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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구간별 지명유래
■ 낙동 1구간
1. 산행코스:
피재(920), 매봉산분기점(0.9), 작은피재(0.9km), 구봉산(910 0.3km), 육각정(해바라기축제)
대박등(930.8), 922봉, 우보산(유령산, 느릅령산, 우산 932.4 5.4km), 느티고개(유령산영당 807 0.5km)갈마봉(0.6km), 물골, 통리재(720 38국도 통리삼거리 1.5km) -- 10.1Km
2. 소개
낙동정맥은 태백산맥의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백병산(白屛山),백령산(白嶺山),주왕산(周王山),주사산(朱砂山),운주산(雲柱山),사룡산(四龍山),단석산(斷石山),가지산(加智山),취서산(鷲捿山),원적산(圓寂山),금정산(金井山),몰운대로 이어지는 길이 370Km의 거리이다.
강원도 태백시 적각동과 황지동 사이 35번도로가 지나는 삼수령(피재 920m)은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며 삼강(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이다. 이곳에 떨어지는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을 따라 황해로,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르는 분수령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하나의 이름이 전하는데, 삼척 지방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로 가기 위해 이곳을 넘었기 때문에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피재라고도 한다.
태백시 화전동의 매봉산(천의봉 1303m)은 태백산맥의 여맥인 중앙산맥 중의 한 산으로 서북쪽에 대덕산(1307m), 서남쪽에 함백산(1573m), 동쪽에 육백산(1244m) 등이 솟아 있다. 남쪽 산록의 연일 정씨 묘에서 바라보면 매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닭이 알을 품을 때 수리가 명당을 노려보고 있어야 한다는 풍수이치 때문에 매봉으로 불렀다고 한다. 원래의 이름은 하늘의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천의봉이라고 한다.
태백시 황지동의 구봉산(910)은 산의 봉우리가 아홉이어서 또는 아홉 마리의 봉(鳳)이 춤을 추는 형상의 명당이라 하여 구봉산이라 부른다. 된각은 가파른 언덕이라는 뜻으로 구봉산 아래 가파른 고개에 위치한 마을 이름을 돈각리라 하였는데 북쪽으로 밭에 붉은 흙이 노출되어 적전리라 하였고 헌종8년(1842년)에 두 마을을 합쳐 적각리라 하였다.
대박등(930.8)은 가파른 절벽능선 중의 꼭대기를 의미한다. 대박은 대배기(꼭대기를 의미하는 경북의 방언)의 이두식 한자표기로 여겨진다.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와 통리 경계의 우보산(932.4)은 유령산, 느릅령산, 우산으로도 불린다. 느릅령은 황지지방에서 도계지방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이다.
느티고개(유령산영당 807)는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와 태백시 통동 사이의 고개이다. 산신당에서는 매년 음력 4월 16일에 통리와 도계지역 사람들이 모여 산신제를 지낸다. 큰 느릅나무가 고갯마루에 많아 느릅령이라고도 불렀다.
강원도 태백시 통동의 갈마봉은 산행지도에는 이곳을 우보산으로, 우보산을 유령산으로 표시하고 있다.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고 전망을 위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통리재는 강원도 태백시 통동과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사이 38번국도가 지나고 통리역(폐역)이 위치한 고개이다. 통리는 산 가운데로 길게 형성된 골짜기가 마치 구유(여물통) 같은 형태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 이곳에 속이 빈 통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면안등재는 서쪽의 원통골 통동과 북동쪽의 구사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개비덕재(고비덕재 1101)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안골과 태백시 통동 개비덕재골 사이의 고개로 고비나물이 많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사리(九士里)는 도로가 구곡(九曲)으로 되어 있기에 아홉 사리라 하다가 구사리라 불리게 되었다.
■ 낙동 2구간
1. 산행코스:
통리재(720), 막기정골, 개비덕재(고비덕재 1101 4.0km), 백병산(1259.3 1.0km), 큰재(1.5km), 황개재(1.7km)토산령(950 3.0km), 대끼재(0.5km), 구랄산(1072 0.5km), 면산(1245.2 2.6km), 석개재(910지방도 4.8km) -- 19.6Km
2. 소개
통리재는 강원도 태백시 통동과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사이 38번국도가 지나고 통리역(폐역)이 위치한 고개이다. 통리는 산 가운데로 길게 형성된 골짜기가 마치 구유(여물통) 같은 형태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 이곳에 속이 빈 통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면안등재는 서쪽의 원통골 통동과 북동쪽의 구사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개비덕재(고비덕재 1101)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안골과 태백시 통동 개비덕재골 사이의 고개로 고비나물이 많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사리(九士里)는 도로가 구곡(九曲)으로 되어 있기에 아홉 사리라 하다가 구사리라 불리게 되었다.
통동(桶洞)은 산 가운데로 길게 형성된 골짜기가 마치 구유(여물통) 같은 형태라 하여 통리(桶里)라는 지명이 생겼다 하며 옛날에 이곳에 속이 빈 통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통리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통골이라는 골짜기를 넘어가면 삼척시 원덕면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하여 통리(通里) 또는 통의(通義)라 했다는 지명 풀이도 있다.
백병산 삼거리 지점은 쉼터로 조성되어 사각 정자가 세워져 있다.
강원도 태백시 통동과 백산동 경계의 백병산(白屛山 1259.3)은 백산이라 불렸으며 정상 서쪽의 병풍바위 등의 암봉이 병풍을 두른 듯하고, 갈수기 때 산 꼭대기의 바위가 하얀 암봉으로 보여 백병산이라고 부른다.
큰재는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와 태백시 백산동 사이의 고개이다. 고비덕재와 더불어 통리 주민들이 옛날 동해로 소금을 구하기위해 넘던길로 무거운 소금가마니를 지고 다니느라 힘이들어 큰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황개재는 삼척시 가곡면 동활리와 태백시 백산동 사이의 고개능선이다.
토산령(950)은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와 태백시 철암동 사이의 고개이다. 신리재로 도로가 나기 전에 풍곡리 주민들이 태백시 철암으로 넘나들던 주요 산길로 토끼들이 유난히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대끼재는 토산령에서 작은 봉우리를 지나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와 태백시 철암동 사이의 고개이다.
구랄산(1071.6)은 지도(지형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굴알산(堀謁山)을 편하게 발음하다 구랄산으로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옛날 심마니들이 쉬어가는 굴이 많이 있어 심마니와 굴과의 관계로 인해 구랄산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태백시 동점동,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와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경계의 면산(두리봉 1245.2)은 지금의 삼방산(1176.6)을 면산이라하였는데 전쟁이 나면 이곳으로 숨어들어 난을 면(免)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면산은 삼방산이 되고 두리봉이 면산으로 바뀌었는데 삼척 지역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멀리 보인다 해서 먼산이라 하다가 말이 변화되어 면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석개재(1009.3)는 석포령이라고도 하며 덕풍계곡이 있는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와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사이의 고개로 910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석포리(石浦里)는 돌이 많고 마을 앞에 개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구문소에 구멍이 뚫리기 전 석벽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철암천이 큰 소를 이루어 그 소에 청룡이 살고 있었고 서쪽에는 황지천이 콘 소를 이루고 백룡이 살았다고 한다. 두 용이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매일 석벽 꼭대기에서 싸움을 하였는데 항상 뇌성이 일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천지를 분간치 못하였고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느날 백룡이 꾀를내 석벽 밑을 뜷으며 공격을 하여 청룡을 물리치고 그 여세로 승천을 하였고 백룡이 승천할 때 지나간 산을 용우이산이라 하는데 구문소 앞에 솟아있는 산이다
■ 낙동 3구간
1. 산행코스:
석개재, 묘봉(1168 3.2km), 용인등봉(1124 1.5km), 삿갓봉(1119 4.1km), 백병산갈림길(3.6km), 큰서낭골(임도 1.8km)승부터(4.9km), 한나무재(760 1.3km), 진조산(908.4 1.2km), 굴전고개(임도 1.1km)답운치(踏雲峙 답운재,광비령 619.8 3.0km)(36국도) - 25.7Km
2. 소개
석개재(1009.3)는 석포령이라고도 하며 덕풍계곡이 있는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와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사이의 고개로 910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석포리(石浦里)는 돌이 많고 마을 앞에 개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묘봉(猫峰 1168)은 민둥산이라고도 하는데, 높이에 비해 산의 모양이 순한 모양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용인등봉(龍仁登峰 1124)은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마을에서 볼 때 문지골과 괭이골 사이에 솟아 오른 산릉의 최고봉으로 착한(어진)용이란 뜻을 담고 있다.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삿갓봉(笠峰 1119)은 안일지맥(安逸支脈 30.8km) 분기점으로 삿갓봉에서 동으로 분기하여 안일왕산,아구산을 거쳐 울진읍 비래동 비래봉산(20m)을 끝으로 동해 바다로 들어가는 맥이다.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큰서낭골은 아마도 서낭당이 있어 유래한 이름이 아닌가 추정된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이고,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 승부터는 옛날 고조선 붕괴후 동일 지역에 여러 나라들이 독립하며 존재했던 열국시대(부여,고구려,신라,백제,동예,옥저,마한,진한,변한 등) 초기에 이곳에서 전쟁의 승부가 갈라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승부산(934.5m)은 열국시대에 실직국이 예국에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후퇴하다가 이곳 승부산 아래 석포면 승부에서 배수진을 쳤으나, 패한 지역의 산이다.
한나무재(760)는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고개로 1995년 산림청에서 개설한 도로이다. 새넓재, 작은 늪과 재가 있다 하여 적은넓재, 전나무진이라고도 부른다. 한나무재는 울진 십이령(十二嶺)의 하나로 십이령재 또는 십이령티라고도 하는 데, 울진 북면의 두천리와 봉화의 소천면까지 이어지는 열두고개로 바릿재,평밭,새재,느삼밭재,너불한재,저진치,한나무재,넓재,고치비재,멧재,배나들재,노루재를 일컫는데 1950년대 중반까지 울진의 흥부장과 울진장, 봉화의 내성장과 춘양장을 오가던 장사꾼들이 주로 이용했다고 전한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전곡리,광회리 경계의 진조산(908.4)은 경북 내륙에서도 가장 오지의 산으로, 남쪽은 통고산(通高山), 북쪽은 삿갓봉, 동쪽은 응봉산(鷹峰山)으로 둘러싸여 있다.
굴전고개는 지형도에는 나오지 않으며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와 광회리 사이의 고개로 임도가 뚫려있다.
답운치(踏雲峙 답운재,광비령 619.8)는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와 광회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늘 안개가 끼어 있어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한 고개라 하여 답운재(踏雲)라고 한다. 36번 국도가 동서로 관통한다.
■ 낙동 4구간
1. 산행코스:
답운치(踏雲峙 답운재,광비령 619.8), 홍이동(2.8km), 휴양림갈림길(1.7km)통고산(1067 2.1km), 애미랑재(왜무랑재 605 6.0km) -- 12.6Km
2. 소개
답운치(踏雲峙 답운재,광비령 619.8)는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와 광회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늘 안개가 끼어 있어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한 고개라 하여 답운재(踏雲)라고 한다. 36번 국도가 동서로 관통한다.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광회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광비동(廣比洞)과 남회룡동(南回龍洞)에서 광(廣)자와 회(回)자를 가져와 광회(廣回)가 되었다.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와 광회리 경계의 통고산(通古山 1067m)은 통고산(通高山)이라고도 하는 데, 통곡산(通谷山)으로 부르다가 그 뒤 통고산으로 불려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대국가 형성기 솔직국의 안일왕이
다른 부족에게 쫓기어 이 산을 넘을 때 하도 재가 높아 통곡하였다 하여 통곡산(通谷山)으로 불렀다 한다.
낙동정맥의 주맥으로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상류천에 해당하며,동쪽으로는 불영계곡과 왕피천의 주요 수맥이 되며, 불영계곡에는 통고산자연휴양림이 있다.
통고산 정상석 뒷면에는 전설같은 유래가 상세히 적혀 있다.
