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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말씀을 전파하라
서 론
1933년 대총회 지도자들이 북미 전역을 통하여 대대적인 공중전도를 강조하는 사업 계획을 세울 때 큰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하여는 대중들 앞에 설 목사들이 덜 중요한 문제들을 제쳐놓고 셋째 천사의 기별의 광범위하고 감명적인 부분들을 증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에 대총회의 요청에 따라 말씀을 전파하라고 이름한 소책자를 출판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엘렌 G. 화잇 여사의 권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소책자를 수천부 배포하여, 목회자들에게 세상에 마지막 심판의 기별을 선포하는 엄숙한 책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줌으로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다른 엘렌 G. 화잇 저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씀들이 이 가운데 있다. 그러나 여기에 인쇄된 부분들이 엘렌 G. 화잇여사께서 이 문제에 관하여 말씀한 전체를 뽑아 수집한 것은 아니다. 복음전도, 복음교역자, 목사들에게 보내는 증언 및 그리스도인 선교 봉사 등의 책에서도 이 문제에 관한 다른 권고의 말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후에 여러 관련된 소책자들이 나왔다. 극단적인 견해의 위험이란 제목의 소책자는 본래 화잇 여사께서 어떤 목사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으로서 위대한 사업에 관한 교훈들인데 지금까지 다만 노트북 리프렛의 형식으로만 인쇄되어 나왔고 시기 결정에 관한 권고의 말씀은 이 때에 매우 적절한 내용이다. 제14장의 끝은 특별한 증언 B No. 2에서 뽑은 권고의 말씀들로서 1903년과 1904년에 있었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쓴 말씀들이다. 그당시 범신론적 사상이 교단에 침투하여 들어와 마치 새로운 빛인 양 주장되고 있을 때 그 말씀은 교회에 큰 축복을 가져왔다. 이 위기를 통해서 얻은 가장 귀한 축복은 성경말씀의 진리 가운데 있는 교훈들로서 주님의 사자가 투쟁하고 있는 교회에 보낸 서신들의내용 가운데 그 교훈들이 있으며 주로 교회증언 8권과 치료봉사에서 동일한 교훈의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 편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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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
그리스도를 나타내라
모든 봉사의 근본적인 목적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감추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은 말씀과 교훈으로 수고하는 모든 자들이 증거해야 할 위대한 진리이다(원고 109, 1897년).
진리를 위한 사업에 수고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새로운 빛으로서 증거할 것이 아니요 그분의 백성들이 잠시 동안 바라보지 못했던 고귀한 빛으로서 증거해야만 한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구세주로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하며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로 여기시게 된다. 우리들은 요한이 묘사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는 말씀을 반복하여 배워서 뚜렷한 진리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고귀한 진리의 가장 신비스러운 길이 열려 있으며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화들은 교회와 세상 앞에 공개되어 있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게 한 이 사랑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우며 얼마나 심오한 사랑인가. 그러나 율법의 강력한 요구들을 이해하는 영혼이 더욱 넘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 못할 때에 그 손실이 얼마나 클 것인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그대로 전파할 때에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범죄한 세계에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사인 사랑이 모든 설교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냉랭하고 활기없는 태도로 진리를 증거할 때 그 진리로 말미암아 심령이 변화하지 않는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목사들과 교역자들이 예수님을 나타낼 때에 하나님의 율법과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증거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불신하는 것 역시 그다지 놀랄 것이 되지 못한다. 얼마나 자주 백성들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는 말씀으로 보장을 받았던가!
사단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게 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이 깨달을 수 없게 하려고 굳은 결의를 하였다. 아, 우리가 어떻게 함으로 하나님의 깊고도 고귀한 사랑을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내 보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라고 외치는 것 외에 달리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또 있을까. 우리는 죄인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하자.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대리자로서 예수님을 증거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간이 깨닫지 못하도록 사단이 우리 길에 깔아 놓은 암영(暗影)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는 하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측량할 수 없는 자비에 대한 영구적인 보증이다(원고 154, 1897년).
성 령
위대한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선택하실 수 있었던 무한히 다양한 과제들을 가지고 계셨으나 그분께서 가장 크게 다루신 주제는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시는 문제였다. 주님께서는 이 권능을 부어주시므로 말미암아 일어날 어떤 놀라운 일들을 교회를 위하여 예언하셨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떤 문제를 덜 취급하고 있는가? 어떤 허락의 말씀이 적게 성취되었는가? 가끔 성령에 대한 문제로 설교할 때가 있기는 하나 한 번 설교한 후에는 한동안 그 문제를 방관시한다(원고 20, 1891년).
회개의 단계를 자세히 가르치라
목사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진리를 증거하는데 있어서 보다 분명하고 더욱 단순한 방법을 따를 필요가 있다. 저들 자신이 먼저 위대한 구속의 경륜에 대하여 더욱 충분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저들은 청중의 관심을 세속적인 사물에서 신령하고 영적인 사물로 이끌 수 있다. 어떻게 하여야 저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알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저들은 회개에 이르는 필수적인 단계에 대하여 알기 쉽고 분명한 설명을 듣기 원하며, 설교의 부분적인 내용에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나와 구원을 얻는 방법을 특별히 쉽게 설명하는 요소가 포함되어있지 않는 한 설교식으로 가르쳐서는 안될 것이다. 침례 요한이 감격적인 단순성으로 말한 것처럼 목사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벅찬 심정을 가지고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리켜보이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말해야 한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강하고 열렬한 호소를 해야 한다.
이 부분의 사업을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은 감히 설교하려는 마음을 먹기 이전에 저들 자신이 먼저 회개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의 고귀한 진리로 그 심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새것이나 옛 것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보물 창고에서 모든 필요한 것들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은 일화(逸話)를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얻지 못할 것이며 웅변가가 되기 위하여 애쓸 필요도 없고 청중들이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를 다루어서도 안 된다. 다만 저들은 단순한 언어와 감동적인 열심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전하신 것처럼 진리를 증거할 것이다(리뷰 앤 헤랄드, 1887. 2. 22.).
재림 신앙의 옛 진리에 대한 부흥
목사들과 신자들이 수행해야 할 거룩하고 중대한 사업이 있다. 저들은 구원의 사업에 대한 역사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연구하여야 한다. 저들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다루신 방법에 대하여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목사들과 신자들은 자기 자신이 처음에 진리를 알고 깨달았을 때 체험한 능력과 광채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신앙 부흥을 일으켜야하며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혀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진리들을 자세히 말해 주어야 한다. 이 진리들은 본래의 신선함과 능력을 완전히 지닌 채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원고 22, 1890년).
