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는 것이 취미다 보니 꼭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짧게는 당일치기로 길게는 4박5일 여행을 즐긴다.
피천득 시인의 ‘소풍’이란 시구처럼 삶 자체를 소풍처럼 최대한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것이 내 인생 철학이다. 어차피 사는 인생 스트레스 받으며 힘들게 살 이유가 없지 않는가.
지난 여름에 있었던 1박2일간의 짧은 부산투어 후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아내와 나는 내륙지방 산골출신이다 보니 유난히 바닷가를 좋아한다.
바다를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레 부산을 자주 가게 된다. 부산은 제주도나 동해, 서해처럼 큰마음 먹지 않고도 기차만 타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산은 거센 경상도 사투리가 왁자지껄하고 활력이 넘치는 항구도시다. 전체적으로 야경이 아름답지만 특히 광안대교의 야경은 가히 예술적이다.
특히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바다와 도시의 어우러진 경관이 한껏 멋이 난다.
또한 가볼 만한 곳이 다양한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오륙도, 해운대, 동백섬, 달맞이 언덕, 태종대, 이기대올래길,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등이 있다.
그리고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맛집투어 역시 부산만큼 많은 곳도 없다. 해마다 가보지만 갈 때마다 이국적이며 색다른 풍경을 느낄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자가용을 이용하든 여행코스 정하기가 매우 편리한데 이번 여행은 휴가철인 만큼 붐비는 인파와 차량을 고려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여행 중간 중간에 술을 마실 수도 있으므로 음주운전의 위험을 예방할 목적도 있었다.
모든 여행지가 그렇겠지만 특히 부산 여행은 그냥 지나치면 의외로 볼게 없고 아무런 의미를 느낄 수가 없다.
이제는 경륜과 나이가 있는 만큼 즉흥적으로 스치며 지나가는 여행은 가급적 자제하기로 했다. 부산은 부산역 자체부터 볼거리의 출발이 시작되는데 도시 이곳저곳을 차근차근 밟다보면 각 지명, 건물, 시장, 교량 등 하나 하나에도 저마다의 사연과 감동이 있고 배울게 참 많은 도시가 아닌가 싶다.
이번 여행은 1박2일 코스로 해서 부산투어 일정을 잡고 3일째는 시골집 방문과 매월 들리는 행복의집 요양원 어르신들 생일잔치 위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아이들과는 함께하지 못했다. 다들 성장한 탓도 있겠지만 아르바이트하는 큰아이와 방학 중이지만 등교하는 둘째 아이가 일정이 맞지 않아 아내와 단둘이 떠나기로 했다.
여자는 결혼하면 세 번 변신한다고 한다. 신혼 시절에는 애인이 되고 중년이 되면 친구로서 노년이 되면 간호사가 되어 준다고 했다. 요즘 부쩍 편안하게 느껴지는걸 보면 나도 어느새 중년에 접어들었는가 보다.
늘 그렇듯 여행은 아내가 더 좋아하고 들뜬다. 그동안 능력 없는 남편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단순히 먹고 노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TV프로를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모든 아내들은 저마다 할 말들이 다 많지 않던가.
아내는 아침 일찍 분주하게 화장과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이럴 때 남편들이 주의할게 있다. 여행이든 무슨 일을 시작하든 첫 출발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는 일이 잘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빨리 서둘러라, 뭐한다고 꾸물되니’ 라고 재촉한다거나 핀잔을 주게 되면 즐겁고 행복해야할 여행이 아니라 자칫 불편한 동행으로 그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암튼 여행은 기분 좋게 즐겁게 출발해야 한다.
여자들은 사소한데서 기분이 업 되고 감동을 받는다. 이왕이면 ‘당신 여전히 멋져, 아직도 아가씨 같애’ 라고 빈말이라도 띄어주면 마냥 기뻐하는 게 여자들의 습성이다. 칭찬은 돈들이지 않고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전날 챙긴 옷가지와 일부 먹을거리가 든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빠르다는 KTX열차를 타기위해 김천(구미)역으로 갔다. 평일은 예매하지 않아도 자리가 나오지만 일반석이 매진되는 경우 원치 않는 특실 자리가 나오는데 이 또한 VIP로 모시려는 철도청의 배려라고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다.
사람의 본능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편리함에 길들여진다고나 할까, 새마을호, 무궁화호를 이용하다가 KTX열차를 한 번 타보기라도 하면 그 편리함과 빠른 속도, 시간절약이라는 이점이 있어 두 번 다시는 일반 열차를 이용하지 않게 된다. 특별히 가까운 구미나 대구를 갈 때면 모르겠지만 서울이나 부산 등 장거리를 갈 때는 으레 KTX열차를 이용하게 된다. 몇 푼 아끼려고 애써 일반열차를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신도시에 살고 집 가까이 역사가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KTX열차는 TV시청이 가능하고 쾌적하고 빠르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다. 그리고 달라진 노선이 주는 또 다른 창밖 풍경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준다.