울진군 금강송면의 왕피리(王避里)는 세 가지 설이 있는데 실직국(삼척)이 파조국(울진)을 병합해서 한 부족국가를 이루고 있을 때, 예국(강릉)의 침략을 받아 안일왕(安逸王)이 이곳으로 피신했던곳이라는 설, 935년경 신라 경순왕의 마의태자가 손씨의 모후와 함께 이곳으로 피신했다가 모후는 이곳에서 별세하고 왕자는 금강산으로 갔다는 설,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왔던곳이라는 설이 있다.
애미랑재(605m)는 봉화군 소천면 남회룡리와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사이의 고개로 917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울진지역에서는 안일왕 보다 에밀왕으로 불렸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어릴 적에 아이가 울면 어른들이 "예 나온다 그쳐라"하고 달랬는데 즉 강릉의 예국이 쳐들어 오니까 울음을 그치라는 말에서 애미랑재가 되었다고 전한다.
엣날 열국(列國)시대 초기 실직국(悉直國 삼척), 파조국(波朝國 울진), 예국(穢國 강릉)의 세력다툼으로 전쟁을 하여 처음에는 실직국이 파조국을 합병하였는데, 실직국의 안일왕(安逸王:일명 에밀왕) 때에 예국의 침략을 받아 후퇴하여 태백 통리를 거쳐 봉화군 석포면 승부까지 이르러서 석포4리 굴 앞 굴티 일원에 군사를 집결하여 일대 반격을 하였는데 패하게 되자 지금의 승부역 뒷산인 배바위산, 비룡산을 거쳐 현동리와 분천리 고치비재를 넘어 옥방, 남회룡리를 거쳐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애미랑재를 넘어 수하계곡을 따라 내려가 통고산을 지나서 왕피리로 피난후 울진지역에 안일왕 산성을 축성했다.
안일왕과 관련된 지명이 아주 많다.
- 임광터 : 안일왕이 쉬던곳
- 포전 : 군사들이 취사를 하던곳
- 병위 :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
- 거리곡 : 군량미 창고가 있던곳
- 핏골 : 안일왕이 적에게 잡혔던곳
- 승부터 :전쟁의 승부가 갈라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
- 애미랑재 : 에밀왕(안일왕)이 넘은 고개
- 통고산 : 전쟁에 쫓기어 통곡한 산
- 왕피리 : 안일왕(에밀왕)이 피난한 곳
남회룡교(南廻龍橋 520m)와 남회룡리(南廻龍里)는 일월산맥이 동네 남쪽으로 돌아 앉아 있어, 마치 용이 남쪽으로 돌아 앉아 있는 것 같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와 봉화군 소천면 남회룡리 경계의 칠보산(794.2)은 지형도에는 표시되지 않고 정맥지도에 표시되어 있는지점이다. 영덕군 병곡면에 위치한 칠보산(811)은 돌옷(돌에 난 이끼),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동(구리), 철 등 7가지의 동식물과 광물이 풍부하여 칠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과거에 등운산(騰雲山)으로 불렸다고 한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새신고개(730)는 비상골과 쌔골 사의의 고개로 한 때는 조성리(鳥成里)라 불리우던 고개 서쪽의 새신마을과 고개 동쪽의 신암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새신마을은 마을어귀의 약물탕과 그 주변에 숲이 우거지고 산새가 많이 살고있어 이 같이 불렀다 한다.
소나무의 가지가 열 개로 갈라진 십지춘양목(十枝春陽木)은 가지가 많아 아주 특이한 모습이다. 춘양목은 한옥을 짓는 데에 으뜸가는 목재로 조선 중기의 건물과, 옛날 안동의 세도가나 서울의 양반집들은 대부분 춘양목으로 지어졌다. 겉껍질이 붉은빛이돌아 적송이라고도 부르고 집산지인 춘양의 지명을 붙여 춘양목이라 한다.
춘양목은 다른 지역의 육송과 달리 곧고 껍질이 얇고 결이 부드럽다. 또한 켠 뒤에도 굽거나 트지 않으며, 하얗게 보이는 다른지역의 육송과 달리 붉은빛, 보랏빛을 띤다. 그리고 벌레가 먹거나 썩지 않으며, 대패질을 해놓으면 윤기가 돈다. 춘양목이 목재로 쓰이려면 수령이 적어도 반백년 이상 된 것이라야 한다.
소나무의 밑 부분에서 굵은 가지가 갈라지는 것을 반송(盤松), 여러 개의 붉은 줄기가 우산형태의 수형을 하는 것을 다행송, 태백산을 중심으로 줄기와 마디가 곧게 자라는 금강송(金剛松)이 있다. 춘양목은 봉화군의 춘양면과 소천면이 주요 산지이다.
깃재(761)는 영양군 수비면 계리와 신암리 사이의 고개로 길이 험하고 걷기가 어려워 기어 다닐 정도로 험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낙동 5구간
1. 산행코스:
애미랑재(왜무랑재 605), 칠보산(974.2 2.4km), 새신고개(730 1.3km), 깃재(761 1.8km), 길등재(520 11.3km)
한티재(430 88지방도 3.0km) -- 19.8Km
2. 소개
애미랑재(605m)는 봉화군 소천면 남회룡리와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사이의 고개로 917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울진지역에서는 안일왕 보다 에밀왕으로 불렸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어릴 적에 아이가 울면 어른들이 "예 나온다 그쳐라"하고 달랬는데 즉 강릉의 예국이 쳐들어 오니까 울음을 그치라는 말에서 애미랑재가 되었다고 전한다.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와 봉화군 소천면 남회룡리 경계의 칠보산(794.2)은 지형도에는 표시되지 않고 정맥지도에 표시되어 있는지점이다. 영덕군 병곡면에 위치한 칠보산(811)은 돌옷(돌에 난 이끼),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동(구리), 철 등 7가지의 동식물과 광물이 풍부하여 칠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과거에 등운산(騰雲山)으로 불렸다고 한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새신고개(730)는 비상골과 쌔골 사의의 고개로 한 때는 조성리(鳥成里)라 불리우던 고개 서쪽의 새신마을과 고개 동쪽의 신암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새신마을은 마을어귀의 약물탕과 그 주변에 숲이 우거지고 산새가 많이 살고있어 이 같이 불렀다 한다.
소나무의 가지가 열 개로 갈라진 십지춘양목(十枝春陽木)은 가지가 많아 아주 특이한 모습이다. 춘양목은 한옥을 짓는 데에 으뜸가는 목재로 조선 중기의 건물과, 옛날 안동의 세도가나 서울의 양반집들은 대부분 춘양목으로 지어졌다. 겉껍질이 붉은빛이돌아 적송이라고도 부르고 집산지인 춘양의 지명을 붙여 춘양목이라 한다.
춘양목은 다른 지역의 육송과 달리 곧고 껍질이 얇고 결이 부드럽다. 또한 켠 뒤에도 굽거나 트지 않으며, 하얗게 보이는 다른지역의 육송과 달리 붉은빛, 보랏빛을 띤다. 그리고 벌레가 먹거나 썩지 않으며, 대패질을 해놓으면 윤기가 돈다. 춘양목이 목재로 쓰이려면 수령이 적어도 반백년 이상 된 것이라야 한다.
소나무의 밑 부분에서 굵은 가지가 갈라지는 것을 반송(盤松), 여러 개의 붉은 줄기가 우산형태의 수형을 하는 것을 다행송, 태백산을 중심으로 줄기와 마디가 곧게 자라는 금강송(金剛松)이 있다. 춘양목은 봉화군의 춘양면과 소천면이 주요 산지이다.
깃재(761)는 영양군 수비면 계리와 신암리 사이의 고개로 길이 험하고 걷기가 어려워 기어 다닐 정도로 험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길등재(520)는 영양군 수비면 계리와 발리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옛날 고개가 높아 갈까말까 망설이던 고개로 갈등재라 부르던것이 길등재가 되었다는 설과 길의 경상도 사투리 질과 높은 고개라는 의미로 질등고개가 길등재로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티재(430)는 영양군 수비면 계리와 발리리 사이 88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높고 큰 고개라하여 한티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한자로는 대현(大峴)이라고 표기하였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의 오기리(五基里)는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앞에 연못인 오기지(池)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600m 정도 되는 분지라서 수원이 짧고 소나무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우천고개(우천재, 우천치 496m)는 영양군 수비면 오기리와 일월면 칠성리 사이의 고개로 춘천박씨 여덟집이 이 마을의 삼어출파(三魚出波)란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고있으며, 어리어 흐르는 물로 어리내 또는 우천(愚川)이라고 했다.
추령(楸嶺 497)은 영양군의 수비면 오기리와 일월면 가천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옛 지도에는 주로 추현(楸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광여도(영양) 주기에 추현평이(楸峴平夷)라는 표현이 있는 데, 고개가 완만하다는 뜻이다. 주변 지형 형세가 삽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가래골 바로 위에 있기 때문에 가래추(楸)자를 써서 추령(楸嶺)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재는 영양군 수비면 오기리, 죽파리, 송하리 사이의 고개이다.
왕릉봉(王陵峰 634m)은 멀리서 보면 왕릉처럼 둥글게 보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형도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덕재(장파령,죽파재)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 오기리와 죽파리를 연결하는 917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고개이다.
죽파리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마을로 본래이름은 대두들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언덕에 대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파는 조선조 때 김충업(金忠業)이란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장군과같이 기개와 정기가 높아지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에 위치한 검마산휴양림은 1997년 5월 개장하였고 최대 1천명, 최적 600명 수용이 가능하다.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관리한다.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와 신원리 경계의 갈미산(葛尾山 918.2)은 유래는 찾기 어렵고 이름에서 보듯 칡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생각된다.
■ 낙동 6구간
1. 산행코스:
한티재(430 88지방도), 우천재(496 3.6km), 추령(497 2.7km), 동아재(2.7km), 왕릉봉(634 1.5km)
덕재(1.7km), 검마산휴양림 갈림길(2.1km), 절골(1.2km) -- 15.5Km
2. 소개
한티재(430)는 영양군 수비면 계리와 발리리 사이 88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높고 큰 고개라하여 한티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한자로는 대현(大峴)이라고 표기하였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의 오기리(五基里)는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앞에 연못인 오기지(池)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600m 정도 되는 분지라서 수원이 짧고 소나무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우천고개(우천재, 우천치 496m)는 영양군 수비면 오기리와 일월면 칠성리 사이의 고개로 춘천박씨 여덟집이 이 마을의 삼어출파(三魚出波)란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고있으며, 어리어 흐르는 물로 어리내 또는 우천(愚川)이라고 했다.
추령(楸嶺 497)은 영양군의 수비면 오기리와 일월면 가천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옛 지도에는 주로 추현(楸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광여도(영양) 주기에 추현평이(楸峴平夷)라는 표현이 있는 데, 고개가 완만하다는 뜻이다. 주변 지형 형세가 삽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가래골 바로 위에 있기 때문에 가래추(楸)자를 써서 추령(楸嶺)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재는 영양군 수비면 오기리, 죽파리, 송하리 사이의 고개이다.
왕릉봉(王陵峰 634m)은 멀리서 보면 왕릉처럼 둥글게 보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형도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덕재(장파령,죽파재)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 오기리와 죽파리를 연결하는 917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고개이다.
죽파리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마을로 본래이름은 대두들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언덕에 대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파는 조선조 때 김충업(金忠業)이란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장군과같이 기개와 정기가 높아지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에 위치한 검마산휴양림은 1997년 5월 개장하였고 최대 1천명, 최적 600명 수용이 가능하다.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관리한다.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와 신원리 경계의 갈미산(葛尾山 918.2)은 유래는 찾기 어렵고 이름에서 보듯 칡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생각된다.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 죽파리, 울진군 온정면 경계의 검마산 주봉(1017.2)은 산세가 가파르고, 중턱 이상은 검은 갈색의 암석으로 이루어지고 꼭대기는 바위만이 있다. 산의 명칭은 형태가 뾰족하고 칼을 닮았다고 하여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모신(地母神)을 의미하는 검(혹은 감, 가마)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경북 울진군 온정면,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경계의 백암산(白巖山 1,004)은 흰 바위산이란 이름 그대로 정상부 남동쪽 아래 회색빛깔의 바위지대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모습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래 능선에는 신라 때 쌓은 고모산성, 할매산성, 조선 선조 때의 백암산성이 있으며, 산 아래의 온천수로 유명한 온정면 온정리의 백암온천이 있다.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백암산 중턱의 백암산성(白巖山城)은 통일신라시대 구대림(丘大林), 황락(黃洛) 장군이 축조했다고 전하는데, 돌을 쌓아 만든 석성(石城)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형에 따라 다양한 축성법을 적용하여 포곡식(包谷式)으로 축조하였다.