천사들의 봉사
어느 누구에게든지 그를 중심으로 해서 싸우는 선한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이 따르고 있다. 어느 편이 이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목사들에게 저희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천사들의 봉사에 관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역설하라고 권고하는 바이다. 공상적인 이론에 빠지지 말라. 기록된 말씀만이 우리들의 유일한 안전책이다. 우리들은 하늘의 지적 존재자들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다니엘처럼 기도하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서신 201, 1899년).
논쟁적인 설교
논쟁적인 형식의 설교들을 많이 들을 수 있는데 그러한 설교들이 영혼을 부드럽게 하고 누그러지게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모든 전달자들의 책임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의의 값없는 은사에 대하여 증거하지 않는 설교는 메마르고 생명이 없는 설교이며 양떼와 어린 양들을 굶주리게 한다. 사도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라고 말하였다. 복음 가운데는 활력과 자양분이 있다. 예수님은 만물의 산 핵심이 되신다. 모든 설교에 그리스도를 넣어라. 그리스도 안에 영광의 소망이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하심과 자비와 영광을 주제로 하여 설교하라(서신 15, 1892년).
온유한 정신으로 증거하는 현대 진리
설교자들이여 조심하라. 새로운 이론을 듣거나 받아들이려고 갈망하지 말라. 때때로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는데 결코 어떤 회중 앞에서도 그런 이론들을 소개해서는 안 된다. 자랑하는 말이나 자기 자신을 높이는 말을 하지 말라. 진리로 성화된 입술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오게 하라. 모든 목사는 예수님께서 진리를 전하신 방법을 따라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긍정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으로 보장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어야 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 앞에서 신중하게 행하며 일함으로 단 한 영혼도 그대들의 모본으로 기만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대들의 실수로 한 영혼을 타락의 길에 빠지게 하느니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되려고 공언하는 사람들은 죄와 질병과 슬픔이 침노할 수 없는 생애를 살기 위하여 열심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저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단에서 강력하고 영성을 높이는 말씀으로 설교할 개혁자들을 부르고 계신다. 저들이 하는 말이 열렬한 환영을 받지 못할 때 저희 마음이 상하게 되고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저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신에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말만을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저들은 청중에게 원통한 감정과 반대의 정신을 고취하는 말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 나의 형제들이여 권고의 말씀을 들으라. 그리스도의 대사(大使)들의 입술에서 그러한 말들이 흘러나와서는 안 된다. 성화된 입술은 개혁하는 말을 할 것이며 감정을 악화시키는 말을 하지 말라. 진리는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사랑의 정신으로 증거되어야 한다(서신 348, 1907년).
원수의 계략
우리들은 신령한 계시를 깨닫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들은 새로운 빛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조심하여야 한다. 우리들이 경계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는 미명하에 사단은 우리들의 관심을 그리스도와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에서 떠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어떤 애매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실 혹은 우리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치 않은 문제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은 원수의 계략임을 보게 되었다. 저들의 모든 연구와 가설들이 다만 문제들을 이전보다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진리의 성화를 통하여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사람들의 정신을 혼란시키고 있는 때에 현대 진리를 깊은 관심을 쏟게 하는 연구 과제로 삼아야 한다(서신 7, 1891년).
인간적인 가설과 억측
아무도 그럴 듯하고 과학적인 궤변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깊이 잠들게하는 일을 못하게 하라.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하고 거룩한 진리 위에 인간의 지혜로 공교롭게 만든 옷을 입히지 말라. 이런 일들을 일삼던 자들은 영혼을 기만하는 우화(寓話)에서 저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즉시 중단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심령을 감동케 하는 것은 기분을 즐겁게 하는 기만적인 이론들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다. 공상적인 이론들은 생명의 양식이 아니며 영혼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오셨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가르치라고 주신 교리들을 가르치셨다. 구약과 신약에서 볼 수 있는, 주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오늘날 우리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해야 한다.
생명의 양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어야 하며 유한하고 과오를 범하는 인간의 교훈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오신 생명의 양식을 백성들에게 주라. 그대들이 전하는 교훈에 인간의 가설들과 억측들을 혼합시키지 말라. 원컨대 하나님의 독생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일이 얼마나 필요하며 주님의 말씀을 저희 생명의 한 부분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긴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원고 44, 1904년).
진리에 기초한 우리의 신앙
나는 매일 두 배의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기별의 초기 역사에 나타나는 인물들로서 믿음의 확증을 받은 증인들의 기록들을 재현(再現)시킬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여 왔다. 1844년의 시기가 지난 후에 저들은 빛을 받았으며 빛 가운데서 행하였다. 사람들이 성경의 여러 부분에 관한 소위 놀라운 기별들을 가지고 새로운 빛을 받았다고 주장할 때 우리들에게도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때에 적절한 증언들을 주심으로써 G목사 같은 분이 증거하려고* 애써 시간을 바쳐온 기별들의 그릇된 감화를 차단할 수 있었다. 이 가엾은 사람은 성령께서 확증하신 진리에 결정적으로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서 확실한 진리임을 증거하면 그 진리는 영원토록 진리로 입증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반대되는 가설(假說)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진리가 아닌 것을 가지고 진리인 것처럼 여기고 자기 멋대로 성서에 대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시대를 위한 진리는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진리가 무엇임을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주신 빛에 반대되는 새로운 빛들이 계속 잇달아서 일어날 것이다. 아직도 이 진리를 증거할 때에 일은 체험을 거쳐서 생존하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생명을 당신의 자비로 보존하셔서 마치 사도 요한이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한 것처럼 저들도 자신이 체험한 것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진리의 기수(旗手)들은 저희가 쓴 글의 재판(再版)을 통해서 증언할 것이다. 나는 그런 방법을 통해서 저들의 음성을 듣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저들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가 무엇임을 저들의 증언을 통해서 증거해야 한다.
우리들은 신앙의 특수한 요점에 반대되는 기별들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저들은 많은 성경절들을 모아서 저들이 주장하는 이론들을 증거하는 재료로 쌓아 올린다. 지난 50년 동안에 이러한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어 일어났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존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지만 만약 성경 말씀의 적용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50년 동안 지탱해 오신 기초에서 기둥을 옮기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커다란 실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적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받은 과거의 기별들에게 권세와 능력을 입히신 성령의 놀라우신 능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G목사의 증거들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만약 저들이 그러한 증거들을 받아들인다면 현재까지 우리를 이끌어 온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결정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가 성경을 가지고 증거하려고 애쓰는 요점들은 확실한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은 과거의 경험이 거짓된 것이라고 말하는 저들의 증거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진리가 있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천사들의 지도를 받아왔다. 성소 문제에 관한 증거를 주신 것은 성령의 지도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저들이 관여한 일이 없는 우리 신앙의 특징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은 위한 웅변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스스로 모순된 말씀을 하시지 않으신다. 진리가 아닌 것을 억지로 증거하려 할 때 성경의 증거들을 그릇되게 적용한다. 가상적인 큰 빛을 가지고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옛날의 노정표들을 따른다(요일 1:1-10 인용함).