김천역을 출발 후 1시간 15여분만에 부산역에 도착하여 곧바로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예전 같으면 지하철을 타고 곧장 자갈치 시장으로 가서 회에다가 소주를 마시고 시장에서 생선 몇마리와 건어물을 사서 바로 돌아왔을 터인데 이 번 만큼은 아내와 단둘이서 신혼의 기분을 내보기로 했다. 그래서 지하상가를 이용하여 걸어서 자갈치시장까지 아이쇼핑을 즐기며 무작정 걸었다.
지하상가의 장점은 여러모로 많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비가 오고 찬바람이 불어도 걱정없이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구경은 물론 칸칸이 작은 가게마다 가지각색의 진기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고 손짓하며 부르는 상인들의 역동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서 삶의 의욕이 솟고 나약해진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내와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재잘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자갈치 시장에 다다랐다.
자갈치시장은 6·25전쟁 직후 자갈밭이 있던 시장이어서 ‘자갈밭’과 장소를 나타내는 ‘처(處)’가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되다 ‘치’가 되어 자갈치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을 믿기로 했다. 특별히 자갈치가 의미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을 할 때는 항상 배를 든든히 채워야 즐겁고 행복하다. 허기진 상태에서 돌아다녀봐야 재미도 없고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고통만 따른다.
자갈치시장은 말 그대로 횟집의 천국이라고나 할까. 횟집수가 무려 1,000여 곳 이상이 된다고 하니 특별히 단골집을 둘 이유는 없다. 그냥 발길 닿는 데로 즉석에서 나오는 좋아하는 싱싱한 횟감을 주문하여 먹는 것도 또 다른 재미와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자갈치 시장은 작은 노점상부터 고층 건물의 대형 회센터에 이르기까지 횟집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단골집을 정한다는 것은 왠지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이집 저집 다니며 다양하게 먹어보는 즐거움을 갖자는 것이 아내와 나의 맛집투어 지론이다. 여행지뿐만 아니라 김천에 살면서도 특별히 단골집을 정해 놓치는 않는다.
횟집을 고를 때는 딱히 정한 기준은 없지만 일단 웃음이 많고 인심이 좋아 보이는 5-60대 아주머니를 선정한다. 왜냐하면 웃음이 많다는 것은 친절하고 자상하며 인정이 많기 때문에 흥정하기도 쉽거니와 저렴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의 관상학자 마이는 가장 좋은 상을 ‘웃는 상’이라고 했듯이 얼굴에 미소와 여유로움이 많은 사람은 겪어보지 않아도 십중팔구 친절하고 넉넉하며 인심이 좋다. 또 즐거운 기분으로 먹어야 행복하고 소화도 잘된다.
회를 주문하거나 흥정할 때는 꼭 칭찬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주인아주머니 인상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찾아 왔습니다. 다른 곳도 많지만 왠지 여기로 오고 싶었습니다’ 라고 몇 마디 던져주면 추가 서비스(스끼다시 등)가 달라진다. 다시 말하지만 칭찬은 돈이 들지 않는 최고의 마케팅이다.
바다와 배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자리를 잡고 막 떠온 싱싱한 횟감을 초장에 듬뿍 찍어 알싸한 마늘과 깻잎을 싸서는 시원한 소주를 한 잔 털어넣고 입 안 가득 먹는 그 맛은 그냥말로 일품이다. 쫄깃하고 신선한 해산물의 향연은 퀼리티 대박이며 멍게, 해삼 등 스끼다시가 주는 꽉 찬 바다 내음에 톡 쏘는 소주와 함께면 신선이 따로 없다.
아내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기분이 황홀해지고 예뻐 보이면 좀 취했다고 보면 된다. 평소 같으면 귀가 시간이다. 추가로 나온 얼큰하고 시원한 매운탕 국물과 발라먹은 생선 머릿고기는 고소하다 못해 포만감의 극치를 더해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길 건너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지난 봄에 보았던 ‘국제시장’ 영화 촬영지인 꽃분이네 가게에 들러 인증샷과 또 다른 향수를 얻기 위해서다.
국제시장은 영화처럼 6.25전쟁 이후 격동기를 살아온 우리시대의 아버지 세대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가난을 벗기 위해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받쳤고 실향민의 눈물과 한이 스며있는 시장이 아니던가, 아내는 영화를 보면서 내내 울었다고 했다.
국제시장을 반쯤 둘러보고 극장으로 향했다.