새터바위(550)는 바위아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온정면 온정리(溫井面 溫井里)에 위치한 백암온천(白巖溫泉)은 신라시대에 사냥꾼의 창에 맞은 사슴이 몸을 회복하려 누웠던 자리로 지하에서 온천이 솟는 약수탕임을 알고 백암사 승려가 욕탕(浴湯)을 지어 병자를 목욕시킨 후 효험이 좋았다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강한 알칼리성 온천으로 만성피부염, 만성관절염, 신경통, 금속중독, 동맥경화, 당뇨, 만성기관지염, 만성변비, 간질환, 외상후유증 등에 효과가 있다.
천냥묘(千兩墓)는 옛날 김씨 집안에 천씨 성을 가진 머슴이 있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실 자리가 마땅찮아 별 수 없이 산속에 묘를 썼고 그 이후로 이상하게도 머슴이 하는 일마다 잘되자 주인 김씨가 지관을 불러 묘의 형세를 보니 명당이어서 천씨를설득해 천냥을 주고 묘 자리를 샀다고 한다. 훗날 김씨와 천씨 중 누가 부귀영화를 누렸는지 알수 없으나 두기의 무덤은 이곳에아직도 남아 있다.
준풀래재는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과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사이의 고개로 식수삼거리라고도 부른다. 오른쪽 임도가 위치한 방향으로 약 50m 근처에 있다고 한다.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백수산(945)은 지형도에 백암산 동쪽 능선상의 온정면 온정리 백수산과 함께 이곳 945봉에도 백수산이라표기되어 있고 정맥지도에는 942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온정리, 수비면 죽파리 경계의 매봉산(921)은 정상에 비상 헬기장이 있으며 지형도에는 지명이 표시되어있지 않다.
윗삼승령은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사이의 고개로 삼승바위를 중심으로 굴바위봉 북쪽 고개를 윗삼승령,남쪽 고개를 아랫삼승령이라 한다.
지무터재는 윗삼승령과 삼승령(굴바위봉) 사이의 능선상에 위치한 안부의 슾지이다.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영덕군 창수면 수리 경계의 삼승령(三僧嶺 굴바위봉 747.3)은 아래쪽으로 삼승바위가 있는데, 그 아래에 2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과 샘이 있다고 한다. 굴바위봉(747.3봉) 좌측으로 큰 바위 3개가 있는데 형상이 승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삼승바위라 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북쪽의 고개를 윗삼승령, 아래쪽의 고개를 아랫삼승령이라고 한다.
굴바위봉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아랫삼승령은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사이의 고개로 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쉼터가 있다.
굴바위봉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아랫삼승령은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사이의 고개로 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쉼터가 있다. (영양군 영양읍 삼귀마을에서 1톤 트럭을 이용해 올라간다)
학산봉(688)은 아랫삼승령에서 능선상으로 올라서는 첫 봉우리로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는다.
쉰섬재는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사이의 고개로 재의 땅이 평평하고 넓어 조를 쉰섬(50섬)이나 수확할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저시재는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잣나무골 사이의 고개이다.
웃재(옷재)는 경북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와 영양군 영양읍 무창리에 있는 고개로 옛 문헌에는 오현(烏峴), 오령(烏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순 우리말 옷재를 한자로 표현하여 오현 혹은 오령이 되었거나, 까마득한 고개라는 의미로 오현(烏峴)이라고 하였는데 고개를 의미하는 현은 재이고 오재가 변음하여 옷재가 되었다.
서낭당재는 지형도에는 나와있지 않고 옷재에서 약 300m를 지나서 있는 고개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서낭을 모셔놓은 신당인 성황당이 있던 곳으로 여겨진다.
■ 낙동 7구간
1. 산행코스:
절골, 검마산휴양림갈림길(1.2km), 갈미산(918.2 1.2km), 검마산(1017.2 2.4km), 백암산(1004 6.7K 450m Backm
준풀래재(2.0km), 백수산(매봉산 921 1.0km), 윗삼승령(2.4km), 삼승령(굴바위봉 1.5km), 아래삼승령(임도 1.5km) -- 19.9Km / 기산리 마을(1.5km) -- 21.4Km
2. 소개
경북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에 위치한 검마산휴양림은 1997년 5월 개장하였고 최대 1천명, 최적 600명 수용이 가능하다. 산림청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광리한다.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와 신원리 경계의 갈미산(葛尾山 918.2)은 유래는 찾기 어렵고 이름에서 보듯 칡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생각된다.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 죽파리, 울진군 온정면 경계의 검마산 주봉(1017.2)은 산세가 가파르고, 중턱 이상은 검은 갈색의 암석으로 이루어지고 꼭대기는 바위만이 있다. 산의 명칭은 형태가 뾰족하고 칼을 닮았다고 하여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모신(地母神)을 의미하는 검(혹은 감, 가마)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경북 울진군 온정면,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경계의 백암산(白巖山 1,004)은 흰 바위산이란 이름 그대로 정상부 남동쪽 아래 회색빛깔의 바위지대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모습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래 능선에는 신라 때 쌓은 고모산성, 할매산성, 조선 선조 때의 백암산성이 있으며, 산 아래의 온천수로 유명한 온정면 온정리의 백암온천이 있다.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백암산 중턱의 백암산성(白巖山城)은 통일신라시대 구대림(丘大林), 황락(黃洛) 장군이 축조했다고 전하는데, 돌을 쌓아 만든 석성(石城)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형에 따라 다양한 축성법을 적용하여 포곡식(包谷式)으로 축조하였다.
새터바위(550)는 바위아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온정면 온정리(溫井面 溫井里)에 위치한 백암온천(白巖溫泉)은 신라시대에 사냥꾼의 창에 맞은 사슴이 몸을 회복하려 누웠던 자리로 지하에서 온천이 솟는 약수탕임을 알고 백암사 승려가 욕탕(浴湯)을 지어 병자를 목욕시킨 후 효험이 좋았다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강한 알칼리성 온천으로 만성피부염, 만성관절염, 신경통, 금속중독, 동맥경화, 당뇨, 만성기관지염, 만성변비, 간질환, 외상후유증 등에 효과가 있다.
천냥묘(千兩墓)는 옛날 김씨 집안에 천씨 성을 가진 머슴이 있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실 자리가 마땅찮아 별 수 없이 산속에 묘를 썼고 그 이후로 이상하게도 머슴이 하는 일마다 잘되자 주인 김씨가 지관을 불러 묘의 형세를 보니 명당이어서 천씨를설득해 천냥을 주고 묘 자리를 샀다고 한다. 훗날 김씨와 천씨 중 누가 부귀영화를 누렸는지 알수 없으나 두기의 무덤은 이곳에아직도 남아 있다.
준풀래재는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과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사이의 고개로 식수삼거리라고도 부른다. 오른쪽 임도가 위치한 방향으로 약 50m 근처에 있다고 한다.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백수산(945)은 지형도에 백암산 동쪽 능선상의 온정면 온정리 백수산과 함께 이곳 945봉에도 백수산이라표기되어 있고 정맥지도에는 942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온정리, 수비면 죽파리 경계의 매봉산(921)은 정상에 비상 헬기장이 있으며 지형도에는 지명이 표시되어있지 않다.
윗삼승령은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사이의 고개로 삼승바위를 중심으로 굴바위봉 북쪽 고개를 윗삼승령,남쪽 고개를 아랫삼승령이라 한다.
지무터재는 윗삼승령과 삼승령(굴바위봉) 사이의 능선상에 위치한 안부의 슾지이다.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영덕군 창수면 수리 경계의 삼승령(三僧嶺 굴바위봉 747.3)은 아래쪽으로 삼승바위가 있는데, 그 아래에 2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과 샘이 있다고 한다. 굴바위봉(747.3봉) 좌측으로 큰 바위 3개가 있는데 형상이 승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삼승바위라 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북쪽의 고개를 윗삼승령, 아래쪽의 고개를 아랫삼승령이라고 한다.
굴바위봉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아랫삼승령은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사이의 고개로 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쉼터가 있다.
굴바위봉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아랫삼승령은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사이의 고개로 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쉼터가 있다. (영양군 영양읍 삼귀마을에서 1톤 트럭을 이용해 올라간다)
학산봉(688)은 아랫삼승령에서 능선상으로 올라서는 첫 봉우리로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는다.
쉰섬재는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사이의 고개로 재의 땅이 평평하고 넓어 조를 쉰섬(50섬)이나 수확할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저시재는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잣나무골 사이의 고개이다.
웃재(옷재)는 경북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와 영양군 영양읍 무창리에 있는 고개로 옛 문헌에는 오현(烏峴), 오령(烏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순 우리말 옷재를 한자로 표현하여 오현 혹은 오령이 되었거나, 까마득한 고개라는 의미로 오현(烏峴)이라고 하였는데 고개를 의미하는 현은 재이고 오재가 변음하여 옷재가 되었다.
서낭당재는 지형도에는 나와있지 않고 옷재에서 약 300m를 지나서 있는 고개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서낭을 모셔놓은 신당인 성황당이 있던 곳으로 여겨진다.
■ 낙동 8구간
1. 산행코스:
아랫삼승령, 학산봉(688 0.3km), 쉰섬재(2.1km), 저시재(0.7km), 웃재(1.2km), 밤남골 임도(4.6km)
독경산(683 2.0km), 창수령(918지방도 498 1.0km) -- 11.9Km
2. 소개
굴바위봉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아랫삼승령은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사이의 고개로 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쉼터가 있다. (영양군 영양읍 삼귀마을에서 1톤 트럭을 이용해 올라간다)
학산봉(688)은 아랫삼승령에서 능선상으로 올라서는 첫 봉우리로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는다.
쉰섬재는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사이의 고개로 재의 땅이 평평하고 넓어 조를 쉰섬(50섬)이나 수확할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저시재는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와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잣나무골 사이의 고개이다.
웃재(옷재)는 경북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와 영양군 영양읍 무창리에 있는 고개로 옛 문헌에는 오현(烏峴), 오령(烏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순 우리말 옷재를 한자로 표현하여 오현 혹은 오령이 되었거나, 까마득한 고개라는 의미로 오현(烏峴)이라고 하였는데 고개를 의미하는 현은 재이고 오재가 변음하여 옷재가 되었다.
서낭당재는 지형도에는 나와있지 않고 옷재에서 약 300m를 지나서 있는 고개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서낭을 모셔놓은 신당인 성황당이 있던 곳으로 여겨진다.
밤남골 임도는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자라목골, 자라목이와 영덕군 창수면 보림리를 지나 백청리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개설되어있는 곳 이다.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의 독경산(獨慶山 683)은 영덕군 창수면 수리리 희암마을의 성왕사(成王寺)와 보림리 오현사(烏峴寺)에서수행하던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져 독경산(讀經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독경산(獨經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창수령(蒼水嶺 498)은 경북 영양군 영양읍 무창리와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를 잇는 고개로 918번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일제강점기 때 인근 동네인 창수리의 이름을 따서 창수령이라고 이름붙였다.
■ 낙동 9구간
1. 산행코스:
창수령(918지방도 498), 울치재(527 3.8km), 맹동산(상봉 808 6.1km), 봉화산(733 2.7km), 명동산(812.4 3.2km)
박짐고개(610 1.9km), 삼의3교(4.5km) -- 22.2Km
2. 소개
창수령(蒼水嶺 498)은 경북 영양군 영양읍 무창리와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를 잇는 고개로 918번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일제강점기 때 인근 동네인 창수리의 이름을 따서 창수령이라고 이름붙였다.
활개산 분기봉(698.6)은 창수령에서 능선을 따라 약 1Km지점의 봉우리로 우측으로 활개산이 위치해 있다.