나는 이 성경 말씀이 이 시대를 위한 적절한 말씀이며 죄를 명확히 죄라고 지적해야 할 때가 왔다는 말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우리는 마음에 회개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사업에 큰 방해를 받아왔다. 저들은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새로운 이론들의 창시자로서 인정을 받고자 한다. 만일 이러한 이론들을 받아들인다면 지난50년 동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셨고, 성령의 권능으로 실증하신 그 진리를 부인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서신 329, 1905년).
증거되어 온 진리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증거되어 온 진리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양떼에게 먹일 양식이 되도록 진리를 다루는 법을 배우라.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도 없는 것을 가지고 무익한 가설들을 꾸민 이론에 미혹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구원에 미치는 모든 문제에 관하여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모든 공상을 떨쳐 버리기를 바라시며 오늘 나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다. 모든 무익한 호기심을 버리고 깨어 일하며 기도하라. 증거되어 온 진리들을 연구하라. 주님께서는 모든 얼빠진 환상들을 분쇄하기 원하시며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추수하기에 무르익은 밭을 가리키신다. 우리들이 열심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
사도 시대에 가장 어리석은 이단설이 진리인 것처럼 소개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되어 왔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양심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체보다도 그림자를 붙잡는 사람들이 항상 있을 것이다. 오류는 새로운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어 저들의 생각에 멋지게 보이므로 저들은 진리 대신에 오류를 택한다. 그러나 가리운 것을 벗겨버릴 때에 그 정체는 드러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1. 2. 5.).
영원한 의미를 가진 문제들
그리스도께서 깊이 생각하신 교훈들을 심사 숙고하라. 주님께서 그 교훈들을 가리치신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치라. 우리의 영원한 복리에 관계되는 문제들을 곰곰이 생각하라. 원수가 인간의 정신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향(轉向)시킬 수 있는 것, 또한 그가 다양한 감정을 조성하기 위하여 창안(創案)해 낼 수 있는 새롭고 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마치 굉장히 중대한 문제인 것처럼 소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밝히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은 우리가 밝히 이해하고 일상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성경의 진리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중요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구약 성경에서 인용하신 교훈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거룩한 진리의 언어는 너무나도 단순하다(서신 16, 1903년).
신앙에 긴요하지 않은 문제들
그간 다루어 온 문제들 중에는 믿음을 온전케 하는 일에 있어서 별로 긴요치 않은 문제들이 많이 있다.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문제들을 연구할 시간이 없다. 많은 문제들은 유한한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한 것들이다. 진리는 인간의 이성이 미치지 못하며 인간이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계시는 전적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도록 우리들에게 진리를 증거한다. 비록 모든 두뇌가 우수한 탐구자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진리를 연구할지라도 그 가운데는 인간의 정신이 깨닫거나 추리할 수 없는 단순치 않은 문제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억지로 해석하려 할 때에 인간적인 추정과 설명을 가하게 되며 결국에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실생활에 적용하는 데 긴요하며 영혼의 구원에 관련된 모든 진리는 매우 분명하고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서신 8,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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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의 논쟁에 대한 우리의 태도
다니엘 8장의 매일 드리는
나는 동서남북에 있는 나의 모든 형제들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다. 현재 매우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주도적(主導的) 논증으로써 나의 글들을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요청하는 바이다. 나는 H, I, J, 목사들과 기타 지도층에 있는 형제들에게 매일 드리는문제에 관한 저들의 견해를 주장하기 위하여 나의 글들을 인용하는 일이 없도록 간청하는 바이다.
이것이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셨다. 주장하고 있는 견해들의 차이를 중대한 것처럼 확대시키는 일에 형제들이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시해 주셨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써 내가 쓴 글의 어떤 부분이든지 이용되는 것을 찬성할 수 없다. 매일 드리는이란 말씀의 참 의미를 시험하는 문제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지금 목회에 종사하는 나의 형제들이 이 문제(매일 드리는)에 관한 저들의 논증으로 나의 글들을 이용하는 일들이 없도록 부탁하고 싶다. 나는 현재 토론되고 있는 문제에 관하여 아무런 지시를 받은 것이 없으며 내가 볼 때에 논쟁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이 문제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는 것이 웅변일 것이다.
우리 형제들의 관심이 기별의 핵심이 되어야 할 중대한 문제들에서 떠나 덜 중요한 문제들을 논란할 때에 우리 사업의 원수는 기뻐하게 된다. 이것은 믿음을 시험하는 시금석이 아닌 만큼 이 문제를 잘못 다루어 원수가 승리를 거두는 계기로 삼지 못하도록 나의 형제들에게 나는 간청하는 바이다.
참된 시금석이 되는 문제들
주님께서 이 때에 우리에게 주신 사업은 순종과 구원에 대한 시금석이되는 문제들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 관하여 백성들에게 참된 빛을 증거하는 일이다.
다년간 출판하여 온 우리들의 중요한 서적들이 많은 영혼들에게 진리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기는 하였으나 그 책들 가운데는 신중한 연구와 교정을 요하는 몇 가지 덜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그러한 문제들은 우리 출판물들을 감독하도록 정기적으로 임명된 사람들에게 처리하도록 위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형제들이나 우리 권서원들이나 우리 목사들이 영혼을 구원하는 좋은 서적들의 감화력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확대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출판물을 불신임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마치 우리가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는것이 되며 기별을 새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정신을 혼란하게 하는 것이 된다. 우리 출판물에 대하여 가급적 불필요한 변경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결과는 더욱 좋을 것이다.
밤에 나는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나의 형제들에게 요한일서에 있는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 듯하였다(요일 1장을 인용함).
