따라 바뀌며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된 아뢰야식은 그 모든 것의 근본으로 제7식인 자아의식보다도 깊은 곳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그 모든 것의 진리를 성찰하는 인식을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아뢰야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수행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자신의 속에 어떤 업이 담겨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불교에서는 아뢰야식에 업이 씨앗처럼 자리잡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이 다하면 그동안 인간이 느끼고 받아들였던 모든 인식이 아뢰야식에 담겨 있다가 씨앗처럼 자라나서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본다. 선행이 선행을 낳고 악행이 악행을 낳는다는 것이 바로 이 논리인데, 이를 윤회라고 한다. 하지만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을 경우 아뢰야식에 담긴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그 업을 소멸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이다.
이 아뢰야식을 철학적 입장에서 분석한 글이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다. 원효는 외부의 것에 대한 마음에 따라 외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해골에 담긴 물을 먹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대승기신론소>와 <별기(別記)>에서 아뢰야식이 만들어지고 바뀌며 사라지는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의했다.
감은 봄 잎 여른 꽃 풍우 생각 환경 토종감 고용 대봉 배아가 형성 =아뢰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