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삼일로 오역한 ‘삼 헤메라’는 시간 개념 안에 있는 삼일이 아니다.
나.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 이름(오노마)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2. 본론
가. 삼일로 오역한 ‘삼 헤메라’는 시간 개념 안에 있는 삼일이 아니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요 16:26)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호 코스모스)에 왔고 다시 세상(호 코스모스)을 떠나 아버지(베레쉬트)께로 가노라(요 16:28)”
‘내 이름으로’ 오역한 ‘엔 토 오노마티 무’는 ‘나의 그 이름 안에서’다.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그 날에’로 오역한 ‘테 헤메라’는 시간 개념 안에 있는 날의 개념이 아니다. 내 안에서 부활(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창세기 1장에 ‘날’은 ‘욤’으로서 하나님의 그 생명의 그 빛을 의미한다. 삼일로 오역한 ‘삼 헤메라’ 역시 세 번째 임하는 근본 하나님의 그 생명의 그 빛(근본)으로서 시간 개념 안에 있는 삼일이 아니다.
이래서 안약(죄와 사망의 법을 치료)을 바르지 아니한 인생들이 성경을 보면 오해하는 것이다. ‘삼 헤메라’는 겉 사람의 휘장이 찢어지고, 속사람 그리스도 예수가 내면에 드러나 하나님과 한 몸으로 한 생명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구할 것’으로 번역한 ‘아이테오’가 완성된다.
‘아이테오(묻다)’는 반드시 그 답을 주신다고 하였다. 바로 아버지와 하나 된 그리스도 예수다. 결국, 아버지와 하나 됨으로써 아들로서의 참 십일조와 헌물을 회복하는 것이다.
나.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 이름(오노마)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 10:30)
그 날(헤메라, 생명의 빛)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기노스코, 하나 됨이다)(요 14:20)”
대중 앞에서 기도하고 끝낼 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성경 말씀에 없는 종교적인 의례에 불과하다. ‘예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 이름(오노마)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므로 예수가 표준이 되었듯이 우리도 그와 같이 변화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핵심이다.
십자가(장대)에서 죽음 이후에 오는 내용으로서 반드시 겉 사람(휘장)을 장대에 매달아 끝내야 한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휘장)을 끝내는 사건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지 못하고 단지 입으로만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무가치한 일로서 사람을 미혹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와 어떻게 하나 될 것인가?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마음 안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해체하여 속사람을 회복하는 것이 그 실상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보석)가 어디에 거하시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마음 밭 안에 감춰진 보석(아들)으로 계신다. 보석을 발견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역사적안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찾아주는 것이 아니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