매일의 회개
우리 형제들은 자기 자신을 겸비하고 성령의 지배 하에 둘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주님께서는 과거에 큰 빛을 받은 우리들에게 매일 회개하기를 요구하신다. 바로 이것이 내가 우리의 편집인들과 우리의 모든 합회장들에게 전해야 할 기별이다. 우리들은 우리가 빛을 가진 동안에 빛 가운데서 행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흑암이 우리에게 덮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모든 사람들은 이 마지막 때를 위한 기별을 받게 될 것이다. 저들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영혼들을 위한 책임을 수행할 것이며 저들과 사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천국 기별을 전할 것이다. 이방인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하늘 궁전으로 인도되지 못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빛을 받으라.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사단은 자신을 격려해 줄 모든 사람들과 함께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 빛 가운데서 행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저희 영혼이 흑암에 완전히 휩싸여 혼돈하게 될 것이며 저희의 모든 행동 과정이 어두움에 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배운 사람은 참된 순종의 길을 따를 때에 점점 더 총명한 빛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향한 모든 의인들의 요구는 성령의 성화케 하시는 능력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
저들 자신을 겸비하게 하고 저희 심령을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놀라운 특권과 축복이 있다. 큰 빛을 저들에게 주실 것이다. 사람들이 기꺼이 변화함을 입고자 할 때에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구세주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봉사를 위한 이 같은 은혜와 능력의 부요함을 계속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맛보지 않은 채 돌려보내야 할 것인가? 지금 내가 우리 신자들에게 전하도록 명령을 받은 지시는 내가 와싱톤에 있을 때에 받은 것과 동일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개인적인 노력을 요구하신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일을 할 수 없다. 큰 빛을 주셨으나 그 빛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였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만일 우리 형제들이 지금 저들 자신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헌신한다면 그분께서는 저들을 받으실 것이다. 주님께서 저들에게 마음의 변화를 주시므로 저들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될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깨어라. 그대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부르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원고 11, 1910년).
시금석이 되지 않는 문제들
목회 사업에 종사하는 나의 형제들에게:
친애하는 동료 교역자들에게 ―
나는 다니엘 8장에 있는 매일 드리는이란 말씀의 뜻에 관하여 저들의 견해를 강력히 주장하여 온 모든 사람들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 이 문제를 시금석이 되는 문제처럼 다루어서는 안 되며 그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결과로 생긴 소동은 매우 유감스러운 현상이다. 소동의 결과로 혼잡한 분위기가 이루어졌으며 우리 형제들 중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모든 도시에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사업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소동은 우리 사업의 큰 원수인 마귀만을 기쁘게 해 주었을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더 이상 소동을 일으켜서는 안 될 것에 대하여 나는 빛을 받았다. 우리들의 설교 내용에서 이 문제를 다루거나 중대한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해야 할 큰 사업이 있으며 이 요긴한 사업을 성취함에 있어 단 한 시간도 손실을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오직 연합을 이루고 밝히 깨닫고 있는 진리의 문제들을 증거하기 위하여 대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데만 한계를 두어야 한다.
나는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마지막 기도에 대하여 그대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싶다. 그 가운데는 우리들이 말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 곧 거룩하고 시금석이 되는 진리들, 단순히 아름답게 묘사된 진리들이 있다. 그대들은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들을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때에든지 매일 드리는이란 문제나 기타 형제들 간에 논쟁을 일으킬 만한 문제를 야기시켜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들은 지금 우리 형제들의 정신이 마땅히 집중되어야 할 사업을 지연케 하고 방해할 따름이다. 현저한 의견의 차이를 드러내는 문제들을 선동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의무적인 주장들에 관하여 거룩한 진리들을 연구할 것이다.
우리 목회자들은 진리를 가장 유리한 방법으로 증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급적 우리들은 모두 같은 것들을 말해야 한다. 단순한 설교를 해야 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들을 다루어야 한다. 우리 모든 목회자들이 자신을 겸비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에야 주님께서는 저들과 같이 일할 수 있으시다. 우리들은 지금 다시 회개할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들과 협력하여, 우리들이 위하여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신에 거룩한 감화를 끼칠 수 있을 것이다.
굵은 끈으로 꼭 묶어라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연합의 결속으로 단합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굵은 끈으로 꼭 죄어서 어떤 논쟁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 진리의 통일된 세력을 드러내라. 이러한 세력은 인간의 정신에 강력한 인상을 줄 것이다. 연합 가운데 힘이 있다.
지금은 사소한 견해 차이로 시비를 가릴 때가 아니다. 만일 주님과 밀접한 산 연합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저들의 신앙적 경험의 약점을 세상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인다면 우리를 면밀히 살피고 있는 진리의 원수들은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할 것이며 우리의 사업은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모든 사역자들은 온유한 정신을 배양해야 하며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매일 드리는이란 문제가 과거에 소란을 피운 것처럼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 문제를 가지고 다툰 쌍방의 사람들이 빚어 놓은 결과로 논쟁이 일어났으며 혼란을 초래하였다. … 이 문제에 관하여 견해의 차이가 현재 지속되는 상태일지라도 그것을 표면에 나타내지 말라. 모든 논쟁을 그치라. 이러한 때에 침묵은 웅변이다.
지금 이 때에 하나님의 종들이 해야 할 의무는 모든 도시에서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궁전을 떠나 이 지상으로 오셨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우리들은 모든 큰 도시들의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진리에 대한지식을 나누어줄 필요가 있다(서신 62, 1910년).
21
공상적이며 추리적인 교훈
타협하지 말라
나는 우리 형제들에게 중대한 기별을 전해야만 한다. 악과 타협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위험한 영향들이 닥쳐올 때 담대하게 대처하라. 원수의 세력을 저지하는 일에 따르는 결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날 기만에 속하는 많은 것들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다. 우리 형제들 중의 어떤 이들은 우리들이 찬성할 수 없는 견해들을 가르쳐왔다. 성경에 관하여 괴이한 견해와 억지로 특이하게 해석하는 풍조가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의 일부가 현재에는 매우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마는 점점 심각한 문제로 변하여 신앙 생활에 미숙한 이들에게 큰 올무가 될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수행해야 할 중대한 사업이 있다. 원수가 우리들을 꾀이어 때를 위한 뚜렷한 진리를 선포하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여 우리의 관심을 괴이한 견해에 기울어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식별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분명히 넘어질 것이며 사단이 파놓은 불신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형제들이 충성된 목자와 보호자들로서 신앙 경험이 미숙한 사람들과 미혹적인 감화의 책략에 걸린 사람들을 보살펴 주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 이 때를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기별에 대한 신앙을 파괴하려고 위협하는 거치는 돌들과 유사(流砂: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모래 수렁으로 방심할 수 없는 위험한 사태)들을 계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책임 추궁을 받게 될 영혼들을 위하여 살피라.