울치재(泣嶺 527)는 영양군 영양읍 양구리와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사이의 임도가 지나는 고개로 옛 문헌에는 읍령(泣嶺), 울령(蔚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울치재와 소령을 대읍령, 소읍령으로 불렀고 이 둘을 양읍령이라 하였다. 원래는 운다는 의미의 울령혹은 울치였는데, 이를 한자로 고치면서 울령(蔚嶺) 또는 읍령(泣嶺)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명과 관련해 영양이 영해부의속현일 때 영해부 관리의 수탈과 천대를 받았고 영양의 세곡을 지고 험한 고갯길을 넘어 수백 리의 영해부로 옮기는 고통과 박탈감 때문에 울고 넘었다 하여 울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케이목장과 풍력발전기단지가 도로를 따라 한 없이 이어진다.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의 맹동산(孟冬山 807.5m)에는 작은 표지석 두개가 설치되어 있고 61.5MWh 발전 용량의 대규모 풍력발전시설 제1,2,3단지가(177기, 20만 가구 1년 사용가능한 전력량) 가동중이다.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며 바람소리가 더욱 심하게 발생되어 소음과 진동, 전자파 등으로 주변의 생태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날개 하나 길이만 약 40m가 넘고 1기 당 1.5MW의 전기가 생산된다. 원래 이름은 민둥산이였고 다른 산보다 높고 특히 바람이 거세서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풀들만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민둥이 맨둥, 맹동산으로 변경되었고 풍력 시설이 들어서며 진짜 민둥산이 되었다고 한다.
영양군 석보면의 삼의리(三宜里)는 마을이 산 밑에 자리잡았다 하여 산밑골이라 하였으며, 한자로 바꾸어 쓰면서 삼의리라 하였다. 옛날 이곳에 4대 독자인 김 부자가 살았는데, 결혼 후 삼형제를 얻었는데 아들 이름을 의남(宜男)으로 지었고, 삼형제를 모두 귀히 여겨 삼의라 불렀다. 세 아들의 맏이가 상삼의, 가운데는 중삼의, 막내는 하삼의라 불렀고, 지금도 그 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봉화산(烽火山 733m)은 지형도에는 표시되지 않으며 정상부는 비상 헬기장으로 되어 있다. 지형도에 봉화산은 영덕군 영해면 대리에 봉화산(452m)이 있고 동쪽으로 직선거리 약 1.6Km에 위치해 있다. 전국지도 대부분에 광산(廣山), 광산봉수(廣山烽燧), 광산봉수대(廣山烽燧臺) 등의 명칭으로 표시되어 있고 봉화산(烽火山)은 예전에 봉화가 있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과 동쪽으로 영덕군 영해면, 지품면 경계의 명동산(明童山 812.4m)은 무인산불감시탑과 삼각점이 있고 옛날에 이 산 아래 두뇌가 아주 명석한 어린 아이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영덕군 지품면 쪽 산기슭에닥나무가 많아 인근 지역에서 한지생산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가 이루어지고 고랭지채소가 많이 재배된다.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의 삼의3교(약 4.5Km)와 남쪽의 영덕군 지품면 속곡리 사이의 박짐고개(610m)는 나무바가지를 많이 만들어팔아서 바가지점, 박점이라고 불린 것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 낙동 10구간
1. 산행코스:
삼의3교, 박짐고개(610 4.5km), 포도산 분기점(690 1.3km), 포도산(748 0.75km), 여정봉(630.5 4.0km)
화매재(선들재 336 6.0km), 황장재(34번도로 405 4.7km) -- 21.2Km
2. 소개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의 삼의3교(약 4.5Km)와 남쪽의 영덕군 지품면 속곡리 사이의 박짐고개(610m)는 나무바가지를 많이 만들어팔아서 바가지점, 박점이라고 불린 것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와 영덕군 지품면 속곡리 사이의 포도산 분기점(690m)은 포도산과 약 700m의 거리이다.
포도산(葡萄山 머루산 748)은 포도산에는 머루가 흔해서 원래 이름은 머루산 혹은 구머리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구머리는 머루를 의미하는 이 지방 사투리이며, 포도산은 이를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630.5봉(여정봉)은 영덕군 지품면 율곡리와 영양군 석보면 포산리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지형도에는 표시되지 않고 정상에 비상헬기장과 삼각점이 있다.
윗포산은 임도를 따라 영양군 석보면 포산리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영양군 석보면의 포산리(葡山里)는 마을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을 때 구머리라 하였는데, 구머리는 산골짜기 깊은 곳에 개척한 마을로서 주위의 산에 구머리(머루)가 매우 흔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매재(花梅峙 선들재 336)는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와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 사이의 91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지형도에는 선들재로 표기되어 있고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으로 계곡의 물이 석보면의 화매천(花梅川 곶매천)으로 흘러간다. 곳매(화매)마을은 화매천의 물이 흘러서 주위의 황무지를 적셔 주어 황무지 위에여러 가지 풀꽃들이 무성하여서 꽃매, 곳매, 골매또는 화매라고 불렀다.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 경계의 532봉(시루봉, 삼군봉)은 지형도에 표시되지 않은무명봉으로 황장재 약 1.3Km 전에 위치하며 산의 모습이 삼각기둥형으로 뾰족해서 시루봉이라 부른다. 영양, 영덕, 청송 세 군의 경계로 삼군봉(三郡峰)으로도 불리지만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다.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와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로 연결되는 34번 국도가 지나는 황장재(黃腸峙 405)는 임물현(林勿峴, 임물령,임울령, 임울현) 또는 황장재산(黃腸材山)으로도 불린다. 임물현이라는 이름은 고개를 넘으면서 맞이하는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의 이무곡 마을의 명칭에서 찾을 수 있다.
임울골이 이무곡으로 변음된 것으로 여겨진다. 황장재라는 명칭은 궁궐의 건축자재로쓰던 질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을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입산을 금하였던 산인 황장봉산(黃腸封山) 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낙동 11구간
1. 산행코스:
황장재(405), 갈평재(1.9km), 대둔산(905 3.2km), 먹구동(846 4.6km), 명동재(1.5km), 느지미재(1.4km), 왕거암(910 1.6km)대관령(2.0km), 대궐령(731 0.4km), 주산재(5.3km), 별바위(745.2 0.6km), 피나무재(914지방도 480 3.4km) -- 25.7Km
2. 소개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와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로 연결되는 34번 국도가 지나는 황장재(黃腸峙 405)는 임물현(林勿峴, 임물령,임울령, 임울현) 또는 황장재산(黃腸材山)으로도 불린다. 임물현이라는 이름은 고개를 넘으면서 맞이하는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의 이무곡 마을의 명칭에서 찾을 수 있다. 임울골이 이무곡으로 변음된 것으로 여겨진다. 황장재라는 명칭은 궁궐의 건축자재로쓰던 질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을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입산을 금하였던 산인 황장봉산(黃腸封山) 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갈평재는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으며 영덕군 지품면 지품리와 갈평지가 위치한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 사이의 고개이다.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와 영덕군 지품면 기사리 경계의 대둔산(大遯山 905m)은 북쪽 사면 아래 괴정리 둔골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는것으로 보아 예전에 둔동산으로 부른 것이 분명하다. 대둔산 명칭 역시 둔동산(芚洞山)과 마찬가지로 둔전(屯田)과 관련이있을 것으로 보인다. 둔전은 변경이나 군사요지에 군량을 충당하기 위해 설치한 토지로 후대에 오면 관청 경비를 충당하는 목적으로도 이용되었다. 어떤 이유로 대둔산(大芚山) 혹은 둔동산(芚洞山)이 대둔산(大遯山)으로 표기가 바뀌게 되었는지는 알 수없다.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와 영덕군 지품면을 연결하는 먹구등(먹구동 846.4m) 두고개를 지나 주왕산 바위 암릉인두수람(923.3m), 금은광이, 성재, 장군봉(686.8m)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갈림길이다. 정상에 평평한 돌이 있어 그 돌에 올라 구르면 소리가 울린다고 해서 벅구등이라 하다가 변음되어 먹구등이 되었다고 한다.
명동재(875)는 산의 능선 줄기가 영덕군 지품면 송천리 방향으로 갈라지는 지점으로 그 모습이 두루뭉술하고 밋밋하여 민둥재로불리다가 명동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느지미재(느즈미재)는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와 영덕군 지품면 송천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옛날 청송 사람들이 바다와 가까운 영덕 장을 보기 위해 지름길인 이 재를 넘어 다녔는데 장을 보고 이 재를 다시 넘을 때는 저녁 늦게 느즈막이 도착한다는 뜻에서 느지미재라 하였다고 한다.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와 영덕군 지품면 용덕리 경계의 왕거암(王居岩 910)은 산정의 큰 바위를 왕거암이라 하기도 하며 주왕산에 얽힌 전설속의 주왕(周王)이 거처한 바위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을 따라 주왕산의 가마봉과 연결이 된다.
대관령은 영덕군 지품면 용덕리와 절골계곡 위쪽으로 대문다리를 지나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의 갈천골 사이의 고개이다.
제단바위(祭壇바위)는 크고 넓은 바위가 제단과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갓바위봉(冠巖 740m)의 정확한 이름은 대궐령(大闕嶺)으로 정상 동편아래에 갓바위가 있음으로 해서 갓바위산이라 불린다. 갓바위 아래에 있는 마을이 입암(笠岩)마을로 옛 부터 이 바위를 신성시 여겨왔다.
영덕군 달산면 용전리 대궐령(大闕嶺 731)은 주왕산국립공원 지구에 위치하며 입암(笠巖), 갓바위산(혹은 방언으로 갓방우산)으로 불린다. 옛날에 중국 진나라의 후손인 주도가 진나라의 회복을 위해 후주천왕을 자처하고 군사를 일으켰다가 패한 후 주왕산에 피신하여 대궐을 짓고 머물렀다 하며, 영덕지방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하였던 곳이 바로 이곳 대궐령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산재(660m)는 영덕군 달산면 봉산리의 양설령에서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의 주산재를 지나 별바위봉, 주산골로 이어지는 능선과 만나는 지점으로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은 지점이다.
별바위봉(745.4m)은 별바위, 성암(星岩)으로도 불리며 옛날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중 재를 넘어가다 우연히 바위를쳐다보니 바위사이에 별이 떠 있어 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는데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 후 마을 사람들이 이 바위를 별바위라 부르고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와 내룡리 사이의 피나무재(皮木嶺 480m)는 914번 지방도로가 양설령(兩雪嶺)으로 이어진다. 피나무의다른 이름이 보리수라고 하는데 피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지 유래는 알 수 없다. 피나무는 피나무과 피나무속의 여러해살이 나무로(낙엽활엽교목) 꽃말은 부부애. 달피나무라고도 한다.
어린 꽃봉오리를 말려서 차로 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수피를 섬유자원으로 사용하였으므로 피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리수(菩提樹) 나무는 뽕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한자로 변역할 때 그대로 음역하여 보리수(菩提樹)라는 이름이 생겼다.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한국의 불교승려들도 찰피나무 또는 보리자나무를 심고 보리수라고 하며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 낙동 12구간
1. 산행코스:
피나무재(480), 질고개(932도로 7.7km), 간장현(618 8.8km), 통점재(68지방도 550 1.6km)
가사령(큰점밭 69지방도 560 4.5km), 성법령(650 3.4km) -- 26.0Km
2. 소개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와 내룡리 사이의 피나무재(皮木嶺 480)는 914번 지방도로가 양설령(兩雪嶺)으로 이어진다. 피나무의다른 이름이 보리수라고 하는데 피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지 유래는 알 수 없다. 피나무는 피나무과 피나무속의 여러해살이 나무로(낙엽활엽교목) 꽃말은 부부애. 달피나무라고도 한다. 어린 꽃봉오리를 말려서 차로 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수피를 섬유자원으로 사용하였으므로 피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리수(菩提樹) 나무는 뽕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한자로 변역할 때 그대로 음역하여 보리수(菩提樹)라는 이름이 생겼다.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한국의 불교승려들도 찰피나무 또는 보리자나무를 심고 보리수라고 하며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질고개(泥峴)는 청송군 부남면 이현리와 주왕산면 라리 사이의 고개로 930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질척한 진흙이 고개 마루를뒤덮고 있어 질티, 질고개라고 하는데 이현리(泥峴里)는 질고개 밑이 되어 붙여진 지명이다.
