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설법제일(設法第一) 부루나(富樓那)
법을 설한다는 것
설법이란 법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법을 설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상대방을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납득시키는 매개체로서는 말 이상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때로는 말보다는 침묵이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공공 생활에서 역시 일차적인 매개 수단은 말이다.
불교는 말이 지니는 허위성과 그 일의적 기능 때문에 말을 떠난 자리, 그 궁극의 자리를 중요시한 게 사실이다. 궁극적 진리는 이성적인 논리의 전달 매체인 말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선에서는 급기야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 궁극적 진리에 오르기 위한 메개체로서 말은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논리적인 말은 진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부루나 존자는 그런 말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 뛰어난 부처님의 제자다. 그는 말을 구사하는 데 있어 가히 천부적이랄 수 있는 탤런트였는지 뛰어난 수사법을 구사하면서 물 흐르듯 가르침을 전한다.
그의 본명은 푸르나 마이트라야니 푸트라(Purna maitrayani putra)다. 푸르나란 '충만된' '만족된' 이라는 뜻의 과거수동분사이며 마이트라 야니는 자애심이 깊다는 뜻의 마이트레야(maitreya)에서 나온 여성 명사이고 푸트라는 그 자식이란 말이다. 풀어보면 자애로운 마음으로 충만된 여성의 자식이랄 수 있다.
그래서 이 말은 만자자(滿慈子), 만족자자(滿足慈子) 등으로 의역되었으며,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는 그 음역으로, 줄여서 부루나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중아함 제2 『칠거경(七車經)』에서는 "내 아버지의 이름은 만(滿)이고 내 어머니의 이름은 자(慈)이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자(梵行者)들은 나를 만자자(滿滋子)라고 부른다"라고 전한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최초로 부처님 말씀을 듣고 귀의한 다섯 비구 중 최고참인 아약교진여(阿若橋陳如, Annatakondanna) 누이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
두 가지 출가설
부루나는 봄베이 북쪽에 자리잡고 있던 고대 무역항 수나파란타카(Sunaparantaka) 국 수파라카(Supparaka)출신이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무역을 통하여 부를 많이 획득한 대부호였다.
그러나 부루나는 노비의 신분인 어머니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었다.
그는 무일푼으로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그는 해양 무역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당시 인도의 해상 무역업은 상당히 성행하여 멀리 메소포타미아까지 교역을 나갈 정도였다. 그는 상선을 타고서 장사를 하게 된 결과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웬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은 허전했다. 어느날 그의 배에 사위국 사람들이 승선했다.
부루나는 그 사람들로부터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듣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결국 그는 모든 재산을 형에게 주고 사위국으로 달려갔다.
당시 사위국에는 기원정사를 부처님께 헌납한 수닷타 장자가 살고 있었다.
부루나는 그의 소개로 부처님을 뵙고 무소유의 교단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불본행집경』에서 전하는 그의 출가 이전 생애와 출가 동기는 이와 다르다. 여기서는 그의 출생일이 부처님과 같은 날이었고 그가 태어난 곳은 코살라에서 카필라에 이르는 중간 마을 드놔바투였으며, 아버지는 정반왕의 국사로서, 브라만 신분의 큰 부자였다고 한다.
부루나는 총명하여 베다는 물론 당시의 사상계를 풍미했던 갖가지 종교나 철학에 대해서 통달했다.
논리학, 언어학, 문법, 기예, 의학 등에 능통한 만물 박사였던 것이다. 부루나는 이렇게 다재다능한 재주를 지녔음에도 마음속에는 세간을 싫어하고 초세속적 해탈을 향한 욕구가 강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부모와 의논도 없이 친구 30인과 더불어 야반 도주하여 히말라야 산으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서 치열한 고행과 수행 끝에 신통력을 얻게 되었다.
부루나는 신통력으로 부처님이 어디 계신가 관찰하던 찰나 몰록 녹야원에서 설법하시는 깨달은 이의 장엄한 모습이 시야에 가득 차 들어왔다. 그때 부처님은 법을 설하고 있었는데, 그만 그는 그 말씀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고 만다.
자나 깨나 해탈도를 구하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나머지 벗들과 더불어 한 걸음에 부처님께 귀의한다.
이러한 두 가지 부루나의 출가 이전 신분이며 그 고향, 그리고 출가의 계기에 대한 얘기는 너무 이질적이어서 당혹스럽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할 수조차 없다. 그렇지만 그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출가하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언행일치와 인욕의 모범을 보여주다
부루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제일(設法第一)이라는 칭호를 받았다(증지부 경전). 사리불도 그를 극구 칭찬한다. 사리불이 어느날 부루나에게 석존을 따라 범행(梵行, brama carya ; 청정한 행위)을 닦는 이유에 대해서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현자여(사리불이여),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함을 얻고, 마음이 깨끗함으로써 깨끗한 자신의 견해를 얻고, 그러한 깨끗한 견해로써 의심을 없앤 깨끗함을 얻고...... 지혜의 깨끗함으로써 사문 고타마는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연설하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부루나님이여, 그대는 여래의 제자가 되어 행동하고 지변(智辯)과 총명함은 확고하고 안온하며 두려움이 없어 마음먹은 대로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성취하셨으니 큰 변재(辯才)에 통하셨습니다."
신념에 차 있으며 논리적일뿐더러 설득력 있는 그의 달변은 올곧고 자신감 있는 행위에서 나왔다는 문답 내용이다. 그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을 영위해 나갔던 것이다.
부루나는 약장수처럼 입만 나불거릴 뿐 진실한 행위가 없는 속빈 샐러리맨이나 논리게임에 놀아나는 현대의 지식인들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설법이 탁월한 부루나의 이러한 능력은 대승불교권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유마경』에서 그는 유마거사로부터 한 방 얻어맞지만 『법화경』「오백제자수기품」에서는 그의 걸림이 없는 언설로 부처님 말씀을 잘 전해 중생들에게 이익을 베푼 결과, 장차 법명(法明)여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는다.
너희들은 부루나미다라자니를 보았느냐? 나는 항상 설법하는 사람 가운데서 그가 제일이라 칭찬했을뿐더러 여러 가지 그의 공덕을 찬탄하였느니라.
그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나의 가르침이 세상에 바르게 행해지도록 지켜 왔으며, 나를 도와 가르침을 잘 말해 주어 사부대중에게 가르쳐 보여 이롭게 하고 기쁘게 했다. 게다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해석하여 같은 범행자를 크게 이익되게 하였느니라. 여래를 제외하고는 그 언론의 변재를 당할 자 없느니라. (「오백제자수기품」)
잡아함 권13『부루나경』에는 이러한 뛰어난 변재의 힘으로 부처님 말씀을 전하려는 그의 비장한 각오가 잘 그려져 있다. 부루나가 불법을 전하기 위해 민심이 몹시 흉악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들로 득실대는 수나파란타카 국으로 가겠다고 하자 부처님은 묻는다.
"그들이 나무나 돌로 때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칼을 가지고 해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칼로 상처를 입힌다면?"
"그들은 지혜롭기에 그런 무기로 저를 해치기는 하되,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끝내 칼로 죽인다면?"
"온갖 고뇌 때문에 칼이나 독물로써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 했던 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좋은 사람입니다."
"훌륭한 일이로다. 너는 능히 인욕을 배웠으니 수나파란타카 국 사람들 사이에 머물 만하다. 너는 거기에 가서 제도 못 받은 자를 제도하며, 안심 못 얻은 자를 안심케 하며, 열반 못 얻은 자를 열반에 들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