무더운 여름 대낮에 소주를 마시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최근 상영 중인 영화 ‘암살’을 보았다. 여행 중 영화 관람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낯설은 관객 속에서의 대형 스크린과 음향은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영화 관람후 국제시장을 더 둘러보았는데 국제시장은 일명 ‘도떼기시장’이라고도 불린다. 말 그대로 없는 게 없고 가격이 착하기 때문이다. 시장투어를 마치고 휴식 겸해서 남포동을 거쳐 용두산 공원에 올랐다.
용두산은 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머리와 닮았다고 하여 용두산이라고 불리는데 초등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와서 들렀던 첫 여행지다. 그 당시 걸어서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입구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충무공 동상을 지나 부산타워 전망대에 올라 한꺼번에 부산시내를 전부 둘러볼 수 있었는데 날씨가 좋은 날은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자갈치 시장으로 가면서 멀리서지만 영도다리를 구경하고 부산의 설렁탕인 돼지국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부산의 돼지국밥은 정말 별미다. 돼지고기를 푹 삶은 국물에 건져 썬 고기와 양파, 무를 넣고 끓이다가 밥, 다진 마늘, 고춧가루, 소금을 넣어 끓인 것으로 돼지편육, 내장, 순대를 넣어서 만든 국밥이다. 국물이 끝내주는데 이상하게도 돼지국밥을 먹을 때면 꼭 막걸리를 마시게 된다.
저녁을 먹고 해운대로 가서 해수욕장과 가까운 모텔에 짐을 풀은뒤 해운대 해변을 거닐었는데 젊은 연인에서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데이트의 향연은 정말 운치가 있다. 이는 해운대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전망 좋은 커피숍에 들러 한층 분위기를 냈는데 부산의 야경은 정말 아름답다. 3년 전 도내 우수 공무원으로 선정되어 3박4일 중국 상하이를 갔을 때 가이드가 말하기를 상하이의 야경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며 가장 아름답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 본 상하이의 야경보다도 부산의 야경이 훨씬 더 환상적이며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날 하계휴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해수욕을 즐기기로 했다.
인적이 드문 호젓한 산장을 찾아 조용히 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북적되는 인파속에서 소음과 불편함을 즐기는 것 또한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냈다는 자긍심도 있겠거니와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야겠다는 나름대로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기도 했다.
해수욕장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반드시 찐한 선글라스를 쓰야한다. 강한 자외선을 차단하고 편안한 시선처리는 물론 여체감상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시선을 잘못 두었다가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세 시간을 파도와 함께 해수욕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모텔에 들러 짐을 정리하고 인근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는 걸어서 동백섬과 누리마루 공원을 둘러보고 아쿠아리움을 관람하기로 했다. 아쿠아리움의 수족관은 매우 특별하다.
어린 자녀들이 있다면 교육적인 체험과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곳인데 신비로운 해저 세계와 상어를 비롯한 펭귄, 수달에게 직접 먹이를 주는 체험 등이 가능하다. 피딩쇼와 뮤직 토킹쇼 등 풍성한 볼거리를 비롯하여 터치풀, 샤크다이브, 관람선, 3D라이더 등 다양한 시설을 체험할 수 있고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도 살아있는 수중 생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단순한 놀이공간을 넘어 해양생태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해저 세계의 감동을 얻을 수도 있다. 아쿠아리움 관람만큼은 적극 추천하고 싶다.
관람을 마치고 시원한 팥빙수로 갈증을 해소하고 귀가를 위해 서둘러 부산역으로 갔다.
부산역 광장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크고 작은 공연부터 적은 수의 시위 꾼과 집회까지 다양한 세상풍경을 엿볼 수 있다.
무료한 열차대기시간을 때우기에도 충분하고 시장기가 돈다면 좌측 편으로 펼쳐진 포장마차에서 해물우동으로 옛 향수의 정취를 맛볼 수도 있다. 부산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김천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조금 넘었다.
휴가 3일째, 아침 일찍 서둘러 시골집으로 가서 지난 봄에 심어 놓은 호두나무 주변 잡초를 뽑고는 점심을 먹은 뒤 대항면에 있는 행복의집 요양원으로 갔다.
행복의집 요양원은 노래웃음 봉사단원들과 매월 들리는 곳으로 두 시간에 걸쳐 생일을 맞으신 어르신들을 위한 생일잔치와 축하 위문공연을 펼쳤다.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팁 한 가지를 소개한다면 봉사활동을 권하고 싶다. 요즘은 봉사단체들이 참 많이 생겨났는데 자신에게 맞은 단체에 가입하여 동참하다 보면 보람도 있고 삶의 의미와 재충전의 기회를 얻을 수가 있다.
사람의 손이 두 개인 이유는 한손은 나를 위해서 쓰고 나머지 손은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는 의미다.
한번쯤 힘든 이웃을 살펴보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여유롭고 건강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상 저의 짧은 부산투어 후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