간장현(干長峴 618)은 청송군 부남면 이현리의 간장저수지와 포항시 북구 죽장면 하옥리 사이의 고개로 지형도에는 천장현으로 표기되어 있고 고개 북쪽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 간장리인 것에서 유래되었다. 간장리는 간쟁이라고도 하는데, 마을 뒷산 등성이가 마치 사람이 걸어가는 것과 같은 형상이므로 이 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산자락을 편 산기슭에 마을을 이루고 산자락을 눌러 산과 마을이 서로 견제하며 다투고 있다 하여 간쟁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통점재(桶店峴 550)는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와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 사이의 고개로 68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고개 아래에 통점마을과 통점주막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 되었다.
가사령(佳士嶺 560)은 포항시 북구 죽장면의 상옥리와 가사리 사이의 고개로 69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서남쪽은 낙동강에합류되는 금호강의 최상류 발원지 중의 하나이며, 동북쪽은 영덕군의 영덕읍을 거쳐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오십천의 최상류이다.
가사령(佳士嶺)은 순우리말 이름인 가사재에 대해 한자의 소리와 뜻을 따서 표기한 것이다. 죽장면의 가사리(佳士里)는 순우리말 이름인 가시내에 대해 한자의 발음을 따고 내를 생략하여 표기한 것이다.
성법령(省法嶺 650)은 포항시 북구 기북면 성법리와 죽장면 상옥리 사이의 고개로 921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순우리말 이름인생알재에 대해 한자의 뜻과 소리를 따서 성법령이라 한다. 고개 아래의 마을 이름도 생알 또는 생알재에 대한 한자 표기인 성법리라 불리고 있다.
■ 낙동 13구간
1. 산행코스:
성법령(650), 사관령(2.4km), 배실재(벼슬재 3.3km), 막실재(2.4km), 침곡산(725.7 1.5km)
서당골재(1.3km), 태화산(768 1.4km), 먹재(2.3km), 한티터널(31국도 244 0.6km) -- 15.2Km
2. 소개
성법령(省法嶺 650)은 포항시 북구 기북면 성법리와 죽장면 상옥리 사이의 고개로 921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순우리말 이름인생알재에 대해 한자의 뜻과 소리를 따서 성법령이라 한다. 고개 아래의 마을 이름도 생알 또는 생알재에 대한 한자 표기인 성법리라 불리고 있다. 주변의 자연부락을 통틀어 성법리라 하였는데 법을 반성하라는 뜻으로 이 지역 일원을 예부터 성법(省法)이라 통칭하였다.
사관령(士官嶺)은 포항시 북구 죽장면 가사리와 기북면 성법리 사이의 고개로 관령은 순우리말 이름인 벼슬재에 대해 한자의 뜻을 따서 표기한 것이다. 벼슬재는 사관령(士官嶺)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사관령에서 벼슬재 사이 죽장면 가사리의 독골(독곡 陶谷)은 옛날 도요지(陶窯址)가 있던 곳이다. 마을의 모습 또한 항아리 형국이라 하여 예부터 샘을 파지 못하는 마을이라고 한다.
배실재(벼슬재)는 낙동정맥의 중간지점이며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 성법리에서 죽장면 가사리나 기북면 침곡리로 넘어가는고개로 관령(官嶺)이라고도 하였으며 관령은 순우리말 이름인 벼슬재에 대해 한자의 뜻을 따서 표기한 것이다.
막실재는 포항시 북구 죽장면 침곡리와 기북면 용기리 사이의 고개이다.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과 기북면 경계의 침곡산(針谷山 725.4)은 주왕산과 운주산 사이의 줄기로 사감산(士甘山)이라고도 하며 서쪽의 좁고 긴 바늘처럼 생긴 골짜기인 침곡(針谷)을 품고 있는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산정에는 헬기장과 표지석이있고 산 아래에 여강이씨 집성촌으로 알려진 덕동문화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서당골재(530)는 포항시 북구 기북면 용기리의 새작골과 죽장면 감곡리 사이의 고개이다.
포항시 북구 기북면 관천리, 죽장면 감곡리, 기계면 가안리 경계의 태화산(太華山 768m)은 지형도에는 표기되어있지 않고 능선에서 한티재와 관천리로 갈라지는 지점의 봉우리이다.
먹재는 기계면 가인리의 가안재골과 죽장면 감곡리의 목쟁이골 사이의 고개이다.
한티터널(244)은 포항시 북구 죽장면 정자리와 기계면 가안리 사이 31번국도가 지나는 한티재 인근의 터널구간이다. 가안리의한티는 한티재(大峴)를 넘는 옛 길이 이 마을을 지났으며, 재 아래 마을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마을어귀에 고인돌들이 있다
■ 낙동 14구간
1. 산행코스:
한티터널(244), 한티재(266 0.5km), 불래재(화랑현 315 3.2km), 운주산(806.2 4.3km), 이리재(290 4.8km) -- 12.8Km
2. 소개
한티터널(244)은 포항시 북구 죽장면 정자리와 기계면 가안리 사이 31번국도가 지나는 한티재 인근의 터널구간이다. 가안리의한티는 한티재(大峴)를 넘는 옛 길이 이 마을을 지났으며, 재 아래 마을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마을어귀에 고인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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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래재(화랑현 315)는 포항시 북구 기계면 남계리와 영천시 자양면 도일리 사이의 고개로 옛날 경주에서 한양으로 왕래하는 길목이였고 경주부사가 이곳까지 오면 날이 저물어 유숙했는데 그로 인해 길 도(道)자, 날 일(日)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도일(道日)이라고 했다.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과 영천시 자양면, 임고면 경계의 운주산(雲柱山 806.2)은 멀리서 보면 구름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보여 붙여진 이름으로 구름이 머물러 사는산 이라는 의미로 운주산(雲住山)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험난해 방어지로 적합하여 임진왜란 때 백암 김륵의 부대가 성을 쌓고 진터를 설치하여 왜적과 항전을 벌였으며, 1910년대 산 아래에 있던 안국사가 포항 지역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陳)의 근거지로 알려져 일제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산 중턱에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정도로 넓어 전쟁 때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된 동굴이 있다.
이리재(290)는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리 담박골과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노고작골 사이의 고개로 익산포항 고속도로와 921번지방도로가 지나간다. 봉계리에는 파평윤씨 시조인 태사공(太師公) 윤신달(尹莘達 893∼973)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1752년에 세운 사당(봉강재 鳳岡齋)이 있다. 하천에 의해 성처럼 둘러싸여 있어 이름 붙여진 수성리 방향으로 영천 휴게소를 지나 영천호가위치해 있다.
■ 낙동 15구간
1. 산행코스:
이리재(290), 봉좌산(600 1.8K, Back 600m), 배티재(570.7 4.1km), 도덕산(703.2 0.9K, Back 500m)오룡재(250 2.1km), 삼성산(578.2 2.5K, Back 700m), 시티재(안강휴게소 28국도 195 4.0km) -- 15.4Km
2. 소개
이리재(290)는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리 담박골과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노고작골 사이의 고개로 익산포항 고속도로와 921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봉계리에는 파평윤씨 시조인 태사공(太師公) 윤신달(尹莘達 893∼973)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1752년에 세운 사당(봉강재 鳳岡齋)이 있다. 하천에 의해 성처럼 둘러싸여 있어 이름 붙여진 수성리 방향으로 영천 휴게소를 지나 영천호가 위치해 있다.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와 경주시 안강읍 경계의 봉좌산(鳳座山 620)은 두개의 정상석에 고도 표시가 다르게 되어 있다. 산정에 봉좌암 이라는 봉황모양의 바위가 있고 봉황이 내려앉은 형상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배티재(570.7m)는 영천시 고경면 삼포리와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사이의 고개로 옛날 고개에 멧돼지가 행패를 부렸는데 그 산돼지의 등에 매태, 이끼가 있어 매태가 와전되어 배태, 배티로 되었다는 설과 배가 산을 뜻해 산 고개라는 뜻으로 배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과 영천시 고경면 경계의 도덕산(道德山 703.2m)은 일명 두덕산(斗德山)이라고도 한다. 도덕산은 780년(신라 선덕왕 1) 때 당나라의 첨의사인 백우경(白宇經)이 참소되자 자옥산에 숨어 살면서 지금의 정혜사지(淨惠寺址)에 영월당(迎月堂)과 만세암(萬歲庵)을 세웠는데, 선덕왕이 이 곳을 방문한 뒤로 이 산을 두덕산(斗德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1533년(중종 28)에 옥산리에 오면서 이 산을 도덕산으로 고쳐 불렀다고 하며,산 중턱에 사찰 도덕암(道德庵)이 있으며, 산 아래 옥산리(玉山里)에 조선시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기거하던독락당(獨樂堂:보물 제413호)과 옥산서원(玉山書院:사적 제154호), 정혜사지13층석탑(국보 제40호) 등의 유적이 있다.
영천시 고경면의 오룡리(五龍里)는 산자락과 마을의 지형이 용처럼 생겼다 해서 미용(美龍)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에 강제로 미농(彌農)으로 고쳐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오룡(五龍)으로 개칭하였다.
오룡고개(250)는 영천시 고경면 삼포리와 오룡리 사이의 고개로 미룡고개, 갈구목 등으로도 불린다.
영천시 고경면 삼포리, 오룡리와 경주시 안강읍 하곡리, 강교리 경계의 삼성산(三聖山 578.2)은 큼직한 팔작지붕 형상의 산으로 시티재 뒷산이라고 한다. 이 산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창업공신이며 신라 금강성 성주인 황보능장의 명마 무덤에 대한 전설이 있다.
황보능장은 이 산에서 자신의 명마와 활 가운데 누가 빠른지 시합을 가졌다. 장군이 활시위를 쏘고 난 뒤 명마를 몰아 지금의 도암리와 창하리 사이에 있는 말 무덤까지 도착하였다. 그러나 화살이 보이지 않아 격분한 나머지 명마의 목을 치자 화살이 날아 왔다. 장군은 자신이 성미가 급함을 후회하며, 명마를 버린 안타까움에 정성을 다해 고이 묻었다. 인근 동네는 말무덤 즉 말미라고 칭하여 졌다. 일설에 의하면, 세 선녀가 내려왔다고 하여 삼성산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시티재(195m)는 경주시 안강읍 강교리와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 사이의 안강휴게소가 위치한 고개로 28번 국도가 지나간다. 동해안 선비들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을 배알하러 갈 때의 첫 고개라 하여 시치재라 불리다가 시티재로 불린다.
조선지형도에 시령현(柴嶺峴)으로 적고 그 옆에 시티지라 부기해 두었다. 이 고개에는 동해에서 부는 바람이 많아 큰 나무가 적고, 검불나무가 많이 있어 이름을 시령현(柴嶺峴)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여현(礪峴, 숫돌고개)이라고도 부른다.
안강읍(安康邑)은 원래 비화현(比火縣)이었는데, 759년(신라 경덕왕 16)에 안강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비화현에서의 화(火)는 신라 지역에서 성(城)을 의미하는 벌을 한자의 뜻을 따서 표기한 것이다.
고경면의 명칭은 고촌면(古村面)의 고자와 청경면(淸鏡面)의 경자를 결합한 것이다.
■ 낙동 16구간
1. 산행코스:
시티재, 호국봉(382.9 1.5km), 어림산(510.4 6.1km), 마치재(97지방도 445 1.6km), 남사봉(470 1.5km)한무당재(할마당재 220 2.7km), 외골재(아곡재 4.7km), 관산(394 1.1km), 애기재(269 3.4km), 만불산(275 0.3km)아화고개(4번국도 124 1.2km) -- 24.1Km
2. 소개
시티재(195m)는 경주시 안강읍 강교리와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 사이의 안강휴게소가 위치한 고개로 28번 국도가 지나간다. 동해안 선비들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을 배알하러 갈 때의 첫 고개라 하여 시치재라 불리다가 시티재로 불린다. 조선지형도에 시령현(柴嶺峴)으로 적고 그 옆에 시티지라 부기해 두었다. 이 고개에는 동해에서 부는 바람이 많아 큰 나무가 적고, 검불나무가 많이 있어 이름을 시령현(柴嶺峴)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여현(礪峴, 숫돌고개)이라고도 부른다.