우리들은 주님의 길을 알기 위하여 또한 종교적인 허위(虛僞) 들에 속지 않기 위하여 매일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는 거짓된 이론들과 미혹적인 강신술적 견해들로 가득 차 있어 밝은 영적 식별력을 흐리게하고 진리와 거룩함에서 떠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이 때를 만난 우리들은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 5:6)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조심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단순한 교훈들을 너무 지나치게 영성화(靈性化) 함으로 실제적인 의미를 놓쳐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공상을 즐기기 위하여 괴이한 문제를 제시하여 성경에 있는 말씀의 의미를 지나치게 왜곡(歪曲)하지 말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라. 하늘 왕국이 어떠할 것인가에 관하여 묘사한 무익한 가설들을 피하라(원고 30, 1904년).
생명과 사망의 문제
생명체는 어떤 것이든 죽여서는 안 되며 아무리 귀찮고 괴로움을 주는 곤충일지라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어떤 사람들의 가르침에 관하여 문의해 온 서신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런 기별을 자기에게 주셨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주님께서는 결코 어떤 인간에게도 그런 기별을 주신 일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우리의 평안과 휴식을 방해하는 곤충을 죽이는 것이 죄가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모든 교훈 가운데서 이런 성질의 기별을 주신 일이 없으시며 당신의 제자들은 오직 그분께서 저들에게 명하신 것만을 가르쳐야 한다.
언제나 논쟁 거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일이 저희 신앙의 전부이다. 저들은 새롭고 이상한 것만을 구상해 내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저들은 하찮은 문제들을 생각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가지고 저들의 예리하고 논쟁을 즐기는 기질을 활용한다.
어리석은 우화들을 중요한 진리처럼 가르치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우화들을 실제적으로 믿음을 시험하는 시금석이 되는 것처럼 다루었다. 이리하여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은 진리에서 떠나게 되었다. 사단은 만일 자기가, 사람들의 정신을 경박하고 하찮은 것들에 열중케 할 수 있다면 저들이 중요한 문제들을 거들떠보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그러므로 사단은 경박하고 사소한 문제들을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위해서 풍부한 재료들을 준비해 놓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정신은 중요성이 없는 문제들에 대하여 열중하고 있었다. 저들은 대대로 내려온 것이며 저들의 구원에 아무 관례도 없는 전설을 토의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보배로운 진리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 처럼 오늘날에 있어서도 귀중한 순간들이 영원 속으로 흘러 들어가며 무익한 우화 때문에 구원에 관한 큰 문제들을 간과해 버리고 있다.
나는 나의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교훈들을 충실히 따르라고 말하고 싶다. 성경의 풍성한 진리들을 깊이 생각하라.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만 그대들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대들에게는 곤충을 죽이는 문제에 관하여 논쟁을 벌일 여가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임을 그대들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렘 23:28). 이러한 지엽적인 문제들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에 비하면 지푸라기나 장작이나 덤불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문제들을 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진리들을 떠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들은 영원한 복리와 관련된 진리에서 저희 눈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원수가 제시하는 무익한 궤변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저들에게는 가설들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없다.
그러한 문제들을 토의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만일 그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 혹은 어떤 문제를 연구해야 될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이 생긴다면 위대하신 교사께서 설교하신 문제들을 찾아볼 것이며 주님의 교훈들을 따를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5) 하는 질문에서 아무것도 그대들의 관심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것은 생사에 관한 문제이며 영원한 세상을 위하여 각자가 반드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엄숙한 진리의 중요성에 관하여 신중히 생각하여야 한다. 무가치하고 중요치 않은 이론들을 찾아 헤매는 일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은 진정으로 회개할 필요가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권위를 전혀 엿볼 수 없는 이론들이 사방에서 침투해 들어오며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론들이 마치 저들을 지혜롭게 하는 진리인 것처럼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이론들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인들은 싸구려 음식에 만족을 느끼게 되어 소화 불량성 신앙을 가지게 된다. 왜 사람들은 무익한 우화들을 받아들이고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것처럼 증거함으로 저들의 귀중한 신앙적 체험을 낮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들은 애매하고 하찮은 문제들 곧 하나님의 요구에 대하여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들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남녀들이 침착하고 솔직하게 생각하는 인물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저들은 점점 더 고상한 차원으로 향상해야 하며 점점 더 광범위한 한계에 이르러야 한다. 저들은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함을 입어야 한다. 따라서 저들은 심오하고 영원한 하늘의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시간을 바쳐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저들의 신앙적 체험 가운데는 무가치한 것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웅대한 진리를 연구할 때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저들은 가장 고상하고 고결케 하는 진리는 모든 진리의 근원이신 주님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주님께 대하여 배울 때, 저들의 동기와 동정심이 확고해지고 변치 않는 것이 될 것이다. 전지 전능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은 실질적이며 영구적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는 잠시 동안 졸졸 흐르다가 말라버리는 얕은 샘이 아니다. 생수는 영생토록 샘솟는 것이다.
우리들은 증거로 계시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우리가 받은 빛이 모든 참된 빛의 신령한 근원이 되시는 주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사람들은 안전한 기초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세상을 타락에서 구원하는 사업을 위하여 능력을 바칠 때에 풍성한 축복을 저들에게 부어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주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며 더욱 고상한 품성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구세주를 올바로 증거하도록 우리를 도우신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1. 8. 13.).
내세에 관한 억측들
오늘날, 신천지에서도 결혼하는 일과 출산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표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그러한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신천지에서 어린이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교리는 확실한 예언(벧후 1:19)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하므로 오해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들을 읽어보면 신천지에서 결혼하는 일과 출생하는 일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들이나 죽음을 맛보지않고 변화함을 입은 사람들도 다 같이 시집 가거나 장가가는 경험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이 될 것이며 하늘 귀족의 일원이 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뚜렷하게 선언하신 이 말씀에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는 것이 웅변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 우리들에게 밝히시지 않은 문제들에 관하여 억측이나 그릇된 이론들을 제멋대로 내세우는 것은 실로 오만불손한 일이다. 우리는 내세의 상태에 관하여 공론(空論)을 꾸며낼 필요가 없다.
나는 목회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고 말해 주고 싶다. 기초를 쌓는 일에 나무나 지푸라기나 덤불로 하지 말라. 그대들 자신의 추측이나 공론은 아무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에 요긴한 진리들은 단 한 가지도 숨겨두지 않으셨다. 증거로 나타난 사물들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들은 나타나지 않은 사물들에 관한 교리를 꾸미도록 우리들의 상상력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는 내세에서 누릴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해놓으셨으나 아직도 이런 계획들을 계시로 밝혀주시지 않으셨으므로, 그런 것들에 관하여 추측으로 말하여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이생의 상태들을 가지고 내세의 상태들을 헤아려서도 안 된다.
