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깨달음이 없는 것이 무명(無明)인데 마음 안에 사는 무명(뱀)이 무섭기 때문에 반드시 그 실체를 벗겨내야 한다.
2) 에덴 하아다마 속에는 공중의 새와 땅위에 기는 것, 육축, 각종 짐승들 그리고 바다 속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간다.
3) 지성소에는 남자 여자의 개념이나 조상의 개념, 자녀의 개념이 없으며, 근본의 회복만이 참 사람의 길이다.
4) 광야에 해당하는 나오스 성전 안에는 성전 뜰과 성소, 골방 그리고 지성소가 등장한다.
2. 본론
1) 깨달음이 없는 것이 무명(無明)인데 마음 안에 사는 무명(뱀)이 무섭기 때문에 반드시 그 실체를 벗겨내야 한다.
갈대(쑤푸) 바다(얌)가 중요한 것은 뱀의 실체 곧 에고의 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요나의 기록에서는 큰 물고기 뱃속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깨달음이 없는 것을 무명(無明)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만큼 마음 안에 사는 무명(뱀)이 무섭고 반드시 그 실체를 벗겨내야만 한다.
이 뱀에 안 넘어가는 인생은 없다. 오직 지성소 안으로 오신 그 생명의 그 빛(근본)으로 하나 되는 것 이외에는 이 뱀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그의 종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2) 에덴 하아다마 속에는 공중의 새와 땅위에 기는 것, 육축, 각종 짐승들 그리고 바다 속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간다.
갈대바다 속에 살아가는 그 뿌리에 대해서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반드시 그 실체를 알아야 뱀이 어떠한 문제를 가져오는지 알게 된다. 창세기에서는 에덴 하아다마에 선악나무(좋음과 싫어함을 알게 하는 나무)로 비유하여 등장한다. 에덴 하아다마 속에는 공중의 새와 땅위에 기는 것, 육축, 각종 짐승들 그리고 바다 속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간다.
이 에덴 하아다마 안에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나란히 있다. 원래 하아다마 안에는 생명나무 하나만 존재하였는데 왜 이런 기록이 나오는가 하는 문제다.
3) 지성소에는 남자 여자의 개념이나 조상의 개념, 자녀의 개념이 없으며, 근본의 회복만이 참 사람의 길이다.
갈대바다를 통과하게 되면 광야로 기록한 누스(마음 너머의 근본) 곧 나오스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새 언약에서도 성전 안에서 여자는 여자의 뜰을 넘어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이것도 비유다. 그러면 남자는 들어갈 수 있는가? 씨를 가진 남자도 들어갈 수 없다. 씨를 가진 남자라면 반드시 씨를 받을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전 안 곧 여성의 뜰을 넘어 들어간다는 것은 남자 여자가 따로 없다는 뜻이다. 지성소(근본) 안에는 남자 여자의 개념이 없고 조상의 개념이나 자녀의 개념이 없다. 근본을 회복하게 되면 한 생명 안에서 한 사람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광야 안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게 되는데 다 비유다. 갈대바다를 넘어 광야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애굽의 모든 속성은 끝나게 된다.
(광야 안으로 들어왔지만 애굽에서 나온 자는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애굽의 속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가나안 에레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안에서 죽게 된다. 광야 안에서 태어난 자들인 여호수아(예수)와 갈렙에 속한 자들만 가나안 땅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4) 광야에 해당하는 나오스 성전 안에는 성전 뜰과 성소, 골방 그리고 지성소가 등장한다.
계시록의 표현대로 한다면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심판이 끝나고 일곱 대접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 광야에 해당하는 나오스 성전이다. 나오스 성전 안에는 성전 뜰과 성소, 골방 그리고 지성소가 등장한다. 성소에 있는 성물을 가지고 성전 뜰에서 정결한 짐승을 잡아 골방 안에 대기하고 있던 대제사장에 의해 그 피를 담아 지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여기서 성경기록대로 본다면 문제가 된다.
성전은 히에론 성전과 나오스 성전이 있는데 나오스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다. 성전은 땅으로 번역한 에레츠인 하아레츠 안에 세워진다. 하아레츠 안에 세워진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를 모두 포함한다. 이래서 문자로 읽어보는 내용은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