안강읍(安康邑)은 원래 비화현(比火縣)이었는데, 759년(신라 경덕왕 16)에 안강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비화현에서의 화(火)는 신라 지역에서 성(城)을 의미하는 벌을 한자의 뜻을 따서 표기한 것이다.
고경면의 명칭은 고촌면(古村面)의 고자와 청경면(淸鏡面)의 경자를 결합한 것이다.
호국봉(護國峰 382.9)은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으며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에 국립영천호국원이 위치하기에 능선의 봉우리를 호국봉이라 한다. 국립영천호국원은 국가유공자 및 참전유공자들이 영면하시는 호국성지로 97년 4월에 공사에 착공하여 2001년 1월 개원하였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와 현곡면 내태리, 영천시 고경면 논실리에 걸쳐 있는 어림산(御臨山 510m)은 신라 때 경순왕이 둘러보고 간 산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어림산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펼친 필사의 전투인 안강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마치재(馬齒재 445m)는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와 서면 도리, 영천시 고경면 덕정리의 사이의 고개로 904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마질령(麻叱嶺)이라고도 하며 지형이 말의 모습을 닮아 말티재 또는 마현(馬峴)이라고도 한다.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서면 도리, 영천시 고경면 덕정리 경계의 남사봉(南莎峰 470m)은 남쪽자락의 남사리(南莎里) 마을과 관련이 있는데, 마을 앞 가마들에 잔디가 많았고 마을이 남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지명이다.
남사봉에서 약 1Km지점에 위치한 영천시 고경면 덕정리의 황물탕은 유황이 함유된 약수샘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무당재(할마당재, 할미당재, 청석고개 220m)는 영천시 고경면 덕정리와 경주시 서면 도리 사이의 고개로 909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옛날 한신을 모시던 무당이 살고 있었다 하여 한무당재 또는 할미당재 라고 하며 근처의 골짜기(청석골)에 靑石이 많고 산적이 출몰했다고 해서 청석골재 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외골재(아곡재)는 경주시 서면 도리의 아곡마을과 영천시 북안면 관리 사이의 고개이다.
경주시 서면 도리와 영천시 북안면 관리, 신촌리 경계의 관산(冠山 393.5m)은 고관산(高冠山)이라고도 하며 산의 형태가 신라시대 관리가 쓰는 관(冠)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애기재(269m)는 영천시 북안면 신촌리와 경주시 서면 아화리 사이의 고개이다.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의 만불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부처님이 모셔진 사찰이다. 승려 학성이 기존의 불교와는 다른 현대 불교의 서원을 이루고자 1987년 서울,부산,대구에 만불회 포교원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포교원 활동을 통해 많은 신도를 확보하였던 학성은 1995년 만불산에 대규모 토목 공사를 완료하면서 개창하였다.
경주시 서면의 아화리(阿火里)는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언덕에 불을 지르면 온종일 꺼지지 않고 계속 타서 아화(阿花)라고 불렀다 하며, 일명 아불(阿弗) 또는 역촌(驛村)이라고도 하였다.
아화고개(124m)는 경주시 서면 아화리와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 사이의 고개로 4번국도가 지나간다. 아화고개를 고지리에서는 시모골재라고 하고, 아화리 쪽에선 지경고개라 부른기도 하고 도둑골재라고도 부르기도 하는 데, 아화시장에 가 소를 팔고 넘어오다가 험한 일을 겪곤 했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 낙동 17구간
1. 산행코스:
아화고개(4번국도 124), 경부고속도로(1.5km), 909번도로(1.2km), 효동고개(176 1.6km), 사룡산(683 3.4K, Back 0.6km)숙재고개(숲재 475 1.9km), 청천봉(751 3.5km), 독고불재(460 1.3km), 오리재(386 2.3km), 당고개(땅고개 358 1.7km)-- 18.4Km
2. 소개
아화고개(124m)는 경주시 서면 아화리와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 사이의 고개로 4번국도가 지나간다. 아화고개를 고지리에서는 시모골재라고 하고, 아화리 쪽에선 지경고개라 부른기도 하고 도둑골재라고도 부르기도 하는 데, 아화시장에 가 소를 팔고 넘어오다가 험한 일을 겪곤 했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효동치(176m)는 경북 영천시 북안면 효리와 동쪽의 경북 경주시 서면 천촌리 사이의 고개인데 지형도에 표시되지 않는다. 북안면 효리에 효동지 저수지가 있어 효동고개(형제목장고개)로 불리는 것 같다
경주시 서면과 산내면, 영천시 북안면, 청도군의 운문면 경계의 사룡산(四龍山 683m)은 옛날 용 네 마리가 승천한 산이라서 사룡산으로 불렀다. 삼국시대에는 서쪽의 구룡산(675m)과 더불어 군사적 요충지였다. 신라시대 병사들이 이 산을 거점으로 삼아 적을 물리쳤다고 하여 일명 전방산(戰防山)이라고도 한다. 또한 전배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의 시루미기(생식) 마을은 사룡산과 오봉산이 양쪽으로 있고 둥글게 움푹 들어간 모양이 떡시루와 흡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시루미기 마을은 화식(火食)을 거부하고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채소,자연 그대로의 풀잎과 열매.풀뿌리등을 날것으로 먹는 생식인들이 모여사는 이색 마을이다.
숙재고개(숲재, 숙령(淑嶺) 475m)는 경주시 서면 천촌리와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 사이의 고개이다.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에 있는 경주부산성(慶州富山城)은 663년(문무왕 3) 정월에 축조된 신라시대의 산성으로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한다. 부산(富山 729.5m) 정상부를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감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깬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은 석성이다. 부산은 주사산(朱砂山),오봉산(五峯山),오로봉산(五老峯山),닭벼슬산이라고 하므로,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불린다.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 감산리, 건천읍 송선리 경계의 청천봉(751)은 부산성 남문을 약 1Km지나 봉우리 지점으로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았다.
독고불재(460m)는 경주시 산내면 감산리와 건천읍 송선리 사이의 고개로 바로 옆에 노꼬담꼬글랭핑이 위치해 있다.
오리재(386m)는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의 오리재골과 산내면 감산리 사이의 고개이다.
당고개(땅고개 358m)는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와 산내면 감산리 사이의 고개로 20번 국도가 지나며 땅고개휴게소가 위치해 있다.
옛날 기도의 당(堂)이 이곳에 있었다 하여 당고개라 불렸다고 하며, 또한 이 고개를 넘을 때 땀이 많이 난다고 하여 땅고개라고도 불린다.
■ 낙동 18구간
1. 산행코스:
당고개(땅고개 358), 단석산(827 3.1K, Back 0.7km), OK그린오토캠핑장(3.8km), 605봉(2.8km)
아래상목골(0.9km), 윗상목골(1.3km), 소호고개(577 3.9km) -- 15.8Km
2. 소개
당고개(땅고개 358m)는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와 산내면 감산리 사이의 고개로 20번 국도가 지나며 땅고개휴게소가 위치해 있다.
옛날 기도의 당(堂)이 이곳에 있었다 하여 당고개라 불렸다고 하며, 또한 이 고개를 넘을 때 땀이 많이 난다고 하여 땅고개라고도 불린다.
경주시 건천읍, 산내면 감산리, 내남면 비지리 경계의 단석산(斷石山 827.2m)은 월생산(月生山)이라고도 한다. 신라의 김유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치려고 신검(神劍)을 얻어 월생산의 석굴 속에 숨어들어가 검술을 수련하려고 칼로 큰 돌들을 베어서 산더미 같이 쌓였는데, 그 돌이 아직도 남아 있고 그 아래에 절을 짓고 이름을 단석사(斷石寺)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 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의 OK그린오토캠핑장은 목장에서 캠핑장으로 바꾸었으나 시설관리 및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잠정적 운영이 중지되고, 청소년 수련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의 상목 마을은 마을 뒷산이 누에같이 생겼다 하여 잠두산(蠶頭山)이라하였고 누에는 뽕을 먹어야 잘 산다는 뜻에서 상목(桑木)이라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소호고개(소호령(蘇湖嶺) 577m)는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와 상북면 소호리 사이의 고개로 소호(蘇湖)는 풀이 많고 수원이 좋아서 유래한 지명이다.
■ 낙동 19구간
1. 산행코스:
소호고개, 삼강봉(845 2.3km), 백운산(901 0.8km), 소호령(650 1.9km), 차리재, 고헌산(1033 2.7km), 서봉(1035 0.8km)와항재(921지방도 1.9km), 운문령(69지방도 730 4.0km) -- 14.4Km
2. 소개
소호고개(소호령(蘇湖嶺) 577m)는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와 상북면 소호리 사이의 고개로 소호(蘇湖)는 풀이 많고 수원이 좋아서 유래한 지명이다.
삼강봉(三江峰 845m)의 삼강(三江)은 경주의 형산강과 울산의 태화강 그리고 낙동강을 일컫는데, 삼강봉 정수리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지세에 따라 세 개의 강으로 나뉘어 흐르게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네이버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고 다음 지도에는 삼강봉이 표기되어 있는데, 백운산의 정상부 위치도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와 상북면 소호리 경계의 백운산(白雲山 901m)은 밝고 광명한산 이라는 의미로 열박산(咽薄山)이라고 불렸다. 삼국사기 권41 김유신 열전에서는 "이웃 나라 적병이 점점 닥쳐오자 공은 장한 마음을 더욱 불러일으켜 혼자서 보검을 가지고 열박산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 향을 피우며 하늘에 고하여 빌기를, 중악(中嶽)에서 맹서한 것처럼 하고 천관(天官)께서는 빛을 드리워 보검(寶劍)에 신령을 내려 주소서! 라고 기도하니 3일째 되는 밤에 허성(虛星:현무)과 각성(角星:금성) 두 별빛이 내려오더니 검이 마치 동요하는 듯하였다"는 내용이다.
백운산(白雲山 901m)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감투봉(冠峯) 또는 신태봉이라 부르는데, 신은 검,금,곰 등과 호전하는 말로서 신(神) 또는 왕을 뜻한다. 태는 터의 방언으로 곧 신령스러운 터전이라는 뜻이다. 김유신은 열박산의 깊은에서 힘을 빌었는데, 백운산(白雲山)의 901고지인 감투봉 바로 밑에 심학(深壑)이라 할 수 있는 구렁이 있어 이곳을 김유신공(金庾信公)이 하늘과 산신에 기도하던 곳이라 전해온다.
소호령(蘇湖嶺 650)은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와 두서면 인보리 사이의 고개로 소호(蘇湖)는 풀이 많고 수원이 좋아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곳을 소호령, 소호고개 지점을 아래쪽에 태종재골이있어 태종고개로 이야기 하는사람들이 있는것 같다.
차리재는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차리골과 두서면 차리 경계의 고개이다. 차리(次里)는 가장 큰 마을인 중리 다음으로 큰 마을이므로 정한 지명이라고 한다.
울산광역시 울산구 상북면과 두서면에 걸쳐 있는 고헌산(高獻山 1033m)은 언양의 진산으로 언양의 고호(古呼)가 헌양(獻陽)이라고 불릴 때에 산이 높아 부르게 된 지명이다. 정상부는 산정평탄면(山頂平坦面)이 발달하여 가지산(加智山 1240m), 운문산(雲門山 1107m), 천황산(天皇山 1189m), 능동산(陵洞山 918m), 간월산(肝月山 1083m), 신불산(神佛山 1209m), 축서산(鷲棲山 1059m) 등의 영남알프스 7산과 이어져 있다.
고헌산 서봉(高獻山 西峯 1035m)은 고헌산 서쪽에 위치한 봉으로 고헌산보다 조금 높다.
와항재(瓦項峙 535m)는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소호리 사이의 고개로 921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운문령(雲門嶺 운문재 730m)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사이의 고개로 69번 도로가 지나간다. 운문령 좌우편으로 문복산(1014m), 가지산(1240m), 운문산(1188m) 등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지나가는 구름이 산허리를 넘지 못한 채 멈추어 구름문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운문재 또는 운문령(雲門嶺)이라 부른다.
