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휘 수일(忠武公諱守一. 24세)
생몰(生沒)년은 1554년(명종9년)-1632년(인조10)이다.
자는 계순(季純)이고 호는 은암(隱庵)이다.
공(公)은 1583년(선조16)에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訓練院)의 벼슬을 거쳐 선전관(宣傳官)를 역임하
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장기현감(長기縣監)으로 의병(義兵)을 일으켜 분전(奮戰)했으나 예천 용궁(醴泉龍
宮)에서 패전(敗戰)하였다.
이해 밀양부사(密陽府使)에서 경상도 수군절도사(慶尙道水軍節度使)에 승진. 왜적 격퇴에 공을 세워 가
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회령부사(會寧府使). 나주목사(羅州牧使)를 거쳐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
亂)에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영호남 등지에서 누차(屢次. 累次) 적병을 물리쳤다.
함경북도 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를 3번 역임하면서 변방(邊方)을 침범하는 야인(野人)들의 소
굴을 소탕하고 1624년(인조2) 이괄(李适)의 난에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부원수(平安道兵馬節度使兼副
元首)가 되어 안현(鞍峴. 현 시흥시 소래 근교)에서 이괄 군을 대파 한양수복(漢陽收復)을 하였다.
그 공으로 진무공신 이등(振武功臣二等)에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으로 정해진 뒤 형조판서(刑曹判書)
에 이르러 좌의정(左議政)에 추증(追贈)하고. 시호는 충무(忠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