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성가대에서 ‘성인호칭기도’를 시작한다. 성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이 기도는, 가톨릭 신앙의 통공의 신비 속에서 천상의 교회와 지상의 교회가 하나로 일치함을 드러낸다.
이 기도를 함께 드리는 신자들뿐 아니라, 이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은총과 감동으로 이 순간을 깊이 간직하게 된다.
■ 호칭기도(Litaniae)
호칭기도란 선창자의 연속적인 청원이나 부름에 공동체가 같은 내용으로 응답하는 기도 형태를 의미한다. 라틴어 ‘리타니아’(Litania)란 ‘기도’, ‘청원’을 의미하며, ‘호칭기도’ 혹은 ‘도문’(禱文)은 그 복수로 표현하여 ‘리타니애’(Litaniae)라고 한다.
이런 기도 형태는 이미 유다인의 회당에서 사용하던 ‘참회-리타니애’ 혹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에게 발견되는 ‘청원-리타니애’, ‘그리스도-리타니애’에서 그 초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성인들의 이름을 이어서 드리는 기도는 약 400년경 소아시아에 있었고, 또한 ‘Kyrie-eleison’을 반복하던 기도 역시 약 400년경 예루살렘 전례에서 사용되었다.
젤라시오 1세 교황(Gelasius I, 492~496)은 자신의 간청기도(Deprecatio Gelasii)에 Kyrie eleison를 덧붙였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레고리오 대교황(Gregorius I, 590~604)이 이것을 9번(Kyrie eleison 3번, Christe eleison 3번, Kyrie eleison 3번)으로 확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베네딕도 규칙서 9장에서도 “탄원의 기도 즉 키리에 엘레이손”(supplicatio litaniae id est Quirie eleison)으로서 ‘야간기도’를 마치도록 규정한다.
약 800년경 로마에서는 행렬 때, 긴 성인 호칭기도에 “우리를 위해 빌어주소서”(Ora pro nobis)라고 응답하였고, 육체적, 정신적 평안을 위한 간청에는 “주님을 우리를 구원하소서”(Libera nos, Domine) 혹은 “당신께 간구하오니 우리를 들으소서”(Te rogamus, audi nos)라고 응답하였다. 또한 앞뒤로 Kyrie를 세 번씩 기도하였다.
16세기까지 호칭기도가 다양하게 발전하게 되자, 비오 5세 교황(Pius V 1566~1572)이 그 기도 형태를 정식으로 확정하였다.
대표적인 호칭기도는 ‘성인호칭기도’, ‘성모호칭기도’이며, 19세기에 ‘예수 이름호칭기도’(1886년)와 ‘예수성심호칭기도’(1889)가 생겨났고, 20세기에 ‘성요셉호칭기도’(1909년)와 ‘존귀하온 성혈 호칭기도’(1960)가 첨가되었다.
■ 성인호칭기도(Litaniae Sanctorum)
‘성인호칭기도’는 다섯 부분으로 구별된다. 첫째 부분은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Supplicatio ad Deum)으로서, “Kyrie eleison” 2번, “Christe eleison” 2번, 그리고 “Kyrie eleison” 2번을 기도한다.
둘째 부분은 ‘성인들을 부름’(Invocatio Sanctorum)으로서, 성모 마리아, 성조들과 예언자들, 사도들과 제자들, 순교자들, 주교와 교회박사들, 수도자들, 평신도 순서로 성인들을 부르며 “우리를 위해 기도”(Ora pro nobis)해 주시기를 청한다.
셋째 부분은 ‘그리스도를 부름’(Invocatio ad Christum)으로서, 악과 죄와 죽음으로부터 또한 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구원의 신비로써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길”(Libera nos, Domine) 간청한다.
넷째 부분은 여러 가지 상황에 필요한 은총을 구하면서(Supplicatio pro varii necessitatibus) “간청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길”(Te rogamus, audi nos)를 기도한다.
마지막 ‘마무리’(conclusio)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길”(Christe, audi nos/exaudi nos) 노래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기도(Oremus)로써 끝맺는다.
▲ 성인호칭기도의 악보.
■ 예수성심호칭기도(Litaniae Ss. Cordis Jesu)
예수성심호칭기도는 세 부분으로 구별된다. 첫째 부분에서는 “Kyrie eleison”, “Christe eleison”, “Kyrie eleison”을 각각 2번씩 노래한 후 이어서 “Christe audi nos”, “Christe exaudi nos” 역시 2 번씩 노래한다.
둘째 부분에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부르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nobis)라고 기도하고, 예수의 다양한 속성들을(영원한 아버지의 아들, 동정녀 마리아의 품과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 끝없이 존엄하신 분,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 열거하며 그분의 성심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한다.
셋째 부분에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들어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노래한다. 이어 “마음이 양선하시고 겸손하신 예수여”, “우리 마음을 당신 마음과 같게 하소서”라는 계응 후 기도(Oremus)로써 마무리한다.
■ 조선어 성가(朝鮮語聖歌, 1928년, 덕원)의 예수성심도문
덕원 ‘朝鮮語聖歌’는 이미 1923년에 초판으로 출판되었고, 1928년 재판이 발간되었다. 초판은 현재 분실되어 그 실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나, 재판의 서문에 초판 허가서가 그대로 인용되었고, 그 밑에 슈미트(Chrys. Schmid) 대목교구장 서리가 1928년 4월 5일 재판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재판 ‘조선어 성가’에 실린 ‘성심도문’(Litaniae Ss. Cordis Jesu)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가사와 낭송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5음계에 기초한 한국의 전통적인 멜로디를 사용함으로써 가톨릭 성가의 토착화 시도를 명백히 보여준다.
▲ 1928년 덕원에서 발행된 ‘조선어 성가’ 의
‘예수성심도문’.
최호영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독일 레겐스부르크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오르간 디플롬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국립음대 그레고리오 성가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에서 음악과 부교수로 봉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