가장 중대한 문제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의 가장 깊은 사고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신 문제들을 파고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은 결코 흰 머리칼을 갖게 되지 않으리라는 공론을 펴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어리석은 가정(假定)들을 내세워 그것들이 마치 중요한 문제들인 것처럼 생각케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이지적으로 생각하도록 도우시기 바란다. 분명치 않은 의문점들이 생겼을 때, 우리는 먼저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라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중생 곧 새로남에서 말미암는 생애의 새로움을 맛보게 하라. 진리를 순종하므로 저들의 영혼을 순결하게 하고 영생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좋을는지 질문한 법관에게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교훈에 일치하는 행동을 하게 하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7, 28). 저희 생애를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요구에 순응하는 모든 사람들은 영생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원고 28, 1904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
이 사업 가운데는 어떤 이론들을 신자들 앞에 제시함으로써 논쟁을 일으키고 저들을 위하여 예비된 큰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형성되어 인간적인 본성을 누그러지게하고 부드럽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에 일치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하심을 풍부한 모습 그대로 열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초청하셨으며 모든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준비하신 식탁에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것은 주님의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먼저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잔치에 초청하시므로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참석하게 해야 한다(서신 89, 1898년).
십사만 사천 인
하나님께서 웅대하고 고상하며 고결케 하는 진리를 주셔서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보물 창고에 언제나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셨건만 교회 안에 허탄한 이야기들과 가설적인 이론들을 가르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이 이론 혹은 저 이론을 선택하며 저들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하여 알고 싶은 호기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일이 아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상상의 힘을 빌어야 하고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증거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계획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십사만 사천 인에 속하게 될 것인가 하는 등의 영적으로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들을 가지고 신자들이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잠시 후에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 그대들과 그대들의 자녀를 위하여 주신 진리를 깊이 음미하고 연구하라. 영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기 위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0:25). 이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주어졌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원고 26, 1901년).
그리스도께서 연합을 호소하심
우리 교인들은 지도층의 인물들 가운데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을 보고 저들 자신도 논란되고 있는 문제들에 관하여 언쟁을 벌이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연합을 호소하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릇된 일들을 고집하는 것에 연합하기를 호소하지는 않으신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순결하고 고상하며 고결케 하는 진리와 거짓되고 오류로 인도하는 교리 사이에 현격한 대조의 선을 그어 놓으셨다. 주님께서는 죄와 완고한 고집을 있는 그대로 밝히 지적하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회칠하듯이 악행을 가려주시지는 않으신다. 나는 우리 형제들에게 진실되고 성경에 기초를 둔 진리에 연합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원고 10, 1905년).
으뜸이 되고자 다투지 말라
일꾼들이 저희 영혼 속에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모실 때, 모든 이기심이 죽고 경쟁 의식이 사라지며 으뜸이 되기 위하여 다투지 않고 일치 단결의 정신을 앞세울 때, 또한 저들 스스로 성결케 하여 서로 사랑하는 정신을 보게 되고 느끼게 될 그 때에, 하나님의 허락은 추호도 틀림없이 성취되어 성령의 은혜의 소나기가 분명히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도외시하고 교역자들이 저들 자신의 우월함을 나타내 보일 때 저들은 저희의 수고가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입증할 따름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축복하실 수 없으시다(원고 24, 1896년).
22
극단적인 견해의 위험*
캘리포니아주 쎄인트 헬레나
1890년 5월 19일
친애하는 K형제에게,
저는 형제에게 이 글을 쓰기에 앞서서 형제를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서로 서신의 왕래가 있기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날에 이 두 가지를 다 못하였으며 현재도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저는 형제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형제가 사업에서 떠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형제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일에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기력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형제의 두뇌는 너무나 민첩하고 혀는 달변이어서 제 자신이 매우 지치게 될 것만 같고 제가 말한 것들이 형제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을 것처럼 생각됩니다.
저는 형제가 위험에 처하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형제는 신중성이 없이 너무나 쉽사리 마음의 생각들을 말로 표현해 버립니다. 형제는 사물들을 과격한 견해로 평가하며 형제의 언어에는 조심성이 전혀 없습니다. 어떤 문제들에 대하여 표명한 그대의 견해들은 다른 믿음의 형제들이 그대를 두려워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대는 가급적 다른 형제들과 거리를 멀리하려고 애쓰거나 그대의 관점은 항상 형제들과 같지 않다는 듯이 일부러 나타내려고 애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그대 자신이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아무리 그대가 노력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조차 이해시킬 수 없는 어떤 문제들에 대하여 개인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 그대 자신의 의무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대가 지니고 있던 선한 감화력이 크게 소멸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대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반드시 생각하여야만 하는 줄로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주장하는 어떤 견해들은 올바른 것도 있으나 다른 견해들은 바르지 못하며 오류에 속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께서 죄를 기꺼이 용서해 주시는 것, 죄인을 받아들이시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자진적인 희생과 같은 문제들을 연구한다면 그대는 하나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대는 언제나 독창적인 창의력을 나타내려고 노력하며 극단적인 견해들을 주장하고 그러한 견해들을 표명하는 일에 강한 표현들을 사용하는데 그러한 그대의 태도 가운데는 크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대의 사상을 받아들일는지 모르며 또한 그들 중 더러는 실지로 유익을 얻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들이 시험을 당하고 죄에 패배할 때에 선한 믿음의 싸움을 싸울 용기를 상실할 것입니다.
