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적 언어는 어린이가 엄마한테 보고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하교하자마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 고주알 엄마한테 털어놓는다. 자신을 답변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포지션 고정이다. 2차원적 언어는 중딩이 말싸움에서 이기려는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 주도권을 잡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야유하고 조롱하고 풍자한다. 프레임을 걸고 이겨먹으려고 한다. 음모론이나 관종행동이 그러하다. 3차원적 언어는 나와 관계가 없다. 나와 관계가 있는듯이 보이려면 신파를 찍거나 선악구도로 가야 한다. 그 경우 이야기가 뻔해진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은 '내재적 질서'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각자 곤란한 사정에 처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거기에는 선악이 없다. 등장인물은 관객과 결탁하지 않는다. 신파 기술로 관객의 도움을 호소하지 않는다. 자기소개를 하지 않는다. 기막힌 반전으로 관객을 이겨먹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킬러가 헤로인을 먹고 변비에 걸리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킬러 세계의 내재적 질서를 드러낸다. 곤란한 때는 해결사를 부르면 된다. 간단하다. 지루한 보여주기식 억지 액션이 없다. 빈센트는 자동차 안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곤란해졌다. 줄스는 자기만의 개똥철학이 생겨 황당해졌다.
지미는 마누라가 퇴근하기 전에 처리해야 할 시체가 있다. 두목을 배신한 부치는 여자친구를 다독여서 튀어야 한다. 마르셀러스는 보스인데 강간당했다. 이들은 각자 곤란한 상황을 당했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행운의 도움으로 하나씩 해결한다. 우리가 내밀한 구조 속에 갇혀 있음을 깨닫게 한다.
타란티노 영화를 본 사람은 많지만 거기서 뭔가를 본 사람은 적다. 평론가들도 그냥 영화가 좋다고 선언할 뿐 왜 좋은지는 말하지 못한다. 거기서 차원의 도약을 발견해야 하는데 말이다. 타란티노를 이해했다면 베껴먹을텐데 그러지 못한다. 봉준호도, 박찬욱도, 류승완도 타란티노를 배우지 못했다.
내가 본 것을 그들은 보지 못했다. 뭔가 있다는 사실은 알 것이다. 그것은 게임 속의 또다른 게임이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조 놈놈놈에도 게임 속의 게임은 있다. 최동훈의 타짜에도 있다.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만 아는 특별한 세계가 있다. 그것을 본 사람은 자기소개와 이겨먹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관찰했더니 어떤 부족민은 자연의 모든 것을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어떤 식물의 이름을 물어보자 '그것은 쓸모없는 것이야. 하하하.'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쓸모없는 것에서 이름을 찾다니 바보냐?'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이항대립에 갇힌 것이다.
부족민은 생각의 범위를 유용한 것으로 한정하는 실패를 저지르고 있다. 문제는 현대인의 사유도 부족민의 사유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내재적 질서는 이항대립 내부에서 작동하는 밸런스와 조절장치를 보는 것이다. 이원론 위의 일원론을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것은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배를 움직이는 것은 노다. 노는 좌우에서 둘이 대칭된다. 범선은 노 둘을 버리고 키 하나로 해결한다. 키는 비대칭이다. 대칭 2에서 비대칭 1로 올라서야 한다. 그 사이에 차원의 벽이 있다. 차원은 에너지의 전달경로다. 범선의 돛을 올리고 에너지 입력부를 차지해야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설 수 있다.
비대칭의 축이 대칭된 두 바퀴를 통제하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른가? 힘이 걸려 있다. 바퀴는 헛돌지만 바퀴축은 헛돌지 않는다. 헛도는 이원론 세계와 힘이 걸린 일원론의 세계가 차원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집합과 원소, 전체와 부분, 연속과 불연속, 변화와 불변 사이에 힘이 걸려 있다.
환원과 비환원 사이에 메커니즘이 있다. 대칭의 1법칙과 비대칭의 2법칙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는 눈이다. 모든 대립은 부분이며 전체에서 화쟁된다. 부분의 대립은 에너지 손실 때문이며 전체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정과 반의 대립이 합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다.
2차원의 합이 1차원의 정과 반을 조절한다. 면이 선의 대립을 조절하고 선이 점의 대립을 조절한다. 엄마가 형제의 대립을 조절한다.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구조가 행위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봐야 한다. 마르셀러스와 부치는 서로 비밀을 공유하므로 행위가 조절되어 LA만 떠나면 부치는 안전해진다.
2법칙이 날줄이고 1법칙이 씨줄이다. 존재는 2법칙과 1법칙이 씨줄날줄을 이루어 사건을 조직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집합과 원소, 전체와 부분, 원인과 결과, 연속과 불연속은 씨줄날줄의 문제다. 둘이 정과 반으로 대립하지 않고 에너지 전달경로 우선순위에 의해 통일되는 과정이 베짜기다.
2법칙이 에너지를 공급하고 1법칙이 소비한다. 날줄은 환원되고 씨줄은 환원되지 않는다. 내재적 질서는 세상이 맞서는 이항대립이 아니고 에너지를 전달하는 5항연속의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뭐든 둘이 맞서 있다면 관측자가 개입하여 내부의 에너지 흐름을 놓친 것이다. 잘못 본 것이다