■ 낙동 20구간
1. 산행코스:
운문령(69지방도), 귀바위, 상운산(1114 2.3km), 쌀바위, 가지산(1240.9 2.8km), 중봉(1168.8 0.7km), 석남고개(1.8km) 능동산(983.1 3.5km), 배내고개(1.2km) -- 12.3Km
2. 소개
운문령(雲門嶺 운문재 730m)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사이의 고개로 69번 도로가 지나간다. 운문령 좌우편으로 문복산(1014m), 가지산(1240m), 운문산(1188m) 등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지나가는 구름이 산허리를 넘지 못한 채 멈추어 구름문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운문재 또는 운문령(雲門嶺)이라 부른다.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의 귀바위(耳岩)는 바위암봉의 측면이 와불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경계의 상운산(上雲山 1114m)에는 1998년경 세웠다는 비목(碑木)이 서 있다.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산으로 귀바위봉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의 쌍두봉(雙頭峰 929m)은 상운산에서 북서향으로 약 1.6Km 거리의 능선상에 위치한 봉우리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상북면 덕현리에 위치한 쌀바위(米岩 1107m)는 옛날 이 바위에서 쌀이 한 알씩 계속 나왔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전설에 옛날 이 바위 밑에서 스님 한 분이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먹을 양식은 마을로 내려가서 탁발을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아침 기도를 올리고 나서 바위 틈을 들여다 보니 쌀알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은 끼니때마다 떨어진 쌀을 가지고 밥을 지어 먼저 부처님께 올리고 자신이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꼭 한 사람 분량의 양식 밖에는 되지 않자 스님은 욕심이 생겨 쌀알이 떨어지는 바위 안에 많은 쌀이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한꺼번에 많은 쌀을 얻고자 하여 쌀알이 떨어지는 구멍을 뚫어버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떨어지던 쌀알은 간 곳이 없고 물줄기만 흘러내렸다. 이에 스님은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하여 더욱 정진에만 힘썼고 그 후 이 바위를 쌀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경남 밀양시 산내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 경계의 가지산(加智山 1240.9m)은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석남산, 석안산, 실혜산(實惠山), 실혜산(實惠山), 시례산(詩禮山), 천화산(穿火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원래 이름은 석남산(石南山)이었으나, 1674년에 석남사(石南寺)가 중건되면서 가지산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신라 흥덕왕 때 전남의 보림사에서 가지산서라는 중이 와서 석남사를 지었다 하여 부른 것이다. 통도사지구(通度寺地區) 및 내원사지구(內院寺地區), 석남사지구와 더불어 1979년에 가지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가지산 북봉(北峰 1125m)은 가지산 정상에서 약 0.8K 북쪽 능선상의 봉우리이다.
영남알프스는 경남 밀양시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에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천황산(1189m), 재약산(111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고헌산(1034m), 간월산(1069m), 능동산(983.1m) 등의 산군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경남 밀양시 산내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걸쳐 있는 능동산(陵洞山 983.1m)은 밀양,울산,양산 지역의 산군(山群)을 통칭하는 이른바 영남알프스의 요충지이다. 영남알프스의 한가운데에 자리하는데 북쪽으로는 가지산, 문복산이 북서쪽으로는 운문산, 억산, 구만산 북동쪽으로는 고헌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간월산, 신불산, 취서산 남서쪽으로는 천황산, 재약산이 있다.
배내고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와 상북면 덕현리 사이의 고개로 69번 도로가 지나간다. 배내골 최상단의 고개로 맑은 계곡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 하여 배내골이라 하고 한자음으로 이천리라고 한다.
■ 낙동 21구간
1. 산행코스:
배내고개, 배내봉(966 1.5km), 간월산(1083 2.9km), 간월재(0.8km), 신불산(1209 1.5km), 신불재(0.6km), 영축산(1081 2.3km)취서산, 지경고개(5.5km) -- 15.1Km
2. 소개
배내고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와 상북면 덕현리 사이의 고개로 69번 도로가 지나간다. 배내골 최상단의 고개로 맑은 계곡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 하여 배내골이라 하고 한자음으로 이천리라고 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알프스리와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걸쳐있는 배내봉(966)은 여러 개의 능선이 연결되어 있어 출발점에서 정상까지두 개의 봉우리를 거쳐 정상에 오른다.
등억은 마을 지형이 등어리처럼 생겼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2015년 5월 이곳을 산악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마을 명칭을 등억리에서 등억알프스리로 변경하였다. 양쪽으로 내가 흐르므로 곶내라고도 부르고 옛날 이 주위에 백화가 만발하여 꽃잎이 앞내에 흘러갔다하여 화천이라고도 부른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의 간월산(肝月山 1083m)은 신산(神山)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간(肝)은 신성이라는 뜻을 가진말의 음차이고, 월(月)은 뫼(山)의 뜻으로보고있다. 약 1540년 전에 이 산기슭에 간월사라는 사찰이 있어서 산 이름도 간월산이라 하였다 한다.
간월재(900m)는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와 등억알프스리 사이의 고개이다.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 상북면 이천리, 등억알프스리 경계의 신불산(神佛山 1159.3m)은 신령이 불도를 닦는 산 이라고 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일설에 불(佛)은 성읍이나 도시의 의미를 가진 말로 성스러운 성읍터의 산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불산은 왕뱅, 왕방이라고도 부르는데, 모두 왕봉을 말하는 곳으로 산꼭대기에 묘를 쓰면 역적이 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신불재는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와 삼남면 가천리 사이의 고개이다.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 상북면 이천리,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경계의 영축산(靈鷲山 1081m)은 원래 취서산이라고 불렀다. 취서산은 산정상의 바위가 마치 독수리의 부리처럼 생겨 유래한 지명이다. 대석산(大石山), 영취산(靈鷲山), 축서산 이라고도 하였으며 최근에 영축산으로 통일하였다. 산 정상에 성터가 있는데 마치 단지처럼 생겼다 하여 단조성(丹鳥城) 또는 단지성(丹之城)이라고 한다. 영취산(靈鷲山)은 신령스런 독수리가 살고 있다는 뜻인데 우리나라 3대 사찰로 불리는 통도사가위치하고 있다.
지경고개(地境)는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와 양산시 하북면 초산리 사이의 고개로 35번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지경은땅의 경계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 낙동 22구간
1. 산행코스:
지경고개, 솔밭산공원묘지(노상산갈림길 5.4km), 정족산(749 2.5km), 용바위, 대성재(1.4km), 주남고개(531 1.5km)천성산2봉(855 4.1km), 은수고개(1.1km), 천성산(922 1.6km), 원득봉(718 2.0km), 방화선삼거리(3.6km)군지산(운봉산 법기터널 534.8 2.7km), 군지고개(3.9km), 남락고개(2.0km) -- 31.8Km
2. 소개
지경고개(地境)는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와 양산시 하북면 초산리 사이의 고개로 35번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지경은 땅의 경계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경계의 정족산(鼎足山 749m)은 솥발산이라고도 하며 정족(鼎足)은 산 정상에 길게 뻗은 바위 모습이 가마솥을 받치고 있는 형상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정족산 근처 모든 곳이 물천지가 되었어도 이 산 봉우리만은 솥발만큼 남아 찰랑거렸다고 전해온다.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의 정족산 정상부에 위치한 용바위는 용의 모양을 한 바위로, 가뭄이 들면 용바위에 제단을 마련하고 산신에게 비가 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 정족산에 있는 무제치늪은 6000년의 세월을 거친 국내 최고(最古)의 산지습지 가운데 하나이다. 1998년 환경부로부터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12월 람사르습지로 지정, 등록되었다.
대성재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의 대성골에 위치한 대성암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고연리 사이의 고개이다.
주남고개(531m)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의 안적암과 양산시 주남동 영산대학교 사이의 고개이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천성공룡능의 집북재(집으로 만든 북에서 유래)는 원효대사가 산내에 89암자를 지어 1천여명의 스님들을 모을 때 정중앙인 집북재에서 북(鼓)으로 설법의 시작을 알렸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산 이름은 본래 원적산이었으나 1천 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천성산이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경남 양산시 주남동, 소주동과 하북면 경계의 천성산2봉(비로봉 855)은 원래 천성산인데 마주 있는 원효산(元曉山)을 천성산 주봉(主峰)으로 하고, 이전의 천성산(855m)을 천성산 제2봉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은수고개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와 양산시 평산동 사이의 고개로 네이버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고 다음지도에서는 지명이 보인다.
경남 양산시 웅상(평산동, 소주동)과 상북면, 하북면 경계에 있는 천성산(千聖山 922m)은 원적산, 원효산, 소금강산 이라고도 한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1천명의 스님에게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천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군부대로부터 원효산을 돌려받은 후 양산시에서 원효산을 천성산 주봉(主峰)으로 하고, 이전의 천성산(812m)을 천성산 제2봉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경남 양산시 평산동, 호계동, 상북면 경계의 원득봉(718m)은 지형도에서 배율을 크게 키워야 표시되는 봉우리로 지명의 유래는 찾기 어렵다.
경남 양산시 동면과 명곡동 경계의 군지산(軍地山 534.8m)은 지형도에는 군지산으로 산행지도에는 운봉산(雲峯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의 운봉산은 구름에 쌓인 봉우리가 아름답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전해진다. 정상부에서는 양산시가 한눈에 조망된다. 산 아래로 60번도로가 지나는 법기터널 지점이다.
군지고개는 경남 양산시 동면 여락리의 군지골과 남낙골 사이의 고개이다.
남락고개(南洛고개)는 경남 양산시 동면 여락리의 남락마을과 동면 사송리의 공공주택지구 사이의 고개이다. 남락은 봉림대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남락고개 밑이라 하여 남락이라 한다. 행정구역을 나눌 때 구역별로 나누다 보니 영천,남락,산지가 남았는데, 딱히 붙일 이름이 없어 떨어져 남은 곳이란 의미로 낙(落→洛)자와 여(餘→余)를 합하여 여락리라 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 옛날 지명은 여락리였다. 또는 마을의 남단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남동쪽으로 떨어졌다는 뜻을 지닌 남락마을의 낙(洛)자를 따서 여락리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 낙동 23구간
1. 산행코스:
남락고개, 지경고개(1.6km), 계명봉(601.7 1.4km), 장군봉(727 2.0km), 금정산(801.5 2.6km), 북문(0.9km)원효봉(687 0.8km), 의상봉(620 0.6km), 4망루, 3망루, 동문(2.5km), 산성고개(0.5km), 대륙봉(520 0.5km)동제봉(2망루 540 0.9km), 만덕고개(만덕터널 2.5km) -- 17.1Km
2. 소개
남락고개(南洛고개)는 경남 양산시 동면 여락리의 남락마을과 동면 사송리의 공공주택지구 사이의 고개이다. 남락은 봉림대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남락고개 밑이라 하여 남락이라 한다. 행정구역을 나눌 때 구역별로 나누다 보니 영천,남락,산지가 남았는데, 딱히 붙일 이름이 없어 떨어져 남은 곳이란 의미로 낙(落→洛)자와 여(餘→余)를 합하여 여락리라 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 옛날 지명은 여락리였다. 또는 마을의 남단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남동쪽으로 떨어졌다는 뜻을 지닌 남락마을의 낙(洛)자를 따서 여락리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의 사배야산(沙背也山 196m)은 새벽의 고어인 새배려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새벽이 가장 먼저 온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의 경계로 사배야 고개라고도 불리며 부산 컨트리클럽 골프장이 자리 잡고 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에 있는 녹동(鹿洞) 마을은 노루[鹿]가 자주 나타나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녹동 마을 뒷산인 녹제산(사배야산)이 사슴뿔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동래 부사 민영훈(閔永勳 재임 1835~1837)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지경고개(地境고개)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과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사이의 고개로 경부고속도로와 1077도로가 지나간다.
지경은 땅의 경계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고 원래 영남대로의 고개로 사배고개라고 불렀다가 1961년 고시로 지경고개로 지명이 변경되었다.
경남 양산시 동면 사송리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경계의 계명봉(鷄鳴峰 601.7m)은 금정산(金井山)의 동쪽에 위치하며 계명암과 봉수대가 있다. 닭이 운다는 뜻으로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한밤에 닭울음을 듣고 붙인 이름이라고 전한다. 이에 이곳에 세운 절을 계명암이라 하고 산 이름을 계명봉이라 불렀다.