만일 형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견해들에 대하여 덜 생각하고 그대의 엉뚱한 주장들을 자중하여 삼가한다면 그대 자신이 더욱 큰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대가 경건의 오묘를 깊이 연구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지나친 노력을 하므로써 그대의 정신이 때로 균형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대가 아무리 연구하고 어떤 설명을 첨부할지라도 그 경건의 오묘는 여전히 큰 신비로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경험이 다름
신자들이 예수님을 저들의 유일한 소망이시요 조력자로서 바라보도록 지도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영혼에게 말씀하시며 이해력을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드려야 합니다. 새 마음을 조성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혹은 죄를 다시 짓지 않으려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모든 이유와 까닭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꼭 말해 주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대에게 그러한 사명을 수행하라고 주신 사업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회개하는 과정도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감동시키시며 죄인은 다시 새 생애로 거듭나게 됩니다. 때때로 어떤 영혼들은 격렬한 회개, 마음을 찢고 슬퍼하는 일 또는 양심의 가책으로 두려워하는 경험 등을 겪지 않고 그리스도께 이끌리는 때가 있습니다. 저들은 높이 들림을 받으신 구세주를 바라봄으써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영혼의 필요를 느꼈으며 구세주의 충만하심과 주님의 주장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저들은 일어나서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러한 회개의 과정 역시 순수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사람의 신앙 생애는 어떤 격렬한 과정의 모든 번뇌를 겪은 사람들의 회개처럼 순수하고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 목사들은 저들의 독특한 견해들을 주장하며 여러분들도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생각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형식의 감정은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 사상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하여 큰 사업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아야 하며 저들은 반드시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저들이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은 그대의 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의 살과 피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요 6:55),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여지를 남겨 두라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영혼은 자기 자신을 위대하신 의원의 보호 아래 두게 되며 사람들은 환자와 모든 영혼의 필요를 식별하시는 위대하신 의원 사이에 개입하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영혼의 의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혼의 결함과 질병을 이해하시며 당신의 피로 사신 영혼들을 치료하는 방법들을 알고 계십니다. 영혼에게 결핍된 것은 주님께서 가장 잘 공급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나치게 참견하는 습성이 있어 너무나 과대한 일을 하며 때로는 과장하기도 하여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자리를 전혀 남겨놓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인격을 도야하거나 어떤 품성을 형성하거나 간에 그 일을 가장 잘하실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비록 죄에 대한 뉘우침이 깊지 못할지라도 죄인이 그리스도께 와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의로우신 주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 광경은 모든 장벽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받기 위하여 당신을 의지하는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는 사업을 책임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잡아야 할 비행들을 바라보시며 억눌러야 할 악들을 살피십니다. 주님께서는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선하심과 자비를 통하여 죄인이 거룩한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화목하도록 사람들에게 매일 탄원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펴신 팔로 죄인들뿐만 아니라 탕자까지라도 언제나 받으시고 환영하십니다. 주님의 죽기를 무릅쓴 사랑, 갈바리 산상에서 나타내신 그 사랑은 용납과 평화와 사랑에 대한 죄인들의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가르쳐서 죄로 어두워진 영혼들이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비치는 광채를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일하고 있으므로 기별을 전파하기 위하여 택함을 입은 사람들까지라도 자질구레한 이론들로 온 정신이 사로잡히게 되고 사단이 꾸며놓은 그대로 그러한 이론들을 굉장히 거대하고 중대한 문제인양 생각하게 됩니다. 저들 자신의 생각에 신앙적인 체험에 있어서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는 줄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 저들은 몇 가지 견해들을 우상화하며 저들의 선한 감화력은 손상을 입게 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에 대하여는 거의 말하는 적이 없게 됩니다.
모든 목사들은 그리스도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문제들에 관하여 그대의 정신이 보다 확고한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대의 길은 사업에서 이탈될 것이며 그대는 무엇에 걸리는지도 모르게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대는 과거에 그대 자신이 결코 시작하지 않은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상들을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성경과 증언의 말씀 가운데서 일부를 택하여 자기 견해에 알맞도록 어떤 구절이나 문장을 해석하며 연구하고 저들의 주장을 세우는 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 역시도 이러한 위험에 처하여 있습니다.
그대는 은혜의 기간의 끝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을 흔들림에 대하여 묘사한 증언의 일부를 취하여 마치 그 가운데서 더 순결하고 더 거룩한 백성이 새로 일어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원수를 기쁘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까닭없이 견해의 차이를 만들거나 분열을 일으킬 길을 택하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목사들이 이해력과 믿음이 부족하고 어두움 가운데 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특수한 주장들을 일반 신자들이 따르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의 정신은 너무나 오랫동안 비정상적인 긴장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그대에게는 너무나 많은 진리, 너무 고귀한 진리들이 있었으나 여러가지 가설들과 혼합해 버렸습니다. 그대의 극단적인 견해와 강한 말로 표현한 주장들은 그대가 최선의 노력으로 빛어놓은 효과들을 때때로 소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일 많은 사람들이 그대가 제의한 주장들을 받아들이고, 말하고 그대로 행동한다면 과거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에게서 전혀 목격할 수 없었던 가장 광신적인 흥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단이 원하는 것입니다.
신비에 속하는 것들은 덮어두라
그리스도의 교훈 가운데는 우리가 언제나 말할 수 있는 풍부한 재료들이 있습니다. 그대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신비에 속한 문제들은 그대로 덮어두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놀라운 구속의 경륜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환난의 때가 올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들은 그 문제를 신자들에게 항상 상기시켜서는 안 되며 저들이 환난의 때를 앞질러 맞이하도록 고삐를 당겨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흔들림의 시기가 있을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교회에서 전해야 할 현대 진리는 아닌 것입니다.
목사들은 저들 자신에게 어떤 놀라운 진보적 사상들이 있어 만약 모든 신자들이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흔들림에서 떨어져나가게 되고 진보적인 사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발전하고 승리를 거두기 위하여 분발할 것이라는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하여 주신 기별의 근본적인 원칙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근본적인 원칙들을 그대 자신이 증거해야 합니다. 저들은 그대의 극단적인 견해와 가르침을 마치 저들이 주님의 기별을 받지 않을 핑계 거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앞질러 뛰어가며 주님께서 저들에게 결코 맡기시지 않으신 일을 행하며 저들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처럼 미지근하고 부자라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여길 때 사단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부류는 동일하게 거치는 돌들인 것입니다.
어떤 열광적인 사람들은 독창적인 것을 구상해 내기 위하여 목적을 정하고 온갖 힘을 기울임으로 어떤 놀랍고도 훌륭하며 황홀케 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 제시하려고 합니다. 저들 생각에 다른 사람들이 깨달을 수도 없으며 저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서 애씀으로 큰 과오를 범하였습니다. 저들은 자기 자신과 교회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견해들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공론을 펴고 있습니다. 어느 기간 동안은 저들이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거기에 따르는 반응이 있을 것이며 저들이 구상해 낸 견해들이 하나의 큰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신앙심이 환상과 혼돈될 것이며 저들의 견해는 마음을 그릇된 방향으로 편견을 갖게 할 것입니다.
