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이어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인연
김용식 / 조경학과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은 곧바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훗날 행복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불행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결국 ‘만남’이라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본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이후로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돌아보니 삶 속에서 참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정년퇴임 후 경산을 떠날 때 그동안 모아 두었던 명함철을 모두 버리고 왔다. 다시 만날 일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거니와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천리포수목원에서의 4년 반 동안 모은 명함집 4권도 같은 이유로 천리포수목원의 기록물 일부로 두고 나왔다. 생각해 보면 인연이라는 것은 이유도 형식도 달리하여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나는 수학을 특히 어려워했고, 성격이 꽤 내성적이라 사람을 직접 상대할 일이 적고 수학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를 찾다 보니 임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산이었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사람과의 관계는 오히려 더 많아지고 중요해졌으며, 수학지식 역시 더 깊이 필요하게 되었다. 결국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는 혼자 ‘정통수학’부터 공부할 정도였다. 그 시절,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으며, 학생들에게 지도할 때에 큰 도움이 되었다.
돌아보면 나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온, 운이 매우 좋은 사람이다. 대학 2학년 무렵 교수님 연구실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타 대학의 교수님들을 뵙게 되었다. 그 가운데 전남대학교 임학과에서 사방공학을 가르치시다가 1년간 연구실에 머무르셨던 조희두 교수님과의 인연이 특히 깊었다. 교수님과 점심을 함께 하며 들었던 많은 말씀은 내게 큰 배움이 되었다. 군 복무 중 휴가 때 찾아뵈었을 때에도 교수님은 늘 따뜻한 식사와 함께 격려해 주셨다.
영남대학교 재직 중 박사학위를 마친 뒤 박사후과정을 신청했으나 두 차례나 실패했다. 하버드대학 아놀드 수목원을 목표로 Fulbright Scholarship을 신청했지만 탈락했고, 같은 연구계획으로 한국과학재단에 제출했을 때도 희귀식물 보전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받지 못해 불합격했다.
그러나 영국문화원에 제출했을 때는 크게 달랐다. 당시 영국문화원의 장학 지원은 주로 문학과 공학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나는 식물 분야 최초로 선발되어 왕립큐우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에 머물 수 있었다. 큐우식물원에서 보낸 1년은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희귀식물 보전을 주제로 문헌을 읽고 매주 1~2회 토론을 진행했으며, 필요하면 지금의 Natural England, 케임브리지 세계보전모니터링센터, 케임브리지대학식물원, 영국자연사박물관 등에서 관련 학자들을 자유롭게 찾아가 면담했다. 해외 학자와의 국제 전화나 팩스도 제한이 없었다. 무엇보다 큐우식물원 도서관은 그 자체가 천국이었다. 찾지 못할 문헌이 없었고, 요청한 자료는 모두 내부 우편으로 내 책상까지 배달되었다.
큐우식물원에 머무르던 중, 내가 속한 Living Collections 부서의 큐레이터 John Simons와 함께 Sheffield Garden을 둘러보던 날, 당시 Duke of Cornwall(현 영국 국왕 Charles III세)을 우연히 만났다. Simons는 정중하면서도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이어 나를 소개하였다. 직접 악수를 나누었는데 손은 크고 힘이 있었으며, 표정과 태도는 매우 성실하고 격의가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으며 희귀식물 보전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니, 매우 중요한 연구라고 격려해 주었다. 주변에 경호원 같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던 점도 깊게 기억에 남아 있다. 다만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지금도 가장 아쉽다.
박사후과정을 마치고 귀국 후 어느날 영국문화원에서 연락이 왔고, 며칠 뒤 정동 영국문화원에서 원장 Patrick Hart를 만났다. 그는 큐우식물원에서의 연구와 활동이 기존 장학생 중 가장 모범적이었다며 앞으로 5년간 추가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매년 내가 희망하는 영국 학자를 초청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경비를 전액 지원하겠다고 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큰 도움이었다.
1998년 가을, 식품가공학과의 정영건 교수님이 환경문제연구소 심포지엄에 초청할 해외 연사를 찾고 계셨기에 Hart 원장을 추천했고, 나는 심포지움에서 Hart 원장의 특별발표를 통역하였다. 심포지움이 끝나고 집사람이 운전하여 안동역까지 모셨다. 안동역에서 콜린 크룩스 현 주한 영국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이 합류했고, 곧바로 하회마을과 봉정사로 이동하였다. 나중에야 이것이 여왕 방문 준비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9년 4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처의 방한 시 남산 하이얏트 호텔에서 열린 연회에 초청받았다. 여러 차례 보안 검색을 거쳐 입장하여 당시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과 여동생인 김성주와 한 그룹을 이루어 여왕 일행을 기다렸다. 얼마 후 여왕과 마주했는데, 키는 크지 않았으나 강렬한 눈매와 함께 단정하고 품위 있는 존재감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여왕의 한두 발짝 뒤에서 걷던 부군인 에딘버러 공(Duke of Edinburgh)은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을 직접 열어보아 당황스러웠지만, 내내 부드럽고 인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날 택시를 타고 행사장에 간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2001년 4월에는 서울 정동의 영국 대사관저에서 Duke of York인 앤드류 왕자를 만났다. 대사관저는 1890년에 준공된 건물로, 구한말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관저의 정원을 내려다보면 마치 영국의 한 시골 저택 정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앤드류 왕자는 온화한 인상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친근함을 주었다. 이후 거시기한 이유로 왕자 지위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그때의 모습은 여전히 따뜻하게 기억된다.
엘리자베스 여왕 부처는 방한을 기념하여 IUCN 세계자연보전연맹 종보전위원회 한국식물전문가그룹에 환경기금을 지원해 주셨고, 그 기금으로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희귀식물보전 국제심포지엄을 포함하여 희귀식물 보전의 일을 수행하여 매우 영광스럽게 여긴다.
되돌아보면 평생 말 없는 나무를 벗 삼아 살아온 내게, 이 모든 만남은 정말로 귀한 내 인생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 인연들은 지금까지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관련 기사 : https://www.yna.co.kr/view/AKR19990420004100020
첫댓글 부지런하신 교수님, 옥고에 감사드립니다. '식물'을 통하면 이렇게 진지하게 넓게 만나는구나를 생각합니다. 저는 거의 '죽은 이'들과 만나는 편인데, ...... facebook을 통해 교수님께서 아직도 국내와 세계를 누비면서 나무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를 잘 듣고 있습니다. 또 교수님을 통해 나무 껍질이나, 뿌리 등 전혀 보지 않던 곳에 주목하게도 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 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은 숙제 터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ㅎ 김정숙 교수님, 글을 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