한편으로는 새벽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라는 뜻으로 밤 기도를 위해 밤을 세워 기도하던 납자(衲子)들이 닭울음을 듣고 새벽을 알았다고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경남 양산시 동면 사송리, 금산리,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경계의 갑오봉(720m)은 지명의 유래를 찾기 어렵고 400m 정도로 인접한 장군봉(將軍峯 734.5m)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의병장군 환선(桓宣)이 활동했던 지역으로 임란의 명장 환선장군에서 유래하여 장군봉(將軍峰)이 된 것이라한다.
경남 양산시 동면 가산리(架山里)의 마애석불 마애여래입상(梁山 架山里 磨崖如來立像)은 높이 12m, 폭 2.5m 화강암 절벽에 새겨진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다. 오랜세월 마모와 균열로 수인(手印)이나 법의(法衣), 우견편단(右肩偏袒)의 형태를 확인할 수 없다.
경남 양산시 동면 가산리,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금성동 경계의 금정산(金井山 801.5m)은 금샘(金井)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산정에 돌이 있어 놀이 삼견(三犬)가량이며 바위에 원정(圓井)이 있고 주위가 10여 척이며, 원정의 깊이 7촌(村)가량 물이 늘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금빛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전해지기를 한마리 금색고기가 오색구름을 열고 하늘에서 내려와 원정에서 놀았으므로 금정산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경남 양산시 동면 가산리,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금성동 경계의 금정산 고당봉(金井山 姑堂峰 801.5m)은 고암(姑岩), 고당봉(姑堂峰), 고당봉(姑黨峰), 고당봉(高幢峰), 고담봉(姑潭峰), 고단봉(姑壇峰) 등의 다양한 지명이 혼용되어 논란이 되었고 고당봉(姑堂峰)으로 공식 지명을 확정하고 금정구청에서 봉우리에 표석비를 세웠다.
사적 제215호로 지정된 금정산성(金井山城)은 우리나라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지금의 산성은 1703년(숙종 29)에 임진왜란 후 일본의 재침입에 대비하여 경상감사 조태동이 석축으로 쌓기 시작하여 1707년, 1808년, 1824년 등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1970년에 4개의 성문 중 동,서,남문이 복원되었다.
금정산성 진지도(金井山城鎭之圖)에 의하면 망대가 본성에 10개, 중성(中城)에 2개 그려져 있다. 제1~4 망루는 1707년(숙종 33)에 동래 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성이 너무 넓다 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을 쌓을 때 축조하였다.
금정산성 제1 망루(金井山城第一望樓)는 상계봉 북쪽에서 약 300m 떨어진 해발 650m 지점에 세워져 있다.
금정산성 제2 망루(金井山城第二望樓)는 금정산성 동문(金井山城東門)에서 약 2.5㎞, 금정산성 남문(金井山城南門)에서 약 400m 되는 지점에 동쪽 끝으로 돌출한 해발 545m의 암반 위에 위치한다.
금정산성 제3 망루(金井山城第三望樓)는 금정산성 동문(金井山城東門)에서 북쪽으로 약 1㎞ 지점, 해발 550m의 암반이 솟아오른 절벽 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는 것처럼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제4 망루(金井山城第四望樓)는 중성(中城)이 시작되는 곳으로, 금정산성 북문(金井山城北門) 남쪽 주 능선 해발 610m 고지에 자리 잡고 있다. 용호봉 [의상봉] 남쪽으로 외성(外城)의 동쪽 성곽과 중성의 동쪽 끝이 만나는 삼각점이기도 하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의 원효봉(元曉峰 687m)은 봉우리에 해골바가지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원효봉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원효암이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의상봉(義湘峰 620m)은 웅크린 호랑이가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을 지키는 모습으로 전설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는데 금정산 산신령 호랑이가 나타나 승천을 저지하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싸움은 승부가 나지 않았고 두 봉우리로 변했는데 윗봉우리는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虎峰)으로 아래는 용을 닮았다하여 용봉(龍峰)이라 부르고 이 둘을 합쳐 용호봉(龍虎峰)이라 하였는데 오늘날 의상봉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산성고개(山城)는 산성터널이 지나는 지점으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과 금성동을 지나 북구 화명동 사이의 고개이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의 대륙봉(520m)은 망바위라고 하는데 1970년대 초 부산 대륙산악회가 암벽타기 연습을 하던 암장(대륙바위)위에 있다하여 대륙봉이라 하였으며, 정상의 넓은 바위를 평평바위라 부른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의 동제봉(545m)은 금정산성 제2 망루지점으로 서쪽으로 약400m 거리에 남문이 있고 남문을 지나 제1망루 지점인 상계봉이 위치해 있다.
만덕고개(萬德嶺)는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과 동래구 온천동 사이의 고개로 제1,2 만덕 터널이 지나는 지점의 고개이다. 기비현(其比峴)으로 알려져 있으며 옛 사찰인 만덕사 부근의 산길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를 넘으려면 산 아래 동네에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넘어야 했을 정도로 산적 떼들이 자주 나타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 낙동 24구간
1. 산행코스:
만덕고개, 금정봉갈림길(1.6km), 불태령(불웅령 611 1.9km), 백양산(642 1.4km), 애진봉, 유두봉(589), 삼각봉(454 1.7km)갓봉(405.6 1.0km), 개화초교, 개금고개(개금초교, 개금역 2.3km), 주원초교, 엄광산(505 2.5km), 구덕령(1.4km) -- 13.8Km
2. 소개
만덕고개(萬德嶺)는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과 동래구 온천동 사이의 고개로 제1,2 만덕 터널이 지나는 지점의 고개이다. 기비현(其比峴)으로 알려져 있으며 옛 사찰인 만덕사 부근의 산길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를 넘으려면 산 아래 동네에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넘어야 했을 정도로 산적 떼들이 자주 나타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동래구 사직동, 북구 만덕동 경계의 금정봉(金井峰 399m)은 산 정상 아래 있는 덕석바위가 있으며 베틀굴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을 피해 여인들이 피했던 곳이라하여 생명산으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이 산에 철(鐵)이 나와 쇠미산(釗尾山)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만남의광장(283m)은 북구 만덕동과 부산진구 초읍동 사이의 고개로 부태고개, 함박고개, 성지고개 라고도 불린다.
불태령(佛態嶺 611m)은 북구 만덕동과 부산진구 초읍동 사이의 고개로 원래 고개 지명이었으나 지금은 산 지명으로 부른다. 일부 지도에 불웅령(佛熊嶺)으로 기재되나, 태(態)자를 웅(熊)자로 오기한 것이다.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사상구 모라동, 부산진구 부암동 경계의 백양산(白楊山 642m)은 1740년 이후 금용산에서 나누어 지면서 생긴 이름으로 보이며, 백양사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동쪽 산록 아래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다고하여 선암산(仙岩山)이라고도 한다.
애진봉(愛鎭峯 642m)은 백양산에서 약 500m 거리에 위치하며 거대한 표지석과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유두봉(乳頭峯 589.1m)은 갓봉 방향에서 보면 여인의 젖꼭지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삼각봉(454m)은 정상에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산 봉우리의 형태가 삼각형을 닮았다. 물개바위와 함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갓봉(405.6)은 멀리서보면 것을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바위 암봉이다.
개금고개는 개금역이 위치한 지점으로 개금이라는 지명은 마을 형상이 거문고와 같이 길에 늘어져 있어 유래했다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에 피난길을 헤매던 백성들이 이곳에서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를 듣고 정착하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기원하였다는 설이 있다.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서대신동, 사상구 주례동, 부산진구 가야동, 동구 수정동 경계의 엄광산(嚴光山 504m)은 한때 고원견산(高遠見山)으로 불렀는데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으로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지명으로 보인다.
1995년 우리지명 바로 찾기운동에 따라 엄광산으로 지명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구봉산(龜峰山 404.5m)은 정상부에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고 거북이처럼 엎드려있는 형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서구 서대신동과 북구를 잇는 구덕령(九德嶺 구덕고개)은 부산에서 구포와 양산으로 가는 통로였다. 옛날에는 이곳에 주막집 몇 채가 있었는데, 625 전쟁 때에 피난민들이 몰려와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마을을 이루고 꽃을 재배하여 부산의 꽃가게에 꽃을 팔아서 생활을 영위하였으므로 꽃마을이라 불렀다.
■ 낙동 25구간
1. 산행코스:
구덕령, 구덕산(560 1.5km), 시악산(391.5 0.5km), 대치고개(2.0km), 까치고개, 괴정고개(감천고개 2.9km), 장림고개(2.3km)봉화산(156.3 0.5km), 아미산(234 2.3km), 다대응봉봉수대(1.1km), 홍치고개(0.9km), 몰운대(3.0km) -- 17.0Km
2. 소개
서구 서대신동과 북구를 잇는 구덕령(九德嶺 구덕고개)은 부산에서 구포와 양산으로 가는 통로였다. 옛날에는 이곳에 주막집 몇 채가 있었는데, 625 전쟁 때에 피난민들이 몰려와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마을을 이루고 꽃을 재배하여 부산의 꽃가게에 꽃을 팔아서 생활을 영위하였으므로 꽃마을이라 불렀다.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사상구 학장동, 사하구 괴정동, 사하구 당리동 경계의 구덕산(九德山 565m)은 고저기(高低岐), 구지기(久至岐), 사병산(四屛山), 구덕산(舊德山), 두송산(頭松山)으로도 불렸으며 산에 있던 구덕사(九德寺)에서 지명이 유래 하였다고 한다. 구덕사는 18세기 중엽 왜인들의 약탈에 못이겨 절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폐사가 되었다.
사하구 괴정동과 서구 서대신동 경계의 시약산(蒔藥山 510m)은 낙동강 하구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어 경관이 뛰어나다. 지명은 시(蒔) 자가 모종낼 시, 풀이름 시로 약초를 심거나 채취한 곳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치고개는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과 사하구 괴정동 사이의 고개로 대티고개, 솔티 라고도 한다. 소나무가 많아서 솔티라고도 불렀고 사하지역과 부산의 생활권을 나누는 경계로 이 고개를 넘어 시내에 갈 때 "부산간다"고 하였다.
까치고개는 서구 아미동과 사하구 괴정동 사이의 고개로 옛날 이곳에 까치가 유별나게 많이 찾아든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괴정고개(감천고개)는 사하구 괴정동과 감천동 사이의 고개로 지역의 명칭을 따라 괴정고개, 감천고개 라고 한다.
장림고개(구평고개사거리)는 사하구 장림동과 사하구 구평동 사이의 고개로 장림은 숲이 우거지고 지형적으로 길게 늘어선 동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사하구 장림동, 구평동 경계의 봉화산(156.3m) 정상에는 삼각점과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사하구 장림동의 아미산(峨媚山 163m)은 원래 이곳의 마을을 아미골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나, 아미골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다만 움막집이라는 의미의 옛말인 애막이 바뀐 것으로 이를 한자식 아미(峨眉)로 표기했다는 것과, 산의 모습이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과 같다 하여 지명이 비롯되었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다.
사하구 다대동, 장림동 경계의 응봉봉수대(鷹峯烽燧臺)는 두송산(234m)에 위치한 봉수대로 1530년(중종 25년)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는 알 수 없다.
홍티고개는 사하구 다대동의 다대포와 낙동강 하구 사이의 고개로 홍치고개, 무지개고개 라고도 한다. 인근에 홍티마을과 홍티굴이 있었지만 공업단지가 조성되며 굴은 없어지고 마을은 소규모로만 남아있다.
사하구 다대동의 몰운대(沒雲臺)는 16세기까지 몰운도라 부르는 섬이었으나, 이후에 낙동강의 퇴적물로 다대포 육지와 연결되어 육계도가 되었다.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비롯된 이름이다. 몰운대 최남단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고 있으며, 언덕 대부분은 소나무숲이 이루어져 있다.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3호)는 수령이 부임할 때 의식을 치르고, 임금의 상징인 전패(殿牌)를 보관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해 절하는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이며, 사신의 숙소로 이용되었던 조선 후기 지방 관청 건물로 이 지역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객사건축물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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