분명하고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이 정신을 위한 양식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뚜렷한 증거가 없는 견해들을 가지고 공론을 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대는 본래 투쟁적입니다. 그대 자신이 다른 형제들과 조화를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거나 간에 그대는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논쟁하기를 좋아하며 그대의 특이한 주장들을 내세우기 위하여 싸우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벽은 그리스도인 성품이 계발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그대는 이런 성벽을 버려야만 합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신 그리스도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하여 그대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일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이 매일 예수님에 대하여 배우고 주님의 온유하심과 겸비하심을 배우지 않는 한 어떤 영혼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그대가 어디를 가서 일을 하든지 독재적이거나 가혹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며 반목하는 정신을 나타내 보여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여 이 사랑이 심령을 녹이고 복종케 해야 할 것입니다. 한마음과 한가지 견해를 갖도록 노력하고 다른 형제들과 밀접한 조화를 이루며 동일한 내용들을 말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분열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모든 사람들의 견해가 그대의 견해와 같지 않다고 하여 분열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며 원수가 하는 일입니다. 그대가 동의할 수 있는 단순한 진리를 말하십시오. 연합에 대하여 말하고 편협하거나 자만심을 보여서는 안 되며 그대의 마음의 폭을 넓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적인 판단의 저울로 성품을 다루어 보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끄심에 반응을 보이는 모든 영혼은 악에서 돌아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은 땅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에 발을 올려놓는 것과 같습니다. 글과 말로써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사다리이심을 가르치십시오. 사닥다리 매 계단마다 주님의 영광의 밝은 광선이 비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고통스럽게 사닥다리에 올라오는 모든 사람들을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며 손에 힘이 빠지고 발이 떨릴때 저들에게 거룩한 도우심을 보내실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말로 그것을 전해야 합니다. 견인 불발의 정신으로 사닥다리를 오르는 사람은 단 한 영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주님의 손에서 저들을 빼앗지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부끄럽게 여겨야 할 세습(世襲)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분명하고 희망적인 말로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저들을 실망시키는 견해를 말하거나 천국에 가는 길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말하지 말 것입니다. 모든 무리한 견해들은 그대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신앙 생애란, 싸움하는 생애이며 깨어 기도하고 수고하여야 하며 단 한순간이라도 영적 경계를 게을리 할 때 영혼에 위기가 따른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야 하는 동시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신 예수님께서 구원을 완성해 주셨다는 것을 주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하며 주님을 알기 위하여 날마다 순종하는 생애를 살고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시는 의미를 배우며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굳게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하늘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중보자에게 영혼을 붙들어매야 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하나님 안에서 그대의 생애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숨겨진 바 되며 그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순수한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하시는 희생의 효능을 전적으로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공로를 믿음으로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빌 2:13)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 나아갈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언제나 이러한 신앙관을 뚜렷하게 유지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대의 투쟁적인 정신을 자극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 (약 3:17).
그대의 형제들과 화합하라
그대의 상상력이 받아들이는 모든 견해를 꼭 나타내야만 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과오를 범하기 쉬운 우리들이 감당치 못할 일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을 권고하는 일에 얼마나 크게 조심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끊임없이 바라봄으로 그대의 강력하고 무모한 주장들을 억눌러야 합니다. 그대의 말과 견해들에 대하여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완전히 일에서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형제들과 화합하도록 힘쓸 때에 주님의 포도원에서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그대의 견해와 주장을 높이지 말 것입니다. 전신 갑주를 입고 하나님의 일꾼들과 보조를 같이 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전진할 것입니다. 원수를 대항하는 전쟁에서 전진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숨으십시오 그리스도의 단순한 교훈들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양떼를 먹일 때에 그대는 안정하게 되고 힘을 얻으며 확고하게 설 것입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거룩한 믿음을 가지도록 도와주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대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에 관한 지식에 있어서 다른 형제들과 견해를 달리 한다면 그대는 이러한 차이점들을 두드러지게 노출시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대는 그 문제를 한 가지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께 헌신한 자로서, 동일한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며, 자기의 마음에 가장 깊은 감명을 주는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또 다른 관점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고 다른 국면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논쟁할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정신에 역사하시게 하고 심령에 감동을 주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들로 죄에 대하여 올바른 감각을 갖게 하고 하나님의 원대한 주장들에 대하여 밝히 깨닫도록 이해력을 열어 주시며 식별력을 깨우치시기 위하여 항상 활동하고 계십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마치 하나님을 사랑스럽지 않고 가혹하며 심지어는 복수심에 불타 있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하나의 변함없는 견제력으로 여기고 그분의 성품을 하지 말라 는 주장으로 가득 찬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업이 침울한 분위기와 고역스런 요구로 충만한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인류를 사랑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보게 될 때 그의 눈이 열려 새로운 빛으로 모든 사물을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가혹한 재판관이나 복수를 즐기는 폭군이 아니며 자비스럽고 사랑스러우신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의 심령은 사도 요한의 말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을 결정적으로 구분케 하는 요소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평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어떤 교역자들은 걸핏하면 죄인들에게 비난을 퍼붓습니다.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주어 돌아가시게 하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는 뒷전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교사는 진정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죄인에게 알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간절한 사랑으로 돌아온 탕자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기다리시는 분이시며 진노하심으로 탕자에게 비난을 퍼부으실 분이 아니시고 그가 돌아온 것을 환영하기 위하여 즐거운 잔치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습 3:14-17).
아, 우리 모두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에 있어서 주님의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갈바리의 십자가에 나타난 희생의 빛 가운데서 고귀한 교훈들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겠습니다. 멸망에서 인도하여 계속적으로 하늘에 오르게 하는 유한한 길이 있는데 그것은 곧 항상 흑암 저편에 있는 빛에 이르게 하는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쉬게 될 때까지 인도합니다. 이 교훈을 배운 모든 사람들은 저들에게 깨달음을 준 빛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들에게는 이처럼 올라가는 길이 어둡고 불분명한 길이 아니며 유일한 인간이 제시하는 길도 아니고 인간적인 구상에 의해서 잘라낸 통로도 아니며 모든 여행자에게 강제로 통행 요금을 징수하는 그런 길도 아닙니다.
그대는 어떤 고행이나 그대가 할 수 있는 행위로 말미암아 그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결단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길을 예비하실 영예를 가지셨으며 이 길은 너무나 완결되어 있으며 너무나 완전하므로 인간이 자신의 어떤 행위로써 그 완전성을 보충할 수 없습니다. 이 길은 넓고 광활하여 가장 큰 죄인일지라도 들어 올 수 있으며 한편 이 길은 너무나 협착하고 매우 거룩하며 높이 있어서 죄가 전혀 그 길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에 복된 진리는 새롭고 밝은 빛을 비춰 줄 것입니다. 정신에 혼란을 일으키는 문제는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찬란한 빛으로 말미암아 깨끗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현재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장차 알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있습니다. (서신 15a, 18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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